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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I 교육현장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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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조회 5,378회 2021-07-2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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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쟁취 투쟁을 두고 로또 취업이라 비방하는 이들이 또다시 출현했다. ‘공정한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는 것이다. 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쟁 논리, 능력주의 논리는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혹한 입시경쟁으로 내몰리는 학생 시절부터 반복된 경험으로 내면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 기고 글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전교조 조합원이 보내온 것이다. 학생들이 교육현장에서 경쟁과 복종의 논리를 어떻게 내면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로의 등급을 나눠 차별하는 것이 정당한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교육현장에서부터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이 평등과 연대의 원칙을 전 사회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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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중요한 화두로 능력주의를 꼽을 수 있겠다. ‘능력주의에 대해 다양한 입장과 서로 다른 논자들의 개념 정의가 있지만, 어쨌든 능력주의가 우리 일상에서 넘치도록 많이 얘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어떻게 능력주의가 나타나고 확대 재생산 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번 시험 1등급 컷이 몇 점이에요?’

 

학생들은 항상 시험을 보고 내게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사실 내신 등급이란 학기말에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를 합산하여 산출하므로 시험이 끝난 직후에 등급 커트라인을 미리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신 등급은 상대평가, 즉 석차로 어느 정도 예측되기에 학생들에게 등급별 컷 점수는 최대의 관심사다.

 

학생들에게 내신 등급이란 이후 대입을 결정짓는 중요한 스펙이자 낙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상위급 대학을 노린다면 등급 관리는 필수적이다. 만일 중간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기말고사에는 그 과목에 공부하는 노력을 다른 과목으로 돌려 조금이라도 높은 등급을 여러 개 받으려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과목별 세부특기 능력사항에 좋은 말이 적히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관련 독서를 하기도 하고, 체험도 하며, 봉사활동도 수행하고, 학급 임원을 맡으며, 진로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학생들은 이른바 스펙을 쌓아가고 관리하며 자신의 학생생활기록부를 풍족하게 만들어 대입 수시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한다.

 

등급으로 표현되는 상대평가 제도는 학생들에게 철저한 경쟁 시스템을 내면화시킨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공부할 때 친구에게 노트를 보여준다거나 학습지를 빌려준다거나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주변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이기에, 단지 몇 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기 때문에, 학습에서 협력의 미덕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좋은 등급을 받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일자리에 들어갔을 때 그들 내면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한 경쟁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란 생각이 자리 잡게 된다. ‘정당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정규직이 되려는 비정규직이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 있을 수 없는 일을 욕망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창시절에 정당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저 정시에 올인할 거예요. 그러니 이 수업은 저한테 필요 없어요

 

한국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 중 하나는 이른바 민주 시민이다. 협력과 토론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을 기른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수업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 내용이 시험에 나오는지 여부이다. 시험에 나온다면 공부하고 안 나온다면 공부하지 않는다. 이런 취사선택이 좋은 등급을 받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하니 교사들도 그들을 탓하기 힘들다.

 

만일 시험에도 안 나오고 학생생활기록부 스펙에도 별 영양가가 없는 것을 붙들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주변 친구와 교사들은 그 학생의 미래를 걱정한다. 교육현장의 실제 현실과 비교한 교육과정의 목표는 그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일 뿐이다.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능력이란 오로지 수치화된 등급 및 석차와 빼곡하게 적힌 학생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학교 생활에서 경쟁을 강요하는 수시 말고 정시 확대가 사회적으로 더 좋지 않을까?’ 이미 위 제목처럼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사실 위와 같이 말하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막가파다. 이들은 1, 2학년 때 학교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3학년이 된 지금 수능-정시에 올인하겠다는 학생이 대다수다. 만일 수능 과목이 아니라면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 그들의 당당한 요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교육과정과 졸업장의 상관관계를 핑계로 대면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긴 하지만, 이런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경쟁 지옥의 악다구니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기적인 태도로 돌변하더라도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이런 태도는 결국 교육 목표를 상실한 채 입시 경쟁을 위해 학교가 존재한다는 현실만 드러내고 경쟁체제를 더 강화할 뿐이다. 노동시장에 좋은 조건으로 진입하기 위해 좋은 대학을 선택하겠다는 것, 이것이 모든 사회적 가치에 우선한다.

 

왜 나누는가?

 

이렇듯 학생들의 일상은 언제나 경쟁과 복종의 연속이다. 경쟁의 연속이기에 그들이 납득할 만한 공정한잣대가 필요하다. ‘공정한잣대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공정한잣대는 한눈에 판별 가능하여 그들을 나눌 수 있는 무언가여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여기에 매몰된 사람들이 수시’, ‘정시논쟁을 만들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조건을 만들어낸다. 무엇이 입시경쟁에서 등급을 나누는 공정한잣대인지를 묻고, 무엇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공정한자격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현재의 능력주의논쟁에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따져야 할 물음은 애초에 왜 나누어야만 하는가일 것이다. 왜 학교에서 등급을 만들어서 점수를 차등적으로 부여하고, 왜 이 점수로 각기 다른 레벨의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며, 왜 학력과 학벌을 무기로 취업에 성공하여, 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채 서로 반목하는지. 왜 같은 일을 함에도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 다른 일을 하더라도 왜 임금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야 하는 것인지.

 

학교의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기나 한 것처럼. 만약 어느 교사가 등급을 나누는 건 사회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꺼냈다면 그 교사는 세상 물정 모른 채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취급될 것이다. 학생들의 생각에 어떻게 파열음을 낼 수 있을까?

 

어쩌면 교육현장만의 실천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교육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실천으로 차별과 배제 대신 연대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 경쟁하는 노동자들의 다툼을 멀리서 지켜보며 웃고 있는 자본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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