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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범죄를 어떻게 끝장낼 것인가? -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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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369회 20-07-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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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의 일부. 안희정은 수트발안 산다고 아무것도 안 가지고 다녀서 김지은 씨는 옷에 안주머니를 꿰매 붙이기도 했다.

 

 

4년 동안 참았나?”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각종 2차 가해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장담컨대 지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삼는 이들 대부분은, 성추행 혐의로 자살한 정치인의 자리에 박원순대신 미래통합당 광역단체장 아무개를 넣는다면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들에겐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보다, 그리고 권력형 성범죄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자기 진영의 유력 정치인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저지르는 가장 빈번한 2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4년이나 참고만 있었느냐?”며 공격하는 것이다. 정말 성추행이 있었다면 바로 항의를 했어야지, 아무 대응이 없다가 이제야 박원순을 고소한 것은 뭔가 다른 의도 때문 아니냐고 묻는다.

 

그런데 몇 년 전, 이와 똑같은 2차 가해를 당한 피해자가 있다. 안희정 성범죄의 피해자 김지은 씨다. 김지은 씨가 안희정의 수행비서로 근무한 20177월부터 시작된 안희정의 성폭력은 20182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행해졌다. 법원에서 안희정의 변호사는, 그리고 인터넷에서 수많은 가해자들은 김지은 씨에게 왜 최초 성폭행 당시 즉각 수사 기관에, 경찰청에, 감사 기관에 말하지 않았느냐?”, “왜 바로 그만두지 않았느냐?”며 김지은 씨의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지적했다.

 

권력형 성범죄가 반복되는 원인

 

김지은 씨는 책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상사와 주변의 평판이 절대적인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월급을 받아 학자금을 갚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일이 끊기면 바로 생계에 지장이 왔기에 바로 관두지 못했다. 다른 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그만둬서는 안 됐다. 이 거대 권력 안에서 어떻게라도 눈 밖에 나면 나는 어떤 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말은 가감 없는 진실이다. 김지은 씨는 JTBC에서 미투 방송을 한 바로 다음 날인 201836일에 곧바로 해고됐다. 임면권자가 사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별정직 비서였던 김지은 씨는 미투를 함으로써 곧바로 생계수단을 상실했다. 계약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계약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학위를 따며 성실히 일했던 김지은 씨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모든 경력과 단절됐다.

 

김지은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기관 성희롱·성폭력 실태 온라인 설문 조사 분석 결과(2015~2017년 기준)’에 따르면 18개 정부 부처 공무원 중 652(6.8%)이 성희롱·성폭력을 겪었다. 그런데 이들 피해자 중의 69.9%456명은 이후 대처로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그나마 신분이 안정적이라는 공무원들조차 이 정도라면, 일상적으로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뻔하다.

 

특히 김지은 씨나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와 같이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김지은 씨가 안희정의 수행비서가 되고 나서 전임자로부터 처음 인수인계 받은 일은, 안희정이 공관에서 출근할 때 신을 구두를 어느 위치에 어느 각도로 놓아야 하는지였다. 김지은 씨는 한밤중에 안희정 부부의 대리운전을 위해 불려 나가고, 안희정 아들의 요트 강습 예약 등 갖가지 사적인 업무도 수행해야 했다.

 

박원순 역시 다르지 않았다. 피해자를 대변하는 여성단체는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들이 박원순의 땀에 젖은 운동복과 속옷을 비서가 수거하고, 샤워 후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두어야 했다고 폭로했다. 한마디로 비서 노동자들은 전근대 사회에서 양반들이 부리던 몸종과도 다르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김지은 씨가 동료들로부터 지사님의 기쁨조가 되라고 강요받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박원순의 피해자 역시 심기 보좌 혹은 기쁨조와 같은 역할을 강요받았다.

 

결국 권력형 성범죄는 여성 문제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비서 노동의 특수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성폭력을 반복해도 생계의 단절이라는 더 큰 위협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가 참을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 즉 자본주의의 권력관계가 권력형 성범죄의 근본 원인이다.

 

노동자투쟁과 페미니즘은 서로 결합해야 한다

 

권력형 성범죄, 계급 권력에 의한 각종 성폭력을 온전히 끝장내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독재를 뒤엎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노동자투쟁과 결합해야 한다. 자본의 독재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힘은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뿐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투쟁이 자신의 거대한 잠재력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성별로 분할하고 대립시키는 각종 성차별 의식에 단호히 맞서야만 한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각종 차별에 눈을 감은 채 자본과 맞서 싸우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노동자운동은 아직 부족하다. 단적으로 김지은 씨와 박원순 성범죄의 피해자가 수많은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노동자운동이 과연 얼마만큼의 엄호를 제공했나. 우리 모두가 김지은 씨와 박원순 피해자의 용기, 그리고 수많은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빚지고 있는 동안 말이다.

 

노동자운동이 여성에 대한 폭력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 아르헨티나 빵과 장미동지들은 모범을 보여준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호소하고 실제 이를 실현했다. (관련 기사: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에서 활동하는 셀레스테 무리쇼와의 대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갖가지 권력형 성범죄, 계급 권력에 의한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조직 노동이 앞장서 투쟁해야 한다. 김지은 씨는 민주노총 매체 <노동과세계>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은 소망을 밝혔다. 김지은 씨를 비롯한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하자.

 

다시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는 상사와 함께하고 싶고,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동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노동자가 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불리고 싶습니다.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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