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신문 | 경제

번역 | ‘녹색 자본주의’의 허상: 자본주의가 낳은 환경 문제를 또 다른 돈벌이 수단으로 귀결시킨다

페이지 정보

옮긴이 김요한 조회 214회 21-01-07 22:29

첨부파일

본문

 

9e07ecff5ecac508ff5d1bef78a93a8a_1610025995_1817.jpeg
녹색자본주의’, ‘녹색성장’, ‘그린뉴딜어떻게 포장해도 결국 자본가들에게 새로운 먹잇감을 던져주는 정책

 

 

환경 문제가 중심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금 세계 모든 인류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20199<르푸앙>에 실린 기사는 해리스인터랙티브의 조사에 기초한 것인데, 다음의 사실을 드러냈다. 조사 대상자의 72%환경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아졌고 이와 관련해 자신의 행동을 바꿨다고 응답했으며,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가장 앞장 서 싸우는 18~24세 연령대의 경우 해당 수치가 89%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프랑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환경 문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최고의 관심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를위한금요일’(Fridays for Future) 등의 단체가 조직한 국제기후파업이 증명하듯이 말이다.

 

물론 젊은이들 대다수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을 포함하는 이러한 대중적 자각은 인간 활동이 직접 초래한 환경 변화가 낳은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에 기인한다.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2014년 기후변화 보고서는 몇 가지 심란한 통계 자료를 제공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온실가스의 80%가 소수의 부문에서 배출된다. 35%는 에너지 부문에서, 24%는 농업·임업·기타 토지 이용 부문에서, 21%는 제조업을 포함한 산업 부문에서 배출된다.

 

사실 환경 문제가 단지 21세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가 설명했듯이, “1830~1870년 기간에 흙의 양분을 잃어 토지의 자연적 비옥함이 유실되는 일은, 유럽과 북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요한 생태학적 걱정거리였다(그것은 삼림의 손실, 도시의 오염 증가, 과잉인구에 대한 맬서스학파의 망상 등에 대한 걱정과 비견할 만하다).” 마르크스가 환경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통념과는 달리, 그가 환경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본 이유는 이와 같은 당대의 객관적 현실 때문이었다.

 

대규모 토지소유는 농업인구를 점점 감소시켜 최소한도로 축소시키고 점점 증대하는 공업인구를 대도시에 밀집시킨다. 이렇게 대규모 토지소유는 생명의 자연법칙이 명령하는 사회적 물질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기게 해, 지력이 낭비되고, 이 낭비는 무역에 의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타국에서도 생긴다. 대공업과 대규모 기계화된 농업은 공동으로 작용한다. 원래 이 둘을 구별한 것이, 전자는 주로 노동력 따라서 인간의 자연발생적인 힘을 낭비하고 파멸시키고, 후자는 주로 토지의 자연발생적인 힘을 낭비하고 파멸시키는 점에 있었다면, 그 뒤의 발전 과정에서는 그 둘이 서로 결합해버렸다. 그 결과 농촌에서도 공업제도는 농촌 노동자의 활력을 빼앗아 버리며, 공업과 상업은 농업에 대해 토지를 피폐시키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마르크스, <자본론> 348)

 

환경 문제가 21세기에 보편적이고, 세상을 휩쓸며, 교차하는 도전을 제기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는 점은 여전히 사실이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는 것부터 해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대륙의 형성까지, 또 가장 큰 삼림을 황폐하게 하는 거대한 화재로부터 극단적인 기상이변의 증가까지, 그리고 모든 사람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대기질과 수질의 저하로부터 매일 일어나는 동식물의 멸종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우리 자신의 자연적인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걸어온 길은 모든 이에게 긴박한 문제를 제기했다.

 

인류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제기할 뿐이다. 오늘날 환경 문제가 전 지구적인 차원의 거대한 걱정거리라면, 이는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를 가능케 할 물질적 기반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환경 재앙에 직면해 생겨난 정당하며 뚜렷한 불안은, 지구 위 생명체의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비관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오늘날 환경 문제를 정말 중요한 것으로 만든다. “생명체가 죽어가고 있다. 대재앙을 피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녹색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내놓은 부실한 대답

 

그렇지만 어떤 문제가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건 동시에 이데올로기 전투를 거쳐야 한다는 걸 뜻한다. 정치생태학이 수십년간 좌파 또는 급진좌파의 전유물이었다 하더라도, 지배계급이 환경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일찍이 1972년에 앙드레 고르는 이렇게 썼다.

 

회계장부에 생태학적 비용을 반영하는 것은 석유파동과 똑같은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위기에 굴복하기는커녕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좋은 위치에 있는 금융 그룹들은 경쟁 그룹이 어려울 때 그들을 낮은 가격으로 사들이고 경제 전반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중앙 정부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할 것이다. 테크노크라트는 오염 제거와 생산 사이에서 최적화된기준을 계산해낼 것이고, 규제를 제정하며, ‘틀에 짜인 삶의 영역과 억압장치의 활동 범위를 넓힐 것이다.”(앙드레 고르, “그들의 생태학과 우리의 생태학”)

 

다른 누구보다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처럼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최근 권력을 잡긴 했지만, 앙드레 고르의 가설이 대체로 들어맞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증거는, 모든 자본가정당들이 (가장 반동적인 정당부터 가장 진보적인정당까지) 환경 문제를 그들의 선거 정강 최상단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에 이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부르주아적 이론의 주된 흐름이 출현했다. 바로 녹색 자본주의.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에 실린 최근 칼럼에서, 세 명의 기고자(평론가이자 경제학자인 피에르 벤타타, 경제학자이자 아스트레 의료기술회사 설립자인 니콜라 부주, 철학자인 피에르앙리 타부아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녹색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를 완벽하게 종합해주었다. 직접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한 이유는 그들의 글이 천박한 거짓말과 단순화까지 동원하며 순진한 공론가들, 위장한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을 향한 격렬한 비판에 집중하면서도, 그들이 반자본주의자들로 간주하는 대중의 (환경 문제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비껴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사는 순수한 이데올로기를 담은 한 단락으로 끝을 맺는다.

 

지구온난화와 빈곤에 맞서는 전투라는 이중의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경제체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탈탄소 전기, 전기 또는 수소에너지를 이용한 운송, 재활용 경제에 전례 없는 규모의 혁신과 투자를 해야 한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 새로운 경제는 부가가치, 임금, 일자리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높은 탄소배출권 가격과 국제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유럽연합은 이런 도전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제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생태학에는 지능, 수단, 명확성이 필요하다. 녹색혁명과 생태주의 독재가 일어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문단은 녹색 자본주의이면에 숨겨진 근본적인 논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들이 중시하는 핵심은 환경 문제가 제기한 객관적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재의 경제체제를 보존하는 것이다. 한줌 착취자들이 생산수단과 그에 수반하는 이윤을 훔쳐가는 경제체제 말이다. 여기서는 문제가 뒤집혀 있다. 그들은 환경문제를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좁은 틀에 쑤셔 넣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위스 사회학자 라즈믹 크쉐양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은 완전히 올바르다.

 

자본주의가 3세기에 걸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재생산이 필요 없는 무상(無償)의 자연으로부터 이득을 누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무상의 자연을 투입과 배출 모두에서 이용해왔다. 자연은 자본주의를 위한 무상의 투입자원이 됐는데, 이 체제가 줄곧 날것 그대로의자연자원을 채취해 상품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또 자연은 자본주의를 위한 배출 공간, 즉 자본축적의 폐기물을 버리는 지구적 쓰레기통이기도 했다. 이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부정적 외부효과라고 수줍게 부른다. 그러나 환경위기와 함께 자연은 더 이상 자본주의를 위한 무상의 투입과 배출이라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자연 사이의 변증법은 위기로 들어서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역사적 모순에 추가적인 모순이 덧붙여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자원을 직접 수탈하고 상품으로 전환해 얻어내는 이윤이 자본주의적으로 축적되는 것을 갉아먹을 수 있는 외부비용을 말한다. 그래서 녹색 자본주의는 환경 문제를 상품화하면서 이 객관적인 제약을 추가이윤의 잠재적 원천으로 전환시킬 길을 찾는다. 이것은 새로운 잠재적 녹색시장을 개척하고 소위 친환경생산품을 장려함으로써 상당한 규모로 달성될 수 있다. 그 논리는 생산과정을 재편해야만 한다는 환경 문제의 필수적인 고려사항과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20199월에 발표한 자본주의가 이 행성을 박살내고 있다 자본주의를 박살내자에서 제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자연과 그것의 발전과정에 완전히 모순된다. 여기에서 자본을 위한 결정적인 요인은 단지 양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나운 경쟁의 압력이 개별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할 길을 지속적으로 찾게 한다. 기계는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상품을 무더기로 시장에 던져 넣는다. 이것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연자원의 양을 증대시킨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은, 자연의 생산과 재생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자원을 무자비하게 집어삼킨다.”

 

녹색 마르크스주의, 녹색 레닌주의를 향하여

 

<레제코>에 실린 반동적인 선언문은 한줌 자본가들이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사회를 열렬히 수호한다. 확산되는 환경재앙에 책임을 져야 할 체제(자본주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선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당신들의 현존 사회에서 이미 인구의 10분의 9에게서는 사적소유가 폐기돼 있다. 소수를 위한 사적소유의 존재는 단지 인구의 10분의 9에게 사적소유가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당신들은, 사회의 절대 다수가 소유가 없을 것을 필수적인 존재 조건으로 하는 부의 형태를 없애려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소유를 없애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바로 그렇다. 그것이 우리가 하려는 바다.”(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선언>)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윤의 전례없는 축적을 위한 생산력의 발전은 또한 인류의 필수적 요구를 위한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 요구란 모든 사람이 음식, , 건강, 그리고 문화적 지적 발전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명백한 쇠퇴는 인류의 대다수가 이러한 풍요로움에 이를 길을 빼앗아가면서도, 동시에 자연 환경을 파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환경 문제는 문명에 대한 도전으로 제기된다.

 

<마르크스주의 입문>을 쓴 어네스트 만델은 거기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사회는 필요에 따른 생산이 이윤을 위한 생산을 대체할 정도로 발전된 경제를 요구한다. 사회주의적 인류는 더 이상 시장에서 화폐를 얻기 위해 교환되는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인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그들 모두에게 분배되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풍요로운 체제에 도달하기 위한 사회적 부는, 오직 경제계획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생산수단의 낭비적인 유휴(遊休)와 실업, 그리고 인류의 이익과는 반대되는 목적을 위한 이용 등을 피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환경 문제의 해결책은 모든 노동자가 사회의 부를 재편하고 대중의 실제 수요에 따라 생산을 조절하는 조치를 반드시 포함한다. 이런 수요는 환경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생산의 수요를 포괄한다. 그래서 전체 문제는,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제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의 성명에서 선언한 대로 다음과 같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자본가들이 장악할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빼앗긴 다수가 장악할 것인지 여부다. 이 때문에 생태위기에서는 인류와 지구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전망인 공산주의를 향한 투쟁이 필수적이다. 공산주의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말한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은 헤게모니를 쥔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환경에 대한 요구를 단지 그들의 생활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만 두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생태계 파괴에 대한 진보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그럴 수 있다.”

 

이것은 연대에 기초한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이 체제는 인류와 자연 사이의 자연스런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고, 자원의 소진 없이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재조직하는 체제다. 이것은 빈곤과 사회 불평등을 동시에 끝장낼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가 혁명적인 환경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 정책은 이런 파괴적인 생산체제의 심장부에 있는 노동자계급이 현재 일어나는 환경 재앙에 치명타를 받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에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수행돼야 하는 긴급한 조치들과 새로운 사회 건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강령이 필수적이다. 그 새로운 사회에서 생산은 사람들의 필수적 요구와 자연 환경 보호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환경 문제는 전 지구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그런 강령은 반드시 국제주의적인 강령이어야 한다.

 

첫 번째로 가장 긴급한 조치는, 에너지 부문, 중공업, 제조업, 운송 부문의 생산조직을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본가들에게서 몰수해 노동자들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이 조치는 이들 부문의 최고위급에서 결정된 최악의 생태파괴정책을 은폐하는 영업비밀을 폐지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 대부분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만든 경제적 위기와 생태적 위기 모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시간을 분배함으로써만 이런 몰수와 인류의 필요를 위한 경제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런 조치는 독성물질과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하는 모든 작업장과 사업 부문에서 안전한 노동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농업에 관해서도 보자. 이 부문이 온실가스 배출에 24%의 책임이 있다는 것과 별개로, 자본주의적 농업 시스템은 독성 화학비료의 대량 사용과 삼림 파괴를 통한 토양의 고갈에도 책임이 있다. 삼림 파괴는 최근 아프리카와 아마존에서 목격하게 되는 거대한 화재의 극적인 결말이다. 또한 자본주의적 농업은 엄청난 낭비의 흔적을 남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식량 생산의 25%가 소비되지 않고 버려진다. 2013년 이 기구는 식량 폐기의 54%가 생산, 수확, 처리 단계에서, 나머지 46%는 가공, 유통, 최종적인 소비단계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적 기업의 추방과 자산 몰수, 식량 생산과 수출산업단지 전체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가 필수적인 것처럼, 소농과 원주민의 농업개혁 수행도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쌓여가는 데 대응하고 효율적인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산업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상류와 하류의 오염을 막고, 예정된 노후화를 끝내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근본 변화를 수행하는 데 드는 정부예산을 늘리기 위한 조치들, 모든 이주민에게 국경을 개방하는 것, 그리고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국가의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최근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본가들의 전 지구적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렇다, 재앙은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환경투쟁이 반자본주의적이고 혁명적인 것이 돼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녹색 자본주의의 부르주아 지지자들이 뭐라고 말하건 간에 말이다. 이를 위해서, 안드레아스 말므가 <연속혁명>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듯이, “생태주의적인 레닌주의를 실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줄리앙 발디, 2020223일 프랑스 <연속혁명>에 처음 발표되고 322<레프트보이스>에 영어로 게재됨.

 

원문

https://www.leftvoice.org/against-green-capitalism-the-environmental-struggle-must-be-anti-capitalist-and-revolutionary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구독신청

온라인신문 목록

Total 598건 1 페이지
21/01/13  [배예주] 263
21/01/13  [홍희자] 170
21/01/11  [최영익] 197
21/01/07  [옮긴이 김요한] 215
21/01/06  [인터뷰/정리 양동민] 313
21/01/06  [옮긴이 지오] 118
21/01/05  [김요한] 141
21/01/04  [배예주] 1,082
21/01/04  [이용덕] 137
21/01/02  [오연홍] 342
게시물 검색


노해투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