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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 ‘카트’ 노동자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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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834회 2018-05-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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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매각반대 집회에 모인 홈플러스일반노조 조합원들


올해 초 우리는 영화 ‘카트’의 주인공들이 마침내 정규직화의 희망을 달성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12년 이상 근속자라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570여 명의 노동자들이 별도직군 신설 같은 꼼수 없이 기존 정규직 체계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성과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다른 방식의 꼼수가 감춰져 있었다는 점과 함께, “홈플러스는 570명 정규직화가 야기할 아주 약간의 손실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꼼수를 준비할지 모른다”는 점을 지적했다(3월 26일자 기사 <홈플러스 570명 정규직화, 더 멀리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려면> 참조).


이 기사를 내보내고 한 달쯤 뒤인 4월 25일,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본사 앞에 모여 회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부천 중동점과 경남 동김해점을 매각, 폐점한다는 통보가 4월 18일자로 갑작스레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5월 1일과 8일에도 이들은 본사 앞에 모여 항의집회를 열었다. 


그동안 현장에선 일부 점포 매각 또는 폐점에 관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노동조합이나 입점업체들이 이런 소문에 관해 확인을 요구할 때마다 사측은 결코 그런 계획이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 임일순 사장 역시 자신의 임기 중에 매각은 없을 거라고 다짐한 바 있다.


거짓말


홈플러스 단체협약에 따르면 매각, 폐점 등이 이뤄질 경우 고용, 노조, 단협을 승계하고 근로조건에 관해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매각, 폐점 발표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합의는커녕 일언반구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도리어 회사는 매각 발표 이틀 전까지도 그런 계획이 없다며 계속 거짓말을 해 왔다. 매각, 폐점 때문에 근무지를 옮길 경우 출퇴근 거리가 멀어지거나, 새로운 업무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명백히 노동조건에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사측은 이번 매각이 단지 ‘경영효율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노조와 합의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매각뿐만이 아니다. 홈플러스는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기존 매장을 창고형 매장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부분적으로 무인계산대 같은 무인화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창고형 매장에선 이런 추세가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회사가 추진하는 계획이 노동조건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회사를 설립해 40여 개 매장을 매각한 후 임대 운영하려는 계획도 장기적으로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회사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다면서 그간 지급해 왔던 성과급 지급을 중단하고 30만 원의 ‘특별격려금’으로 대체했다. 실질임금 삭감이다. 이건 ‘꼼수’ 정도가 아니다. 아예 대놓고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홈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570명 정규직화 약속을 내놓으면서 임일순 사장은 “향후에도 노사 간 화합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직원들의 안정적인 근무환경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상황은 ‘안정적인 근무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전반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는 일산 덕이점, 울산 학성점, 부평점, 시지점 등을 매각했다. 롯데백화점은 안양점을 매각했고 부평점과 인천점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영플라자 청주점도 매각 후 임대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랜드리테일은 NC(뉴코아) 평촌점을 매각했다.


유통업체들이 이렇게 몸집을 줄이는 건 기존 매장운영 방식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끌어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업체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같은 지역에 대형마트들이 난립해 왔다. 이번에 매각계획을 밝힌 중동점의 경우에도 같은 상권에 이마트 2개, 홈플러스 4개,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지금껏 저들이 벌여 온 출혈경쟁에 따른 손실을 이제는 매각이란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런데 노동자가 피해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경영상의 문제가 생겼다면,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을 맡고 있는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실적이 좋지 않다면, 깃털처럼 가벼운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어갈 게 아니라 사장들의 묵직한 금고문을 열어야 한다.


노동자가 한 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저들은 습관처럼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요구한다. 현 상황은 이런 것이다. 촛불항쟁을 거치며 대중투쟁의 압력을 느낀 자본가들은 잠시 새 정부 눈치를 봤다. 홈플러스 사장 스스로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제로정책에 앞장서기 위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노동자운동 전체가 더 자신감 있게, 더 대담하게 싸우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자본가들이 대담하게 행동에 나서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번에 발생한 매각, 폐점과 성과급 지급 중단은 홈플러스만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유통업계 자본 전반이 겪고 있는 위기의 결과다.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이후 계속될 고통전가 조치들을 순탄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자본은 노동조합을 길들이고 싶을 것이다. 단단히 마음먹고 홈플러스 사측의 도전에 지금부터 맞서야 제2, 제3의 공격에 밀리지 않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카트’ 노동자들은 순순히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5월 1일 집회에선 몇 달 전 정년퇴직한 조합원까지 찾아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며 동료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이들에겐 자랑스러운 투쟁의 기억이 있다.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무기력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본가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관련 기사: 홈플러스 570명 정규직화, 더 멀리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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