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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투기 열풍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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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5,371회 2021-03-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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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다. 거품은 꺼진다.” - 짐 로저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흘러간 옛 노래 중에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던 노래가 있었다(이연실, ‘목로주점’). 1981,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저축예금금리를 단일금리인 14.4%로 인상하던 시절에 발표된 노래다. 절대빈곤 상태에서 벗어난 평범한 노동자가 이제 막 소소한 삶의 희망까지 꿈꾸기 시작하던, 한창 성장하던 자본주의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오늘날 대다수 노동자 민중, 특히 젊은이들은 저런 허튼 꿈을 꾸지 않는다. 통계청이 올해 224일 발표한 ‘2019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309만 원, 중위소득(임금 노동자 전원을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정중앙에 있는 노동자의 소득)234만 원이었다. 1년 동안 단 1원의 생계비도 지출하지 않고 전액 저축해도 기껏해야 3,700만 원(중위소득 기준으로는 2,800만 원) 남짓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기예금 금리가 1%대에 그치니 우수리도 별로 없다.

 

지난해 8월 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20175~20205)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1채당 평균 61천만 원에서 92천만 원으로 31천만 원(52%) 올랐다. 1년에 1억 넘게 오른 셈이다. 평범한 노동자가 제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1년에 2천만 원 저축하기도 어려운데 아파트값은 그 다섯 배씩 치솟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가구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20209월 기준 15.6배였다. 이는 소득 상위 40~60%인 가족이 평균 집값 상위 40~60%를 구매하기 위해선 약 157개월간 소득 전액을 꼬박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8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나마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이 있는 30~40대는 영끌대출로 부동산 거품에 올라탔다. 능력이 있다면 가용한 모든 자원과 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자는 당연했다. LH 토지투기사태 직후, 블라인드에서 LH 정직원들이 왜 우리만 갖고 그래?”라는 반응을 내보였던 배경이다. 그러나 금수저’, ‘은수저가 아닌 청춘들은 답이 없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냉소적인 신조어가 한동안 유행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도 떠돌았다. 어차피 집 사기는 글렀으니 값비싼 여행, 명품 소비 등으로 인생을 즐기겠다는 태도였다.

 

돈이 돈을 벌게 하라 -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반전은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1주에 58,000원이던 삼성전자 주식이 42,300원까지 떨어지자 20~30대를 중심으로 개인들의 매수세가 시작됐다. 부동산과는 달리 소액투자도 가능한 주식시장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른바 동학개미들의 출현이다. 현재 삼성전자 주식은 8만 원대다. 매도차익을 남긴 개인들의 성공담이 퍼져 나가면서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동학개미들은 빚투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생망이라던 밀레니얼 세대가 주식을 통한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2020년 한 해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순매수 금액은 약 65조 원으로 종전 최대치인 2018109천억 원의 6배 수준이다. 현재 월급 노동자의 절반(50.1%)이 주식투자를 하며, 특히 20대는 이 비율이 56.1%까지 올라간다. 34일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3,8621,934개에 이른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누구나 돈이 돈을 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대비 12월 말 주가 상승률이 63.8%에 이른다. 이러자 존 리 같은 엉터리 장사꾼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몸은 늙는다. 그러나 자본은 늙지 않는다. 자본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따위의 개똥철학이 갈채를 받는다. 밀레니얼 청년들은 유튜브 등으로 주식공부를 하며 돈이 돈을 버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고 한다.

 

바야흐로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가 정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화폐자본의 순환을 분석하면서 생산과정은 돈벌이를 위해서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단지 하나의 중간고리로 취급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 있는 모든 나라는 주기적으로 생산과정의 매개 없이 부를 늘리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고 썼다.

 

불로소득을 경원시했던 부모세대의 태도는 이제 세상물정 모르는 배부른 소리다. 돈이 돈을 벌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생긴 돈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트코인 채굴 과정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드러낸 체제의 밑바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 전체가 생존의 위기에 놓인 이 엄중한 기후재앙의 시대에,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량이 연간 129TWh(테라와트시)에 이른다. 인구 4,500만인 아르헨티나의 연간 전력 소모량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대체 이 무슨 미친 짓거리인가? 대체 우리는 언제 그래픽카드를 본래 가치대로 살 수 있단 말인가?

 

강화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계급 대신 개인의 공정한 경쟁

 

문제는 전사회적인,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의 자산투기 열풍이 그 자체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확대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다수의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노동자들의 사회적집단적 노동이 없으면 자본가는 단 1원의 이윤도 얻을 수 없지만, 단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가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강탈한다. 삼성 이건희가 2014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산송장 노릇을 하면서 65개월간 주식배당으로만 하루에 20억 원씩, 전부 27,716억 원을 챙겨갔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토록 극심한 계급적대를 은폐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계급 대신 개인을 호명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계급으로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노력의 대가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 점을 잘 지적한다. 타고난 신분으로 개인의 삶이 결정되는 신분제 사회와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생활조건의 우연성을 강조하는데, 이 우연성이란 어디까지나 개인들 간의 경쟁과 투쟁에서 산출된 것뿐이다. 다시 말해 개개인이 각기 상반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각자 기울인 노오력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계급은 해체되고 (더 정확히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구조는 은폐되고) 각자도생의 개인이 남는다.

 

그런데 이 각자도생의 생태는 자본주의의 오랜 구조적 불평등에 시달렸던 청년들에게 놀랍게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듯하다. 작년 10월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창간기획-2030 자낳세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청년들은 투자를 공정하다고 인식한다. 돈만 있으면 주식을 사고 매도·매수 종목과 시점을 스스로 선택해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누구도 다가올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에 위험(리스크) 부담도 똑같다. 이는 노력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귀결된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투자의 공정함은 실제로는 기회의 평등과 가깝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각종 투자정보를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쉽게 얻게 됐다. 주식투자는 더 이상 금융기관과 전업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상에서 유튜브 등을 통해 투자를 배우고 재테크를 함께 공부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승철 교수는 청년들은 주식투자를 공부한 노력의 결과가 나오는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한 요인이 개입되는 한국사회의 여러 경쟁의 장과도 대비된다.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는 노동시장에는 이른바 엄마·아빠 찬스가 있고, 안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패자부활전도 주어지지 않는다청년들에게 투자는 아무런 배경이 없어도 최고가 될 수 있는 게임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국공 사태 등 청년층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극렬히 반대할 때 드러났던 공정성논리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파괴한다며 그들이 내세웠던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라는 구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공정한 경쟁만 담보된다면, 그에 따른 차등적인 보상은 완전히 정당한 것이니 문제제기를 해서는 안 된다. 주식폭락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에게 한강에는 가지 마라”, “니 돈 내고 니가 산 건데 어쩌라는 거냐는 냉소적인 댓글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강화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소부르주아 허위의식

 

한편 전 사회적인 자산투기 열풍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산가 허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도 스톡옵션 등을 부여해서 노동자를 매수하는 일은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해체시키기 위해 즐겨 사용한 전통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 같은 자산가 허위의식이 기업 단위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농담처럼 유행하는 말 중에는 주식하면 사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주식을 했더니 악덕기업 삼성전자는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삼멘삼성전자가 되고, 흉기차로 불리던 현기차는 현슬라가 됐다는 식이다. 젊은 층에게 계급투쟁을 통한 집단적 처우개선이라는 사회적 전망은 경험해보지 못한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나마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은 주식이니, 주가의 하락을 초래하는 사회운동에 대해서 이들은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하기 일쑤다.

 

완성차 정규직 노조의 파업을 다룬 기사 댓글은 물론 언제나 비난 일색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는 퍽 인상적이었는데, 내용인즉 하고 싶은 파업 다 하고, 그럼 대체 나 같은 소액주주의 권리는 누가 지켜주느냐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노동자투쟁은 집단 이기주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된 것이다.

 

세상만사 고정불변의 사실은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선배세대들은 노동자들의 집단성이 해체된 것에 커다란 회한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계급적 연대와 단결을 얘기하던 한국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 각자도생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단 말인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렇게까지 세상이 바뀔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사실이 역설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세상만사 고정불변의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자본의 전방위적인 공세에 맞서 계급적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자 정체와 후퇴는 불가피했고, 이 상태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강화는 불가피했다.

 

거꾸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천년만년 지속될 수는 없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토대 없는 신기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모두가 투자에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헛소리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모든 주식투기의 경우 사람들은 언젠가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들 그 폭풍우가, 자신이 돈벼락을 맞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다음에야 덮칠 것이고 그것도 자신을 비켜가서 이웃을 덮치리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역사 내내 반복된 착각이다.

 

짐 로저스 같은 자본가조차 버블(거품)을 잘 모르는 사람은 최근 증시 급등으로 얻은 수익을 놓고 환상적이라고 평할 것이다. 돈을 쉽게 벌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거품을 쫓아가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 약속한다. 거품은 꺼진다고 장담하는 판이다.

 

결국 거품이 꺼지면 무리하게 자산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의 파산이 속출할 것이다. 자산거품은 최종적으로는 개인 투자자들 내부의 계급적 구별을 가속화할 뿐이다. 마르크스는 앞서 인용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결국 “(개인의) 인격성은 완전히 특정한 계급관계들에 의해서 조건지어지고 규정되며, “그 구별은 그들이 다른 어떤 계급에 대립할 때 비로소 나타나며,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그들이 파산할 때에 비로소 나타난다고 썼다.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청년층 내부의 계급적 분할이 더욱 선명해졌을 때,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투자를 한다던 청년층의 다수는 어떤 정치적 태도를 취하게 될까? 바로 지금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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