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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의 망령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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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현대차지부 아산위원회 현장조직 활동가/전국모임 집행위원장 조회 735회 20-08-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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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부가 사퇴해도 사회적 합의주의가 자동으로 사라지진 않는다.(사진_노동과세계)


 

편집자 주     813일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에선 노사정 합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사태,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오지환 동지는 노사정 합의안의 내용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는 정도의 시각을 넘어 사회적 합의주의 자체가 갖는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일 토론문으로 제출한 내용 일부를 재정리해 게재한다.

  

김명환 집행부가 밀어붙인 노사정 야합안이 지난 723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돼 간다. 김명환 집행부 총사퇴에 이어 민주노총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해고금지, 전태일 3법 쟁취 등 하반기 투쟁을 선언했다.

 

노사정 야합안이 다수 대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됨으로써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노총은 상당한 조직적 혼란과 분열에 휩싸였다. 게다가 사회적 대화 참여론자들은 민주노총이 소중한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걷어찼다고 비난하며 여전히 노사정 대타협을 꿈꾸고 있다.

 

노사정 야합안에 반대한 세력 내부에도, 단지 이번 합의안이 여러모로 부족한 게 문제였을 뿐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단지 김명환 위원장의 독단, 독선에만 초점을 맞춰서 진단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평가에 불과하다. 우리의 시야는 부족한 합의안을 넘어 사회적 합의주의 자체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본질을 살펴보려면 사회적 대화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신노사관계 구상을 바탕으로 199659일 노··공익 3자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를 출범시켰다(신노사관계 5대 원칙 주요 내용은 공동선 극대화, 참여와 협력, 노사자율과 책임, 교육 중시와 인간존중,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 정부는 당시 법외 노조였던 민주노총도 노개위에 참여시켜 노동법 개정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진한 배경에는 1990년대 초부터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하며 자본가들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정부는 자본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려 했고, 정리해고제, 파견제 등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자 했다. 이런 계획이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거라는 점은 자명했다. 정부는 노동개악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민주노총을 포섭하려 했다. 이를 위해 쳐놓은 덫이 바로 노개위였다.

 

당시 권영길 집행부는 전투적 현장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개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동계 요구는 거의 수용되지 못했다. 대화만 쳐다보고 있는 노동자에게 자본과 정부가 의미 있는 양보를 내놓을 리 만무했다. 노개위가 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사회적 합의주의에 이끌렸던 권영길 집행부조차 결국 노개위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7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1224일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전국 곳곳에서 거대한 총파업의 물결이 솟구치고 격렬한 가두 투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96~97 총파업으로 결집한 노동자들의 투쟁의 힘을 제대로 분출시키지 못한 채 유연한 전술을 찾다가 결국 스스로 투쟁의 기운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이어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내세우며 1998115일 제1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불과 20일 만에 정리해고제, 파견제 도입 등을 관철시켰다. 자본가들과 정부의 경제위기 책임 전가 공격을 받아칠 태세를 갖추지 못했던 민주노총 (직무대행) 지도부는 노사정 합의안을 덜컥 수용해 버렸다. 며칠 후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 추인 건을 부결하고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내홍을 겪었다. 결국 이후 2기 이갑용 집행부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사정위 탈퇴를 최종 결의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않았고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이어졌다. 2000년 근로시간 단축, 5일제, 2006년 노사관계 로드맵에 합의했지만 공히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개악이었다. 노사정위는 이후 여러 차례 법적 지위와 명칭이 바뀌면서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본가들이 초래한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거기에 사회적 합의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씌워 노동자의 손발을 묶는 덫이라는 본질 말이다.

 

지난 22년 동안 민주노총 지도부는 여러 차례 노사정위 복귀를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2004년 이수호 집행부가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하려고 했지만, 단상점거 사태 등이 벌어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오랫동안 투쟁 대신 타협적 흐름이 강화되면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늪에 빨려 들어갔다. 이번 원포인트 비상협의 이전까지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노사정 대화에 복귀하진 못했지만, 상당수 총연맹 지도부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여하는 등 끊임없이 정부와 협상 채널을 유지해왔다. 지역별로 노사민정, 산업별 노사정 협의기구들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더이상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수 없다는 강한 불신과 낭패감, 노동자가 양보하면 자본가도 신사답게 양보할 거라는 착각, 정권이 바뀌었으니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감 등이 뒤섞여 나타나는 모습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양보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경제위기의 대가는 자본가들이 치르게 해야 한다는 방향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약점을 그대로 투영하는 결과물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투쟁의 결과를 정리하기 위한 교섭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투쟁에서 드러난 힘의 크기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결과일 뿐이다. 철저하게 노동자의 단결 투쟁력을 끌어내고 그 힘으로 정부와 자본의 양보를 강제하려 하지 않는다면, 뭐라고 합리화하든 이는 교섭 자체에, 타협에 목을 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권과 자본이 짜놓은 사회적 대화 같은 프레임에 갇힐 게 아니라 당당하게 대정부 직접교섭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계급단결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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