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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KEC지회 동지들과의 간담회 후기 | “투쟁하는 노동자가 민주노조운동 정신과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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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진 문봄 장태린 조회 306회 2020-11-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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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일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KEC 동지들과의 간담회

 

 

 

차별 없는 노동, 단결하는 노동자, 노동해방에서 만나고 싶다

황미진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지회장 


 

시키는 대로 무관심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열심히 일한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노후와 쉴 곳은 걱정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탐하는 것도 아니니.” KEC 정규직인 나는 이 정도의 삶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사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열심히 했다. 승급을 위해 고과 A를 받아야 하는데 희생할 C를 받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입사가 늦은 남자 사원이 A를 받아 승급할 때 나는 C를 받았다. 업무평가는 생산량에 따라 한다. 동료보다 한 개라도 많이 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회식에서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렀다. 노동조합에 관심 두지 말라고 과장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무관심했다. 회사 말 잘 듣는 나만은 계속 고용해 줄 거라 믿었다.

 

노동자끼리 싸운 과거

 

2010년 노동조합 파업에 참가했다. 회사가 파업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말 잘 듣던 나는, 회사 말을 따르지 않았다. 회사가 서른 살 이상 구조조정 대상자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30살이었던 나는 희망퇴직하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계속 일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파업에 참가했다.

 

투쟁하는 나에게 저들은 회사 망하게 하는 일자리만 탐하는 귀족노조라고 욕했다. ‘이런 회사가 아닌데.’ 얼마나 어려우면 이럴까? 회사가 좋아진다면 몇 달 임금을 못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다닐 수 있기를 바랬다.

 

회사에게 나는 합의 대상이 아니었다. 착취의 도구다. 못 쓰면 버리고 반항하면 밟아버리는 존재다. 투쟁으로 알았다. 임금을 적게 주려고 입사 때부터 차별했는데 노동자끼리 싸웠다는 것, 노동자가 단결하면 강하니까 복수노조를 만들어 분열시킨 것을 알았다.

 

차별과 분열에 당당히 맞서는 조합원과 나의 변화

 

단결해야 자본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이길 방법을 고민하면서 KEC에 뿌리 깊은 여성차별을 알았다. 노동조합이 남성 위주의 활동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여성 지회장의 지도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집회와 회의에 가면 여성 지회장이시네요라는 반응에 익숙해져야 했다.

 

KEC는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성장한 회사다. 임금체계는 차별을 담아 설계돼 있다. 여성의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서다. 차별 없이 임금을 받기 위해 근속과 연령만으로 호봉이 오르는 단일호봉제를 만들었다. 조합원에게 단일호봉제를 설명하면서 응원도, 부정적인 말도 있었다.

 

고과를 받아 승급하면 임금이 올랐다. 고과를 받기 위해 서로 싸우고, 승급하면 회사의 선택을 받았다고 좋아했던 우리였다. ‘똑같이 올라간다고? 일 잘하는 사람의 보상은? 그래도 남자가 더 받아야지? 가장이잖아. 남성과 여성은 다른 거야. 똑같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해.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 이런 말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꼭 바꾸자는 생각이 오히려 커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즐거웠다. 소수노조라는 한계가 있었다. 차별문제는 복수노조의 벽에 구멍을 내주었다. 방법을 찾고 대응하면서 회사도 반응했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조금이지만 높아졌다. 다른 사업장의 차별을 보게 됐다. 잘 싸우고 있다면 기뻤다. KEC 문제를 더 많이 알리고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회의 투쟁을 보고 함께 싸우고 있다고 힘을 얻기를 바랬다.

 

노동조합으로 뭉쳐 부당함을 말하고 단일호봉제를 만들고 3.8 여성의 날 행사를 하면서 변화를 느낀다. 차별과 분열에 당당히 맞서는 조합원과 나의 변화가 자랑스럽다.

 

희망의 눈빛

 

학생들이 여성차별과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됐다. 서로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학생들이 KEC지회를 먼저 알아보고 왔다는 것에 감동했다. 현실의 문제, 민주노조운동의 목적,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노동문제나 여성차별문제에 관심을 갖고 희망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KEC지회의 투쟁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과 노동해방에 함께 서 있는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우리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남성 노동자, 여성 노동자 차별에 고통받는 노동자다. 한국의 가부장제에 남성 여성 모두가 피해자다. 임금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자본은 무섭다. 너무 거대해서 싸움보다 포기하는 것 같다. 분열과 차별은 자본의 악랄한 수단일 뿐, ‘단결하는 노동자는 강하다’.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민주노조를 지키며 KEC지회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기뻐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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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여성 노동자가 이긴다!

문봄  성공회대 노동자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가시

 

 

1031,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구미지부 KEC지회 노동자들과 만나는 간담회가 있었다. 총 다섯 명의 동지께서 올라와 주셨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고, 특히 여성 동지들을 만날 기회는 더 적다. 노동문제에 관심 있고 페미니즘에도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여성 동지들이 어떤 차별을 받고 어떻게 싸워나가고 있는지 궁금해 간담회에 참가했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나요?

 

동지들이 받았던 성차별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회사는 노동자의 등급을 6등급(J1, J2, J3, S4, S5, 연봉대상자)으로 나눈다. 등급별로 다른 임금 테이블을 적용하고 있고, 등급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회사는 같은 조건임에도 입사할 때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등급을 적용했다. 같은 공고 출신이어도 여성은 J1, 남성은 J2로 입사했다. 남성은 모두 S등급으로 올라가지만 여성 노동자는 J3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성차별에 대항해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고 남녀차별을 인정받았다. 인정 후 회사는 여성 노동자 둘을 S등급으로 승격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남녀 임금 차별이 없다고, 유리 천장 같은 거 옛날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 개인이 더 노력해야 하는 문제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차별받는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KEC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여성을 주체적인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한 여성 노동자가 왜 자신은 S등급으로 올라가지 못하냐고 항의했더니 S등급부터는 기술력이 필요한 일이라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승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짐을 옮기는 일 등 단순노동을 하던 남성 노동자도 S등급으로 올라갔다. 회사 측에서는 그는 가장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또 여성 노동자들을 회의나 워크숍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남성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가장으로 인식되고 여성 노동자는 원래 집에서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잠깐 나와서 가장을 도와주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여성도 가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며, 여성을 노동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구시대적인, 낡은 마인드가 아직 남아 여성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여성 노동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기

 

나는 전부터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성 의제와 노동 의제는 매우 맞닿아 있고 이는 인간을 착취하며 이윤을 창출해 내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차별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선 자신이 여성이면서 노동자라는 사실을 같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KEC 동지들은 어떻게 자신을 여성 노동자로 인식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간담회에 참가한 동지들에겐 투쟁이 답이었다. 직접 싸우고 토론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됐고, 주체성을 찾았다. 여성으로서 공통으로 겪는 차별을 투쟁의 의제로 삼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부당함에 대해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실현할 수 있었다.

 

동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주체적인 노동 투쟁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도 함께 강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여성운동이요, 노동운동이었다. 둘 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인 것은 똑같다.

 

여전히 고민되는 지점이 많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는 여성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을지 등등의 질문들을 생각하면 갈 길이 멀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노동자를 만나서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과 상대하기 위해선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언젠가 낙태죄 문제로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비정규직 문제로 여성들이 대규모 집회를 여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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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장태린  숙명여대 노학연대 만년설 실무팀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노동 현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지 않느냐고. 같은 직급인데도 임금을 적게 받는다거나, 노동 현장에서 배제된다거나 하는 일은 이제는 없다고. 오히려 여자들이 직장 다니기 더 편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인사고과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같은 경력을 지니고 입사해도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회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구미의 반도체 공장인 KEC 동지들의 이야기다.

 

KEC에는 등급제가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J1, J2, J3, S4, S5, 연봉대상자 이렇게 여섯 개의 등급으로 나눈다. 처음에는 근속 연수나 연봉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호봉제와 유사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KEC는 같은 생산직 신규 입사자이더라도, 남성에게는 J2 등급을, 여성에게는 J1 등급을 적용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아무리 오래 일해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J3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당사자들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가장이 아니라서. ‘기획력 있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냥, 여성이어서.


마치 신분제와도 같은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서로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냈다. 내가 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인가? 내가 하는 일이 기획력이 요구되지 않는 가치 없는 업무여서인가? 아니면, 내 옆의 동료가 나를 밟고 올라섰기 때문인가?

 

KEC의 여성 노동자들은, 사내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에 맞서고자 2010년부터 강력한 투쟁을 이어 왔다. 정리해고에 맞서 공장을 점거하고, 서명운동을 조직하고, 파업을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자본의 노동자 착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은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청년, 성 소수자,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차별로도 확산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겪는 차별은 모두 이어져 있는 것이다.

 

즉 여성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서는 전체 노동자의 해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KEC지회는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투쟁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임금 체계의 문제점을 알리고, 자신의 임금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임금계산식을 만들어 배포하고,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차별을 데이터로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남성 위주로 운영되던 노동조합을 변화시키고자 간부로 나서고,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회의에서 여성들을 배제하는 상사에게 맞서고, 이유 없이 낮은 고과를 부여하는 담당자에게도 맞섰다. 여전히 변화는 느리지만, 회사도 노동자들도 많이 변화했다.

 

노동자는 강자잖아요. 우리가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면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노동자가 있으니까 회사도 있는 거고, 이 사회도 있는 거고, 나라도 돌아가는 거니까.”

 

KEC 동지들과의 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마디다. 그렇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다. 지금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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