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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풀빵정신? 모범기업정신? 불꽃정신! - 2020년에 되짚어보는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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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훈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이사 조회 4,885회 20-08-2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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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이 지난달 18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과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주최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토론회 <비정규직이 말하는 전태일 정신’>에서 발제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른바 풀빵정신이나 모범기업같은 구상에 가둬두려는 일각의 시도는 비단 과거를 둘러싼 문제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재훈 소장의 발제는 전태일 열사정신을 토막내 타협과 퇴행의 근거로 삼으려는 경향을 비판한다.

 

전태일 정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제는 조선 민중을 순치시켜 식민지 노예 신세를 어쩔 수 없게 만들기 위해 무단 통치니 문화 통치니 했다. 하지만 분명한 적은 분명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한 것이 친일 매국노들의 조선말 조선글로 써대는 우리가 문제라는 자학과, 전망이 없다는 절망을 전제로 일본에 협력해 자치의 힘이라도 조금 키우는 것이 현실적이고 이익이라는 논리였다.

 

저항하라가 아니라 적응하라, 이것이 언제나 투쟁을 포기하고 지배자의 힘에 굴복한 것을 넘어 지배자의 주구가 되는 것들의 한결같은 논리다. 이런 사상적 투쟁은 열사정신을 둘러싼 역사전쟁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는 작금의 민주노총의 혼란을 통해 적응과 저항의 근본적 대립을 보고 있고, 그 적응을 선도하는 이들의 입장도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있다.

 

우리가 전태일 정신을 말하는 것은 단지 50주년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아니다. 목전에서 격렬하게 전개되는 사상투쟁, 역사전쟁의 한가운데 전태일 정신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입장(立場)의 문제, 본질의 문제가 놓여있음을 느낀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타협은

 

메디컬센터에 누워있던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마지막 대화는 모두의 가슴을 저려오게 한다. “엄마, 맹세하세요!” “무얼”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로 맹세하세요!” “그래, 살아있는 동안에 맹세하마!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한 직후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근로조건 개선 및 노조 결성 등의 요구조건 8개항을 제시했다. 그러자 당시 중앙정보부, 노동청 등 정부기관에서 이소선 어머니를 돈으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단히 큰돈이었다.

 

돈의 크기가 얼마만 했을까? 이소선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종로에 3, 4층짜리 빌딩을 살만한 큰돈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회유한 사람들의 논리는 이랬다. 종로에 빌딩을 사서 1층에서는 이 여사(이소선 어머니를 가리킴)가 음식 솜씨가 좋으니까 식당을 하면서 어린 자녀 삼남매를 키우고, 나머지 층은 근로자들을 위해서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거절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를 통해서 설득을 했다. 이소선 어머니는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과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돈 받는 것을 거부하시고 끝내 노동운동의 험한 길을 택하셨다. 그리고 2011년 타계하실 때까지 아들 전태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셨다.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빼앗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이 꼭 이루어주세요.”

 

이소선 여사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울 때 하나가 되어싸우라 말씀하신 것이지 결코 자본가권력, 독재를 용납하고 투항하는 데 한통속이 되어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가 되어라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무기다.

 

전태일 정신이 모범기업으로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

 

전태일기념관(2019년 개관해 전태일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 전시 작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사 간 상생 협력하는 모범기업 태일상사를 구현한 전시라고 했다. 전태일 열사를 사람들에게 상징하고 대표하는 것이 모범기업이라니. 누가 뭐라 해도 모범기업은 노동이 아니라 기업이 중심이다. 왜 전태일을 모범기업으로 상징할까? 의아했다.

 

연대의 50년 평등의 100,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출범선언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됐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 운동을 노동자, 시민 속으로 넓고 깊게 펼치려 한다. 전태일의 아름다운 풀빵정신과 모범업체정신을 사회에 불러내려 한다.”(202057)

 

전태일재단의 정신은 풀빵정신이다. 거기에는 투쟁과 돌파의 정신이 없다. 그것을 필자는 불꽃정신이라 했다. 근로기준법을 화형식하는 불꽃, 제 몸에 불을 지르며 싸워야 했던 그 절박함의 표현이다.

 

이소선 어머니는 단결을 입에 달고 다녔다. 문제는, 전태일 역사를 팔아먹다 못해 전태일을 민주노조를 향한 공격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도 단결을 말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단결은 아직 수단이다. 왜 단결이 필요한가. 단결을 위해 단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위해 단결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이 사라지면 단결이란 구호는 투쟁의 무기가 아니라 타협, 타락의 흉기가 된다.

 

이런 대립은 왜 생기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것이 정세에 대한 다른 인식과 현안 실천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태일을 풀빵정신’, ‘모범기업정신으로 묶고 이소선 어머니를 단결을 위한 단결주의자로 세우는 것은, 계급적 의식의 차이를 넘어 계급적 존재 자체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온정적 시각을 넘어 결사투쟁의 불꽃으로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로서 생각하고 활동한 시간을 보니 1966~1970년까지 5년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 단계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1단계: 이른바 풀빵정신으로 표현되는 온정주의 인식 단계.

2단계: 근로기준법을 구원의 빛으로 여기며 법적 틀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청원, 진정 단계. 모범사업체를 구상했던 시기.

3단계: ‘완전에 가까운 결단에 이른 결사투쟁의 단계.

 

전태일이 온 생을 다해 살았던 시간은 19708월에서 197011월이다. 이 시기에 전태일은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한다. 그래서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단순한 복귀가 아니었다. 연민 동정 시혜에 대한 반성과, 패배 실망 도피에 대한 자기부정을 통해 더 낮아져 깊어지고 더 치열해 높아진 조직과 투쟁의 결의를 가지고 온 돌아옴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한 가지 뜻을 세우고 앞으로 가라. 잘못도 있을 것이다.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 앞으로 가라”, “올해와 같은 내일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나는 결코 투쟁하련다라며 불꽃 같은 투쟁의지를 다졌다.

 

열사는 두 가지를 태운다. 하나는 근로기준법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전태일의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고 처절한 절망이었다. 그래서 불태운다. 체제내적인 희망으로는, 체제내적인 행동으로는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함께 제 몸에 불을 지른다. 캄캄한 세상에 구멍 하나를 뚫어 빛이 되고자 한 것이다.

 

풀빵이나 모범기업을 전태일 정신으로 삼는 것은 전태일이 아직 미숙하거나 동요, 방황하는 시기를 전태일 삶의 절정으로 보는 것으로, 열사에 대한 능욕이다. 브라질 해방신학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카라마 대주교는 자기가 빈민에게 자선을 베풀자 세상은 성인이라 찬미하다가 가난의 원인과 구조를 말하자 빨갱이라 지탄했다며 지배여론의 부박함을 지적한 바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정신으로 풀빵은 아마 저 자선 베품 연민의 품성이고, 모범기업은 노동자로서 투쟁이 좌절되고 체제내적인 기대가 순진하고 환상적으로 번질 때 더듬은 방황의 모습이다. 이를 대표 정신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그들의 전태일 vs 우리의 전태일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전태일을 현실에서 붙잡고 있는 이들이 머리띠와 조끼가 거북해진 것이다. 체제내적 운동만이 필요하다는 체념과 이미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과 중소영세 기업주로서의 정치 경제적 조건과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계급적 존재의 차이, 그것이 전태일 열사를 말랑말랑한 박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전태일추모제에서 발언 중이던 전태일 열사의 유족 전태삼 선배에 대해 전태일재단 관계자가 서슴없이 폭력을 가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전태삼 선배가 평소에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추모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그런 과정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반성도 없는 모습을 보면서, 전태일을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전태일 정신에서 멀어져 있는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빵이 강조되고 단결을 위한 단결이 말해지는 진정한 이유는 그들의 서슴없는 폭력, 그 자리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오만에서 짐작할 수 있다. 열사정신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하지만 혁명적이고 계급적으로 깊어짐이 거북한 이들은 넓어진 척을 하려 한다. 열사정신을 실용주의화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열사의 삶을 통해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삶과 투쟁의 기준, 옳고 그름의 판단, 더 치열해지고 본질화 되는 지향이 없어진다. 이것은 전태일 열사정신의 계승이 아니라 열사정신을 사유화하고 모독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전태일, 우리의 전태일 정신을 현실의 투쟁에서 제대로 견지해야 한다. 정신의 추모를 사유화, 박제화하는 녹을 쓸어내고 제대로 된 계승과 투쟁으로 확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투쟁으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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