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치

번역 | 자본주의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파괴하자!

페이지 정보

옮긴이 김요한 조회 516회 2021-02-19 17:18

첨부파일

본문

 

88c06bfce321a61c292e95324e3dcbe8_1613722548_2667.jpg
20199월부터 20202월까지 6개월간 이어진 호주 산불도 근원적으로 기후위기의 긴급성을 보여준다.

 

편집자 주   2019920일부터 27일까지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대응을 촉구하는 기후파업이 벌어졌다. 아래 글은 당시 FT(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가 발표한 국제 선언문이다.

 

920일에서 27일까지 글로벌 기후파업 행동주간이 있었다. 이 외침은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환경단체와 생태주의자들은 물론이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멸종저항같은 운동의 지지를 받았다. 주최 측은 정부가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환경위기를 멈추기 위한 긴급한 조치들을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기후위기의 긴급성에 직면해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생태-사회적 재앙의 원인, 즉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지구적 환경위기

 

자본주의는 수 세기 동안 자연을 착취하면서 번영해왔다. 자연을 상품생산을 위한 자원의 고갈되지 않는공급원 또는 쓰레기 처리장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자본의 파괴적 작용을 견뎌내던지구의 능력은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

 

멈추지 않고 성장하려는 자본의 욕구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복잡한 자연의 순환을 중단시키는 데 이르렀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와 자연 사이에 물질대사의 균열을 초래했다.

 

기후변화와 탄소, , , 질소의 생물학적 순환의 위기, 해양의 산성화, 가속화되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손실, 토양 질의 변화와 산업에 의한 화학적 오염. 이것들은 인류가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의 끔찍한 표현으로, 즉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자연적 조건을 파괴하는 데로 나아가는 경향이다. 이 파괴적인 경향은 빈곤, 실업, 불안정 고용으로 고통 받고 있는 수억 민중의 사회적, 물질적 박탈과 직결돼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과 재생산을 보증하기 위해 이런 파괴적 경향을 동반한다.

 

최근 아마존 산불이 보여준 자본주의의 야만성은 환경파괴와 쇠락이라는 지속적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는 브라질 우파 대통령 보우소나루가 부추긴 삼림 남벌 장려정책의 산물이다. 환경규제 완화, 산불을 일으킨 대토지소유주와 목장주가 직접 벌이는 행각도 한몫했다. 지난 가을 캘리포니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산불, 또 시베리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황폐하게 만든 산불(아마존 산불보다 파괴력은 덜했지만 발생 횟수는 더 많았다)이 보여주듯이, 통제할 수 없는 산불의 발생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이윤을 향한 갈망이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

 

기후변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의 결과로 대기 중 온실가스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과 관련된다는 점에 대해 폭넓은 과학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일반적 의미의 인간 활동이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방식 내에서 수행되는 인간 활동이 문제다. 여러 조사기관에 따르면, 1880년 이후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는 거의 1°C 올랐다. 지구적 차원의 평균온도 상승은 산업혁명 시기에 시작됐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빨라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예측에 따르면, 지구 표면 평균기온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2~5°C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해수면은 18~59cm까지 높아질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과거와 미래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에 천 년 이상 지속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동시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근 400ppm을 넘어섰고, 향후 수십 년 안에 인류 역사상 전혀 보지 못했던 500ppm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다.

 

유엔기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다른 연구와 비교하면 매우 낮춰서 추정한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2030년까지 45% 감축돼야 온난화의 치명적 임계치인 1.5°C 상승을 피할 수 있다. 이 수준을 넘어서면 전반적인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고, 극단적인 기상이변과 식량부족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과감한 조치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이런 추정이 막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결과로서 지속시간과 빈도가 늘어나고 더 강력해진 기후재앙 현실을 본다면 그런 추정이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세계 곳곳의 도시 전체를 휩쓰는 통제할 수 없는 산불(이것은 생태교란종이 확산된 것 그리고 이윤을 위해 단일종 재배를 하는 삼림관리 관행과 연결된다), 극심한 폭염, 거대한 홍수, 재앙적인 가뭄이 그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기후난민이 2천만 명을 넘는다. 전 지구적 기온상승이 2도를 넘게 될 경우, 이 숫자는 28천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대도시에서 자동차의 배기가스, 미세먼지와 산업생산이 유발한 대기오염으로 매해 9백만 명(유럽에서만 80만 명)이 사망한다.

 

지구 온난화는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을 가장 충격적으로 표현한 것의 하나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또한 대기와 물의 오염, 토양 황폐화, 삼림 남벌, 생태 다양성의 파괴를 초래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척추동물 개체 수가 평균 60% 감소했다. 생태위기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이런 경향은 가속화할 것이고, 지구 생태 다양성의 대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 전체는 가정, 산업, 농업 부문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분배, 소비로 발생한 거대한 쓰레기들의 처리장으로 변모했다.

 

기후변화 부정하기와 녹색 자본주의’: 동전의 양면

 

지구 온난화가 일으키는 재앙적 시나리오에 직면해 세계 자본주의 열강은 두 개의 전략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증거가 상상 속의 이데올로기라며 이를 부정하는 캠페인이다. 다른 하나는 녹색또는 지속가능한자본주의를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녹색 자본주의는 코미디 같은 국제협정에 의지해 생산체제의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변화를 제안한다. 동시에 자본주의적 축적과 착취의 방식을 강화시키면서 말이다.

 

기후변화 부정론자에는 미국의 트럼프, 공화당, 티파티,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그리고 소수의 과학자가 있다. 그러나 이 부정론자들을 주도하는 세력은 다국적기업들이다. 그들은 기후변화를 초래한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이들 거대 자본주의 기업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캠페인을 후원하면서도, 기후변화의 결과와 그 사회·정치적 영향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안보와 외교정책 분야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고도로 독점화된 자본 부문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군사적 무장, 즉 불행과 쇠락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부유한 섬을 지켜낼 더 많은 민간군사기업과 경비대를 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다른 한쪽엔 녹색 자본주의가 있다. 미국 민주당과 앙겔라 메르켈, 엠마뉘엘 마크롱, 페드로 산체스 같은 유럽 주요국의 정치인들, 그리고 다양한 녹색 정당들이 이를 추진한다. 이 목록에는 번영하는 자본주의 기업들, 국제기구, 심지어 NGO 환경단체까지 포함돼 있다. 여기에선 신자유주의와 녹색경제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뒤섞이고 있다. 그들은 지구 온난화에 반대한다고 공언하며, 비싼 돈이 들어가는 기후정상회의에서 환경적 조치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동의한다. 모든 경우에 이것은 실천적 함의가 없는 외교적 문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그들은 환경을 개선하자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독성물질의 생산과 자연자원 파괴를 제한하고, 동시에 ‘친절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들은 이것이 경제성장의 새로운 원천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 기업들이 두둑한 이윤을 뽑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녹색당은 생태적 전환 조치를 통해 독일 경제를 구하자고 제안한다. 독일 제국주의의 군사화를 지지하면서 말이다(그들은 유럽의 지도력 아래 이란 분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이것은 독일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녹색 제국주의정책일 뿐이다.

 

메르켈 정부와 독일 녹색당이 먼저 추진했고 이제 점차 다른 정부들과 환경단체들에서도 채택 중인 이런 종류의 조치 중 가장 최근의 것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것은 산업의 생태적 전환에 비용을 대기 위해 육류, 석유, 항공 소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세금은 물가상승을 불러오고 노동자계급의 구매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녹색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전략은 기후변화 부정론의 약화된 버전으로 귀결된다.

 

자본주의의 핵심 본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지구의 물질적 파괴가 벌어지더라도 이윤과 축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중국, 미국, 유럽연합이 대기권을 망가뜨리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동안, 그리고 자본가들이 기후변화 부정론과 무기력한 환경위기 대응 정상회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 세계의 나머지는 기후변화의 영향 속에서 계속 고통을 겪고 있다.

 

이것이 녹색 자본주의가 한낱 몽상인 이유다. 녹색 자본주의는 우리를 위협하는 지구적 환경재앙의 원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며, 지구에 사는 인류와 생물에 대한 지속가능한 개발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녹색 자본주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체제 안에서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해법이 나올 순 없다.

 

녹색 자본주의 분야에는 IUCN(국제자연보전연맹), WWF(세계자연기금), 심지어 그린피스까지 포함된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태 효율성의 전도사들과 협력 중이다. 바로 쉘, 엑슨 등 정유회사, 배릭 골드 같은 광산기업, 월마트, 카길, 몬산토 같은 거대기업들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지구 전체의 자연자원을 약탈하는 행위에 녹색딱지를 붙여주고 있다.

 

녹색 개량주의와 그린뉴딜

 

녹색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스펙트럼 속에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개량주의의 변종이 있다. 그린뉴딜이 그것인데, 이것은 위기대응책으로 신케인스주의적 시각이 담긴 계획을 제기한다. 미국에서 이 정책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을 포함한 민주당 대선후보들, 그리고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부르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에게 지지받고 있다. 그린뉴딜은 PSOE(스페인 사회주의노동당) 같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그리고 포데모스 같은 신개량주의 경향의 연설과 강령에서도 등장한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미국에서 그린뉴딜이 10년 안에 100%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뤄낼 것이며, 동시에 수백만 개의 일자리도 만들어낼 거라 한다. 이 일자리들은 여러 조치 중에서도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전력망을 미국 전역에 건설하는 것과 관련된다. 어떻게? 지금의 생태위기에 책임이 있는 억만장자 기업들에게 지원금을 주면 그들이 우리를 생태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인프라를 개발할 테니까. 이를 위해 그들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이면에 있는 생각은 이렇다. 만약 세계 중심부 산업국가의 정부들과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현 상황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상당수 진보세력의 기준점이 되고 있는 그린뉴딜과 이와 유사한 제안들(UN 어젠다 2020 ) 모두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가 실현 가능하며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낸 기업들이 지구의 구원자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윤과 수억 민중의 생명이 달린 환경보호 사이에 놓인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환상은 유토피아적이고 반동적이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자연과 그 개발 과정에서 총체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자본에게 결정적인 요인은 단지 양적인 것에 불과하다. 격렬한 경쟁은 개별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시장에 쏟아낼 상품의 양을 증가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찾도록 강제한다. 이것은 상품생산에 필요한 자연자원의 양을 증대시킨다.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은, 자연의 생성과 재생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자원을 무자비하게 집어삼킨다.

 

환경을 파괴하는 이런 패턴의 원인은 자본가의 비합리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고유의 논리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향한 열망으로 작동되는 경제체제의 논리적 결과다.

 

청년들의 기후투쟁: 그 잠재력과 한계

 

2018820일 스웨덴의 젊은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생파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 행동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른 채 또 다른 지구는 없다는 구호를 들고 지구적 환경위기에 맞선 시위를 벌였다. 이 운동은 유럽대륙 전역의 수백 개 도시에서 수십만 명을 동원하는 등 점점 더 많은 지지자를 모아냈다.

 

독일의 여기서 이제 그만’, 영국의 멸종저항같은 또 다른 환경운동도 일어났다. 이 운동들의 요구는 유사하지만 투쟁방식은 상이하다.

 

첫 번째 세계 기후파업은 2019315일에 열렸다.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기후변화에 저항하는 학생파업의 일환으로 세계 여러 도시의 거리로 나섰다. 마드리드, 베를린, 파리, 비엔나, 로마 등 유럽과 세계 여러 도시에서 거대한 시위가 벌어졌다. 324일 학생파업에 대한 새로운 국제적 호소가 있었고, 여기에는 수백만 명이 참여했다. 시민들과 사회단체의 동참을 호소하는 새로운 세계 기후파업이 920~27일에 열릴 예정이다.

 

시위 주최자들은 정부가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환경위기를 멈추기 위한 긴급조치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환경위기는 특정한 생산 및 소비 모델의 결과물인데, 이 모델은 대다수 민중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하고, 우리의 생존을 위험에 처하게 하며, 세계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민중에게 불공정한 영향을 주는 모델이다.”

 

그런 긴급조치에는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만들고 지구기온이 1.5도 이상 오르는 걸 막는 것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 그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하는 조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신규 인프라 건설을 멈추고 비핵에너지 모델을 구현하며 생산체제를 재편하는 조치들을 제안한다.

 

또한 이 운동은 증가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훼손 사이의 관계를 지적한다. 그들은 생태 지속적인 모델로의 전환에는 사회계급, 성별, 국적 등에 따른 불평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런 전환의 틀 속에서 그들은 에너지, 운송, 식량 등 다양한 생산 영역이 민주적으로 재편되고 시민조직의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젊은이들이 환경파괴의 야만성에 맞서 투쟁에 뛰어든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고무적이다. 게다가 요구 관철을 위해 파업을 하고 다른 시민사회 조직의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혁신적 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운동에 더 큰 힘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냈고 이제 그 결과가 명확해진 지옥의 힘에 직면하자,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나 그와 유사한 운동에 속한 젊은 활동가들이 점차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비록 추상적이거나 우회적인 방식일 때가 있지만, 그들은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목한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명확한 강령이나 전략이 여전히 부족하다. 그들의 전망은 맹렬한 규탄을 벌이는 정도로 제한돼 있다. 그들은 자본가 정치인들이 긴급한 조치를 시행하라고 요구하거나, 아니면 소위 녹색정당들이 내놓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지금의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 즉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이윤(과 소유)에 반하는 제안들은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계급과 빈곤층 대다수에게 위협이 되는 소비세와 같은 녹색조치들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없다. 오히려 그 운동은 많은 나라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세를 자본가정당이 제안하는 수준보다 더 높게 매기는 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주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소비품의 물가를 올리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 노동자계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환경위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대중이 아니라 자본가들이라는 점을 명확히 선언하는 강령이 필요하다.

 

그 운동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지배적인 논리에 따르면,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관건은 무분별한 소비에 경각심을 갖는 개인 소비방식의 변화라고 한다. 명백하게도, 전 세계에 걸쳐 소비 주기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소비자들을 형성한다. 이렇게 개별 인간 행동은 생태위기에 일조하게 되므로, 환경의식을 가진 새로운 소비방식을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동은 자본주의의 환경파괴에 아주 사소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영향은 대단히 불평등하다. 2015년 옥스팜 보고서는 세계의 부유한 10%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면 가난한 50%(35억 명의 사람들)는 단지 10%만 배출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보여줬다.

 

개인의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환경운동의 논리는 두 가지 전략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그 운동은 개인주의적 관념을 조장한다. 공격받아야 할 몸통’, 즉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거대기업, 자본가국가를 흐릿하게 하거나 보기 어렵게 만들면서 말이다. 둘째, 그 운동은 대중이 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반동적 주장을 강화하는데, 이 주장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의 가난한 계층이 환경위기의 비용을 지불할 것을 강제하는 조치로 이어진다. 이 주장은 체제를 강화하고 자본가들을 이롭게 하며,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세력이 투쟁에 동참하는 것을 막게 된다.

 

프랑스 노란조끼운동(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거대한 사회운동)이 준 교훈 중 하나는, ‘생태적 전환의 비용을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대중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생태위기의 맥락에서 중심 문제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위기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회의 다수와 위기에 책임이 있는 자본가들을 대치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초래한 지구적 환경위기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길은, 대중 다수가 선두에 선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란 그저 자본주의의 다양한 모순 중 하나가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를 구성하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자연의 관계가 생산으로 매개되는 것이라면, 자연과의 물질대사가 합리적으로 조절되는 것은 오로지 생산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생산적 계급인 노동자계급이 다가오는 재난 앞에 비상브레이크를 잡아당길 사회적 동맹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다.

 

환경운동과 노동자들이 단결한 중요한 실례들이 있다. 타이타닉호를 건조했던 아일랜드의 할랜드앤울프 조선소를 보자. 이 조선소는 파산선고를 받았지만, 노동자들은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국유화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점거투쟁을 벌였다. 또 포르투갈, 독일, 스페인에서는 노동조합이 기후파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주도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직관적이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그들은 환경파괴의 대안을 향한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사회적 주체를 가리키고 있다. 바로 노동자계급이다.

 

환경운동이 발전하려면 노동자계급이 이 운동에 자기 고유의 요구와 투쟁방식(파업, 봉쇄, 출입저지 등)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환경운동에 대해 노동자계급 저변에 깔려 있는 편견을 타파하도록 도울 필요도 있다. 이 편견은 종종 환경보호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계급을 공격하는 정책에 의해 정당화되곤 하는데, 이는 노동자계급을 오염 유발자인 사장들과 동일시하고 노동자계급의 생활조건을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무엇보다도 관료화된 노동조합들 다수가 수행하는 반동적인 역할과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중공업과 에너지산업 부문에서 노조관료들은 자본가의 가장 좋은 파트너 노릇을 한다. 노조관료들은 아무리 사소한 수준일지라도 생태적 전환을 위한 일체의 조치에 반대하면서, ‘일자리 지키기라는 구호를 내건다. 그들이 진정으로 지키는 것은 자본가들의 이윤이다.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사장의 성공 여부에 옭아매면서 말이다.

 

유럽과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기후파업을 반대했고,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독일에서 그런 것처럼) 기후파업을 말로만 지지했다.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조직하기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폭넓은 자기조직화와 더불어, 수십 년간 생태문제를 무시하거나 폄하해온 관료화된 노동조합의 반동적 역할을 규탄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다가오는 재앙이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책임은 자본가들에게 있다. 이들 자본가들에 맞선 투쟁에 복무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정하고 조직을 움직이라고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독일에서 페어디 악티프(ver.di aktiv)라고 불리는 노동조합 평조합원 활동가집단의 선언은 전국적으로 여러 부문에서 500명 이상의 서명을 이끌어냈다. 그 선언은 거대 노동조합들에게 파업을 요구한다. 이것은 앞서 얘기한 방침을 표현한 작지만 의미심장한 사례다.

 

재앙을 막기 위한 반자본주의 이행강령

 

절대적으로 비합리적인 자본주의 전망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과감하고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은 명확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현재의 재난에 주요한 책임이 있는 제국주의 열강 정부의 선의에 의존할 수 없다. 또한 거대기업과 부르주아정당이 녹색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새로운 의제에 의존할 수도 없다.

 

우리를 위협하는 재앙의 유일한 해결책은 세계경제를 합리적 계획에 맡김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다. 또는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경제관계의 영역에 이성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객관적 조건과 물질적 이해관계로 인해 재앙을 막는 데 이익이 있는 유일한 계급, 즉 노동자계급이 경제를 통제할 때만 가능하다.

 

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를 구성하는 우리 조직들은 노동자운동 안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환경운동 내에서 이런 전망을 가지고 투쟁한다. 기후정상회의의 코미디와 녹색 자본주의의 약속에 맞서 우리는 생산, 분배, 소비를 완전히 이성적이고 생태적으로 재편하는 이행강령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행강령에는 다음의 조치들이 포함된다.

 

 전체 에너지산업을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 아래로 (소비자위원회의 감독과 함께) 수용하는 것. 이를 통해 에너지부문에서 가스와 석유를 뽑아내는 프랙킹 등의 채굴기술을 금지하면서 지속가능하고 다양한 에너지 공급체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지역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일 것이다. 동시에 악랄한 수준의 전기요금도 내려갈 것이다.

 

 모든 운송회사를 노동자통제 아래 기술적 전환의 관점에서 보상 없이 국유화하는 것. 여기에는 거대 자동차회사들도 포함돼야 하는데, 자동차생산과 민간운송을 대폭 줄이면서 온갖 유형의 대중교통을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모든 공장과 회사에서 독성물질과 오염원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하는 것. 이와 함께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할 수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필요노동시간이 분배돼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과 노동자조직의 지휘 아래 생산과 분배를 합리적이고 통합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총체적 계획의 일부가 된다.

 

 대토지소유주들의 토지 수용과 소농과 원주민을 위한 농업개혁. 제국주의 기업들을 추방하고 그 상품을 몰수하는 것. (수출)농업단지 전체를 노동자계급의 통제 아래 수용하는 것. 농업생산을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다양화하는 재원 확보를 위해 대외무역을 일원화하고 은행을 국유화하는 것. 글리포세이트(제초제) 금지, 모든 농약을 점진적으로 사용 금지하고 그 마케팅을 금지하는 것, 생태농업 등 농약을 대체할 수단에 대한 연구에 투자하는 것.

 

 특별히 멸종위기에 놓인 종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생물 종과 지구의 매우 다양한 생태계를 포함하는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 대기업에 누진세를 부과해 바다, , 호수, , 목초지 등 오염된 지역을 되살리기.

 

 산을 깎아내며 오염을 일으키는 채굴방식을 금지하고, 전통적인 광업을 노동자통제 아래 국유화하는 것.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광물을 회수하는 사업을 개발하고, 전자기기로부터 희소광물을 재활용하는 도시광업시행하기. 제국주의 광산기업을 축출하고 지역사회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그들의 자산을 몰수하는 것. 물과 같은 공공재의 사유화 금지.

 

 종속국들, 반식민지 국가들에서 채무 탕감. 이런 나라들에서 채무는 반환경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시행을 강제하는 수단이다. 주변부 국가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을 몰수하기. 이런 나라들에서 생태위기의 해결은 제국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빈곤과 제국주의적 약탈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기후위기의 산물이기도 한 이주위기와 관련해, 국경을 개방하고 이주민 구금시설을 폐쇄하는 것.

 

 쓰레기를 줄이고 이를 재활용하기 위한 급진적인 정책의 시행. 쓰레기를 선별하고 정화하는 현재 시설은 충분하지 않다. 오염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산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의도적인 진부화정책(신제품 판매를 위해 기존 제품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시키는 것)도 끝내야 한다.

 

 영업비밀(예컨대 독성물질의 배출을 은폐하는)의 공개, 생산에 사용된 원재료와 제품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공적 기록부 작성의 의무화.

 

긴급한 필요를 위한 다른 조치들과 마찬가지로, 이 강령은 자본주의 틀 내에서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난에 책임이 있는 자들과 단호히 맞서는 혁명전략이 필요하다. 오늘날 전 세계 거리에서 기후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젊은이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그들의 강령을 급진화하면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전망을 제기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세계경제를 노동자계급의 손에 넣기 위해 계급투쟁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혁명적 국제주의 전략을 향해

 

여러 과학자들, 환경운동가들, 국제기구들, 심지어는 대형 언론매체들도 오늘 이 순간을 문명위기의 하나로 규정한다. 이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오직 재난에 적응하기를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예견되는 재앙 앞에 자본가 이데올로기는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 자본가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안보정책과 이른바 개인적 해결노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공포가 활용된다. 자본가 이데올로기는 해방의 전망도 부정한다. 우리는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끊임없이 디스토피아를 경험한다. 지구와 모든 생물의 생존을 이성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보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 외계인 침략, 좀비들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울 지경이다.

 

재앙이 예견되는 시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자본의 손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빼앗긴 다수의 손에 맡길 것인가, 이것이 근본 문제다. 이런 이유로 생태위기는 인류와 지구를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전망인 공산주의를 향한 투쟁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공산주의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뜻한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은 헤게모니를 움켜쥔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 환경보호 요구를 단지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자초하고 있는 환경파괴에 대한 진보적 해결책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연대에 기반한 체제를 건설하는 것을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 체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자연적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원을 소진시키지 않고 자연의 순환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재조직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동시에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끝장낼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앙에 직면해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기했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은 새로운 의의를 얻게 됐다. 1914년에 시작된 제국주의 대학살의 전야에, 위대한 폴란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만약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만약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재앙 속으로 침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사회주의는 역사에서 미리 결정된 운명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필연적인사실은 자본주의가 붕괴로 치닫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이 이를 막지 못한다면 그 과정에서 재앙이 수반될 뿐이라는 점이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위기와 전쟁 그리고 혁명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전쟁과 비참함뿐만 아니라 환경재앙과 지구 자체의 파멸 가능성이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위협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가 만든 환경위기에 맞서기 위한 진정한 생태적 계획은 오직 공산주의뿐이다. 가난한 대중과 연합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혁명투쟁의 전위로서 이 강령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주체로 준비돼야 한다.

 

기사 원문 링크

Capitalism Is Destroying the PlanetLet’s Destroy Capitalism!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638건 1 페이지
정치
오연홍 21/04/16 144
현장
한국지엠분회 21/04/16 261
사회
지유 21/04/13 350
현장
이용덕 21/04/12 430
국제
인터뷰/정리 김라라, 배예주, 강진관 21/04/08 240
국제
인터뷰/정리 김라라, 배예주, 강진관 21/04/07 371
정치
이용덕 21/04/02 229
40ac13b230832461112aca5af87bd92f_1617257822_0692.jpg 정치
최영익 21/04/01 166
f17226b3667f02253b4bb3c5947b85e1_1617155066_1713.jpeg 정치
김요한 21/03/31 348
293d08476e5022a8d035d6b1be654ac5_1617093598_5353.JPG 기타
지유 21/03/30 156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