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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인종차별, 자본주의,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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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탁영 조회 228회 2020-11-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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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자본가체제를 유지하는 주요 무기의 하나

 

 

조지 플로이드가 잔인하게 살해된 뒤 미국에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이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투쟁과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는 투쟁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라는 전략적 과제를 다시 제기한다. 이 글은 교차성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의 대척점에 대해 살펴본다.(*교차성은 성별, 젠더, 인종, 민족, 계급 따위의 정체성이 결합됐을 때 원래 없던 차별이나 특권이 생기는 경우를 말하는 개념이다. 흑인 여성주의에서 고안된 용어이지만, 인종 외에도 다양한 사안에서 쓰이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잔혹한 죽음을 규탄하며 미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반대시위 모습이 세계를 움직였다. 인종차별적인 프랑스 경찰에게 살해당한 청년 아다마 트라오레를 위한 정의와 진실을 요구하는 수천 명이 프랑스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거기에서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 가운데 스페인 노점상들이 시위를 벌였고, 사하라사막 남쪽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농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으며, 독일에서 딸기를 수확하는 루마니아 이주 노동자들도 파업을 벌였다. 이런 흐름의 끝에 최전선에서 일하는 수백만 노동자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증이 또다시 전면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경찰의 인종차별에 맞선 항의, 특히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주민들을 강타한 경제위기로 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계급투쟁이 폭발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인종차별과 자본주의의 관계, 그리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모든 민중의 해방을 위한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을 명확하게 정립할 방법에 관한 논의가 재개됐다.

 

교차성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에는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떤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그건 단지 마르크스주의의 희화화인가? 마르크스주의가 젠더, 인종, 계급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제공하는 체계는 무엇인가?

 

마르크스, 노예제, 그리고 자본주의 초기의 식민지 약탈

 

교차성 이론을 고수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른바 경제주의를 문제 삼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마치 마르크스주의가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이나 젠더 억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기형적으로 희화화하는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뿐 아니라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의 사상에서도 자본주의 초기부터 인종차별이 자본주의 지배구조의 하나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과 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광산에 생매장, 동인도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 생산 시대의 새벽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썼다.

 

자본주의 발전은 여러 역사적 시기마다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거나 민족 전체를 정복하면서 이뤄졌다.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화한 과정처럼 총을 들이대고 사슬에 묶어 강제 이주시킨 사례들이 있었고, 빈곤, 굶주림,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규모 이주가 있었다.

 

몇몇 저자들은 인종개념이 자본주의적 근대의 창조물이라고 지적한다. 노예제도가 확산되면서 흰 피부는 언제나 우월하고 검은 피부는 가장 열등하다는 위계질서에 따라 신체적 특징, 성격, 지적 능력을 분류하는 상이한 인종 유형이 견고하게 세워졌다. 결국 노예제도는 자본주의의 기원에서 핵심 요소다.

 

케빈 앤더슨이 지적했듯이, 청년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주의가 임금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노동의 존재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이미 이론화했다. 그는 (번역을 약간 고쳐) 마르크스를 인용한다. “직접적인 노예제도는 기계, 신용 등이 그렇듯이 현대 산업체계가 돌아가는 축이다. 노예제 없이는 면화도 없고, 면화가 없다면 현대 산업도 없을 것이다.” 앤더슨은 고도로 현대화된 자본주의 감각으로 조직된 노예노동이 고대 노예제도와 눈에 띄는 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으로써 인종개념이 현대적 의미를 획득했다. 어떤 사람들을 매매하고, 채찍질하고, 강간하고, 아이들을 빼앗고, 죽을 때까지 착취할 수 있다고 보증하는 법률이 성문화됐다. 노예노동의 인종화는 모욕적인 젠더 억압과 결합됐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노예 여성과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노예가 된다고 법에 명시됐다. 이는 조직적인 강간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농장을 먹여 살리는 출산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인도, 자바 섬에 이르기까지 약탈과 가장 잔인한 폭력이 식민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행해졌다. 자바 섬에서는 근대적인네덜란드가 인신매매를 위해 사람들을 포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력에 대한 잔인한 인종주의적 착취는 신세계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일찍부터 아일랜드인, 슬라브인, 로마인, 유대인 등에 대해 인종적 차별이 있었다. 동시에 자본가들은 영국에서 아동 노예제도를 통해서(빈곤층 아동을 강제로 데려가 일을 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또는 임금 노동자, 남성, 여성, 아동이 광산과 공장에서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위장한 노예제도를 통해서,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등장한다고 썼다.

 

좀 더 일반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일종의 부수적현상이나 과거의 유산으로 보는 대신 자본주의 축적의 중심으로 파악하기 위한 핵심 개념은, 자본가들이 산업예비군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인종차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예비군이란 과잉 노동인구이며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존재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예비군은 우선 생산과정에서 해고되거나 여러 이유로 거기서 배제된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보충적인 인적 자원(산업예비군)이 있음으로써 자본은 번성기에는 엄청난 수준으로 노동력을 끌어 모으고 위기의 순간에는 노동력의 일부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자본가들에게 또 다른 유익한 효과들이 있는데, 산업예비군이 취업 노동자계급에게 경쟁이라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즉 취업 노동자들은 과로를 감내해야 하고, 실업자 대열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자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산업예비군은 위기의 시기에 생산과정에서 축출된 노동자들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는 잠재적산업군대, 즉 일할 준비가 된 모든 사람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생활조건이 극도로 열악하고 언제든 도시로 이주할 준비가 돼 있는 영국 소농민들의 상황을 분석했다. 그들은 도시로 넘어와 산업예비군의 일부가 되고 그 경계를 넓힌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즉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의 가난한 노동자계급, 인종적으로 구분된 이주민의 많은 부분, 그리고 노동자계급 가정의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거나 탈락하며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부위를 구성한다.

 

인종차별: 자본주의 지배의 강력한 비밀무기 중 하나

 

사트남 비르디는 자본주의, 계급투쟁, 인종차별이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또 자본주의가 세계 노동자계급의 차별화와 위계적 재구조화 과정을 통해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인종차별이 이윤 극대화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여러 민족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면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쉬워진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과 국가는 이런 경험을 지닌 노동자계급의 힘을 분열시키기 위해 인종차별 메커니즘을 부추겼다.

 

비르디는 17세기 버지니아 식민지화에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20세기까지 역사적인 여정을 거치면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인종차별은 국가 엘리트들의 무기고에서 빠질 수 없는 무기였다. 이는 자본 축적을 위한 체제를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하층민들이 일으키는 계급투쟁을 억누르는 데 사용됐다.” 이런 고찰은 탈식민지 경향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인종차별을 서구와 나머지 세계 사이 양극화의 산물로 보는 게 아니라, 계급 간 투쟁과 관련된 자본주의 지배구조의 일부로 이해하게 한다. “인종차별의 구조화된 힘과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지배관계에 편입되는 차별화된 방식에 대한 이런 설명은, 해방정치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그는 썼다.

 

마르크스의 글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아일랜드 노동자들에 대해 영국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자기 본위적 태도에 대한 분석에서 말이다. 당시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신체적, 성격적 특성으로 볼 때 열등한 존재일 뿐더러 고된 노동과 빈곤을 더 잘 견디는 성향이 있다는 식의 인종차별을 겪었다. 마르크스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을 향한 영국 노동자들의 인종차별과 혐오가 영국 자본가계급 지배의 비밀중 하나임을 알게 됐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영국 자본가계급은 가난한 아일랜드인을 강제 이주시켜 영국 노동자계급을 억누르기 위해 아일랜드의 비참함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두 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분할했다. 켈트족 노동자의 혁명적인 열정은 앵글로색슨 노동자의 견고하지만 느린 성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의 모든 산업 중심지에는 아일랜드 노동자와 영국 노동자 사이에 깊은 적대감이 있다. 평균적인 영국 노동자는 아일랜드 노동자를 임금과 생활수준을 낮추는 경쟁자로 여기고 싫어한다. 영국 노동자는 아일랜드 노동자에게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반감을 느낀다.”

 

영국 노동자가 아일랜드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미국 남부의 가난한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을 대하는 태도와 사실상 똑같다. 영국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 사이의 이런 반목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살려나간다. 자본가들은 이런 분열이 그들을 권력을 유지하는 진정한 비밀이라는 걸 알고 있다.”(1870, “바쿠닌에 관한 내부회람”)

 

19세기 말, 확산되던 자본주의적 약탈은 제국주의 국면에 들어서며 한 단계 도약했다. 자본은 그 촉수를 지구의 가장 먼 구석에까지 뻗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마술처럼, 수세기 동안 농촌경제와 지역의 전통이 변하지 않던 지역에 작업장과 현대적인 공장이 들어섰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 레온 트로츠키는 이를 불균등 결합 발전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전 세계에 대한 식민지, 반식민지적 억압이 강화되던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를 구성하는 특징이다. 다시 한 번 제국주의적 자본가계급은 세계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인종차별과 식민지배를 이용했을 것이다. 깊게 분열된 제국주의 국가 내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가장 착취 받고 억압당하는 부문들 사이에서, 그리고 상당한 특권을 가진 귀족 노동자들과 더 많이 착취당하고 위태로운 노동자층 사이에서 말이다.

 

제국주의 지배의 이 악마 같은 장치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억압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적대하게 만들고 젠더, ‘인종’, 국적의 차이를 악화시키면서, 깊어진 분열을 더욱 많이 이용했다.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들은 식민지 경영을 문명화의 요소로 지지했던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귀중한 협력에 의지했다. 이는 1914년에 유럽 각국의 사회민주당들이 1차 세계대전을 위한 전쟁공채 발행을 지지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식민지와 세계시장의 새로운 분할을 위해 자기 나라 자본가계급을 떠받쳐주고 서로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을 죽이는 데 동의하면서 말이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리고 다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 사이의 바로 그런 분열, 우월주의와 인종적 편견의 결합, 그리고 관료들에 의해 노동자들 사이에 유포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에 맞서 투쟁했다.

 

특히 흑인 문제에 대해 제3인터내셔널은 공산주의 운동이 흑인운동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 대신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적 평등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노동자를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노예화된 흑인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흑인운동을 활용해야 한다.”(존 리드, “미국의 흑인 문제”,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의 연설)

 

레온 트로츠키와 흑인 문제

 

트로츠키가 1930년대에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나눈 토론과 논의에서 드러낸 흑인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트로츠키의 사상은 이 문제를 고려하는 데에서 막대한 전략적 풍요로움을 제공한다. 반란이 거리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전례 없는 사회위기의 한복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1932년 작성된 유색인종 노동자에게 더 가까이라는 편지에서, 트로츠키는 혁명정당과 피억압 인종의 관계에 대해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출발점은 좌익반대파가 어떻게 사회 각 부문으로 다가가 자리 잡을 것인가에 관한 전망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파리에서든, 베를린에서든, 뉴욕에서든, 이미 다양한 단체의 회원인 10명의 지식인이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말을 걸어올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충고할 것이다. 그들에게 모든 강령적 문제에 대한 일련의 테스트를 시행하라. 그들에게 비도 맞히고, 땡볕 아래 목마르게도 한 다음, 새롭고 주의 깊은 시험을 거친 후에 한 명이나 두 명만 받아들여라.”

 

대중과 연결된 10명의 노동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소부르주아 그룹과 노동자 그룹에 대한 우리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약 어떤 노동자 그룹이 여러 인종의 노동자가 일하는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오로지 특권적인 국적을 가진 노동자로만 구성돼 있다면, 나는 그들을 의심스럽게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노동귀족을 상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흑인 노동자 집단과 접촉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 그들과 합의에 도달할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 합의가 아직 실제의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흑인 노동자들은 그들의 전체적인 지위 때문에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세계혁명이 아니고서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도 없다.

 

우리는 인류 발전의 결정적 요소에 해당하는 흑인 노동자, 중국인 노동자, 인도 노동자, 그리고 유색인종의 바다에 속한 모든 억압받는 사람의 의식으로 파고들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고, 또 찾아야만 한다.”

 

이후 19332월 트로츠키는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흑인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트로츠키는 터키의 프린키포로 망명할 때부터 미국공산주의동맹 회원들의 질문에 응답했고, 이들이 흑인의 자결권이라는 슬로건을 거부했다는 점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트로츠키는 흑인 노동자들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길은 다음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백인 노동자들이 흑인의 완전한 민주적 권리를 (그들이 원한다면 독립국가로 분리할 권리까지 포함해) 보장하기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싸우도록 혁명가들이 설득할 수 있는지.

 

이 토론에서 미국 활동가들이 흑인의 자결권 강령을 내켜하지 않는 것을 보고, 트로츠키는 미국 노동자계급 안의 모든 인종적 편견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흑인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아직 백인 노동자와 단결하지 못했다. 미국 노동자 99.9퍼센트가 우월주의자들이며, 흑인과의 관계에서 그들은 교수형 집행인이다. 중국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야만적인 미국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에게 미국이 그들 자신의 국가가 아니며 그들이 국가의 수호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흑인들은 자신이 원한다면 독립할 수 있고, 우리는 미국 경찰에 맞서 그들을 방어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미국 노동자들이 혁명가이며, 나는 그들을 신뢰한다.”

 

트로츠키는 흑인들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미국 노동자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을 경험하며 러시아인은 유럽의 흑인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트로츠키에게서 우리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전략적 사고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헤게모니적 강령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노동자계급 대중을 단결시키고 내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조장되는 분열에 맞서 동맹세력을 얻기 위해서도 그렇다. 급진적 소부르주아들이 흑인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분리주의, 개량주의, 계급협조주의 강령으로 미끄러뜨릴 수 있다. 혁명가들이 그런 영향력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다 총체적인 혁명강령의 체계 속에서 인종차별에 맞서고 흑인의 완전한 민주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이행강령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지켜내는 것이다.

 

인종차별, 자본주의, 사회주의 전략

 

자본주의 역사 내내 인종 문제가 계급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였다면, 더 커진 불안정성, 인종화, 여성화와 함께 노동자계급이 전 세계로 확산된 21세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민법, 장벽, 울타리는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던 체제와 같은) 현대 분리정책의 새로운 형태다. 이것은 이민이 급격히 늘어나고 주요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다문화, 다민족으로 재편된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맞춰진 것이다.

 

그러나 인종 문제가 계급 문제와 교차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종 문제를 계급 문제로 환원하는 것과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인종차별은 노동자계급 부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농민과 같은 중간계층들(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서는 농민 문제가 원주민 민족 문제와 교차한다), 그리고 도시 중간계급의 많은 부분들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억압받는 인종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인종차별 반대 사회운동도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이질적이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동안 흑인과 라틴계 사람들도 세계 자본가계급 또는 자본주의 국가기구 내에서 눈에 띄는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흑인 여성 중 하나인 오프라 윈프리가 그 교과서적인 사례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1980~90년대에는 젠더, 인종, 계급이라는 3대 요소가 포스트모던 이론의 궤도 위에서 다문화주의또는 정체성 정치로 흡수됐다. 신자유주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형태를 취했다.

 

당시의 시대정신에서, 교차성 이론은 (다문화주의가 자유주의로 흘러가는 데 대해선 흔히 비판적이지만) 계급 쟁점을 평가절하하며 인종차별, 섹슈얼리티, 젠더 문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여성운동과 인종차별 반대운동 같은 사회운동이 재차 등장하면서 새롭게 판이 짜이는 가운데, 활동가들 중 일부는 인종, 성별 억압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보다 포괄적인 투쟁으로부터 자립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혁명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과소평가하거나 부정하며, 다양한 이유로 그것을 여성운동, 흑인, 이주민, 난민, 기후변화에 맞선 청년운동, 토지 사유화에 맞선 농민운동 등 다른 주체들로 대체시킨다.

 

반면 일부 좌파들은 인종 문제를 과소평가하거나, 그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2차적인 문화적현상으로 축소시키는 계급환원론 입장을 강하게 드러낸다. (흑인과 라틴계 주민이 훨씬 높은 비율로 경찰에게 살해되거나 투옥되는 현실을 실제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결국 그들은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하는 노동조합을 지지하거나, 제국주의 국가 내의 기업 또는 특정한 배타적 복지체제를 지지하게 된다. 자국 노동자계급 일부에게 몇 가지 사회적 조치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반면, 경찰의 국경 통제를 유지하고 인종차별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권리를 박탈당한 2등 시민권을 부과하면서 말이다.

 

생산, 유통, 재생산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한 전략적 지위 때문에 세계 노동자계급은 현존 질서를 뒤엎고 수백만 인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지속하는 한줌 자본가들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사회세력이다. 코로나19 위기와 무엇이 필수업무인가라는 논쟁에서 명확해졌듯이, 현장, 트럭운송, 물류, 식품, 통신, 교통, 청소, 간호사와 그 밖의 보건의료 노동자, 마트, 은행 및 무역, 철강과 에너지 산업에서 일하는 수백만의 노동자가 없다면, 이 세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자본가계급이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낀 순간들이 있다. 계급투쟁이 억압받는 사람들 내의 분열, 인종적 편견과 다른 모든 형태의 편견을 극복하고 국가와 자본가에 맞선 투쟁역량을 단결시키며 동맹세력에 대한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그 순간이다. 역사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된 바로 이런 순간들을, 흑인 혁명가 C. L. R. 제임스는 번개가 번쩍여 천둥소리를 예고하는 순간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흑인 청년들이 반란을 향해 나아가는 것, 더 나아가 경찰에 맞선 시위와 투쟁의 최전선에 선 불안정한 처지의 백인과 라틴계 청년들 그리고 노동자들과 합류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 정말 진정 새로운 무언가를 예고하는 서곡이다.

 

 

 

 

원문 

https://www.leftvoice.org/racism-capitalism-and-class-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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