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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은 생존”이라니 - 민주노조운동을 품질혁신운동으로 둔갑시키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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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예주 조회 5,273회 20-06-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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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일자 현대차지부 소식지

 

 

품질과 근로, 자본과 노동

 

최근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합원들과 어떠한 토론도, 의결 과정도 없이 청와대를 들락거리고 노사정 회의에 참여하면서 노동자 양보론을 꺼내들었다.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재원으로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 쓰자는 것인데, 사실상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헌납하겠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의 단일사업장으로 최대 조합원 수를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사는 시장수요와 연동한 완벽한 품질의 차량을 최대한 생산 품질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현대차지부장은 624일 대표이사와 품질향상, 코로나19 위기극복 노사공동 선언문에 싸인도 했다.

 

현대차지부 집행부는 노조 소식지를 내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품질은 생존이라며 노동조합의 품질혁신 운동에 자발적으로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어떠한 동의도 없이 노동자를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자본을 위해 더 자발적으로 일하고 협조하는 근로자로 바꿔놓았다.

 

노동조합이 자본과 나란히 서서 품질향상을 외치는 경우는 대부분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다. ‘임금동결이나 임금인상분을 내놓겠다는 경우도 그렇다. 그러니 요즘 현대차 현장 노동자들이 내가 민주노총 조합원인지 한국노총 조합원인지 헷갈린다고 하소연하는 게 참 그럴 만하다.

 

그만큼 노동자운동이 대의와 지표를 상실한 채 조합주의, 협조주의로 후퇴해온 안타까운 현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하는 야만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민주노조에 똬리를 뜬 협조주의 노조관료들은 진실에 눈을 감는다. 오로지 자본가계급을 위해 노동자가 무엇을 희생할지에 골몰한다.

 

가장 큰 자동차사업장 노조에서 쏘아올린 품질향상 노사공동선언은 결코 작은 공이 아니다. 이미 저들은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 위원장의 양보조치를 칭송하며, 노동개악과 더 강한 노동유연화, 임금 하향평준화 등 위기전가에 속도를 붙였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양극화를 지우고 삽입한 노동시장 양극화프레임에서 주범으로 낙인찍힌 고임금 현대차지부가 품질향상 노사상생 선언을 하자 대서특필하며 칭송한다.

 

저들은 민주노총 위원장과 현대차지부 지부장의 행보를 노동자 스스로 무장해제하라는 신호탄으로 삼으려 한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운동 내부의 협조주의 노조관료와 더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어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절멸시키려 할 것이다.

 

19년 전과 똑같은 품질 이데올로기, 현장통제, 노조 무력화

 

19년 전 빛바랜 자료를 꺼내 보았다. 200154일 현대차노동조합 소식지다.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 수단 각종 제도 철폐해야 한다!” “회사는 우수반 포상제도, 6시그마 운동, 3-1스텝, Win21 이름만 다르지 그 내용상으로 볼 때 현장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 이 같은 제도들로 인하여 현장 조합원들 간의 경쟁심만 유발시키고, 동료들 간의 집단적인 반목을 유도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회사는 이러한 제도를 통해 감시와 통제를 극대화해오면서, 무원칙한 평가나 고과는 물론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도 무시하고 개인의 일상까지 감시, 통제하여왔다.”

 

노동조합은 이 같은 노동통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각종 제도의 철폐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으나, 회사는 오히려 집단적 경쟁요소를 도입하는 등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를 한층 가속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 노사협의회를 통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조합원의 힘을 모아 철폐투쟁에 나설 것이다.”

 

2001년 현대차 자본이 ‘6시그마 운동등으로 현장을 탄압할 때 냈던 노동조합 선전물이다. 그런데 마치 지금 나온 선전물 같다. 자본의 본질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차 자본은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생산과정·노동·노사관계 유연화를 추진하며 신경영전략을 실행했다. 그에 따라 현대차그룹 전 사업장에서 ‘6시그마운동도 강요했다. ‘고객의 관점에서 출발한다면서 품질강화에 모든 노동자와 노조를 참여시켜 현장을 통제하려 했다. 현장통제,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저항과 노동조합 무력화를 추구하는 전략이었다.

 

자본은 품질향상을 위한 연구개발비 투자, 노동조건 개선, 고용안정 대신 반대편에서 이러한 전략과 함께 비정규직 사용을 늘리고 모듈화, 외주화를 추진하며 이윤의 파이를 키워왔다. 생산성 향상과 품질을 나란히 놓아 오직 원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저하시키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데 의지했다. 작업명령이 아무리 고된 일이어도 고객이 안전한 차를 인도받을 수 있게 노동자만 최선을 다하라는 게 이제까지 자본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약 20년이 지나는 동안 계급적 노동운동이 후퇴하면서 2001년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현재 자본과 노사협조주의의 득세가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려운 문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에, 계급적 목소리를 모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조건과 책임

 

현대차 현장 노동자들은 품질 문제에 대해 작업자를 탓하며 얼마든 불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 어용 지도부에게 화가 났다. 왜냐면 현실적으로 너무 앞뒤가 안 맞는 가짜뉴스로 노사가 함께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노동자들이 수없이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 확대, 공정개선,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포함한 노동조건 개선, 부품단가 보장 등을 자본에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자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했고 이윤만 우선했다. 비용절감,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현장 정규인원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부품단가를 후려치고 외주화를 해왔다. 심지어 미숙련 일용직까지 생산에 투입하면서 품질을 팽개치는 짓을 우리는 봐왔다. 노동자들이 이런 횡포에 맞서 라인을 세우는 투쟁을 하면 저들은 사무직, 일용직, 관리자 등 미숙련 대체인력을 투입해 또 작업 불량을 발생시켰다.

 

그런데도 품질 문제에 근본책임이 있는 자본가에게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가 품질혁신 운동을 하자고 하니, 화가 나는 차원을 넘어 일할 맛이 안 나는 지경이다. 어용 집행부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이 말하는 품질비용이 연간 3조인데, 노조가 앞장서서 고품질운동을 하면 1조로 줄일 수 있으니 남은 1조는 연구개발에, 또 다른 1조는 분배정의에 쓰자는 거다. 55천 명이 넘는 원하청 노동자가 현대차의 품질을 망쳤나? 자동차 노동자들이 임팩트를 들고 조여야 할 볼트를 풀기라도 했단 말인가?

 

지부는 애써 증거를 댔다. “현장실사 결과 긁힘, 까짐, 먼지, 요철, 갭 단차발생, 도장불량 등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실소가 절로 나온다. 이미 수십 년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지적한 품질 문제는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 ‘생산기술맨아워라 불리는 자본이 정해놓은 높은 노동강도의 작업공정방식을 밀어붙이기에만 바빴다.

 

2014년에는 현대차의 설계와 부품 문제가 품질 문제의 85%를 넘게 차지한다고 했다. 나머지가 작업성 문제라 해도 공정품질을 포기하고 인원을 줄인 게 누구인가? 부품단가를 후려치고, 불법파견 비정규직도 모자라 촉탁계약직, 하루알바까지 만들고 맨아워 협의마다 고품질 안전작업 요구를 짓밟고 탄압한 게 누구인가? 애써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수많은 산업재해와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시킨 게 누구인가? 칵핏 모듈을 만드는 부품사 하청 노동자가 죽었는데 팰리세이드 생산중단 위기라고 난리를 친 게 누구인가? 현장 작업자의 권리를 맨 앞에서 요구한 노동자들을 해고시킨 게 누구인가? 혹여 몇 mm 긁힘, 까짐을 놓칠 수 있게 만들고, 다시 잡아내는 시스템을 버린 게 누구인가?

 

수십 년 땀 흘려 현대차를 만들어온 노동자의 권리는 몇 mm 긁힘, 까짐 정도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품질 문제의 근본 책임자인 자본에게 어떠한 면죄부도 주지 않았다.

 

낮은 연구개발비, 많은 리콜

 

현대차의 연구개발비가 다른 완성차업체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 수십 년째 반복됐다. 폴크스바겐, 다임러, 지엠, 혼다 등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용이 7~8%대에서 줄었는데도 최근 평균 5%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2%대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연구소부터 라인까지 인력을 충원하라는 요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 2010~2019 현대차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

연도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비율(%)

2.1

1.9

1.9

2.1

2.5

2.5

2.17

2.6

2.8

2.9

 

 

정부 통계에 의하면 현대차는 제작결함으로 인한 압도적 차량 리콜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의 리콜 현황은 이윤만을 목표로 한 자본의 실상을 보여준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부터 20196월까지 자동차 리콜 현황에 따르면 현대차는 해당 기간 판매대수 3852,084대 중 리콜대수가 2739,241대에 이른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총 4,922,990대를 리콜했다. 해당 기간 국내 판매대수는 11,061,981대로, 거의 절반 수준이다.(그림1 참조)

 

 

2019

현대자동차()

697,098

2018

현대자동차()

996,110

2017

현대자동차()

1,046,393

2016

현대자동차()

251,981

2015

현대자동차()

69,627

2014

현대자동차()

264,969

2013

현대자동차()

634,946

2012

현대자동차()

10,140

2011

현대자동차()

29,332

2010

현대자동차()

46,363

2009

현대자동차()

37,794

2008

현대자동차()

893

2007

현대자동차()

6,286

2006

현대자동차()

1,542

2005

현대자동차()

149,732

2004

현대자동차()

281,568

2003

현대자동차()

398,216

소계

현대자동차()

4,922,990

[그림1]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 현대차 리콜 현황 캡쳐

 

 

또한 <시사저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0~2017년까지 현대차가 리콜한 차종수는 무려 108, 기아차 80종으로 총 188(누적기준)이다.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 중 10종꼴로 해마다 리콜되는 셈이었다. 현대기아차 국내 리콜 장치별 비중 분석은 제동장치, 조향장치, 연료와 엔진장치, 에어백 등의 제작결함에 의한 것이었다.

 

20201~5월까지 현대차는 714,947대 리콜 조치를 받았다. 그중 94%672,226대가 제동장치(ABS/ESC모듈) 제작결함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에 따른 리콜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콜, 무상수리비 등에 쓰이는 현대차의 판매(품질)보증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8년에 11,386억원, 2019년에는 2,300억가량 늘어난 13,742억원을 썼다. 과연 자본에게 안전은 무엇인가?

 

완성차, 부품사 현장노동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자신과 가족, 지인이 타야 하는 차,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차량의 안전문제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 작업자가 미세한 제작결함을 잡아내긴 힘들지만 오랜 숙련노동은 설계자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조립 상의 미세한 오차도 잡아내는 능력을 길러낸다.

 

그런데 보통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선 공정 일부를 개선하거나 작업방법을 더 정교하게 하는 등 작업량이 늘어나야 한다. 인원이 더 필요한 문제가 되니 자본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연구소에서든 라인에서든 노동자의 문제 제기를 자본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리통제 대상자로 삼는다. 귀족노조라 비난하며 이윤을 위한 양보만 강요한다. 품질, 생산성 등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현장의 저항을 점점 무력화시킨다. 생산은 전적으로 노동자가 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는 그 생산과정과 방식에 아무런 권한도 없이 소외되고 억눌린다. 줄곧 그래왔다. 시스템이 노동자들을 수동화시켜 버린다. 안전한 차량 생산을 위한 노동자의 안전이 짓밟히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그럴수록 품질 문제는 악화된다.

 

비정규직 하청과 부품사 노동자에겐 초과착취 구조 속에 책임이 전가된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 크기가 커진다. 덕양산업 하청라인에서도 부품에 자기 실명을 확인해야 했고, 혹여 원청의 클레임이 생기면 다단계 하청 자본이 책임지라는 대로 어쨌든 책임져야 한다. 3차 부품사 하청업체 이주 노동자가 고무장갑도 한 켤레 못 받고 유독물질을 만지고, 기계에 청테이프를 붙이며 직접 고치는 일이 반복돼도 공장마다 좋은 품질간판이 빛났다. 그럴수록 품질 문제는 악순환된다.

 

부품사부터 완성차, 총무성(비생산 분야)까지 이어진 거대한 자동차산업에 노동의 권리가 제대로 구현된다면 노동자는 지금 같은 방식으로 차를 만들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 계급적 실천

 

앞으로 노동조합이 품질혁신 운동으로 노사상생을 하자고 하니, 현장에 강요된 고강도 노동으로 먼지하나를 더 털어낼지 모른다. 그만큼 더 많은 노동, 긴장과 피로, 스트레스와 낙담이 노동자를 잡을 것이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이, 1차 부품사보다 2·3·4차 부품사 하청이 더 많이 자본의 배를 불리는 도구인 근로자가 돼 고통을 떠안을 것이다. 차를 만드는 사람만큼 차를 타는 사람의 안전도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이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다.

 

이제 현장의 분노를 모아 노사협조적 작태에 대한 명확한 반대로, 민주노조다운 당당한 실천으로 이어가자. 노사협조주의 지도부가 날뛸수록 현장 노동자와 민주노조 투사들이 간직한 계급적 정신이 구분된다.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 투사들의 과제가 연결된다. 무엇을 실천하고 조직할지 토론을 시작하면서 안전한 일터에서 안전한 차를 만들 권리, 고귀한 노동의 걸음을 시작하자.

 

그동안 노동자들이 요구해왔던 내용을 더 강력히 요구하자. 추가로 연구개발비, 시설투자비 등 관련 비용 대폭 확충과 인원 충원, 정년퇴직자 인원만큼 품질관리 인원 신규채용, 현대차가 부품사 품질관리인원 채용 지원, 품질을 떨어뜨리는 노동강도 강화와 무차별적 전환배치 반대, 일용직과 사무관리직 대체인력 투입 금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기존의 요구와 결합해 외치자.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목소리를 현장에 적극적으로 내고 실천을 확장한다면, 땀 흘리는 노동의 자부심은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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