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사회

얼마나 더 잔인해야 하나 -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속헹 씨의 안타까운 죽음

페이지 정보

이용덕 조회 4,820회 2021-01-01 12:42

첨부파일

본문

 

지난달 30일 포천에서 진행된 추모 및 진상규명, 근본대책 촉구 기자회견

 

 

4년 넘게 죽도록 일하고 이제 3개월 후에는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닐하우스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었다. 경찰의 1차 부검 소견은 간경화이지만,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 속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비위생적인 환경, 고된 노동,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열악한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동료들은 속헹이 사망하기 전날인 토요일부터 계속 전기 스위치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다른 전기 장비를 모두 끄고 난방만 켜려 해도 스위치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시사철 무더운 캄보디아에서 온 그녀가 냉방도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그 강추위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정부의 완전한 방치

 

농장주 개인의 탓만이 아니다. 이주 노동자를 비참한 환경 속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쥐어짜는 억압과 착취의 시스템이 그녀를 죽였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 기숙사 시설표를 작성해 근로계약 시 노동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하는 기숙사 시설표는 주택, 고시원, 오피스텔, 숙박시설 외에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사업장 건물등도 주거시설로 구분한다. 또한 산간이나 농어촌 비주거 지역에서 이런 걸 놓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고용주가 농지에 컨테이너를 놓고 기숙사라 우겨도 고용노동부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 우려, 습기가 많거나 침수 위험이 있는 곳 등에는 기숙사를 설치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 숙소는 상시 침수 가능성이 있는 농지에 있어서 근로기준법 위반이고 속헹씨가 살았던 비닐하우스는 위반인데, 노동부나 지자체는 이를 방치했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에게 숙소의 안전은 아주 기본적인 요소인데, 비닐하우스는 여성 노동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성폭력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이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8월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 산양저수지가 붕괴되면서 1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재민대피소 수용 인원의 80% 이상이 이주 노동자였다. 인근 농장에 취업 중인 이주 노동자 숙소가 논밭에 세워놓은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730일 고용노동부는 정책브리핑에서 이주 노동자 사업장 이동제한 피해 관련 언론보도 등을 해명하며 폭행, 임금체불, 비닐하우스 숙소 제공, 근로조건 위반 등 외국인 근로자의 귀책이 없는 경우는 사업주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고, 사업장 변경 횟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폭우 이재민 80%가 이주 노동자, 이유가 기막히다”, 오마이뉴스).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숙소가 근로기준법이나 농지법 등의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에는 사업주가 이런 기숙사를 쓰게 해 놓고도 통상임금의 최대 13%까지 급여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살면서 기숙사비로 20~30만 원을 떼인다.

 

바닥 향한 경주 멈추기 위해

 

코로나 사태로 이주 노동자의 생존권은 더 위협받고 있다. 일이 없다는 이유로 월급을 못 받아도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묶여 빠져 나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이 코로나 이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기존 농어촌 이주 노동자들은 훨씬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 방역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알 수 없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으며, 열악한 주거 공간에 사실상 감금당하는 노동자도 많다.

 

언제까지 이 야만에 야만을 더하고 있는 잔인한 상황을 그대로 두어야 하나? 언제까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야 하나?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는 기숙사 산재사망에 대한 철저한 조사,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농막,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임시건축물의 기숙사 사용을 전면 금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망사건이 발생한 후 뒤늦게야 농축산업 이주 노동자 주거시설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비닐하우스 내 주거시설에 대한 대책은 없다. 속헹 씨의 동료들은 여전히 그 비닐하우스에 산다.

 

무엇보다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폐기해야 한다. ‘숙식비 징수지침도 폐지해야 한다.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 사업주, 농장주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모든 단속추방을 금지하고 모든 이주 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이주 노동자들만의 일이 될 순 없다. 이주 노동자에게 강요되는 최악의 임금, 주거, 노동조건은 정주 노동자 또한 바닥을 향한 경주로 내몬다. 수없이 많은 이주 노동자가 정주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바로 그 똑같은 자본가와 정부의 손에 죽어가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남성 노동자가,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이주 노동자를 외면하는 정주 노동자가 자신의 해방을 쟁취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기억하자.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