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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저출생: 문제의 진짜 근원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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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574회 2021-01-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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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70~80%가 가정에서 발생한.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의 진짜 근원

 

양모의 폭행과 양부의 방조로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 정인이(사망 당시 생후 16개월) 사건으로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적 조명을 받고 있다. 정인이 사건처럼 아동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신체적 학대 외에도, 폭언 등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 등이 아동학대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아동학대 건수는 갈수록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사례 중 아동학대로 최종 판단된 건수는 201511,715, 201618,700, 201722,367, 201824,604, 201930,045건이다. 이 중 아동이 사망에 이른 건수는 201516, 201636, 201738, 201828, 201942건이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절대 다수는 부모이다. 2019년 기준 가해자의 75.6%가 부모였고, 16.6%는 보육교사 등 대리양육자였다. 4.4%는 친·인척, 3.4%는 기타로 분류됐다. 어떤 아동에게는 가정이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잔혹한 학대의 공간인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아동학대 문제가 공론화되자, 정부와 국회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 현장조사 실효성 강화, 즉각적인 분리조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아동학대 예방책을 내놓았다. 물론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 아동학대 근절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잔혹한 노동현실과 사회적 재생산의 비용과 노력을 오로지 가족에게 전가하는 자본주의적 가족제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명확한 일이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소득, 아이를 돌보기 위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가정과 하루하루 노동을 잇지 않으면 생존의 벼랑으로 떠밀리는 가정 중 어느 곳에서 아동학대가 빈발하겠는가? 계급·계층에 따른 경제적 격차는 육아기에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원(보모 등 돌봄서비스)의 격차로, 아동 양육에 필요한 체계적 지식의 격차로 이어진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아동 돌봄 책임이 가정으로(특히 여성에게) 전가되면서 저소득층 가정에서 아동학대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20208취약가정 아동·청소년의 생활실태조사를 진행한 데 따르면,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어른 없이 혼자 있거나 형제·자매와만 있는 일수가 주중 5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1.6%로 가장 높았다. 학교, 유치원 등은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하고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 운영도 중단되는 상황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은 말 그대로 방치되는 실정이다. 방치된 아이들은 종일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들고 이는 부모가 훈육을 핑계로 아동학대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영하 18도의 혹한에 집 밖에서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만3세 아이의 사정은 자본주의가 아동학대의 진정한 원인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언론 취재에 따르면, 3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A씨는 강북구 한 자활근로기관에서 하루 8시간씩 주5일 근무 중이었다. 양육을 위해 반일제 근무를 원했지만 생계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 하면 일터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고, 아이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20~30분 간격으로 통화를 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총 34차례 통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오후 56분부터는 아이가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고, 이에 내복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시민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3세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하루 8시간 노동을 해야 했던 엄마 A씨를 과연 아동학대(방임) 가해자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현재 A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하다못해 한부모 가정에 대한 적절한 생계지원만 취해졌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가정에 전가하면서도 육아 중인 부모에게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의무는 똑같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러니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몇 가지 제도개선책을 내놓는다 해서 아동학대가 근절될 리 만무하다. 정부와 국회의 아동학대 예방책은 다른 모든 사회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근원인 자본주의는 건드리지 않은 채 의식개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관념론적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동전의 양면 - 심각한 저출생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해있는가에 따라 출산·육아의 제반 조건이 결정된다는 냉혹한 현실은 저출생 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20년 한 해 한국의 신생아 숫자는 275,815명이다. 같은 해 만40세가 되는 1980년생의 숫자는 862,835, 30세가 되는 1990년생의 숫자는 649,738, 20세가 되는 2000년생의 숫자는 634,501명이다. 한 세대 남짓한 기간에 신생아 숫자가 86만명에서 27만명으로 거의 70% 급락했다.

 

물론 우리는 출산이 여성에게 강제되는 사회적 의무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헛소리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들은 여성이 아무 대가 없이 자본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떠벌린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반동적으로 부인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반대로 모든 사람이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아야 함을 명확히 확인한다.

 

진짜 문제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소박한 소망이 있어도 삶의 조건 때문에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현실이다. 빠듯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더구나 벌어진 자산격차로 미래가 암울해진 젊은 층이 출산과 육아를 결심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육아 책임이 전가되는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 육아휴직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출산 육아를 이유로 해고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전히 부지기수다. 심지어 정시에 퇴근했다는 이유만으로 이기적인(야근을 하지 않는) 노동자라고 비난 받으며 퇴직을 강요당한다.

 

국민건강보험이 2006~2015년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저소득층일수록 출생률이 낮았다.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에 속한 산모의 출생아 수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614.4%(57,250)에서 20159.4%(38,170)로 떨어졌다. 반면 소득 상위 20~40%(4분위) 가구의 2006년 출생아 비중은 25.9%(102,878)에서 201633.8%(136,781)로 높아졌다. 소득 상위 20%(5분위) 역시 10년 새 출생아 비중이 200613.3%(52,848)에서 201617.2%(69,544)로 늘어났다.

 

코로나19 이후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후 하루 평균 12세 이하 자녀 돌봄 시간이 맞벌이 여성의 경우 6시간 47, 맞벌이 남성의 경우 3시간 54분이다. 이는 코로나 이전의 5시간 3(맞벌이 여성), 3시간 8(맞벌이 남성)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 재택근무 등으로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는 사람과 여전히 풀타임으로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구분 역시 선명해졌다. 설령 어렵게 아이를 낳는다 해도 이 지독한 경쟁체제에서 아이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 어려운 밑바닥 노동자일수록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라며 십수년간 140여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20203분기 기준으로 합계 출생률은 0.84명까지 떨어졌다. 인구를 현상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생률은 2.1명이다. 2040년에 65세 이상 내국인은 현재의 2배 수준인 1,666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저출생으로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할 노인 인구를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202021.7명에서 204060.1, 2067102.4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46년 뒤에는 생산인구 1명이 노인인구 1명을 부양하는 셈이다.

 

어느 사회든 생산하지 않고서는 분배할 수 없다. 또 누구나 노년에는 돌봄이 필요하며, 이를 AI나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미래가 얼마나 잿빛일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계급투쟁의 역사는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아니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난역사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예 상태에서의 생존조차 보장해 줄 수 없는체제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을 되찾으려면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전혀 양상이 다를 것이다. 우선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결혼, 출산, 육아에 관해 모든 성인의 자기결정권이 전적으로 존중된다. 출산 가능 연령대의 여성 숫자를 지역별 지도로 표시했던(이른바 출산지도’) 터무니없는 야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비혼, 기혼, 동성결혼, 동거, 한부모 육아 등 모든 형태의 삶이 그 자체로 존중되며, 성적 취향과 가족형태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금지된다.

 

한편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전폭적인 사회적 지원이 행해진다. 충분한 출산휴가, 남녀 모두의 자유로운 육아휴직 사용 등은 기본이다.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특히 양육자(부모 등)의 노동시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다. 영유아의 안정적 정서 발달에 필요한 보육시간을 충분히 보장받으면서도,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기회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말이다. 예컨대 양육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4시간을 넘지 않되, 일체의 소득 손실이 없도록 출산 육아 기간 전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행해진다.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라는 호칭이 드러냈던, 경제활동과 육아 중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던 여성 노동자의 삶은 자본주의 잔혹사로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다.

 

양육자가 사회적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의 아동 양육에 대해서는 진정한 공동체적 보육, 교육 시스템이 지원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단지 아동에 대한 돌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양육자가 육아기에 배워야 할 일체의 내용, 예컨대 남녀의 동등한 육아 분담의 필요성, 성평등 감수성, 비폭력 훈육 방식, 아동폭력 및 학대의 예방, 영유아 안전교육 등이 체계적으로 교육될 것이다. 물론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고충 상담과 심리적 지원도 포함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 보육, 교육시설에서 아동들은 각자도생의 잔혹한 경쟁 논리 대신 공동체 속의 협력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깨우치고 학습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예술에 재능이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던(경제적 부담이 되므로) 자본주의 사회 부모의 모습은 오래된 농담으로 남는다. 모든 아동이 각자의 적성에 따른 소질과 재능을 자유롭게 계발하며, 이를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자연스러운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발달장애나 지체장애를 가진 아동이라도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런 사회가 과연 실현 가능한가?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발달된 생산력은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 양육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모두를 실현하기에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이 사회적 생산력을 자본의 이윤 획득과 축적을 위해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체 모두의 사회적 필요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회를 단 하루라도 빨리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학대 아래 비명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한 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 같은 피해 아동의 절규에 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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