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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명 정리해고 밀어붙인 이스타항공 – 위기의 대가는 자본가들이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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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4,811회 2020-10-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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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희생에 정리해고로 응답한 이스타항공

 

1014, 이스타항공은 결국 예고했던 대로 615명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미 상반기에 400여 명이 잘려나가고 남은 1,200명을 다시 반토막낸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고 이후 또 다른 구조조정으로 인원을 더 줄일 거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은 운항 재개만을 기원하면서 8개월 넘게 임금 한 푼 못 받으며 희생을 치러왔다. “사즉생의 각오로 직원들의 일자리를 되돌려놓겠다던 이스타항공 창업자 이상직 의원의 약속은 먼지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노동자의 목에 칼을 댔다.

 

그러는 동안 단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던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부기관, 집권여당, 이 모두가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고통과 요구를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1012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울려 퍼진 이스타항공 노동자의 절규다. ‘이게 나라냐라는 함성 속에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한 사업장에서 하루아침에 615명이 잘려나가는 위기 앞에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자본과 정부의 책임

 

당장에는 대량해고가 이뤄진 이스타항공이 위기의 진앙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이 겪고 있는 위기의 이면에 저비용항공사 전반의 난립, 포화,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자본가들과 정부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관제탑의 위치에서 개별자본가들 간의 무분별하고 비효율적인 경쟁을 어느 정도 조절할 책임이 있는 정부 입장에선 저비용항공사들의 과잉상태를 해소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다.

 

언론에서도 이미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항공업계가 포화상태였다는 지적을 흔히 내놓는다. 누구나 그렇게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이익에 쉽사리 함몰되는 개별자본가들은 그렇다 치자. 적어도 정부는 좀 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시야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의문 자체가 오늘날의 정부에 대한 모종의 환상을 담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이 난립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게 다름 아니라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을 포함해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주요 저비용항공사가 생겨난 게 주로 200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이므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6개 업체로 이미 충분히 포화상태였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추가로 플라이강원,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등 3개 업체에 면허를 내줬다. 이로서 한국의 저비용항공사는 9개가 됐다. 미국의 저비용항공사 숫자와 같다. 두 개만 더 생기면 국내 고속버스 회사 숫자와 같아진다. 문재인 정부의 무분별함이 저비용항공기를 타고 하늘을 찌른 격이다.

 

자본의,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를 위한 정부

 

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천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온갖 약속이 아니라 실제 행위가 이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항공업계 전반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조차 기꺼이 자본가들의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의 자율성에 고개를 조아리는 태도. 포화상태로 치닫는 항공산업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결코 자본가들의 밥그릇에 손대지 못하는 공손함. 결과적으로 그 교통정리란 오직 자본가들 간의 무정부적인 출혈경쟁과 파산이란 방식으로 이뤄지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겨지도록 방치하는 정부.

 

이것이 우리가 문재인 정부를 자본주의에 충성하는 정부, 자본가정부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스타항공 노동자의 절규처럼 그런 정부가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고통과 요구를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 조치

 

우리는 위기를 자초한 자본과 정부가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한 채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위기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일체의 해고를 금지하라는 요구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스타항공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위기의 배경에 자본가들 간의 무정부적 경쟁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해고금지뿐만 아니라 항공산업 전반을 조정하는 계획적 재편이 시급하다는 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출혈경쟁을 멈추려면, 개별 항공사들을 강제로 단일한 조합으로 통합해 노동력과 노동시간을 분배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여행길이 모두 막힌 마당에 그런 통합이 무슨 소용이냐고 자본가들이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승객이 없어도 화물은 계속 실어 날라야 한다. 실제로 올해 위기 상황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여객기 좌석을 개조하면서까지 화물운송 사업을 이어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항공산업은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일부 노동자를 길거리로 쫓아내고 나머지 일부 노동자를 초과노동에 시달리게 하는 기괴한 자본주의적 노동시간 분배 대신, 노동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이와 연동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항공산업 전체를 단일한 조합으로 통합해 불필요한 중복노선과 낭비를 없애면 노동시간을 전격적으로 줄이는 것은 기술적으로 완전히 가능할 것이다.

 

항공산업 전체에 대한 노동자의 감독과 통제

 

이와 같은 재편 과정이 또다시 자본가들의 이권다툼과 노동자에 대한 책임전가 수단이 되지 않을까? 분명히 그럴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익을 챙기는 데서는 다른 모든 자본가보다 1순위에 서고자 하며, 손실을 처리하는 데서는 누구보다도 노동자를 1순위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야 한다. 자본가들이 마음대로 경영권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야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직접 항공산업 운영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노동자들이 그런 역할을 맡을 순 없다. 항공산업을 움직이는 모든 노동자가 자유롭게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토론하고, 입장을 결정하고,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단결한 노동자는 항공산업 재편을 위해 기업비밀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 이스타항공 사례처럼 자본가들은 많은 것을 감춘 채 노동자를 윽박지르며 위기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위협한다. 노동자들이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는데도 자본가들은 그것을 허위주장으로 매도하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회계부정 의혹조차 해명할 수 없을 정도라면 항공산업 전반에서 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감독하고 재편하는 건 불가능하다.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간의 인수합병 논의 과정 역시 기업비밀이라는 규칙이 지배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에서조차 제대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기업비밀 철폐는 노동자들이 산업 전체를 감독, 통제하고 재편하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관제고지로서 국유화 요구

 

항공산업 국유화가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수행하는 데 유리한 관제고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 국유화란 요구는 노동자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전망이 아니다. 지금껏 한 번도 노동자를 위한 국유화가 이뤄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노동자가 조직적으로 감독, 통제할 수 없는 국유화는 결국 자본가에게 봉사하는 국유화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통제권, 지휘권이 없는 국유화는 기업의 주인이 그저 개별자본가에서 집단적 자본가인 국가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 국가의 역할은 개별자본가를 대신해 그 기업의 노동착취율을 높이고 다시 매각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즉 이런 국유화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공격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국유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멸을 부추기게 된다.

 

둘째, 지금처럼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스타항공 같은 개별기업만의 국유화는 큰 의미가 없다. 숲이 불타고 있을 때 한 그루 나무만을 살리려 하는 게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유화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포화상태로 치달은 항공산업 전체를 재조직하고 노동력과 노동시간의 계획적인 분배를 통한 해고금지, 일자리 창출이 당면한 목표인 이상, 항공산업 전체의 국유화가 필수적이다. 개별기업 국유화는 산업 전체 국유화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맡을 때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전망과 분리된 개별기업 국유화는 오히려 노동자들이 개별기업 차원의 고용안정에 매몰되도록 만드는 보수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셋째, 의미 있는 국유화는 자본가들에 대한 보상 없는 몰수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요구는 자본가들과 거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상을 전제로 한 국유화는 결국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또다시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정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누가 이것을?

 

그런데 이런 조치들을 과연 문재인 정부가 수행할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는커녕 추가로 항공사 면허를 내주면서 위기를 유발하는 데 공모해왔던 정부가? “노동자들의 고통과 요구를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그것을 누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 유발자이며 공동정범인 자본가들과 정부는 절대로 그 누가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하지 않으며, 책임을 물을 뿐이다. 이 위기를 해결할 주체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항공산업 노동자들은 아직 충분히 조직돼 있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조직화, 조직의 확대, 서로 간의 연결이 필요하다. 노조할 권리가 완전하게 보장돼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타개할 전망과 요구도 제한돼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의견이 제기돼야 하고,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앞에서 제기한 요구와 전망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도 생각해보자. 지금처럼 자본가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모든 고통과 피해를 노동자들이 뒤집어쓰면서 평생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대안인가?

 

이미 자본가들 스스로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먼저 코로나 이후 뉴노멀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또다시 안정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대안으로서 뉴노멀을 꿈꿀 것이다. 뒤집어보면 그들 역시 불안과 낭패감에 휩싸여 있다. 불안 속에서도 먼저 대담하게 치고 나가는 계급이 이후의 세계를 재조직할 주도권을 손에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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