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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놀라게 한 여성노동자들의 잠재력! 여기에 변혁의 희망이 있다 -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투쟁의 의의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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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4,549회 2021-05-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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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 노동절 집회 연단에 오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사진_매일노동뉴스)

 

 

430일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투쟁이 마무리됐다. 대부분 60대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엘지트윈타워분회는 대재벌 엘지에 맞서 과감하고 역동적인 투쟁을 펼쳤다.

 

지난해 1231일 업체 계약해지 방식으로 집단해고를 당하기 전인 1216일 전면파업에 돌입하면서 로비농성을 시작했다. 자본은 전기를 끊고 난방을 차단하며 식사 반입까지 막는 비인간적인 탄압으로 일관했다. 노동자들은 그 탄압을 이겨냈다. 용역깡패와 관리자들의 폭력도 견뎌냈다. 구광모 회장을 만나기 위해 로비에서 동관 건물로 수시로 진입투쟁을 전개했다. 트윈타워 건물 바깥에 100여 개의 텐트를 치고 텐트농성을 진행했으며 신라대, 아시아나케이오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적극 연대했다.

 

자본은 심지어 조합원들에게 2,000만 원을 건네며 파업을 포기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했다. 일부는 이 회유에 넘어가 투쟁에서 이탈했지만, 다수는 그 많은 돈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대의를 지켰다. 착한 기업, 정도경영을 내세우는 엘지의 위선이 낱낱이 드러났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투쟁은 최근 보기 힘들었던 연대투쟁, 특히 노동자와 청년·학생의 연대투쟁을 만들어냈다.

 

자본만이 노동자투쟁의 잠재력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운동 내에서도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싸워봐야 얼마나 싸우겠냐는 편견이 있다. 실제 일부에서 설 이후에 또는 3월 이후에 조합원들이 싸울 수 있겠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갔고 투쟁의 내리막길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고령,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 살아온 노동자들의 분노와 용기는 컸다. 조합원들은 한 번 마이크를 잡으면 30~40분 이상 자신들이 겪어온 힘겨운 노동과 엘지의 악랄한 노동탄압을 얘기했다. 피를 토하는 듯한 조합원들의 발언을 들으며 연대 왔던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은 감동했고, 함께 분노했다.

 

연대의 힘

 

대재벌 엘지와 청소노동자의 투쟁은 극심한 불평등을 떠올리게 했다. 엘지 청소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처지를 대변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해고는 아니었지만, 코로나19의 희생양이 되는 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일터에서 떠밀리는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노동자운동을 보며 쉽게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많은 노동자에게 엘지 청소노동자의 용기는 소중한 희망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지와 연대의 흐름이 퍼졌다.

 

지난해 1216일 농성 돌입 후 자본이 식당출입을 막자 트위터에서 한끼연대가 제안됐는데, 단 하루 만에 400명이 넘는 시민이 동참해 600만 원을 모았다. 닷새가 지나자 1,400여 명이 참가해 1,800만 원의 금액을 모았다. 11일 사측이 도시락 반입을 막은 일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시민과 청년·학생의 발길이 이어졌다. 후원물품이 쏟아졌다. 집단해고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에도 많은 노동자 시민이 참여했다.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서울, 청주, 울산,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엘지제품 불매 선언운동과 엘지베스트샵 1인 시위가 펼쳐졌다. 자본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만큼의 아주 강력한 연대투쟁이 지속해서, 아주 폭넓게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연대투쟁의 기풍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엘지 청소노동자들의 진정성 있는 투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능동적인 시도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은 로비농성, 텐트농성으로 연대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집회를 열면서 투쟁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연대자들도 조합원들의 헌신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올해 11일 자본이 도시락 반입을 막았을 때 연대 왔던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은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 도시락을 넣으려 했다.

 

밀리지 않을 것 같은 회전문이 밀렸고 우여곡절 속에 조합원 가족들이 가지고 온 초코파이를 넣었는데, 관리자들이 그걸 빼앗아 도망쳤다. 나중에는 그걸 건물 바깥으로 집어 던지며 나가서 주워 먹으라 했다. 관리자들이 초코파이를 빼앗아 도망치는 영상이 순식간에 퍼졌다. 투쟁이 널리 알려지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노동부나 국가인권위에 식사 반입을 호소하고 기다렸다면 이런 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상을 비롯해 조합원 인터뷰 영상, 집회와 진입투쟁 영상 등 수많은 영상이 제작돼 SNS에 퍼졌다. 특히 스튜디오 R’이 많은 영상을 찍어 알렸는데, 투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며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대위는 200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모니터링단도 만들어 온라인 여론전을 펼쳤다. 주요 언론기사를 점검하면서 투쟁에 우호적인 기사는 널리 알렸다. 자발적으로 악성 댓글을 반박하는 댓글을 쓰며 투쟁의 정당성을 알렸다. 워낙 노동자투쟁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고, 엘지의 언론플레이가 대규모로 빠르게 진행돼 우리 쪽의 시도가 많이 묻혔지만, 일방적으로 여론이 밀리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밖에도 능동적인 시도가 많았다. 전면파업 이전에는 엘지 마곡빌딩 등 엘지 관련 빌딩 선전전을 진행했고 2월부터는 청소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여의도 주변 재벌 빌딩 선전전을 진행했다. 지하철 각 역에 불매 포스터를 붙이고, 시내 곳곳에 불매 현수막을 붙였다. 이런 능동적인 시도를 하면서 엘지를 압박했고 어려운 고비를 넘겨왔다.

 

코로나19 시기의 집단적인 투쟁

 

투쟁 초반 조합원들은 자본이 코로나19를 이용한다고 걱정했다. 방역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하는 시점에 집단해고를 자행했다고도 했다. 조합원들은 정부와 자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는 서울시장 선거유세 때 수백 명이 모이는 건 허용했으면서, 노동자집회는 여전히 9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아무런 원칙도, 기준도 없다.

 

노동자들은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집단적인 투쟁을 만들어냈다. 집중투쟁 때는 100, 150명이 넘게 모였고, 크고 작은 집회와 선전전을 수시로 개최했다.

 

방역을 이유로 노동자운동을 틀어막으려는 정부 지침을 무조건 따른다면 노동자투쟁은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 엘지 청소노동자 투쟁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집단적으로 뭉쳐 싸울 수 있고, 싸워야만 생존권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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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위선적인 방역지침이 청소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을 막을 순 없었다.(사진_노동과세계)

 

 

자본의 논리

 

길게는 10년 동안 일한 노동자들을 최저임금만 주면서 노예처럼 부려먹은 엘지와 자회사 에스앤아이는 투쟁을 막을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100% 유리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제도를 철저히 활용했다. 지수INC라는 업체가 계약해지됐을 뿐인데 왜 엘지에게 따지고 책임을 묻냐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퍼트렸다. 투쟁을 비난하는 댓글에도 이런 논리가 상당히 많이 배어있었다. 조합원들은 원청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전국의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노조가 달라붙어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하며 이런 논리를 반박했다면 조합원들의 주장에 더 많은 힘이 실렸을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은 정년 70세 요구가 과도하다고 물고 늘어졌다. 노조는 사측이 65세 이상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으며 정년연장 문제는 주된 쟁점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가 턱없이 부실한 한국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70세까지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정당하다고 공세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년연장 요구와 청소노동자의 정년연장 요구는 성격이 다르다. 대다수 청소노동자는 50~60대에 일을 시작하며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다. 상여금도 복지도 없다. 이들에게 정년연장 요구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요구다.

 

세 번째로 자본은 엘지 마포빌딩 근무를 계속 제시하면서 엘지트윈타워에서 고용승계하려면 새로 들어와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줄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마포빌딩의 규모는 엘지트윈타워의 5분의 1 수준으로 작으며 수용인원도 훨씬 적다. 마포빌딩에 청소노동자 50여 명이 근무해야 한다면 트윈타워에는 250여 명이 근무해야 마땅하다. 새로 들어와 있는 인원 80여 명과 투쟁했던 조합원을 합해도 110명 수준이다.

 

자본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만으로 투쟁의 힘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때에 반박하지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떨어지며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기도 힘들다. 많은 쟁점에서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강력하게 자본의 논리를 반박하며 투쟁의 정당성을 지켜냈다. 정년연장 문제를 공세적으로 받아치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정년연장 같은 사회적 쟁점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노동자의 입장을 세워 자본가의 논리를 반박해야 한다. 우리가 피한다고 자본가들이 물러서는 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방어할 무기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보장, 해고기간 임금보장,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고 만 65세 이후에는 만 69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연장 등을 쟁취했지만 엘지트윈타워에서의 고용승계를 쟁취하지는 못했다. 엘지는 엘지그룹의 심장부에서 노동조합 깃발이 휘날리는 걸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스마트폰 사업부 철수 등 여러 구조조정이 펼쳐지는 국면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투쟁으로 온전한 고용승계를 이루는 선례를 막으려 했다.

 

이 벽을 뚫을 만한 압도적인 연대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특히 사회의 관심이 몰렸고 연대도 가장 활발했던 1월에, 승부처였던 1월에 모든 힘을 집중시키기 위한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 투쟁의 의의는 크다. 고령 여성노동자들이 강한 힘을 보여줬고, 연대했던 노동자들에게, 특히 청년·학생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코로나19 시기에 집단적인 투쟁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엘지 청소노동자들이 자기 힘을 믿고 노조를 만들어 싸우지 않았다면 노동조건 개선은 물론이고 소리 한 번 못 내보고 현장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일상적인 시기에도 그렇지만 코로나19를 틈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가차 없이 공격할 때 노동자들에겐 자신을 방어할 무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연대의식도 커졌다. 홍이정 조합원은 처음엔 우리 것만 보고 싸웠는데 수많은 빌딩에서 아직도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이겨야 그 노동자들이 힘을 낼 것이고 노조에 가입할 것이라며 끝까지 투쟁했다. 대학교와 달리 대형빌딩은 노동조합의 무풍지대였다. 이제 엘지트윈타워 투쟁을 계기로 대형빌딩 청소노동자 조직화의 토대도 마련됐다. 앞으로 엘지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수많은 빌딩 청소노동자에게 전달해주길 바란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엘지 청소노동자투쟁은 비정규직제도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본가들은 용역·파견제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도 제대로 안 주면서 마른걸레 쥐어짜듯 쥐어짰다. 노동자들은 엘지 에스앤아이 지수INC라는 다단계 하청의 사슬 아래서 쉽게 저항을 꿈꿀 수 없었다. 여기에 OECD 나라 중 노인빈곤율 1위가 상징하는 가난한 노인들의 끔찍한 현실이 노동자들을 움츠리게 했다.

 

하지만 저항의 기회를 붙잡은 노동자들은 심하게 억눌렸던 용수철이 거세게 튀어 오르듯 쌓여 왔던 분노를 폭발시켰고 놀랄만한 힘으로 재벌과 정부에 맞섰다. 지난 선거 때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공약을 내걸었으면서도 자본가들을 위해 잠자코 있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조차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뒤늦게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엘지트윈타워, 신라대, 아시아나케이오 등 곳곳에서 밑바닥 노동자라 불리는 청소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들이 해고저지에 나서며 노동자의 연대,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연대, 노동자와 변혁적 청년·학생들의 연대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백만에 가까운 청소노동자들을 더 조직한다면, 가정과 일터 그 이중의 굴레 아래 가장 많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떨쳐 일어선다면, 미래가 닫혀 있는 수많은 청년·학생과 함께 싸운다면 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 불과 3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재벌 순위 4위인 엘지를 뒤흔들지 않았던가? 엘지 청소노동자가 닦은 희망의 길을 넓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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