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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토지투기에 나선 LH공사 직원들이 당당하게 항변하는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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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4,727회 2021-03-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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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투자불법투기를 구분하는 게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전문가도 놀랐다는 LH 직원들의 토지 사전투기

 

32일 참여연대와 민변은 20184월부터 20206월까지 10여 명의 LH 직원과 그 배우자들이 총 10개의 필지, 23,028(7천 평)의 토지를 약 100억 원에 구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224일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대책으로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을 발표했는데, LH공사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보상차익을 노리고 그 지역 토지를 사전 매입해 둔 것이다.

 

부동산 폭등으로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통용되는 시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영끌로 떠밀렸거나, 아예 영끌조차 불가능했던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법에 명시된 LH공사의 설립 목적은 국민주거생활의 향상과 취약계층의 주거복지사업이다. 그런데 정작 LH공사 직원들이 대규모 부동산투기를 일삼았으니 분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며칠 새 언론의 경쟁적인 후속보도가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폭로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인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사가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통해 시흥시 과림동 일대 토지 실거래 내역을 분석했더니, 이곳에서만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소유주 10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토지소유주가 지인, 가족, 직장 동료 등 여러 명의 공유자로 등재돼 있고, 매입 대금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한 방식도 똑같았다.

 

이들이 토지보상액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수법은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LH에서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하던 간부 A씨는 자신의 전문지식(?)을 십분 활용해 매입한 토지에 희귀수종 왕버들나무를 빽빽이 심었다. 1의 땅에 25주가량의 나무(180~190)를 식재했는데, 토지보상 시 나무의 이식비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특히 희귀수종일수록 감정가 자체가 높이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보상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토지소유주는 10개월 후 재감정을 받을 수 있는데, 왕버들나무는 1년에 1미터 이상 키가 크는 속성수이기 때문에 감정가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왜 우리만 갖고 그래?”

 

민변에 따르면 LH공사 직원들의 토지 사전투기는 현행법 위반이다. 부패방지법 상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업무상 비밀이용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LH 직원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

 

LH 직원은 내부정보를 활용해 부정하게 투기한 것인지 본인이 공부한 것을 토대로 투자한 건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면서 “(LH 직원이라고 해서) 부동산투자를 하지 말란 법 있느냐고 항변했다. 또 다른 직원은 요즘 영끌하면서 부동산에 투자가 몰리는 판국이다. LH 1만 명 넘는 직원 중 광명에 땅 사둔 사람들이 이번에 얻어걸렸을 수도 있다막말로 다른 공기업, 공무원 등 공직에 종사하는 직원 중 광명 쪽 땅 산 사람 한 명 없겠느냐고 되물었다. 한마디로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소리다.

 

물론 이들의 항변은 곧바로 여론의 엄청난 비판에 맞닥뜨렸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작금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위한지 새삼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게 누구이건 간에 본인이 공부한 것을 토대로 투자해서 수익을 얻는 것은 정당한 보상인데 왜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돈 놓고 돈 먹는 체제인데 그것이 실물경제와 연동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불로소득에 불과한 것인지를 따질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지 수익률이 중요할 뿐이다! 아니 불로소득도 아니다! 우리도 투자정보를 얻느라 힘들여 공부하고 결단한 건데 왜 함부로 불로소득이라고 매도한단 말인가!

 

돈이 돈을 벌게 하라는 개똥철학은 누구를 이롭게 할까

 

자산투자의 시대라 할 만하다. 통계청의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상위 20% 순자산은 112,481만 원으로 2019년에 비해 3.7% 상승했다. 반면 하위 20% 순자산은 675만 원으로 2019(864만 원)과 비교해 21.8% 감소했다. 상위 20%와 하위 20% 자산격차는 166.6배 차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자산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뒤처지면 벼락거지가 될까봐 앞 다퉈 자산투자에 나선다. 노동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가언론과 투기꾼들은 부동산 영끌이 가능하다면 부동산을, 부동산이 불가능하다면 주식과 암호화폐라도 매입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부추긴다. 특히 동학개미로 상징되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열풍이 거세다. 현재 월급 노동자의 절반(50.1%)이 주식투자를 하며, 특히 20대는 이 비율이 56.1%까지 올라간다. 34일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3,8621,934개로, 투자자 한 명당 4~5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쳐도 주식투자자 수는 8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존 리 같은 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주식은 철학이라며 돈이 돈을 벌게 하라는 개똥철학을 늘어놓는다. 노동은 자기 몸을 써야 돈이 나오지만 주식으로 투자된 자본은 그냥 놔둬도 알아서 움직인다는 찬양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굴려 돈을 벌지 못하면 금융문맹이니, 사교육에 들일 돈으로 차라리 자식에게 주식투자를 가르치란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화폐자본의 순환을 분석하면서 생산과정은 돈벌이를 위해서 불가피한 필요악 즉 단지 하나의 중간고리로 취급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 있는 모든 나라는 주기적으로 생산과정의 매개 없이 부를 늘리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썼다. 존 리가 말하는 그냥 놔둬도 알아서 움직이는자본의 수익을 위해서는 누군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고 있어야만 한다. 존 리의 개똥철학은 노동과 자본의 근원적 모순을 은폐할 뿐이다.

 

어떤 특정한 시기,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모두가 돈을 버는 것 같은 시대에는 돈이 돈을 벌게 하라는 헛소리가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는 생산과정과 괴리된 자산금융시장의 거품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차례 증명했다. 당장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결국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빚 독촉장이 날아들면 무리하게 자산투자 열풍에 올라탔던 수많은 개미의 파산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 자체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전파하는 물질적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공부해서 자산투자를 할 수 있고, 그 결과 정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투자로 손실을 봤다면 그건 본인의 선택이니 감수해야 한다.” 너무도 익숙한 논리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계급 간 격차를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려버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말이다. 투자수익과 손실이 엇갈리고 이것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정작 독점 자본가들의 막대한 이윤이 근원적으로 어디서 창출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극소수만 접근 가능한 내부정보를 활용해 어떻게 부당한 이득을 수취하는지 등은 너무도 손쉽게 은폐된다.

 

바로 이렇게 강력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LH 직원들의 당당한 항변이 튀어나왔다. 결국 문제의 진짜 근원은 모두가 온통 돈벌이에만 미쳐 돌아가게 만드는 지금의 체제, 다시 말해 노동자 민중 대다수가 노동소득만으로는 미래의 삶을 전혀 설계할 수 없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려는 자들

 

LH 토지투기 의혹이 폭로된 직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제 식구 감싸기 발언을 내놓아 대중의 공분을 샀다. 문재인 정부는 사안이 심상치 않자 총리실 중심으로 정부합동조사단을 꾸려 3기 신도시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신도시 입지 발표 5년 전부터 현재까지 국토교통부와 LH공사 등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직원과 그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토지거래 내역을 살필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야권은 물론 대권 행보를 시작한 윤석열도 정부가 아니라 검찰이 직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은 직원을 전수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실명보다 차명거래가 많을 것이라 주장한다. 맞는 소리이긴 하다. 다음 달 재보선과 내년 대선을 노리는 이들은 LH 의혹이 정권을 뒤흔들 권력형 비리사건이 될 수 있다는 감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이든, 또는 이재명이든 국민의힘이든, 이들이 문제의 본질까지 다가갈 리 없다. 이들은 대중의 분노를 적당히 가라앉히는 수준에서, 정당한 투자내부정보를 활용한 불법투기를 가려내고 후자를 엄벌하는 수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원리를 보전하려 들 것이다. ‘공정한 경쟁은 언제나 독점자본의 집중과 집적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니, ‘불법투기를 솎아낸다 해도 자본가들은 결코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LH 직원 등 내부정보를 활용해 부당한 이득을 편취한 자들을 엄벌하고 그들의 수익을 몰수할 것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들까지도 각자도생의 투기판으로 내모는 자본가들에게 근본적인 삶의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위험천만한 자산투자 열풍에 올라타지 않더라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설계하기에 충분하도록 생활임금 보장, 공공 주거·의료·교육 정책 시행을 요구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정당한 투자냐 불법투기냐라는 프레임에 갇힐 것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삶의 조건을 보장하라는 공세적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계급투쟁이 위축되고 노동자계급이 자기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조건에서 이런 주장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자본가 역시 아무런 이윤을 얻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노동자의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 자본의 배를 불리는 각자도생의 투기판에 끌려 들어가는 대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이해를 내걸고 미래를 위해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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