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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자기계발의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 대를 분석하다(오찬호 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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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 조회 29,533회 2020-08-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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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도 큰 틀에서 이십 대의 정서는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12월에 나온 책이다. 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 인국공 사태를 둘러싼 공정성 담론을 볼 때, 또 작년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투쟁에 대한 청년들의 사회적 여론을 볼 때, 7년이 지난 지금도 큰 틀에서 이십 대의 정서는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제 이러한 경쟁과 자기계발의 논리가 노동조합 내부의 젊은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반대하는 모습이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새로운 논란, 청년 정규직들 반발, ? 현재의 비정규직 차별구조가 공정하고 평등하다?” http://www.redian.org/archive/117159)

 

지금 이십 대는 경쟁과 자기계발의 논리를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이 사회는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믿음이 깔려있다. 애초에 사회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변수는 개인의 노력밖에 없다. 내가 노력하는 것 외에 이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무시 받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이십 대는 경쟁과 자기계발에 최선을 다해 몰입한다. 그것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여서가 아니라, 그것 외에는 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막막한 이십 대

 

이십 대는 항상 불안하고 막막하다.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남과 비교해야 한다.

 

식사 내내 불안하다를 입에 달고 있었던 진솔이, “막막하다를 연발하던 진솔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요?”를 대여섯 번은 언급했던 진솔이가 이 모든 과정을 그래도긍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힘들어요. 벌써 6년째 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것도 힘들고 토익 공부 등을 그저 점수만 바라보고 하는 것도 짜증 나죠. 돈이 없으니 즐기지도 못하고 생활을 쥐어짜는 것도 그래요.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취업의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어떡해요. 그나마 아직 희망을 갖고 스펙을 채워서 이력서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요. 이렇게 자기계발하고 있으니 좋은 일 있을 거라 믿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잖아요. 이겨내야죠. 힘들지만, 매뉴얼에 맞추어서 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솔직히 게으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이것이 괜찮은 거잖아요.”(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50~51)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엄격한 자기계발의 잣대로 자신을 규율하는 태도는, 남을 향했을 때 매우 냉정한 시선으로 변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자기계발의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 대에게 그것은 노력하지 않고 손쉽게 결과를 얻으려는 떼쓰기이자, 자신처럼 노력하는 이들을 모욕하는 불공정한요구로 받아들여진다.

 

한 학생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었다. 경영학과 4학년 학생 K(당시 27)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답했던 것이다. 마치 대다수 학생들의 생각을 K가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의실을 아주 차분하지만 강렬히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K를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의 눈빛에는 그래! 너 말 한번 제대로 잘했다!’라는 동의가 넘쳐났다. K는 더 공격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같은 책, 17~18)

 

저자 오찬호 교수는 ‘KTX 승무원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사안을 놓고 학생들과 충돌한 경험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해당 사건은 오찬호 교수가 대학생들을 주제로 한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경쟁과 위계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과정: 대학 입시

 

이십 대가 제일 먼저 자기계발과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게 되는 계기는 대학 입시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경쟁은 이르면 출생부터 시작된다.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의 문제는 이십 대가 되기 전까지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큰 화두다. 그 레이스의 선두에서 달리는 사람이든, 저 멀리 뒤처진 사람이든, 경주로를 아예 이탈해버린 사람이든, ‘대학 입시라고 하는 구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나의 대학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면서 살아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신분증과 같다. 대학 입시과정이 이십 대 이전의 삶을 규정하듯이, 대학은 이십 대의 삶을 규정한다. 대학 입시과정에서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 대들은 대학의 위계를 아주 촘촘히 나누어 자신의 아래에 누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에 있는 이들에겐 이유 없이 주눅 들고, ‘아래에 있는 이들에겐 왠지 모를 당당함을 느낀다.

 

면접관이 서류를 넘기면서 학교를 확인하는데요, 나와 같이 면접을 보는 학생들이 저보다 낮은 대학이면 이상하게도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면접이 아주 자신감 있게 이루어졌어요. 위트 있는 농담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번은 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였고 저만 서강대였죠. 초조했고 경직되기 시작했죠. 실수하면 큰일 난다고 너무 긴장하다보니 결국 면접 다 망쳤죠.” 우월감과 열등감을 오가는 이런 대학생들의 태도는 이들이 지금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한 상태임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자기계발서들이 그렇게도 강조한 사회는 어쩔 수 없으니까, 개인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의 결과다. 개인들은 사회를 함께 바꿔나가기보단 자신들끼리의 와각지쟁과 이전투구에 빠지게 됐다.(같은 책, 169~170)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2012년 문재인이 대선 때 내건 구호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활용해, 실제로는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도 불공정하며, 따라서 결과도 정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설령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더라도 그 결과가 평범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하고도 3인 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없다는 것이라면, 이런 결과는 정의롭지 않으며 결과의 차별을 통해서라도 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에 문재인은 탈락한 대선후보였지만, 2020년 지금은 집권 4년차의 대통령이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여전히 공문구에 불과하다.

 

201811월부터 2019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대학 입시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기회와 성공의 기회를 좌우한다는 현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저자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초등학교 6학년을 조사한 대구MBC 프로그램 <교육을 말한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계층에 따라서 장래희망이 어떻게 차이 나는지 보여준다.

 

 

1차 구분

2차 구분

A 초등학교

B 초등학교

아버지 관련

학력이 대졸 이상

86%

33%

직업이 전문직 및 고위공무원

34.9%

3.6%

사교육

평균 사교육 개수

3~4

1

초등학교 이전 영어공부

43.4%

8.2%

영어공부를 위한 해외여행

20.9%

1.8%

희망직종

전문직 및 고위공무원

47%

15%

가장 많은 학생이 희망하는 단일직업

의사

교사

각자 학교에만 있는 희망직업

UN사무총장, 로봇공학자, 외교관, 변호사, 경영 컨설턴트, 자동차 디자이너, 대기업 CEO

제빵사, 요리사, 네일아티스트, 킥복싱선수, 동물조련사, 사육사, 태권도 사범 등

희망대학

해외대학

7.6%

0%

서울지역대학

27.9%

6.4%

같은 책, 213(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01302)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 시험의 결과는 그 사람의 능력을 (그리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고, 따라서 시험을 통해 능력 차이를 변별하는 것은 공정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 능력이 형성되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사회적 요인들이 촘촘히 얽혀있다.

 

사회는 경쟁에서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특징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편견과 차별, 멸시의 눈길을 보낸다. 이들이 공정한 경쟁에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저자는 CPA 시험을 준비하는 두 학생을 예로 든다. 서울 상위권대를 다니는 학생 A는 가족, 친구, 교수, 대학으로부터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적, 물적, 정신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는다. A는 그런 지원에 힘입어 한 번 떨어져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오로지 시험준비에만 전념한다. 반면 경기도 소재 대학에 다니는 B는 가족, 친구, 교수, 대학 등 주변의 모두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가족은 얼른 생계에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시험준비를 말리고, 친구들은 솔직히 우리가 되겠냐며 기운을 뺀다. 이런 상황에서 웬만큼 독기를 가지고 있어도, 시험준비를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계발서는 이런 현실에 대해 어차피 모두가 불공정한 과정을 겪고 있으므로 다 똑같은 조건이다라고 답한다. ‘과정의 불공정성을 인정하고, 대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그런 차별과 멸시를 꾹 참고 이겨낼 수 있는 맷집을 키우라고 말한다. 다시 한번 차별과 멸시를 당해야 하는 사회구조 문제는 덮어두고, ‘맷집이 부족하다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애초에 이렇게 기회도 불평등하고 과정도 불공정한데, 결과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논리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 ‘능력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로 둔갑시켜버린다. 그런 굳은 믿음에 사로잡힌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차별이라고 이야기하고, ‘시험 치고 들어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경쟁의 논리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정말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이 중요한 것일까? 애초에 기회도 과정도 평등할 수 없다는 건 그들도 알지 않을까. 그렇게 얻게 된 자신들의 결과가 조금이라도 침해받을 것을 너무도 두려워하기에 나타나는 반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의 기저에는 세상은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깔려있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런데 세상 탓한다고 뭐가 바뀌나? 그 시간에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라!” 그 전제 아래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고민하면 나오는 답은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갈 때 우리에게 정말 미래가 있을까? 이 사회구조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승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다수는 패자가 된다. 그리고 저자가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패자가 마주해야 하는 공정한 결과평범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하고도 3인 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삶이다.

 

110만 원을 받는 대학교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식대를 올려달라는 시위를 했는데, 이를 강의 때 토론에 부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에게서 나온 말이다. “110만 원이면 최저임금도 아닌데, 적은 돈도 아니지 않은가?” 한 끼에 4,000원으로 3인 가족 한 달 식비를 계산하면 한 달에 2만 원이 남는다. 이 사람이 가장이라면, 이 가족은 그 흔한 과일조차 어쩌다 한 번이라도 입에 댈 수도 없다. 누구라도 아프면 그날로 가족은 풍비박산이다. 이게 과연 공정한 사회일까?(같은 책, 226~227)

 

이 책이 나오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자기계발과 경쟁의 논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쟁의 논리가 사회의 다수를 패자로 만들고 열등감과 무력함에 사로잡혀 살게 하는 이상, 그 논리는 영원불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 경쟁 사회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정성과 경쟁의 논리에 반기를 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현실을 진단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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