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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 "노동권과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① - 미얀마 활동가 얀쩌모(Yan Kyaw 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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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리 김라라, 배예주, 강진관 조회 1,704회 2021-04-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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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I  얀쩌모(Yan Kyaw Moe)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이주노동자 상담 및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이다얀쩌모와의 인터뷰는 미얀마 항쟁의 상황과 전망을 확인하고 국제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 지난 42일 진행됐다. 분량 상 2회에 걸쳐 나눠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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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이래, 미얀마 노동자 민중은 두 달 넘게 투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미얀마에서 쿠데타에 맞선 저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 41일까지 미얀마 군부의 총칼에 희생된 사망자 수는 560여 명이다. 구속자 수는 약 2~3천 명 정도로 예상된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도 사망자, 부상자, 구속자 숫자를 정확히 집계하지 못할 정도다.

 

327일 미얀마 ‘국군의 날거리 시위에서 노동자, 학생, 시민 등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원래 이날은 식민지 시절 아웅산 장군이 일본 군국주의 파시스트에 맞서 항쟁할 것을 주장한 날이다. 그런데 군부가 이날을 국군의 날로 바꿨다. 우리에게는 반파시즘의 날, 저항의 날이다. 이날 미얀마 노동자, 학생, 시민은 미얀마 군대가 파시스트다. 미얀마 군대는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가 아닌 국민을 공격하고 학살하는 파시스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죽이는 군대는 파시스트다. 그래서 우리 모두 군부를 몰아내자고 외치며 전국에서 항쟁했다.

 

지금 군부에 맞선 시위 규모가 이전보다 줄었다. 그 이유는 군부가 너무 잔인하게 진압하기 때문이다. 군부는 국민적 저항의 힘이 약해지면 국제사회 외교로 자신의 지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지난 1988(8888) 혁명 때도 군부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미얀마에 있던 여러 해외 대사관도 문을 닫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해외에서 연락도 안하는 상태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UN이 쿠데타 학살에 반대한다고 말만 계속했다. 그리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난 뒤 대사들은 미얀마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군부가 국제사회와 연결되어 그대로 유지됐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군부는 국민을 학살해도 저항이 약해지고 조용해지면, 언제든 중국, 러시아, 미국, 유럽, UN과의 외교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우리가 싸우는 방법은 거리 시위 하나만이 아니다. 군부 쿠데타에 맞선 투쟁은 세 가지다. 첫째, 거리 시위다. 둘째, 노동자 총파업과 상점 휴업 등 시민불복종운동(CDM)이다. 셋째,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 임시정부).

 

첫째로 거리 시위가 조금 약해진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거리에 나오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거리 시위 규모가 떨어진다 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거리 시위가 전개되고 있고, 이전에 비해 약간 줄어든 것이다. 우리는 거리 시위 참가자가 조금 줄었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당분간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동자 총파업, 상점휴업 등 시민불복종운동 참가자는 더 늘어나고 계속되고 있다. 셋째로 연방의회대표위원회는 41일 새로운 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를 출범했다. 그 활동도 더 넓어지고 강화되고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들이 쿠데타에 맞선 항쟁을 지지하고 있다.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반군인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아라칸군(AA), 타앙민족해방군(TNLA)은 미얀마 봄의 혁명을 지지하고 군부가 학살을 계속하면 공격에 나서겠다고 공동성명을 냈다. 카렌민족연합(KNU) 반군은 파푼 지역에서 군부와 전투를 했다. 군부 45명 정도가 죽었다. 그러자 군부가 전투기를 보내 마을을 공격했다. 여러 명이 죽고 1만여 명이 태국 국경으로 피난했다.

 

국제사회도 327일 대학살, 파푼 지역 폭격, 난민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41UN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열었다. 처음으로 15개 참가국이 반대 없이 결의안을 제출됐다. 군부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성명과 강도 높은 자제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중국, 러시아가 결의초안 중에서 미얀마 군부를 강력히 제재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을 빼고 군부가 무엇을 하는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렇게 수정한 결의안에 모든 나라가 동의했다. 미얀마 국민도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도움을 기대하는 모양인데, 군부에 비해 아직 힘이 약하고 싸울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미얀마 국민의 마음은 평화롭게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이었다. 싸워서가 아니라 힘을 합쳐서 평화롭게 군부를 무너뜨리는 것을 희망했다. 처음부터 폭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한 말은 경찰이 아무리 때려도 참아라!’였다.

 

2021년 혁명은 1988년과 차이가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드러낼 공간이 생겼다. 1988년에 없던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가 있다. SNS를 보면 참아라!’는 문자가 많았다. ‘경찰이 때려도 참아라! 우리가 힘을 합쳐서 평화롭게 하자!’ 서로를 설득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죽어도 돼! 싸우고 싶다!’, ‘칼 들고 싸우고 싶다!’고 문자를 남겼다. ‘그래도 하지 마! 참아라! 평화롭게 하자!’ 이렇게 해왔지만 지금 많은 사람이 군부에 의해 죽고 있어서 더 강하게 싸우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 군부는 낮에는 거리 시위 참가자를 공격하고 밤에는 시위대 대표로 의심하는 사람을 잡아간다. 동네마다 스파이가 있다. 군부가 돈을 주고 동네사람들 중에 스파이를 키웠다. 아쉽게도 그런 사람들이 동네마다 1~2명씩 생겨났다. 스파이에게 정보를 받고 어느 집인지 안내해주면 밤에 급습해 체포한다. 그냥 체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체포하면 다음날 시신을 돌려보낸다. 그런데 군부는 당뇨로 죽었다’, ‘혈압이 갑자기 높아져서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이것은 군부가 겁을 주려는 것이다. 보통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몰래 하지만 군부는 일부러 모든 사람이 알게 한다. 시신을 보내면서 미안하다고 조용히 보내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죽었다,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지만 시신의 얼굴은 맞아서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다. 복부에는 장기를 꺼낸 후 다시 집어넣고 꿰맨 모습이다. 이런 소식을 들은 거리 시위 참가자들이 겁을 먹고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힘을 약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거리 시위에 참가하는 젊은 노동자, 학생은 많다.

 

미얀마에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어떤 전망이 존재하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전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X세대, 40)는 안 좋은 경험이 있다. 1988년 혁명과 2007년 샤프란 혁명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용기에 영향을 주어 2021년 혁명을 승리하자!’고 하면서도 그게 되겠나, 과연 승리할까?’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희망을 주는 것은 Z세대다. Z세대는 군사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믿음이 매우 강하다. 이 세대는 10대 후반과 20대 노동자, 고등학생, 대학생들이다. Z세대는 군부가 차단한 인터넷을 뚫는 기술적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SNS로 미얀마 투쟁 상황과 소식을 널리 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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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가 미얀마 투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한다.


나는 솔직히 말해 겁이 난다. ‘내가 죽으면 무엇이 변해, 변화가 일어날까하고 가끔 생각한다. ‘죽는 것보다 다른 할 일이 있지 않을까하며 스스로 핑계를 찾는다. Z세대에 비해 용기가 약해서다. 그런데 Z세대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세대의 노래, , 글을 보면서 나도 용기를 얻는다. Z세대의 연대가 대단한 것도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여러 가지 중 하나다.

 

또 하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다. 임시정부가 공포한 목표와 계획대로 새로운 정부를 출범했다. 연방의회대표위원회는 새로운 정부를 준비하는 동안 국제사회의 많은 정치인, 단체, 국회의원 등과 인터뷰해서 미얀마 상황을 알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했다. 국제사회에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항쟁하는 동영상을 보여줘 시위자들에게 힘을 주었다. 이쪽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있다.

 

연방의회대표위원회는 국내에서 소수민족 반군들과도 회의를 했다. 연방제 국가(Federal State)를 함께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은 소수민족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왜냐면 영국이 식민지 때부터 버마민족이 나라를 좌우하는 형식과 구조(시스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버마민족만 대통령, 군 최고사령관이 됐다. 버마민족 중에서도 불교신자만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런 것이 헌법에 규정돼 있지 않았지만 실제로 버마민족 외에 다른 소수민족은 배제됐다. 소수민족의 정치참여, 군에서의 위치를 가로막았다. 지금은 자치권이 보장되는 연방제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어서 소수민족에게 반가운 일이다. 소수민족들도 함께 한다는 약속을 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모두에게 희망이다.

 

또 하나는 시민불복종운동이다. 노동자, 학생, 시민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시민불복종운동에서 총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군부독재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시민불복종운동은 미얀마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8년 혁명에서도 있었던 운동이다. 과거 인도가 영국 식민지일 때 영국정부에 맞서 간디가 했던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1988년에 모두 시민불복종운동을 했다. 정부의 24개 부처, 정부기관이 모두 멈췄다. 모든 공무원과 경찰도 파업과 항쟁에 참여했다. 군인 중에 공군도 참여했다. 그래서 군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6개월 내에 민주주의 선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웅산 수치를 포함해 정치인, 노동자,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고 여겼다. 서로가 합의해서 시민불복종운동과 거리 시위를 멈추고 이후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군부가 당선된 민족민주동맹 의원들을 체포해 감옥에 보냈다. 공무원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자 한 명씩 잡아서 구속했다. 그래서 다시 싸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부가 권력을 유지했다.

 

과거 경험이 있어서 시민불복종운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지금 군부쿠데타에 맞선 싸움에서 강력한 공격임을 모두 알고 있다. 젊은 노동자와 학생은 외친다. ‘지금은 88이 아니다. 2188처럼 하지 마라!’, ‘멈추지 마라, 어떤 말이든지 믿지 마라, 합의도 받지 않아!’

 

331일 자정을 기준으로 시민불복종운동 참가자를 마감했다. 이후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정부가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민불복종운동 참가자와 참가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한 것이다.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군부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군부를 지지하면 쿠데타 성공을 지지하는 사람이니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처벌한다고 했다. 그것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진실과 거짓이 싸우고 있기서 당분간 새로운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 나중에 실제로 처벌하더라도 심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되면 그 정도로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자유니까. 하지만 당분간 싸우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에 동의한다.

 

41일 새로운 정부는 UN에서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인정받으면 군대를 만들 계획이다. 새로운 정부가 있으니 군대를 만들 수 있다. 군대를 만드는 것에 소수민족이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내가 알고 있는 역사를 보아도 가장 먼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 영국 식민지 때 타킨 포 할라 지(Thakin Po Hla Gyi)가 있었다.  그는 영국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1938~39년 차욱(Chauk)에서 시작해 양곤(Rangoon)으로 행진했다. 처음에 몇 십 명이 시작했지만 양곤에 도착했을 때는 1만여 노동자들이 모였다. 또한 석유노동자 파업을 이끌어 미얀마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노동권 혁명의 대표자이다. 그는 미얀마 지폐에 나오는데, 덩치가 크고 목에 묶인 쇠사슬을 끊는 모습이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다른 아시아 나라처럼 영국이 소수민족에게 무기를 주고 서로 싸우게 만들고 떠났다. 그때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서로 힘이 비슷하니까 무엇이든 합의가 안 됐고 전투가 계속됐다. 이 당시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군부에게 정권을 스스로 내줬다. 아마 군대의 협박이 있었을 것이다. ‘너를 죽여서 권력을 가져갈까, 아니면 그냥 줄 것이냐?’ 당시 언론에는 미얀마를 더 이상 통치하기 힘들어서 잠시 군부에게 권력을 넘긴다고 나왔다.

 

1962년 군부쿠데타가 있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시위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가 잘하는지 보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수민족과 내전이 계속되고 있어서 군부가 나라를 안정시키면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라서 지금처럼 발전되지 않았고 깨달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군부가 유지됐다. 군인이 군복을 벗고 정치인이 되어 사회주의 국가라고 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사회주의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군부독재였다. 군인이 대통령이고 군인이 맘에 안 들면 다 바꿀 수 있었다. 자기 말을 듣는 사람만 군사령관이 됐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런 사회주의에서 너무 힘들게 살았다. 뉴스도 없고, 민주, 인권 아무것도 없었다. 예를 들어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 쌀 100Kg을 시장에 팔아 1만 원을 받을 수 있다면, 군부는 대부분을 무조건 1천 원으로 정부에 팔게 했다. 농부들이 열심히 일해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해도 부자가 되지 못하게 했다. 그 이익은 모두 군인에게 돌아갔다. 군부의 말을 잘 듣는 사람만 잘 먹고 잘살았다. 군부 정치가만 부자가 됐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가난했다. 중산층이 없어 빈부격차가 컸다. 아래에 위치한 노동자, 공무원, 농부, 시민이 하나의 계급이다. 위에 위치한 정부와 국회의원, 군인 장군 이상만 잘 사는 계급이었다. 이런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1988년 아웅산 수치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왔다. 민주주의가 미얀마에 수입되어 사람들이 깨닫게 시작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도 진행됐다. 그러나 1988년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1988년과 2007년 샤프란 혁명 때에도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지금은 노동자, 학생, 시민이 민주주의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다. 군부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과정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시작했는데 다시 군부독재로 되돌아가는 상황이다. 이것을 노동자, 학생, 시민은 용서하지 못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1988년과 2007년 때보다 2021년 노동자들의 참여가 훨씬 많다. 왜냐면 과거에는 외국 투자기업이 없었다.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 군에서 필요로 하는 공장뿐이었다. 모두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 노동자였다. 일반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돈이 있어도 공장을 운영할 수도 없었다. 돈이 있어도 태국 등에서 물건을 조금씩 수입해 파는 장사 정도만 할 수 있었다.

 

2010년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경제재제가 풀리면서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한국, 태국, 싱가포르 등 해외기업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규모가 더 커졌다. 노동자 숫자가 많아질수록 농부는 줄어들었다. 농사짓던 농부들이 도시로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미얀마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얼마가 되나? 이들은 함께 협력해 투쟁하고 있나?

 

한국에 미얀마 이주노동자는 25천여 명 일하고 있다. 그 외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결혼이민자와 유학생을 합하면 총 27~8천여 명 정도 된다.

 

21일 쿠데타가 시작됐을 때부터 한국의 많은 지역에서 나름대로 움직였다. 지금은 서로 연락이 되고 서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인터넷으로 정보를 소통하고 있다.

 

부산경남의 경우 1인 시위, 집회를 했다. 부산시청에 우리의 요구를 발송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경기서울은 부산경남보다 활동 범위가 넓은 편이다. 미얀마 대사관, 국회가 있으니 국회의원, 도지사 등 정치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미얀마 친구는 청와대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모금회도 만들었다.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 참가자를 지원하기 위해 총 12억 원 정도를 보냈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 반대,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한국 노동자, 시민의 운동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 광주, 경기, 부산, 인천, 충남, 울산, 대구, 창원, 마산 등에서 미얀마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민자 등이 한국 노동자, 정치사회시민단체와 함께 미얀마 군부독재 반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선전전, 집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운동은 한국이 가장 큰 규모다. 미얀마 이주노동자가 있는 나라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정부정책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 정부가 못하게 만든다. 태국도 그렇다. 일본은 미얀마 사람이 적극 활동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일본 단체가 있는데 아직 작은 규모다.

 

가장 주요한 요구는 무엇인가?

 

가장 주요한 요구는 두 가지다. 우선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이다. 무조건 민주주의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지난 선거결과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2008년 제정된 헌법을 폐기해서 다시 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민주주의가 되면 군부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41일 연방의회대표위원회의 준비과정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공포한 핵심 내용을 실행해야 한다. 민주주의 연방제 국가건설, 독재체제 완전 타도 등이다.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데, 그 전에 연방민주주의헌장을 만들었다.

 

소수민족들이 가장 바라는 요구는 자치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연방제 국가다. 그것은 지금의 요구가 아니라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할 당시부터 소수민족들이 요구한 것이다. 소수민족 반군들이 조직된 이유는 대화와 협상으로 안 되니 무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소수민족과 함께 연방군(Federal Army)도 창설할 계획이다.

 

이런 요구들은 미얀마 군부를 제외한 모두의 희망이다. 미얀마 인구의 80%는 다수 민족이다. 지금 군부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버마민족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미안하다이다. 지난 50년 동안 소수민족들이 겪어온 어려운 문제를 이제 우리 버마민족이 겪고 있다. 소수민족들의 고통을 정말 공감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쿠데타 이전) NLD(민족민주동맹) 때와는 다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노동자들이 민주주의 혁명에 대부분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 시민이 있다. 그중 많은 노동자가 민족민주동맹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전의 민족민주동맹 정부도 비판하지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 나도 민족민주동맹 당을 가끔 비판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그동안 잘못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부독재를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민족민주동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구조(시스템)대로 많은 사람이 투표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서 선택한 당을 지지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잘하고 맞는 것은 박수치고 잘못하면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민족민주동맹도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008년 제정된 헌법 하에서 허용되는 만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비밀스럽게 뒤에서 군부에게 협박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군부가 쿠데타를 할 수 있다는 협박을 계속해온 것 같다고 들었다.

 

미얀마 노동조합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민족민주동맹 정부시절을 싫어한다. 나는 노동자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민족민주동맹은 노동권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려웠다. 집회에 참가하면 다 잡아서 구속했다. 경찰에 당하고 법원소송도 많이 당했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상처가 많다.

 

노동자들은 얘기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투표했다. 우리가 노동권을 요구하는데 왜 잡혀가고 소송을 당해야 하냐.’ 몇 명이 모였는데 집회신고를 안 했다고 잡아가고 재판을 받는다. 이전 민족민주동맹 정부 시절이 그런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민족민주동맹이 아니면 다른 것이 없다. 민족민주동맹이 아니면 다른 것은 더 나쁘다. 우리는 우선 한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민족민주동맹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변화를 위해 싸우자는 것이다. 차라리 싸운다면 민족민주동맹 정부에 맞서 싸우고 싶다. 민족민주동맹과 싸워서 우리의 인권,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지난 5년간 민족민주동맹의 목적 중 가장 큰 것이 노동권과 평화였다. 그래서 2008년 제정한 헌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려 했지만 군부 국회의원(25% 당연직 국회의원)이 모든 것을 반대해서 하나도 하지 못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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