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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유쾌한 투쟁의 서사,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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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 조회 325회 2020-12-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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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승진차별을 겪는 여성 노동자들의 유쾌한 투쟁 이야기

 

 

처음 이 영화에 대해서 들었을 때, 고졸 여성 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승진 기회가 박탈된 고졸 여성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라고 최근에 간담회를 했던 KEC지회가 생각나기도 했다. KEC 공장에서 여성은 J등급까지만 승급할 수 있었고, S등급으로는 승급할 수 없었다. S등급과 J등급은 임금격차가 심하게 났다. 그래서 한 KEC 동지는 “KEC는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기대어 큰 회사라고 말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1995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되는 승진차별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KEC뿐만이 아니다. 감독이 영화 속 주인공 자영의 모델이라고 밝힌 파리바게뜨 임종린 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파리바게뜨 내 여성 제빵 기사들은 노골적인 승진차별을 겪어야 했다.

 

이 영화는 승진이 가로막힌 고졸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페놀을 유출한 무책임한 재벌, 그리고 단기수익을 위해 기업을 삼키려는 외국 금융자본 양쪽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영화 제목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극 초반에 고졸 여성 노동자들에게 유리천장을 깨고 승진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로 여겨진다. (토익 600점이 넘으면 대리로 승진하게 해주겠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사내 여성 노동자들이 이 영어토익반에 승진에 대한 희망을 품고 모인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며, ‘영어토익반에 모인 노동자들이 희망으로 생각했던 토익 600대신에, 집단적 결의와 행동의 공간이 된 영어토익반자체가 희망이 됐다. 영어토익반을 계기로 뭉친 주인공 일행은 페놀 유출 사건을 추적하며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회사를 지키기 위해위험을 무릅쓰고 회사를 상대로 싸움에 나선다.

 

자본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세 노동자는 무참히 패배를 당한다. 그러나 완전히 패배한 듯한 주인공 일행은 다시 반격의 기회를 잡는데, 이는 여지껏 그들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고졸 여성 노동자들의 합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록 조금은 인위적이고 영화적일지라도,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적 결의와 의지를 통해 힘을 만들어가는 장면들은 내게 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영화 속에선 노동자들이 영어토익반을 통해 뭉치고 회사를 상대로 싸울 작전을 짜는데, 현실에서도 노동자들은 때때로 단결해 회사에 맞서 투쟁한다. 보통 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이름이 다를 뿐 영어토익반은 이들의 노동조합이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자영은 나는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내 일이,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이 사회를 만들고 움직이는 노동자의 윤리와 책임의식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이 대사에 담긴 이들의 책임의식은 노동자로 하여금 예상되는 불이익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폐수 유출이라는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에 눈감지 않고, 맞서 싸우게 만드는 대들보와 같다.

 

레닌은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착취 받고 억압받고 차별받는 모든 인민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넘어, 모든 지배받는 이들을 위해서 자본에 맞서 투쟁할 때 노동자의 투쟁은 진정 커다란 힘을 얻고, 위대한 것이 된다. 폐수 유출 때문에 질병에 걸리는 마을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온갖 위험과 불이익을 감내하고 투쟁에 나서는 주인공 자영의 모습에서 나는 호민관으로서의 노동자의 모습을 생각했다.

 

영화에서 외국 금융자본으로부터 회사를 지켜내는 과정은 소액주주를 설득해 주주의 권리를 통해 금융자본을 물리치는 것으로, 노동자가 싸우는 방식은 아니다. 허나 그런 아쉬운 점보다도, 나에겐 여성 노동자의 결의와 단결의 서사가 주는 감동과 카타르시스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금융자본으로부터 회사를 지켜낸 주인공들은 승진도 하고, 원하는 비전을 펼치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설령 판타지일지언정 유쾌한 승리의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계급 간 대립이 끊어질 수 없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확실히 판타지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서 이 자본주의란 현실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유쾌한 투쟁의 서사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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