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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같은 삼성 상속세 논란,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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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394회 2020-11-0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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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송장이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부

 

삼성 이건희가 죽고 나자 부르주아 신문들은 초일류 기업을 이끈 지도자라며 그를 칭송하기에 바쁘다. 명색이 거대 언론이라는 곳에서, ‘이건희는 골프 퍼팅을 수백 개씩 해서 하지 근육 염증이 생겼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 영화 줄거리와 주인공 동작을 아주 정확히 알았다따위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령도 업적을 지면 가득 늘어놓는다.

 

이건희가 골프와 영화에 몰입하는 동안 생명을 잃어야했던 삼성전자의 수많은 백혈병 노동자들,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친 최종범 열사, 염호석 열사는 그들에게 투명인간 같은 존재다.

 

어쨌든 이건희 역시 죽었다. 지금도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 또는 그보다도 짧은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해고의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정년(停年) 개념이 없는 자본가들은 오로지 자신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는 것에만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살았지만, 죽음은 결국 이건희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건희는 죽었지만 그가 누렸던 막대한 사회적 부와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대물림된다. 이병철에서 이건희로,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일가의 천년왕국을 지켜내기 위해 저들은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 삼성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주가를 조작했다. 이로써 이재용 일가는 최소 8,5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삼성은 제일모직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불법 회계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무려 45,000억 원 수준의 분식회계다.

 

그런데 그들이 불법을 무릅쓰고 승계하려는 막대한 부는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 자본가들의 비위를 맞추며 빵부스러기를 얻어먹기에 여념이 없는 경제학자들은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부가 그들의 기업가정신에 대한 보상이란 헛소리를 즐겨 늘어놓는다.

 

이 헛소리에 대한 가장 생생한 반박이 있다. 이건희가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래 65개월 간 무려 27,716억 원의 주식배당금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기업가정신은 생명의 불꽃이 사윌수록 고평가를 받는 것인지, 이건희가 챙겨간 연도별 배당금은 20142,221억에서 20197,501억 원으로 늘어났다.

 

한마디로 이건희는 산송장 노릇을 하면서도 하루에 20억 원씩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새날이 밝으면 오늘도 다시 20억 원 입금! 결국 이건희가 취득한 막대한 부는 결코 이건희의 경제적 기여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진정한 부르주아적 공정성을 찾아서

 

공정한 경쟁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라는 부르주아적 공정성이 시대의 화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도, 공정한 경쟁이라는 지고지순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거대한 사회적 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별다른 노력도 없이 천문학적인 재산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음으로써 경쟁의 출발선 자체를 달리 그어버리는 일만큼 극악무도한 불공정성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실거주 중인 주택처럼 상속인의 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개인적 소유물의 상속은 문제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거대한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기업 소유권의 상속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자본가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천문학적 부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즉 기업 소유권에 대한 일체의 상속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약자를 향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던 공정성의 외침은, 자본가들이 벌이는 부의 세습 앞에서는 조용하다. 작금의 공정성 이데올로기가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이해를 옹호하는 선택적 공정성이라는 걸 뚜렷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사회의 거대한 생산력은 사회적 노동의 결합 위에 존재한다. 이건희가 제 아무리 경천동지할 일신상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 해도, 삼성의 수많은 노동자가 없었다면 그는 단지 개인에 불과하다. 사회적 노동의 응고물인 기업 자산을 자신의 자식들에게만 대물림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요컨대 이건희가 가진 1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산 역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사회적 부를 일방적으로 강탈해간 것에 불과하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혁명의 첫걸음이 민주주의의 쟁취라고 주장했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해 자본가들의 소유권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전제적으로 침해해야 하는데, 이때 고율의 상속세또는 상속권의 폐지도 가장 중요한 방책 중 하나가 된다고 썼다.

 

일단 사적 소유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인 공격이 일어나면 노동자계급은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 모든 자본, 모든 농업, 모든 공업, 모든 운송, 모든 교환을 더욱더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켜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모든 방책들은 이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여전히 타당한 지적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적 생산력을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대물림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상속하는 것 자체를 폐지하라는 주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운동의 주객관적 조건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고율의 상속세를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한국에서는 상속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나아가는 대신 뚱딴지같은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다. 이건희로부터 18조 원을 물려받는 삼성 일가의 상속세를 깎아주라는 논란이다.

 

삼성은 우리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우리나라는 삼성을 위해 이런 것도 못해줍니까

 

10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삼성 상속세 없애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111일 현재 28천여 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원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를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끌고 도와주신 이건희 회장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셨던 분입니다. 존경받아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저희 나라는 재산 18조 중에 10조를 상속세로 가져가려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삼성이라는 기업 무너지면 저희 나라 엄청 큰 타격이 올 겁니다. 그리고 그 18조라는 돈 세금 다 내가면서 번 돈입니다. 어떤 나라가 세금을 두 번씩이나 떼어갑니까. 제발 삼성도 생각해 주십시요. 삼성은 우리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우리나라는 삼성을 위해 이런 것도 못해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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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세습이 뭐가 나쁘냐?”고 항변하는 사람들

 

 

황당한 청원이다. 위 청원의 작성자는 상속세를 삼성이라는 법인이 아니라 이재용 등의 자연인이 낸다는 것조차 구분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이 뚱딴지같은 청원이 나온 전후로, 부르주아 신문들에서도 고율의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명분은 거액의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승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외국 투기자본에 경영권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종종 나오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 특히 한국의 상속세율(50%, 주식 상속의 경우 60%)이 세계 최고수준이어서 건전한 기업의 생존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명목세율은 50%이지만, 실제로는 공제 혜택이 많아 실효세율은 30% 전후다. (상속세 공제 혜택으로는 기초공제·인적공제와 일괄공제(5) 중 큰 금액 배우자공제 가업·영농 상속공제 금융재산 상속공제 재해손실 공제 동거주택 상속공제 등이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높지 않은 수준이다.

 

소득세와의 관계도 따져봐야 한다. 한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42%이다. 한국보다 상속세율이 낮다는 영국(40%)은 소득세 최고세율이 45%로 더 높다. 미국 역시 최고 상속세율은 40%로 한국보다 낮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은 주세(state tax)를 포함해 최고 46.3%에 이른다. 한편 상속세가 폐지된 나라들의 경우, 이를 벌충할 만큼 더 높고 강력한 수준의 소득세를 부과하거나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자본가들 사이에서도 상속세 완화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철저하게 자본가계급의 관점에서 기본소득론을 주장하는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자산으로 돈을 버는 것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쉬워지는 시대에 자산소득에 대한 충분한 세금을 물려서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본소득 등의 재원을 확보해야 하며, “상속 두 번 한다고 회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노회한 부르주아 정치인 김종인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법정 상속세율 인하 주장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며 상속세 완화 주장을 일축했다.

 

이들은 상속세가 자본주의의 극심한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가려주는 무화과 잎사귀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극악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지만 누군가는 대물림한 부를 바탕으로 일생을 무위도식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터무니없는 불평등이 백일하에 드러나서는 곤란하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부의 재분배. 그들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때문에 사회적 부가 애초부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나아가야

 

삼성 상속세 완화 논란은 한국 자본주의의 중심축이라는 재벌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학자들이 얼마나 후진적이고 뻔뻔한 집단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상속세 완화 주장은 한편의 에피소드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의 상속세를 깎아주자는 주장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의를 표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과 그에 따른 사회적 주도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노동자투쟁은 양립할 수 없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들이 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운동에서 노사협조주의로 그 실물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삼성 일가의 상속세 문제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한가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코로나19 이후 밑바닥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야말로 절박한 진짜 문제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올해 벌써 열네 명이다. 악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편법과 불법으로 해고되는 노동자들도 수두룩하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싸울 때가 바로 지금이다.

 

실질적인 단결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이 높아질수록 노동자들이 재벌의 상속세를 걱정하는 일 따위는 없어질 것이다. 나아가 단지 상속세를 법대로 징수하자는 것을 넘어 아예 부의 세습과 사적 소유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질 것이다. 사회적 노동의 성과물을 소수 자본가가 독식한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명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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