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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탄생부터 깡패국가였던 이스라엘이 또 다시 피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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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4,426회 2021-05-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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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학살극을 벌이는 동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과잉대응은 없었다며 옹호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중대한 과잉대응은 없었다.” 510일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1,2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학살이다. 그런데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과잉대응은 없었고 이스라엘에겐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옹호했다. 학살을 주도하고 있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친구 조 바이든에게 감사하다며 동맹을 과시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이스라엘의 스스로 방어할 권리에 힘을 실어줬다.

 

하마스가 먼저공격했다?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에 세력을 구축한 팔레스타인 단체 하마스가 먼저 수백 발의 로켓포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며 자신이 벌이고 있는 학살극을 정당화한다. 네타냐후 정권의 발표를 받아 적는 국내 여러 언론사들도 하마스가 먼저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510일 가자지구에서 로켓포가 날아가는 장면만 본다면 이런 얘기가 틀림없는 사실처럼 비친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그림이 틀렸다는 게 금방 드러난다.

 

57, 라마단(금식 성월) 기간의 마지막 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최고의 성지로 여기는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 이스라엘 경찰이 난입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스라엘 경찰이 최루탄, 섬광탄, 고무탄 등을 난사해 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시위의 배경엔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문제가 깔려 있다. 이스라엘은 알아크사 사원에서 2km 떨어진 셰이크자라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그곳을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삼으려 했다. 이미 오랜 기간 이스라엘의 깡패짓에 시달려온 팔레스타인인들은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뱉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하마스는 10일 저녁 6시까지 알아크사를 점령한 병력을 빼라고 이스라엘 측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요구를 거부했고, 하마스는 로켓포를 쐈으며, 다시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80대의 전투기를 띄우고 지상군을 움직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라마단 기간 마지막 날에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로 꼽히는 알아크사 사원을 침탈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네타냐후 정권의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 2년간 네 번이나 선거를 치르면서도 제대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정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상황을 거치며 다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이 즐겨 사용한 악의 축’, ‘깡패국가라는 표현에 걸맞은 나라가 있다면,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과 그 뒷배가 되고 있는 미국이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간단하게 색칠해버리고, 이스라엘을 그에 맞서 온갖 희생을 치르며 위기를 이겨내는 정의로운 나라라고 착각하는 시각도 여전히 강력하다. 탄생부터 악랄한 깡패국가였던 이스라엘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시온주의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사실 19세기까지만 해도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그리고 소수의 유대교인 등이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여러 나라에서 각자의 삶의 근거지를 갖고 생활하던 유대인들 역시 그 다수는 굳이 팔레스타인 땅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시온주의운동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시온주의자들은 본래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이며핍박받는 처지를 끝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오직 유대인으로만 구성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대부분의 민족주의 신화가 그렇듯이시온주의자들도 고대 이스라엘 왕국에서 이어지는 허구적인 이야기로 응집력을 만들어갔다유럽 각국에서 경험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 때문에사실상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실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온주의자들의 민족주의 선동이 점차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장악하기 위해 제국주의 열강에 들러붙었다영국이 패권을 쥐고 있을 때에는 영국과 협력했고이후에는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나치와 은밀하게 협력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제국주의 패권이 미국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갔다.

 

제국주의의 경비견

 

그런데 변변치 않은 처지의 소수 시온주의자가 어떻게 제국주의 열강들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그 방법은 간단했다아랍인들의 영토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를 탐내던 제국주의 자본가들을 위해 앞잡이가 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이스라엘 건국 후 몇 년 지난 1951년에 이스라엘의 일간지인 <하레츠>는 그런 의중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힘을 키워주는 것은 서방 열강들이 중동에서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이스라엘은 경비견이 될 수 있다.”

 

거꾸로 보면제국주의 열강들의 입장에서는 시온주의운동 같은 세력이 절실히 필요했다제국주의와 결탁한 시온주의자들이 아랍세계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균열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면자본주의산업의 생명수인 석유를 장악하고 세력권을 재편하는 데 아주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게 되니까 말이다그 결과오랜 기간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서방 강대국들이 이제는 시온주의자들에게 줄을 대고 자금과 무기를 건네는 얄궂은 장면전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더러운 거래에는 비극이 따르기 마련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독일과 한편이 된 오스만 터키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영국에 협력해주는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영토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맥마흔 선언). 하지만 곧이어 그들은 유대인들을 매개로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의 계획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발포어 선언).

 

이 두 가지 약속은 결코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제국주의세력의 이익을 위해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을 적대관계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이었다시온주의자들은 애초부터 기꺼이 제국주의의 경비견이 되겠다고 작심했기 때문에제국주의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패권을 위한 행동의 한 축으로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0세기로 넘어와 야금야금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추진하던 시온주의자들은 1947 12월부터 군사행동을 시작했다. 1948년에는 시온주의 민병대가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고 75만 명을 추방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을 강탈했다그들은 400개 이상의 마을을 휩쓸고 다니면서 총수류탄칼로 팔레스타인을 ‘청소했다

 

이 과정을 개척이라고 표현한 시온주의자들은 자신의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랍 주민들을 제거하기 위해 테러와 암살, 협박, 토지강탈, 사회적 서비스의 중단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기서 노예로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네 발로 우리에게 기어올 때까지 무한정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랄프 쇤만, <잔인한 이스라엘>에서 재인용)

 

그리고 시온주의 무장 깡패들은 이런 방침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이스라엘 국가는 탄생 시점에서부터 피로 범벅된 폭력적인 침략자로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자이며 강탈자로 등장한 것이다애초에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태생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잔인한 인종청소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깡패국가

 

이렇게 폭력적으로 등장한 이스라엘 국가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보복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이 상황에서 그들에겐 어떤 생존방법이 필요했을까? “아랍민족은 땅을 빼앗기고, 100만이 넘는 난민문제를 안고여러 차례에 걸친 군사적 패배의 굴욕을 당했다아랍민족의 복수가 두려워서 반()광란상태가 된 이스라엘 국민은자기 정부의 기동력이 되고 있는 ‘원칙’, 즉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해마다 한 번씩 아랍 국가들을 반신불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 말 없이 받아들였다.”(아이작 도이처, “유대 시온주의의 본질”)

 

즉 제국주의가 최종적으로 세력권의 재분할을 둘러싼 열강 간의 군사 대결을 거듭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제국주의의 파생물로 등장한 이스라엘 역시 거듭 주변 국가를 향한 군사적 깡패행위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원칙은 한편으론 주변을 포위한 아랍 국가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도 했지만한편으론 제국주의 열강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제국주의의 경비견 역할을 자처하면서 등장한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생존하려면 패권국가의 지원과 협력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패권국가에게 자신의 ‘효용가치를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뛰어난 전쟁수행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주기적으로 보여주는 게 그 방법이다.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이스라엘 국가수립을 선포하자마자 이집트요르단이라크레바논시리아와 격전을 치른 1948년의 1차 중동전쟁영국프랑스와 손잡고 이집트를 공격한 1956년의 2차 중동전쟁이집트시리아요르단과 싸우면서 이스라엘의 영토범위를 건국 초기보다 여덟 배 이상 확장한 1967년의 3차 중동전쟁또 다시 영토문제로 이집트시리아와 벌인 1973년의 4차 중동전쟁. 1978년 레바논 침공. 1982년 레바논 수도 점령. 2000년에 철수한 뒤 2006년 다시 레바논 침공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한 항구적인 침탈.

 

악의 축을 부러뜨릴 열쇠

 

제국주의의 왕권을 쥔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권 확대 시도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압력을 넣었던 2차 중동전쟁을 제외하면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의사와 막강한 후원을 철회하지 않았다미국의 대외원조 예산규모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항상 이스라엘이었다중동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은 역사상 존재한 다른 어떤 동맹보다도 강력하게 유지됐다시온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혼해 낳은 자식이 곧 이스라엘이라는 핏덩어리다.

 

이 핏덩어리는 자라나면서 계속 피를 불렀다. 2,000명 넘게 사망자를 낳은 2014년의 ‘50일 전쟁과 이번 가자지구 공습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미얀마항쟁에 대한 태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사안에서도 유엔 안보리 같은 국제사회는 위선과 기만의 결집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얀마 쿠데타 세력을 감싸고 도는 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장 깡패집단을 감싸고 돈다. 저들이 이 세계의 운전대를 쥐고 있는 한 평화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구적인 학살과 절망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폭력의 역사는 반대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끈질긴 저항의 역사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국제적인 반발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프랑스, 터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는 연대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의 셈법이 지배하는 국제사회가 아니라 국제적인 노동자, 민중의 연대와 협력 속에 이스라엘의 학살극을 끝장낼 수 있는 열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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