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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만적인 온라인 안전교육 거부하고 오프라인 집체교육 쟁취한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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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서울성모병원 노동자 조회 5,854회 2018-04-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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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매일노동뉴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보내며 우리는 자본가체제가 결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저들은 안전은커녕,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형식적인 온라인 교육, 심지어 허구적인 서류작성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이마트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역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런 자본의 행태가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어쩔 도리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이 이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부는 토론을 통해 전문강사 오프라인 집체교육을 요구하며, 형식적인 온라인 동영상교육을 거부하기로 했다. 편의만 생각한다면 온라인 동영상교육도 나쁘지 않고, 실리만 따진다면 근무시간에 동영상 시청시간을 보장하라거나 퇴근 후 유급으로 인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노동자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오프라인 집체교육을 요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들도 온라인 교육 거부지침에 상당수 동참하면서 사측을 압박했다. 사측은 업체에 맞춤형 교육을 의뢰한 것이라 내용도 현장에 잘 맞고, 계약기간이 남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계속 핑계를 댔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단결투쟁이 완강하게 지속되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노동자의 요구가 관철됐다.

 

단결투쟁의 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나간 과정을 두 분의 현장 노동자로부터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은평지회 박기철, 신순남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최근 진행된 형식적인 온라인 안전교육에 맞대응한 과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은평지회에서 어떻게 조직력을 발휘하셨는지요?

 

전봇대에 오르고, 담벼락을 타는 등 하는 일이 늘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실제로 경상 수준의 안전사고는 비일비재하고, 사망사고까지도 일어나요. 그래서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동안 사측에선 단지 벌금을 피하기 위해 매우 형식적으로 안전교육을 했어요. 이번에 지부 차원에서 안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자고 했을 때, 누구하나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하나라도 더 실적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안전교육을 성가신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요. 그러나 전체 조합원이 통일되게 거부해야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지회에서도 조합원들에게 계속 이야기하며 함께 형식적인 온라인 교육을 거부하자고 했습니다.”

 

형식적인 온라인교육 거부에 조합원 대다수가 동참했어요. 몇몇 센터에서는 비조합원들도 상당수 동참했다고 하더라고요. 안전에 무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일하면서 위험이 얼마나 크게 우리를 죄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의 이런 단결된 대응에 결국 사측이 2분기부터는 제대로 된 집체교육을 시행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안전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 왔나요?

 

자회사(홈앤서비스)로 넘어가기 전 협력사 시절에는 제멋대로였어요. 동영상강의를 개별적으로 시청하게 하거나, 아침 조회시간에 짬을 내 20분 정도 시청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고요. 형식적으로 동영상 틀어놓고, 그 시간에 현장업무가 있으면 일하러 가라고 했고, 그러면서 가기 전에 서명은 꼭 하고 가세요이런 식이었어요. 그들에겐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각 센터에서는 그냥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사인을 노동자에게 받는 게 필요했을 뿐이에요. ‘가라로 사인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이런 형식적인 것조차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노동부에 진정 넣고 하면서 그제야 실시된 거예요. 노동부에 불려가는 것도 귀찮고, 벌금 내는 것도 아까우니까요.”

 

그런데 자회사로 넘어오고 나서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개별적으로 동영상 시청하는 걸로 대체하려고 했던 거죠. 협력사 시절이든 자회사로 와서든 똑같이 사측은 안전을 비용문제로 볼 뿐이었어요.”

 

실제로 안전문제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요?

 

바로 이번 달에도 제주에서 한 기사가 전봇대에서 감전돼,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었어요. 통신 노동자들이 추락사한 사례는 이미 언론에도 여러 번 나왔고요. 고객 집에 방문했다가 개한테 물리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안전장비 지급도 허술하고, 품질도 떨어집니다.”

 

내근직들의 경우 청각이상, 손가락 관절 통증을 호소합니다. 근무시간 내내 헤드셋으로 통화하는 것도 일이지만, 귀청이 떨어져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진상고객들의 욕지거리도 그대로 받아야 해요. 요즘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자체 통화중단도 이야기되지만, 여기는 아직 그런 게 없어요. 그런 매뉴얼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직 현장으로 내려 온 공지는 없거든요. 반대로 통화성공률을 올려라’, ‘고객의 니즈를 잘 수용해라이런 공지는 재빠르게 내려 와요.”

 

누가 일하다 다쳤다는 소식은 술자리 안주일 뿐이에요. 워낙 실적압박이 크기 때문에 안전은 뒷전이 되는 거죠. 술자리에서 어떤 동료는 잠깐 삐끗했는데,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 나더라란 경험을 털어놨어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겉으론 괜찮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참으며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번은 고객이 시간이 안 된다며 야간작업을 요청한 경우가 있어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센터장을 거쳐 지역본부까지 불만이 올라갔다가 다시 지시가 내려오는 거예요. 누가 됐든 현장기사를 배치해서 무조건 처리하라고. 사측에서 줄줄이 압력을 넣는 거죠. 그러면 현장기사 차원에서도 같이 거부하면 좋은데 실상은 그게 잘 안 돼요. 자기는 괜찮다며 밤 10시까지도 일거리를 달라고 하기도 해요. 안타깝죠. 야간에 일을 해야 추가수당이 붙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워낙 기본급이 적어서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생계를 책임질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우리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요구하며 싸운 건 모두가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조합원, 비조합원을 떠나 현장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드러냈고, 모두가 공감했거든요. 우리 스스로 안전의식이 더 강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측이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이 산업재해 1위잖아요. 현장의 안전문제를 단순히 데이터로 산출하고, 비용문제로 치부하는 이상 달라질 수가 없어요. 돈보다 안전,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 겁니다.”

 

현재의 저임금 구조가 달라져야 해요. 실적급에 따라 임금이 천차만별이고, 밤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아이를 돌보며 생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전을 미룬 채 한 건이라도 더 할 수밖에 없거든요. 기본급이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죠.”

 

 

그간의 형식적인 안전교육 관행을 깨고 노동자의 요구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는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란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뿐만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만 하는 처지를 바꾸지 않는 이상, 그리고 위험으로 가득 찬 현장을 노동자가 통제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의 안전한 삶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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