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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병원 | 투쟁으로 쟁취한 정규직화 - “당장이라도 부르면 투쟁하러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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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자서울성모병원 노동자 조회 5,191회 20-09-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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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교섭장 바깥에 모여 투쟁을 이어간 조합원들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침내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본원인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9월 합의에 따라 2019111일부터 정규직이 됐지만 서울대병원 위탁 시립 보라매병원은 지난한 투쟁을 더 거친 끝에 내년 11일부터(올해 정년퇴직자는 올해 121일자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202111일부터 보라매병원은 비정규직 없는 병원이 된다. 자회사니 무기계약직이니 하는 어쭙잖은 반쪽짜리 정규직이 아니라 온전한 정규직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은 이처럼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올해 초부터 미화 노동자들 주축으로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오다 7월 말 무렵 파업투쟁을 했고, 89일부터는 보라매병원과의 축조 교섭을 약속받고 현장으로 복귀해 쟁의를 이어갔다. “축조 교섭을 일곱 차례 했다. 코로나19도 점점 심해지고 불안한 상태에서 계속 투쟁할 수 없으니 병원장에게 공문으로 면담 요청하고, 본원 교섭 때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에게 김병관 보라매병원장이 역할하도록 하라고 양쪽으로 압박했다.”(보라매민들레분회 강금아 부분회장, 이하 따옴표는 모두 부분회장)

 

교섭대기투쟁

 

9월 초 사흘 정도는 날마다 보라매병원장과 마라톤 교섭을 했다고 한다. 하루에 9시간 교섭을 한 적도 있다. 교섭 때마다 조합원 모두가 모여 교섭대기투쟁을 했다. 12시 넘어 해산한 날도 있다. 진료예약센터는 토요일은 쉬는 날인데도 모든 조합원이 나왔고, “파업대오가 다 모여 교섭대기투쟁을 했다.”

 

교섭장 바깥에 조합원 모두가 모여 투쟁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빈 페트병을 응원봉 삼아 박자 맞춰 두드려 교섭위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집단적인 힘을 사측에 보여준다. 중간중간 교섭 진행 소식을 알려주며 좀 더 버티자고 서로 격려하고 조합원들이 나와 발언을 하기도 한다. 흥 넘치는 젊은 조합원들은 투쟁가 리듬에 맞춰 그 누구보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도 함께라서 지루하기보다 즐겁고 힘이 느껴진다.

 

교섭 마지막 날 밤 9시 이후부터, 파업대책본부(파대본)에서 분임토론하고 문구 하나로 또 교섭하고 그랬다. 파대본은 비전임 간부들도 참가한다. 누구 하나가 문제 제기하면 더 싸워야 한다.” 뒤늦게 노조에 가입했지만 이번에 제일 앞장서서 열심히 싸운 진료예약센터나 장례식장 조합원들은 싸우면 되는구나를 확실히 알게 됐다.”

 

조합원들에게 교섭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밀실에서 교섭하는 등 비민주적인 교섭행태가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섭장 바로 바깥에서 교섭 처음부터 끝까지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투쟁의 기운을 교섭위원들에게 전달하고 교섭내용을 빠르고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 투쟁 요구를 수정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과정에 소수 교섭위원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조합원이 의견을 내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교섭과 투쟁이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조합원 대중의 투쟁의 결과물로서, 투쟁의 힘만큼의 결실로서 합의안이 나오는 것. 이것이 바로 노조 민주주의의 바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그 결과만이 아니라 투쟁과정, 교섭과정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진료예약센터 자동화 시 전환배치하기로

 

911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보라매병원 246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918일 보라매병원에 가보니 천막 농성장은 아직 완전히 치우지 않은 상태였다. 노조 요구가 쓰인 현수막도 그대로다.

 

본원인 서울대병원 김연수 병원장이, 보라매병원장이랑 도장 찍었으면 됐지 굳이 나랑 또 해야 하냐며 조인식을 안 해줘서 해단식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천막을 완전히 안 치우고 놔둔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 등에서 법적으로 검토해도 크게 문제없다고 해서, 921일에 해단식하기로 했다.”

 

가장 쟁점은 장례식장과 진료예약센터였다. “사측에선 본원에 비해 운영기능직 비율이 높다며 비용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본원은 장례식장을 새마을금고에서 위탁 운영한다. 그래서 장례지도사가 본원에 없는 직종이라 정규직화 어렵다고 버텼다. 진료예약센터는 업체와 병원의 계약 기간이 1년여 남아있어서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 절대 정규직화 안 된다고 했었다. 정규직화 이후에 자동화되면 줄어드는 인원에 대해서는 전환배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민주노조의 힘, 투쟁의 힘

 

한국노총과의 갈등이 심하다 보니 우리가 해냈다는 시원함과 자랑스러움이 있다. ‘거봐라, 우리 민주노총이 해냈어!’ 미화 말고 환자이송도 복수노조인데 합의안 설명 듣더니 다시 민주노총으로 가입하기도 하면서 분위기가 좀 기울었다.”

 

주차, 보안직원들은 파업은 못 나왔지만 배지 달고 집회나 순회투쟁 때 옆에 같이 서 있는 등 단체행동을 함께했다. 한 보안직원은 요즘 맘이 편하다. 일할 때 부담감이 없어졌다. 정규직 된 이후 제일 기대되는 것은 근무시간 단축이라고 말했다. 업종, 업체 가리지 않고 모든 비정규직 조합원이 노조로 뭉쳐 싸웠다.

 

올해 말 정년퇴직이라 121일에 정규직 되는 분은 30여 명이다. 대부분 미화, 환자이송 한 명. 본원에서도 작년에 그런 분들 있었는데, 노조에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고 그랬다. 어설프게 내 임금만 목표로 발 넣었다 뺐다 하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이 얕다. ‘나는 지금 정규직이 안 되더라도 후배들은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감정이 굉장히 깊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 그런 분들이 감동을 준다. 병원사업장이고 코로나19 전담병원이라 굉장히 우려한 게 있는데 합의돼서 다행이다. 병원도 그런 것 때문에 부담이 된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임단협을 아예 안 하거나 임금 동결하는 데도 많은데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거 보니 우리가 질기긴 한가 보다.”

 

코로나19로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돼있고 민주노조들도 대부분 투쟁하기를 꺼리는 요즘 분위기에서 이런 투쟁승리 소식은 많은 노동자에게 힘을 북돋아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노동자의 삶도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러나 고용을 지키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좀 더 과감하게 투쟁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상상력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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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진료예약센터 전수진 조합원

 

드디어 정규직화의 꿈을 이뤘다. 요즘 심정은?

 

다시 만나서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아직도 이게 맞나 실감이 안 난다. 월요일 해단식 하고 나면 좀 더 실감 나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부르면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투쟁 옷도 다 사무실에 있다. 다들 집에 갖다 놓지를 못한다. 언제 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병원에서 여러 서류 요구하더라. 진짜 정규직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 얼떨떨하다.

 

1년 넘게 투쟁해도 병원이 버텨서 정말 안 될 줄 알았다. 요즘은 맘이 정말 편하다. 예전엔 당장 내년에 어떡하지, 전세 계약을 어떻게 하지,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하나그런 생각만 하다가 이제는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니 그런 게 다 우스운 얘기 같다. 10년 뒤, 20년 뒤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게 정말 다르다.

 

늘 비정규직으로 일해 왔기 때문에 적금, 예금 들 때 1~2년짜리만 들었다. 내일 내가 어떻게 불안해질지 모르니까 금액이 정해진 몇십만 원짜리 적금을 들어본 적이 없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살았는데! 요즘은 보라매병원 급여통장이 어디 거더라, 은행 가서 다시 통장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 하면 행복하다.

 

파업하다 현장 복귀하고 투쟁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휴무에도 나오고.

 

12시까지 대기투쟁하고 그래도 즐거웠다. 그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게. 우리는 미화 조합원들보다 노조 가입도 늦게 했고 투쟁을 짧게 한 편이니까 그 시간이 힘들진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도 괜찮았다. 와야 하니까, 힘을 줘야 하니까. 사측이 원하는 게 우리가 흩어지는 거니까. 직원들도 알고 있다.

 

합의 끝나고 우리가 가장 박수친 일이 뭔 줄 아나? 필수유지업무 우리 진료예약센터는 0%. 뭐가 터지면 또 나간다, 우리는 다음에 문제 생기면 또 나간다, 좋다! 의리를 저버리지 말자 그런 마음가짐이다.

 

정규직 되면 제일 먼저 뭐가 달라질 것 같은가?

 

뭔가 사무실 환경이 바뀌지 않을까? 오래된 의자와 컴퓨터를 교체해 준다거나. 실은 정규직이 돼서 똑같은 복지혜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정규직 전환되면서 내가 결혼을 안 한 게 가장 화난다. 제일 큰 복지혜택은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자녀 있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한다.

 

복리후생이라는 게 정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청난 차이다. 급여가 문제가 아니다. 진료비도 감면되고. 비정규직은 복지가 거의 없었다. 업체 본사의 복지가 있긴 했지만 근무를 병원에서 하는데 병원 관련 복지가 전혀 없으니까 소속감도 없고 그랬다.

 

자동화되면 전환배치하기로 했는데.

 

처음엔 직원들이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일만 하다 다른 일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젠 내가 계속 다녀야 할 직장이다 보니 주인의식 같은 것도 생기는 듯하다. ‘배치전환되면 거기에 적응해서 하면 되지 뭐. 내가 관두고 싶어서 관두면 관뒀지 그들이 날 해고할 수는 없잖아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자동화라는 게 어떤 업계에서든 이뤄지고 있는 거니까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자동화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 아예 없어질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의 인원축소와 배치전환이 있는 것이다. 진짜 얼토당토않은 일로 보내진 않을 거고 관련된 일로 배치전환될 거라고 하더라. 힘들긴 할 거다. 여기 그만두고 다른 데 가면 또 새로운 일 시작이고, 배치전환돼도 또 다른 시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렵거나 불편하거나 화가 나진 않는다. 내년 11일이 기대된다.

 

환자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업무고 부서인데 환자들이 더 편한 방법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우리 생존권 때문에 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되고 변화된 상황에 녹아들어야 할 것 같다.

 

가족들이 좋아하겠다. 동네에 우리 딸 정규직 됐다고 현수막 걸리는 건가?(지난 기사 참고)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신다. 강원랜드 하청업체에서 연세가 제일 많다. 함께 투쟁했던 동료들에게 우리 딸은 정규직 됐다고 자랑한다.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정말 뿌듯하더라. 이게 뭐라고. 오빠가 정규직 취업했을 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딸이 계속 비정규직이다가 정규직 되니까 정말 좋으신가보다. “그 정도면 (투쟁) 짧게 했어, 복 받은 겨.”

 

또 이런 말도 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퇴직하더라도.” 그만큼 몇십 년을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서러움도 많이 느끼셨을 것이다. 나보고 200만 원 받고 20년을 다니더라도 퇴직할 때까지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니까 그것만으로 됐다고 하시더라.

 

퇴직하시는 분들, 본인의 급여 안 받아가면서 같이 투쟁한 것이다. 그걸 보고 우리가 어디 힘들다고 하겠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어쨌든 질긴 놈이 이긴다고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 정년이란 건 당장 바꿀 수 없는 건데 그렇게 열심히 하시니 정말 존경스럽다. 정년 늘려달라고 투쟁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회사, 무기계약직 아닌 정말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따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비정규직을 정규직 시켜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 시켜주면 주인의식 못 갖고 정규직 된 뒤에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비뚤어진 시선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 직원들은 전보다 더 친절해진 것 같다. 예약센터 직원의 50%는 비보건 계열인데 이들이 배치전환 등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간호용어도 찾아보고 모르면 간호사 직원에게 물어본다. 얼마나 생산적인가! 앞으로 내가 다닐 직장이니까 더 잘하고 싶어 한다. ‘, 이게 맞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국공 사태 때 공정성 어쩌구 하고, 이번 의사 파업 때도 엘리트주의 정말 싫다. 전공의 파업도 이해 안 되지만 의대생들 재시험 요구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그들만의 특권을 원하는 것이다. 반면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정말 정당한 요구다.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지부장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질긴 놈이 이긴다. 맞는 말이다. 교섭위원들은 당연한 것을 얘기하러 들어간 거다. 조합원들이 그만큼 투쟁했으니까, 그리고 이게 맞는 거니까. 우리가 억지 부리는 것도 아니고. 조합원 믿고 끝까지 싸워준 교섭위원들에게 고맙다.

 

정규직지부에서 같이 나와 집회하고 투쟁하고 소리 높여줄 때 굉장히 힘이 됐다. 이제 보라매병원엔 비정규직이 없어지지만 내가 이런 걸 겪어봤으니까 어딘가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할 때, 예전처럼 잘 모르는 개똥 같은 소신 가진 사람들과 다르게 더 응원하고 싶다. 지나가다가 한 번 더 파이팅 외쳐주고 싶고.

 

민들레분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좋은 거다. 의료연대본부 산하 국립병원은 우리가 마지막 정규직화다. 아직 안 된 국공립병원도 많을 거다. 이런 얘기가 다 같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면, 비정규직이란 말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 정규직이란 말도 비정규직이란 말도 없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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