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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실태조사 때만 달려 있는 선풍기, 누가 다 치웠을까?(feat. 선풍기빌런) - 한국지엠 하청업체 현장을 점검하며 느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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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조회 4,519회 2021-06-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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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기사를 기고한 김태훈 동지는 노동안전 실태조사를 위해 현장을 돌았는데, 첫날 점검 때에는 달려있던 선풍기가 점검이 끝나자마자 사라져버린 장면을 목격했다. 노동조합이 있는데도 현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자본의 감시, 통제에 짓눌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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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잠깐 쉴 수 있는 휴게실. 가방이 있는 자리에 선풍기가 있었는데, 실태조사가 끝나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난 16일 노동안전실태조사 건으로 현장을 점검했다. 검사하며 느낀 건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가 공장이라는 시스템의 압력에 짓눌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여러 현장을 돌면서 보고 느끼고 고민하게 된 점들을 이 글에 담아보려 한다.

 

이번 점검에서 내가 다녀온 장소는 2공장 차체와 조립, L850 등이다. 처음 간 곳은 차체 쪽에 있는 업체 피디에스. 작년에도 지적했던 장갑이 아직 그대로였다. 차체 부품을 다루다 보면 손이 베일 수 있어 위험하기 때문에 철심이 박힌 장갑을 써야 한다. 근데 작업자들은 철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불편하니 편한 장갑을 쓰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업체도 작업자들이 원하는데 우린들 어찌합니까?” 한다. 이럴 땐 지적하기도 뭐하고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 바로 옆에 있는 디에스플러스에도 들렀다. 여긴 작업자 2명의 휴게공간이 있다. 작년에는 에어컨이 없었는데 올해 가보니 달아놨다. 날도 더운데 다행이지 싶었다.

 

인원은 줄이고, 남은 인원은 철야

 

이후에 2조립 쪽으로 이동했다. 처음 간 업체는 태호코퍼레이션이다. 여긴 참 악질인 게 2공장 물량 감소와 휴업 걸리는 걸 핑계로 회사 사정이 힘들다며 인원을 많이 잘랐다. 직장과 이사까지 그만뒀다. 그것도 모자라 남은 인원으로 철야를 뛰게 한다. 장시간,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이런 연구 결과가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된 게 오래전 아니던가.

 

그런데 노동자들은 통상적으로 받는 임금으로 도저히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들은 생계 압박이 더 심하다. 그러니 원치 않더라도 철야를 뛰도록 강제된다. 사장은 또 이걸 핑계로 어떻게든 라인이 돌아가니 문제 없다며 사람을 안 뽑는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다.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 중 태호코퍼레이션만큼 악질이 있을까. 2공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해당 업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보니 이미 다른 업체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다. 예상하건대 다른 업체 사장들은 저렇게 쥐어짜고 인건비 챙겨가는 태호 사장에게 배 아파하지 않을까.

 

이후에 L850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일하는 한 작업자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년부터 얘기했는데 해결은 안 되고, 오죽했으면 담배 좀 덜 피우라고 문이라도 닫고 피우라고 그럽니다. 이거 좀 어떻게 안 됩니까?” 간접흡연 좀 해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휴게실 구조가 문제였다. 그 안에서 작업자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환풍구가 작업공간 쪽으로 나와 있었다. 일할 때마다 역한 담배 냄새를 계속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순위 바깥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건강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작년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된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환풍구는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공장 밖으로 빼면 될 문제인데,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방치되고 있었다. 공장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 앞쪽으로 넘어가니 세일인텍이 있었다. 작업하며 불편한 점 없으시냐 물었다. 에어컨 배관이 있는데 천장 가까이 높게 설치돼서 바람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딱 봐도 있으나 마나였다. 30도가 넘어가는 폭염이 쏟아지면 공장 안은 찜통이 된다. 에어컨 바람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오죽하면 폭염 시 작업중지권이란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겠나 싶었다. 파이프를 연결해 바람이 올 수 있도록 내리는 게 시급해 보였다.

 

또 회사에서 의자를 놓지 말라고 해서 다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하셨다. 의자 놓을 공간은 충분해 보였고, 업체가 의지가 있다면 개선 가능한 사안이었다. 의자 설치는 건강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종일 서서 일하면 하지정맥류와 허리이상, 전신피로를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 작업 시간 중간마다 앉을 수 있어야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된다.

 

얼마나 현장이 변할까?

 

노동안전 실태조사가 갖는 효과는 한국지엠지부에서 하청업체에 사실상 조금 압력을 가하는 정도다. 물론 업체 입장에서도 신경은 쓰인다. 업체 재계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이 외부의 압력을 받아 변한들, 그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변화를 지킬 힘이 없다면 회사는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회사가 차려준 밥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쓰리맥스가 딱 그랬다. 첫날 점검 때 달려있던 선풍기가 점검이 끝나자마자 없어졌다. 치워버린 것이다. 회사는 점검팀 눈치는 보지만 현장 작업자의 눈치는 보지 않는다. 노동환경 개선은 안중에도 없는 회사를 움직이게 강제하는 법은 뭘까?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장을 제대로 변화시키려면,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노동조합은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그런데 왜 현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작년도 그렇고 이번에도 실태조사 내내 업체 관리자가 따라다녔다. 작업자들은 눈치가 보여 말을 제대로 못 했던 건 아닐까.

 

다음 실태조사는 업체와의 일정 조정을 통해 관리자를 대동하고 다니는 게 아니라 불시 점검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관리자들 눈치를 보지 않고 사업장 내의 여러 문제를 그나마 얘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또 쓰리맥스의 경우처럼 점검 때만 조처를 하는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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