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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얀마 노동자들은 어떻게 쿠데타 반대시위의 선두에 서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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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지오, 양동민 조회 28,709회 2021-03-0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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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아래 번역기사는 프랑스 혁명적 사회주의 매체 <연속혁명>에 처음 게재되고 <레프트보이스>에도 실린 스티븐 캠벨(Stephen Campbell)과의 인터뷰다. 그는 싱가포르 난양공대에 머물면서 미얀마 노동자들 그리고 태국으로 건너온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투쟁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낙후한 국가라는 막연한 인상과는 달리 최근 미얀마에서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조직돼 왔는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쿠데타 반대투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우리는 거리에서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무수한 행렬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미얀마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사장의 괴롭힘에 맞서, 또 임금인상을 위해 수차례 파업을 벌이고 투쟁에 나섰습니다. 이런 노동자의 파업과 투쟁의 흐름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미얀마 노동자들, 특히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대다수인 의류공장 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아니 그 이전부터 꾸준히 스스로를 조직화해왔습니다. 이런 헌신적인 조직화 작업을 거쳐 양곤지역을 둘러싼 여러 산업지구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강력한 연결망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10년간 파업 물결이 특히 두드러진 순간들이 있었지만, 양곤 주위 산업지구에서 파업은 늘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파업이 모두 언론에 나오진 않았습니다. 사실 공장주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노동법을 위반하고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되는 임금을 줬기 때문에, 파업은 많은 경우 노동자들이 법정 최저임금과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받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노동자가 작업장에서의 조직화와 파업을 통해 폭넓은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거치며 그들은 매우 전투적인 노동자가 됐고, 집단행동을 취하는 데 아주 능숙해졌습니다.

 

이 산업지구가 양곤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이 노동자들이 도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쿠데타 이후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시위 구호와 인터뷰를 통해 명확히 밝힌 점이 있는데, 이들은 군사독재가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제한하고 노동자 조직화의 여지를 축소시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불안정한 그들의 생계는 더 나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쿠데타 반대시위와 시민 불복종운동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직접적인 물질적 이해관계와 강하게 결부된 행동입니다. 이런 이유로, 또 이 노동자들이 이미 전투적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쿠데타 반대시위와 시민 불복종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왜 노동자계급이 쿠데타에 맞선 투쟁의 선봉에 섰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언급한 것처럼 양곤 주변 산업지구에서 일하는 많은 공장 노동자는 이미 잘 조직돼 있지만, 동시에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황은 더 나빠졌고요. 자본가들은 코로나 위기를 조직된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한 구실로 삼았고, 경찰은 노동운동가들을 체포하고 파업을 분쇄하며 자본가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분명한 인식이 자라났습니다. 군사독재가 조직화의 여지를 축소시킬 것이며, 이는 자본가들에게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법을 어길 더 큰 권한을 줄 거라는 점에 대해서 말입니다.

 

쿠데타 반대시위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운동가 중 한 명인 모에 산다르 미인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싸울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군사독재 아래에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로 뭉쳐 끝까지 싸울 것이다.” , 많은 노동자에게 이 투쟁은 단지 아웅산수치와 (그녀의 당인) 민족민주연맹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투쟁은 그들의 직접적인 물질적 이해관계에 뿌리를 둔 투쟁이고, 많은 측면에서 단순히 민족민주연맹이 정권에 복귀하는 것을 넘어선 목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민족민주연맹 정권 아래에서도 노동자의 처지는 매우 불안정하고 제약이 컸으니까요.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에 속합니다. 많은 다국적기업이 미얀마에 투자했습니다. 이런 경제적 변화가 미얀마의 사회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새로운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등장했습니까? 그리고 미얀마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은 어떻습니까?

 

2011년 전에는 많은 서구 의류기업들이 미얀마에서 물량을 공급받는 걸 꺼렸습니다. 군사독재 아래 매우 강압적인 노동관행과 연결된 오명 때문이었죠. 하지만 2010년 선거 이후 2011년에 민족민주연맹이 집권하면서 표면적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얀마가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는 식의 설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2011~2012년에 새로운 노동법이 도입되면서 서구 의류기업들은 미얀마에서 물량을 공급받는다는 이유로 (악덕기업으로) 낙인찍히지 않게 됐습니다. 덧붙여, 미얀마는 아시아에서 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편입니다.

 

동시에, 이전의 군사독재 시절과 이른바 정치적 이행기 동안 시골의 많은 주민이 농촌을 떠나야 했습니다. 늘어난 부채와 농작지 손실 때문이었는데, 많은 경우 이 농지들은 군 간부와 그들의 사업 파트너의 소유가 됐습니다. 그리고 2008년엔 인구가 밀집한 삼각주 지역에서 심각한 사이클론 재해가 있었죠.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밀려 농촌 주민들이 양곤 주위의 산업지구로 대규모 이주를 하게 됐습니다. 부동산 투기와 대규모 이촌향도 때문에 주거비용이 증가했고, 새로운 도시민의 다수가 비공식적인 불법거주지로 옮겨갔습니다. 현재는 양곤 외곽에 있는 불법거주지에 수십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일자리를 찾아서 태국이나 다른 주변 국가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자, 미얀마의 해외개발기관이나 컨설턴트 회사들은 이런 이촌향도가 여러 선택지 중 가장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의 임금노동이 표면적으로는 농업생활보다 더욱 생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 실질적인 사회안전망도 없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도시 이주민이 크게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많은 공장, 특히 국내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공장들은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출 의류공장도 빈번하게 노동보호법을 어깁니다.

 

의류산업은 미얀마 수출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입니다. 노동자 90%가 여성인 의류산업에서 많은 투쟁이 벌어집니다. 미얀마에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고 파업을 일으키는 데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양곤 주위의 다양한 산업지구에 위치한 수출용 의류, 섬유, 신발, 장신구 공장은 최소한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백만 명가량 고용하고 있었고, 고용하는 사람을 십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으로 매우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심지어 20대 중반만 돼도 여성이 이들 공장에 취업하기란 아주 어려워집니다. 이런 편제방식의 한 가지 결과는, 이 여성들이 대개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여성들의 가족은 대개,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이 여성들의 임금에 의존합니다.

 

큰 의류산업을 가진 미얀마와 그 밖의 나라들에서 흔히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조직되거나 파업하기를 꺼리고 그 외에 사장들을 골치 아프게 할 일을 벌일 가능성이 적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의류공장이 이들을 고용하길 선호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분명하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실은 이들 중 다수가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조직화하는 동력을 더욱더 키워왔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직장 내 조직화에 직접 참여하며 조직기술, 리더십, 자긍심을 길러낸 다수의 훌륭한 여성 활동가가 있습니다.


오랜 군부정권 아래에서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동조합과 총연맹 건설 등에 대한 정권의 유화조치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노동자들의 파업과 쟁의는 굉장히 급진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 아래에서 그들은 일자리를 지켜내고 해고된 노조 위원장을 지켜내기 위해 싸웠으며, 해고수당을 받고 쫓겨나는 걸 거부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늘날 노동자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치적이거나 사상적인 흐름, 혹은 역사적인 정치운동이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군사독재 하에서 노동조합 설립이 불법이었다고 하더라도, 비공식적인 노동자 조직화 사례는 많이 있었습니다(적어도 이것이 2010년 이전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저에게 전해준 말입니다). 2011년과 2012, 새로 들어선 표면상의 문민정부가 새 노동법을 도입하고 합법적 노동조합 조직과 단체협상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작업장이 많은 법을 위반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노동자들은 노사관계를 담당하는 정부관료들이 고용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향돼 있고, 노골적으로 부패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경찰은 많은 경우 고용주들 편에 서서 파업을 해산시키고 파업 지도부를 체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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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연행되는 쿠데타 반대시위 참가자

 

 

이런 결과로,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의 노동법과 정부기관들에 기댈 순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현장 내 조직가들이 동료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이 집단행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내비쳤습니다.

 

더불어 미얀마에는 유구한 저항의 전통이 있습니다. 2011년 표면상의 문민통치가 복구되기 전에도 많은 노동자가 자기 일터에서 비공식적 집단투쟁을 벌여왔습니다. 미얀마가 풍부한 좌파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버마공산당이 실질적으로 붕괴된지 (동시에 이른바 사회주의 시대가 끝난지) 30년도 넘었지만, 많은 노동운동가는 좌파 사상과 버마의 좌파 역사에 정통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급진적 학생들 중의 일부는 지난 10년간 공장 노동자들에게 다가갔고, 좌파 책자들을 소장한 노동자도서관 운영을 지원하거나 좌파적 주제의식이 담긴 노동자언론을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는 명백하게 좌파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파업을 벌이고 경찰에 맞서려는 전투적 의지와 같은 급진적정치는 지난 10년간 그들 자신이 벌인 투쟁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사장들, 국가기구 그리고 정부는 (ILO 같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으며) 파업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또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 대항해 경찰력과 사법적 탄압을 활용합니다. 노동자운동에 이렇게 대응하는 사업주들과 정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2011년과 2012년의 새 노동법 도입 이전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미 노동자들에 의한 작업장 내 조직과 파업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0년 선거 이후 표면적으로나마 문민정부 통치로 이양되면서 ILO는 새 정부가 노동법을 개정하도록 돕습니다. 그때 ILO 고문은 이 노동법 개정의 목표가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도적 메커니즘 속으로 편입시키면서 파업을 봉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가 알게 됐듯이 새로운 메커니즘은 대개 고용주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향됐고, 이를 관장하는 정부관료들은 부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노동자가 정부 중재자들에게 노동법 위반사항을 고발하기보다는, 혹은 고발하기 전에, 파업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경찰 또한 주로 고용주들 편에 서있기 때문에, 파업을 지속한 노동자들은 체포나 경찰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자유주의적인민족민주연맹 정부 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군사 쿠데타를 지켜보며 많은 노동자가 조직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더 축소될 거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쿠데타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아웅산수치는 미얀마 민중에게 큰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웅산수치가 통솔한) 민족민주연맹 정부 아래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탄압은 매우 심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 자유민주주의전망은 삶과 노동의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고, 노동자의 정치적, (소수민족의) 민족적, 경제적, 노동조합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아웅산수치와 그가 속한 정당의 정치적 목표 너머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군사 쿠데타에 반대해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미얀마 노동자의 정치적인 계급 독립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한편으로 지난 10년간 표면상의 문민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조직할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노조를 설립할 수 있었고, 많은 파업이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동자들은 단지 법정 최저임금과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받는 데에서조차도 계속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금 시위에 나가면 볼 수 있는데 아웅산수치의 얼굴사진과 그의 석방 요구가 매우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중이 외치는 바는 군부독재에 대한 거부입니다. 시위 참여자 대부분은 2008년 군사정권이 도입해 군부의 정치적 지분을 그대로 용인한 헌법을 폐지하고, 진정한 연방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방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기존 중앙정부 지배에 오랫동안 불만을 토로해왔던 소수민족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도 어느정도 길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총파업 수준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와 시민 불복종운동의 규모 및 동력 덕분에 더 원대한 정치적 목표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쿠데타 직후 곧바로 일어났던 시위의 선두에 섰던 노동자들의 기여가 컸습니다. 또한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에서 이 노동자들은 자신이 단순히 민족민주연맹에 표를 몰아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세력임을 보여줬습니다.

 

미얀마 상황이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노동자운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미 인근 국가인 태국에서는 미얀마의 시민 불복종운동 덕분에 민주화운동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미얀마는 밀크티동맹에 함께할 것을 제안받았는데, 이는 홍콩, 대만, 태국 그리고 미얀마 일대의 민주화 운동가들의 느슨한 온라인 동맹입니다. 당연히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주로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미얀마 노동자들의 운동을 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명확한 노동자계급 정치를 주창할 수 있게 될 것인지, 그리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기 위해 총파업을 전술로 채택할 것인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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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https://www.leftvoice.org/in-myanmar-workers-are-ready-to-f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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