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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항구의 끔찍한 폭발사고가 레바논 노동자, 민중을 다시 한번 투쟁의 길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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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4,850회 2020-08-0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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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을 규탄하며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는 레바논 민중(사진_AP/Hassan Ammar)

 

 

마치 핵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8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사고로 지금까지 적어도 157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3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앉았다. 이 사고에 대해 인재(人災)’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재라는 표현은 이윤을 최우선으로 앞세우는 자본가들의 탐욕과 정치권, 관료들의 부패를 감추기 위한 용어로 흔히 사용된다. 이번 사고에서도 그렇다.

 

2,750톤의 폭발물

 

베이루트항에 보관돼 있던 2,750톤 규모의 질산암모늄은 2013년 조지아에서 출발해 모잠비크로 가던 화물선에서 압류된 것이다. 무리하게 추가 화물을 싣기 위해 베이루트항에 입항한 화물선의 선주는 배가 낡아 더이상 운항할 수 없게 되자, 항구 사용료와 선원들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 배를 버렸다. 선원들은 1년 가까이 배에 억류돼 있다 풀려났다.

 

관계당국은 화물선에 실려있던 질산암모늄을 항구의 창고로 옮겨 보관했다. 질산암모늄은 농업용 비료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강한 폭발성을 갖고 있어서 폭탄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는 위험한 물질이다. 이 때문에 베이루트항 세관 책임자는 5~6차례 이상 법원에 공문을 보내 이 질산암모늄의 처리방식을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번번이 이 요청을 묵살했다. 정부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 폭발사고가 날 때까지 레바논 민중은 베이루트항에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낡은 화물선으로 무리하게 돈을 벌다가 나중에는 비용 문제로 배를 버린 선주의 탐욕과 위험을 알고서도 6년간 방치해 온 레바논 권력자들의 부패가 결합해 끔찍한 폭발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그 사고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됐다.

 

피해는 노동자, 민중의 몫?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격화된 경제위기 때문에 이번 사고의 파장은 더욱 극심하다. 병원은 환자를 수용할 수 없어서 부상자들이 치료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5.6%로 무너졌고 물가는 폭등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40%, 둘 중 한 명(48%)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10시간 이상 정전과 전기공급 제한조치가 이어지기도 하고, 식수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폭발사고가 나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레바논을 방문해 지원을 약속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레바논을 식민지배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일까? 언론에선 마크롱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그러나 지원을 운운하는 마크롱의 행보는 위선적이기 짝이 없다. 불과 한 달 전 프랑스 정부는 레바논에 대한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면서 이른바 개혁압박을 가했다. (레바논은 올해 3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개혁이란 이를테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전력공사를 민영화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로 바꾸라는 것이고, 그 과정에 프랑스 기업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미 1997‘IMF 개혁을 경험한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마크롱은 다시 한 번 이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레바논에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이번 폭발사고가 정체불명의 인재가 아니라 정권의 부패와 연결돼 있음을 직감한 레바논 민중은 곧바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라고 외치며 퇴진을 요구했다. 일부 언론은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 즉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과 관리가 해결책이며 시위에 나온 레바논 시민들도 그것을 바라는 것처럼 앵글을 맞춘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이 식민화 반대!” “혁명!” “점령 반대, 마크롱 반대, 미셸 아운(레바논 대통령) 반대!”를 외치는 장면도 포착된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했다. 의회 주변으로는 무장 군인들이 배치됐다.

 

이 시위가 계속 확산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점은 레바논 민중이 끝없이 고통을 감수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지난해 10, 스마트폰 메신저인 왓츠앱사용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정부를 규탄하며 항의시위를 벌여 사드 하리리 총리를 퇴진시킨 경험이 있다. 총리 퇴진 이후에도 몇 달간 투쟁이 이어졌다.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사태로 투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번 폭발사고를 겪으면서 레바논의 노동자, 민중은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자들을 그대로 둔 채 위기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이는 비단 레바논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경제위기 손실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모든 나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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