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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과자 해고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 – 진짜 쫓겨나야 할 자들이 누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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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5,455회 2021-03-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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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매를 드는 격으로 자본가들은 저성과자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가 되살아 온 판결

 

225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자행한 저성과자해고가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했다. 현대중공업은 평가 대상 3,859명 중 3,857, 3,859위의 업무수행 평가를 받은 두 노동자를 해고했는데, 이 정도면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이므로 해고해도 괜찮다는 게 대법원 판결이다.

 

한국 노동법은 그나마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보는 편이다. 법원은 저성과자 해고의 경우에도 업무의 내용과 성격, 노동자의 근무실적이 부진한 정도와 기간, 사용자가 업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부여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소송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성과평가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이어진 직무 재배치 교육도 교육대상자를 퇴출시키기 위한 형식적인 교육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사측은 정리해고의 편법적인 수단으로 노동자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뿐이다. 대법원은 사측 주장만 받아들인 것이다.

 

저성과자 해고는 지금은 폐기된 박근혜 정부의 양대지침 중 하나였다(다른 하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 저성과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인사평가제도를 객관적·합리적 기준 없이 언제든지 자기 입맛대로 운용하기 일쑤다. 실제로는 노동조합의 조합원들, 자신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며 대드는(?) 노동자들이 해고 1순위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 때문에 각급 법원에서도 저성과자 해고를 대부분 부당해고로 판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몇 가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저성과자 해고를 정당한 해고로 인정해 자본가들에게 해고의 길을 넓혀준 것이다. 가히 박근혜가 되살아 온 판결이라 할 만하다.

 

노사관계의 근원적 불평등

 

해고 권한은 자본가가 계급지배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고용돼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생살여탈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노라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지 너를 해고할 수 있노라고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취업경쟁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갖가지 부당한 요구에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노사관계의 근원적 불평등은 이처럼 자본가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데 존재한다.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자본과 노동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는 대등 당사자 사이의 자유계약이라는 노동계약을 통해 실현된다. 그럼 대체 왜 자본가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건가? 노동자들은 조금만 자본가의 눈 밖에 나도, 또는 사소한 실수에도 하루아침에 해고되기 일쑤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는 절대 없다. 엉터리 경영으로 회사를 위기 상태로 내몰아도, 회삿돈으로 골프를 치고 횡령·배임을 일삼아도 노동자는 결코 자본가를 해고할 수 없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체결한 노동계약은 대등 당사자 사이의 자유계약이라면서, 왜 계약 당사자 중 일방만 이런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이 불평등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의 법학자들이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지만 모두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 불평등을 정확한 개념으로 표현한 사람은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공장법전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독재권력을 사적 입법자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본가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권력분립도 없이, 또 그보다도 좋아하는 대의제도 없이 규정하고 있다고 썼다. 그렇다. 독재다. 오로지 자본가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노동에 대한 자본의 독재로 운영되는 체제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고 강화하기 위해 늘 자유로운 해고의 권한을 요구한다. 노동법의 역사는 미약하게나마 자본가들의 해고 권한을 제한해왔던 역사인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동자가 물질적 힘을 바탕으로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그 작은 성과마저도 다시 빼앗길 수 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해고돼야 할 진짜 저성과자는 자본가들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사회적 노동 없이는 단 1원의 이윤도 얻을 수 없다.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계급이지만, 거꾸로 자본가들이 사회의 모든 운영 권한을 독점한다.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저들의 논리에 따라, 우리는 이 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자본가들의 해고사유로 굵직한 것들만 당장 수 개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해고사유는 노동자 민중의 민생파탄이다. 코로나19는 이 사회를 진정 움직이는 세력이 누구인지, 그러나 그들이 창출하는 사회적 부를 누가 강탈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던 자들이 자산 투기로 천문학적인 부를 획득 중이다. 노동자들은 한편에서는 폭증한 업무량으로 과로사를 강요당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이 없다며 해고를 강요당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경제상황은 자본가들을 해고할 사유로 충분하다.

 

두 번째 해고사유는 기후재앙이다. 자본가들의 이윤욕을 위해 착취당한 지구는 이제 기후재앙이라는 형태로 거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지금 당장 수십, 수백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엄중한 상황인데도 자본가들은 녹색 자본주의니 그린뉴딜이니 하는 한가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내일 지구가 망한대도 돈부터 벌겠다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성 역시 자본가들을 즉시 해고할 사유로 넘치게 인정된다.

 

세 번째 해고사유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청소년 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계급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여성혐오 의식을 강화하고 조장한다. 자본주의는 가족을 임금노동자의 재생산 도구로 취급하기에 성소수자의 기본권을 부정한다.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역시 제한되며, 이주민과 청소년은 2등 시민으로 치부된다. 동등한 인권보장 대신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을 분할하고 차별하는 자본가들의 행태는 반사회적 범죄로서 즉시 해고사유다.

 

그러나 도둑이 매를 드는 격으로 자본가들은 저성과자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저들의 주제 넘는 헛소리를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는가.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으로 이 사회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진짜 해고돼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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