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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 태움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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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조회 5,240회 2018-04-1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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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 광화문에서 열린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 300여 명의 간호사들이 모였다.

 

올해 2월 아산병원 신규 간호사의 죽음으로 드러난 병원 현장에서의 태움’. 생명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선택한 직업이었으나, 스스로 생명을 놓아버린 안타까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일을 배우는 신규 간호사(프리셉티)가 약해빠져서, 혹은 업무를 알려주는 고참 간호사(프리셉터)가 되먹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경찰은 아산병원 간호사의 경우 태움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누가 이런 발표를 믿을까. 언론에서 태움 문화라는 말을 버젓이 쓸 정도로, 병원에서 태움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뿌리 깊다. 우리는 병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신규 간호사들이 약해빠져서문제인가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지적당하고 배우는 건 내가 일머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그러려니 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갖은 모욕적인 인신공격까지 참아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라도 빨리 움직여야지, 이런 말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교육기간이 끝나고 독립했어요. 꾸역꾸역 일을 해도 차팅(전산입력)까지 하기 위해 2시간, 3시간 오버타임하는 건 부지기수였죠. 한 번은 데이 근무를 마치고 이브닝 인계시간이 돼 인계를 하려고 했더니, 일이 엉망이라며 인계를 거부당하기도 했어요. 할 수 없이 이브닝 근무까지 마치고 12시가 다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어요.”

 

신규 때 병원에 출근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수액을 연결하기 위해 환자의 혈관을 찾는 것도 어려워 몇 번이나 환자의 팔을 찔러댔죠. 식은땀이 나고 얼굴은 벌게진 나는 환자의 컴플레인에 결국 눈치를 보며 프리셉터 선생님을 불러야 했어요. 입사하고 3개월 동안은 눈물바람으로 다닌 것 같아요.”

 

신규 때는 병원에 적응하면서 내 적성에 맞는가를 골백번 생각하게 되요. 질책까지 이어지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고요. 많은 동기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3~4년 지나면 대부분 병원을 떠나요.”

 

병원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면 해당 부서의 업무를 배우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현장의 기본업무부터, 배속된 병동에 적용되는 처방을 숙지하고 실제 독립하기까지의 과정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배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개인차에 상관없이 독립해야 한다. 가르치는 프리셉터나 배우는 프리셉티 모두에겐 이 기간이 초조하고 전쟁 같은 시간이다.

 

그래도 프리셉터 역할을 맡은 고참 간호사들이 좀 더 잘 이끌어줄 순 없을까. 경험도 많고 업무도 능숙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고참 간호사들도 할 말이 많다

 

그냥 프리셉터 역할만 하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죠. 그런 게 아니에요. 대부분 자기가 맡은 환자를 케어하면서 동시에 신규한테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 실정이에요. 담당환자 돌보는 일만해도 버거운데 신규교육까지 책임져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요.”

 

병원은 신규가 일을 얼마나 처리할 수 있는지 관심이 없어요.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인원을 배치할 뿐이죠. 모자라면 모자라지 절대 오버로 배치하진 않아요. 개인별로 책임져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신규는 온전한 제 몫을 하기 어렵죠. 그래서 우리끼리는 신규를 정멤버로 보지 않아요. 쩜오(0.5)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그만큼 처리되지 못하는 일을 누가 하겠어요. 나머지 사람들이, 아니면 교육했던 사람이 떠맡는 거예요.”

 

부서원 중에 누군가 임신이라도 하면 나이트 근무도 나머지 사람들이 나눠서 해야 해요. 두 명이 한꺼번에 임신하면 난리도 아니죠. 지금은 대놓고 임신순번제를 정하진 않지만 다들 눈치를 봐요. 어떤 경우까지 있냐면, 퇴직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퇴직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퇴직도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매년 수많은 간호사들이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정작 의료현장엔 늘 간호사가 부족하다. 2016년 기준으로 경력 1년 미만의 신규 간호사 이직률이 38.1%에 이른다. 전체 간호사 평균 근속년수는 5.4년에 불과하다. 고참 간호사라고 해서 업무 하중에서 자유로운 게 전혀 아니다. 신규 간호사들에게 잘해주고 싶어도, 자기가 죽을 지경이다.

 

매번 정부는 간호사 수급부족 대책을 제시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간호대학 정원을 늘린다는 것도, 전체 면허증 소지자의 절반에 가까운 간호사 유휴인력을 일선 현장으로 유도하겠다는 것도 결국 의료현장의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말뿐이다.

 

가장 황당한 대책은 야간전담 간호사제다. 노동시간을 두 배로 인정해준다 한들, 심신이 피폐해지는 야간노동을 누가 전담해서 오랫동안 할 수 있겠는가? 환자 케어하다가 우리가 환자가 된다는 말이 툭툭 나온다.

 

맞아, 그땐 그랬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이 해야 하고 다른 무엇보다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산업이 의료부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산업은 환자를 상대로 얼마의 수익을 내는가가 우선시될 뿐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신식 의료설비를 도입하고, 병상수를 늘린다. 영리병원 도입을 수시로 들먹인다. 하지만 인력을 늘리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에게 부과되는 업무 하중과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떠넘겨야 자기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심리가 자라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고참은 고참대로 느려터진신규 간호사가 마음에 안 들고, 신규는 신규대로 까칠하고 이기적인고참 간호사가 마음에 안 든다. 자본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분위기는 간호사들의 불만과 분노가 병원을 겨냥하지 못하도록 현장을 통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간호사들 간의 관계가 항상 이랬던 건 아니다. 다른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 때 파업을 같이 겪었던 사람들은 결속력이 대단했어요. 간호사 외의 노동자들과도 사이가 좋았고요. 끈끈한 관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간호사들이 거의 교체가 된 거예요. 그 때의 투쟁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직종과의 동료애도 흐려졌고요. 신규 간호사들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조금 있으면 나갈 거라는 생각이 깔려버리는 거죠.”

 

진짜 갈수록 병원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단결투쟁의 기회가 사라져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노동자들 간의 동료의식보다는, 이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식이 더 커지는 거예요.”

 

짧은 몇 마디 말이지만, 번득이는 불빛처럼 병원 노동자들의 가능성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다. 태움이라는 끔찍한 문화를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 인력부족이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 아니 그 어떤 업무 압박과 이를 이용한 분열의 압력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병원 노동자들 자신이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돈만 바라보는 병원의 투자나 정부의 허무맹랑한 대책이 아니라, 집단적인 단결투쟁 속에서 동료애를 키워나갈 수 있는 바로 그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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