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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정치의 꼬리로 남은 채 노동자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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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366회 2020-07-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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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와 손잡는 방식으로 노동자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사진_노동과세계)

 

 

저는 정부 부처의 계약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시작은 10개월 단기간 행정 인턴이었습니다. 당시 계약직들은 근무 기간이 다 되면 평가를 통해 일부 기간을 재연장하는 식이었습니다. 계약연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는 일상적 위력은 눈에 보이는 폭행과 협박뿐만이 아닙니다. 침묵과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것, 직장에서 술을 강요당하고, 달갑지 않은 농담을 듣는 것, 회식 자리에서의 추행도 노동자들이 겪는 위력의 문제이며, 심하게는 갑질로 나타납니다.”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2018920, <노동과세계>)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 김지은 씨는 이 글에서 막강한 도지사의 권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 밖에 벗어나지 않도록 더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고 고백했다. 비참하고 참담했지만, 그게 살길이었다고, 노동권 침해와 성폭력 범죄 안에 갇혀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권력에 맞서야 하고, 나아가 그 권력의 맹목적 지지자들과도 맞서야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무엇보다 성범죄를 공론화하면 생존권이 박탈될 수 있는 노동자의 현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서 용기를 내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도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고귀한 용기를 내준 피해자에게 감사드린다.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힘이다. 피해자의 용기를 보며 더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를 지지하며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박원순의 진보는 노동자투쟁 앞에서 멈춘다

 

박원순은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 설립을 주도하면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민주당에 들어가 서울시장 3선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 반독재운동을 했고, 인권변호사로 양심수와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했다. 시민운동을 할 때는 <국가보안법 연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시장에 당선된 2011년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원순은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민주당에 들어가 국가기구 내의 높은 지위를 얻었다. 많은 586 출신, 시민운동 출신 정치인들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원순은 민주당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치인으로 통했다. 그는 노동존중서울시를 표방하며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으며, 노동이사제도 도입했다. 20169월 노동이사제 조례를 제정하고, 이듬해부터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서 기관별로 노동이사를 선출했다. 서울시 생활임금제와 서울형 유급병가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당이 없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박원순의 행보는 그가 마치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원순의 정치는 전반적으로 집권 자본가정당인 민주당의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박원순은 자신의 공약이었던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거부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앞에서 그는 뭉그적거렸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다음은 201810월 서울시의회 권수정 의원이 개최한 서울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황 진단과 과제 - 절반의 가능성인가? 한계인가?’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다.

 

“10년 전부터 일했고 4년 전에 정규직인 공무직으로 전환됐습니다. 비정규직일 때는 정규직 전환만 되면 다 될 줄 알았어요. 전환되고 보니 무기노예직인 현실에 자괴감을 느낍니다. 정년은 보장된다지만 20년을 일해도 급여가 200만 원이 안 됩니다. 이 돈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서울대공원 노동자 최은희)

 

공공기관 콜센터 정규직화 첫 사례지만 그 뒤에도 변한 점이 없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뒤로 한 채 콜수 늘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전 위탁업체 소속일 때와 다름없이 상담사들이 콜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 (다산콜센터 노동자 임석한)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의 경우도 새로운 직급을 신설하는 방식이었고, 임금과 직무에 대한 차별이 있는 정규직화였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노동자들도 투쟁했고 그밖에 서울의료원, 다산콜센터 등 수많은 노동자가 온전한 정규직화를 위해 쉼 없이 투쟁해야 했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 박원순과 노동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계급 대립의 강이 항상 있었다. 아시아나케이오 하청 노동자와 한국마사회 문중원 열사의 사례에서처럼,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가 박원순의 서울시에게 농성천막 혹은 분향소를 강제 철거당하는 탄압을 겪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정당과 자본가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하고, 항상 그들에 맞서 독립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 박원순이나 그와 유사한 정치인들이 아무리 개혁가 행세를 하더라도, 자본주의 권력 구조 안에서 그들은 결국 지배계급의 논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힘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기만당하고 배신당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자본주의 권력기구를 믿고 따를 때 그 결과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해 왔던 박원순이 지난 4년 동안 자신이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힌 게 문제란 점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 대도시 서울의 시장으로서 거듭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그 위치가 박원순의 정체성에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 앞에서 그 누구도 쉽게 저항할 수 없을 거라는 의식 또는 무의식이 자라났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사회적 권력, 조직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이 틀림없다.

 

우리는 수많은 학생운동, 시민운동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계속 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볼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의 정치적 목적과 기반은 예전에도 자본주의를 넘어선 혁명을 추구하거나 노동자계급에 바탕을 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출세를 위해서건, 아니면 노동자 민중 운동의 물결에 편승해야 했기 때문이건 어쨌든 사회 진보를 외쳤다. 하지만 이들은 오래전부터 부르주아 제도권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크고 작은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들의 도덕적 쇠퇴는 필연이다. 가뜩이나 낮았던 정치적 목적의 수준이 더욱더 낮아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질서와 국가의 수호자가 된 자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움켜쥔 자들은 선거 때 표를 의식해 쇼할 때 말고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이들은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기 위해 철벽을 쌓는다.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라고 일컫거나, 피해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은 공범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박원순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던 고위 관료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피해자의 고소 당일 피고소인 박원순 시장 쪽에 고소 사실과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 경찰과 청와대가 아니면 누가 전달했겠는가?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었고, 고소를 하면서도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며 비서의 노동을 폄하하는 자들이 있다. 남성 권력자들(남성 비서실장)과 여비서라는 구도 속에서 여성 노동자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차별 구조가 있다. 말할 권리, 저항할 권리, 노조할 권리, 안정된 고용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가들의 권력이 있다. 고위 관료들, 경찰, 청와대 나아가 검찰, 법원이 가해자를 감싸고 오히려 피해자를 억누르는 정치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의지 약화와 수동화를 노린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바로 박원순 같은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대중의 실망을 부추기며 극우의 성장을 돕는다.

 

단 한걸음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면

 

근본 문제는 박원순 개인을 넘어 더 깊은 곳에 있다. 계급 지배와 남성 우위의 경제적 토대, 정치적 토대, 가부장제를 철폐할 때에만 여성 대다수가 억압과 차별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물론 당장 실현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피해자의 용기, 피해자와의 연대를 수백 번, 수천 번 더 강조해야 한다. 그런 용기와 연대가 없다면 새로운 세상은 단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찬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을 물어본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호통쳤다. 나중에 이해찬은 사과했지만 굳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쓰며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했고, 서울시도 마찬가지 표현을 썼다. 이낙연은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뿐만 아니라 25개 구청장 중 24명이 민주당 소속인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박원순의 성폭력 문제를 사적 영역의 일이라고 축소했다. 이런 자들에게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성폭력과 여성억압 해결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동자 민중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의미로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정의당 장혜영, 류호정 의원조차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보여준 용기, 여성억압에 맞서 싸운 수많은 노동자의 용기를 조금이라도 본받아 이런 시류를 거슬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은 박원순을 미화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목소리가 세상 곳곳에 퍼지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피해자와의 연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 온갖 2차 가해와 진실 은폐·축소 시도에 대항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나아가 일상에서,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긴 시간 홀로 내버려지지 않도록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경찰, 검찰, 법원을 규탄해야 하고, 쓰레기 같은 언론을 규탄해야 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국가권력 전체를 규탄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가해지는 일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과 억압을 규탄해야 한다.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위기라 했다.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낡은 건 계속 죽지 않고 버티며 모든 노동자에게,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끔찍한 억압을 퍼부을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과제는 명확하다.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운동, 자본가정당 및 그들의 정치인에 맞선 독립적인 운동을 통해 낡은 사회가 자기 몸속에 심어놓은 낡은 오물을 토해내고 새로운 공동체적 주체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세워내야 한다. 새로운 대안 사회를 세우려면 또 다른 지배자들인 자본가계급 자유주의 분파와의 투쟁은 절대 건너 뛸 수 없다.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성폭력과 여성억압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스템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사라져야 마땅할 낡은 것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 사회는 절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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