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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것으로 준다’던 한화생명의 배신: 보험설계사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63빌딩 천막농성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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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로 조회 5,464회 2021-03-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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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천막 앞에 선 한화생명 보험설계사 노동자들

 

 

3, 봄은 오지 않고 날은 춥기만 하다. 그곳으로 가는 길 내내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가본 적도 없이 멀리 지나치며 바라보기만 했던 63빌딩. 그곳에서 누군가가 농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찾아갔다.

 

높디 높은 한화 본사 63빌딩 아래 작은 농성천막 하나가 있었다. 검정 패딩을 입은 용역경비들이 주위에 둘러 서 있었다. 스피커에선 투쟁가가 흘러나온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투쟁가가 흘러나오자 여러 생각과 감정이 떠오른다. 떨림과 긴장감. 그리고 설렘.

 

피켓이 보인다. 시린 손 사이에 핫팩을 끼운 채 수십 년 일했는데 강제이직 왠말이냐는 문구를 들고 있는 이들. 자연스럽게 섞여서 함께 선전전을 마쳤다. 천막으로 들어오시라는 따뜻한 인사를 받았다.

 

농성장 안에서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조합원 동지들이 있었다. 보험설계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한화생명에서 수십 년을 일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직이다.

 

노조 집단가입에서 농성투쟁으로

 

최근 2천여 명의 보험설계사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집단가입하며 투쟁에 나섰고, 33일 경찰과 용역경비들의 폭력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며 천막농성장을 세웠다. 켜켜이 쌓여온 분노가 느껴졌다.

 

그동안 종종 기사로 접해왔던 것 같다. 잇따른 보험설계사 분들의 자살. ‘쓰고 버린다는 말이 그림자처럼 설계사를 따라다니고 보험사들은 책임을 회피한다는 이야기. 관리할 때는 자영업자처럼 알아서 하라는 식이고 해고할 때는 계약직 노동자 대하듯 하는 게 보험업계의 현실이라고 한다.

 

보험설계사의 참혹한 현실을 듣고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회사는 이들을 개인사업자로 취급하지만 수없이 실적으로 평가해 줄을 세우고 인격적 모독을 일삼아 왔다 한다. 보험상품을 판매하다 고객이 해약하면 불완전 판매로 규정해 모든 책임을 설계사에게 떠넘기는 구조. 설계한 보험으로 받은 인센티브도 토해내야 하는 현실을 듣는다. 10, 20년을 일해도 단 한 푼 퇴직금도 없다.

 

가슴 한 켠의 먹먹함을 숨긴 채 질문했다. 최근 수천 명의 설계사 분들이 가입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점 실적이 없으면 자기 돈 써가며 계약을 넣어왔다고 한다. 고객이 돈이 없어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 보험을 깨서라도 유지시키며 버텨온 게 보험설계사들이다. 회사가 만든 인센티브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돈 100만 원, 200만 원 매달 내는 설계사가 태반이다. “3년 이상 일하면 발 못 뺀다고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최근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힘들어진 가계형편 때문에 많은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고, 그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회사는 자산 150조를 달성하고 주주들에게 많은 배당금을 지급했지만, 오히려 설계사들에게는 회사가 힘들다고 거짓말을 하며 수수료를 삭감했다.

 

심지어 회사는 보험설계사를 영업만 담당하는 자회사형 GA(보험대리점)로 분리할 거라며 이직을 강요한다.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질 게 뻔해보였다.

 

사측의 도발을 물리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와중에 농성장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녁 늦은 시간에 농성장 바로 옆에 무언가 설치되고 있었다.

 

사측의 만행! 조합원들이 빠진 틈을 타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수십 개의 화단을 몰래 설치하려는 것이었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분노한 노동조합 동지들 그리고 함께 방문한 동지들이 부리나케 달려나가 항의하고 싸웠다.

 

용역깡패들이 몸싸움을 걸어오고 욕설을 내뱉는다. 일부러 시비를 걸고 촬영도 해댄다. 돌발상황에 보험설계사지회 조합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경찰도 모였다. 스피커 선동에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한 주민은 지지한다며 힘내시라는 말도 아낌없이 건네준다.

 

사측 용역, 경찰과 계속 싸우며 3~4시간이 지났을까. 11시가 가까워져서야 사측은 화단 설치를 포기하고 철수했다. 작지만 통쾌한 승리에 조합원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온다.

 

잠깐 이야기만 듣고 일어서려 했던 자리인데, 어느새 함께 싸우고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그 기세에 놀라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보험설계사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승리의 결과로 농성천막이 하루빨리 걷어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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