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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국공’ 사태, 자본주의의 공정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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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1,382회 2020-06-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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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무분별한 비정규직 양산에 저항하지 못하는 공정성의 논리

 

 

청년들의 분노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줄임말)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정규직 전환 중단을 요구한 청와대 청원은 628일 현재 256,000여 명이 동의했다. 자본가 언론은 때를 만난 듯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청년 구직자들의 사연을 연일 쏟아낸다. 문재인 정부는 가짜 뉴스 탓이라며 청년들의 불만을 달래려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20대 청년층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6353%에서 6441%로 일주일 만에 12% 급락했다.

 

625일에는 인천국제공항 정규직들도 공사의 직접고용 발표를 비판하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겉으로는 이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사회적 대의 자체를 반대하지는 못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건 공정성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거면 공개채용 절차를 진행하라는 것이다. 공개채용 없는 정규직 전환은 로또취업이며 특혜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이들의 분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을 난데없는 공정성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두 종류의 일자리

 

6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고용률(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55.7%1982년 통계작성 이래 최저치다. 20대 절반이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등을 제외하고 경제활동인구(취업자 + 취업할 의사가 있는 실업자) 중 실업자 비율을 따지는 청년 실업률도 10%대를 넘긴 지 오래다. 취업의 비좁은 관문을 향한 청년들의 생존경쟁은 실로 치열하다.

 

그런데 이들 앞에는 노동조건에서 서로 현저하게 구별되는 두 종류의 일자리가 놓여있다. 하나는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부모 세대의 전설이 된 오늘날,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된다는 것만으로도 공공부문 일자리의 매력은 흘러넘친다. 고용이 안정적이니 노조 조직률도 2019년 기준 68.4%에 이른다(반면 민간부문은 9.7%에 불과하다). 정부 예산과 연동된 제한된 수준이긴 하지만 매년 임금교섭을 통해 임금도 오른다. 조직문화도 좀 더 민주적이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운영된 사업장은 대부분 공공부문 사업장이었다.

 

그리고 이 대척점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일자리와 민간부문 일자리가 있다. 이 일자리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용 불안정성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생히 증언하듯이,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금만 자본가의 눈 밖에 나도 잘리기 일쑤다. 민간부문의 고용 불안은 더욱 심각하다. 고임금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대기업이라 해도 평균 근속연수가 11.3(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물론 가장 열악한 일자리는 중소 영세 사업장이다. 구조조정이 상시적인 작은 사업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임금 인상은커녕 임금체불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며, 고용이 불안하다보니 사용자의 갖가지 황당한 갑질도 횡행한다.

 

청년 구직자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에 민감하다. 이 때문에 등장한 사회적 현상이 이른바 취업 재수. 2016년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부들부들 청년>은 첫 직장을 민간부문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청년 노동자가 이후 괜찮은 일자리로 이직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걸 지적했다. 어느 구직사이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9년에 원하는 공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청년 구직자의 68.8%가 눈높이를 낮추는 대신 취업 재수를 선택했다고 한다. 청년들에겐 취업 삼수조차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노력의 대가는 달콤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의 상징과도 같다. 2019년 정규직 평균 보수 9,129만 원이 나타내듯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고용 안정성 외에 고임금까지 보장되는 신의 직장이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서 실로 엄청난 노오력없이는 입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청년들은 그 관문을 통과한 사람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지적하자, 그럼 김두관 의원도 보좌관과 동일한 임금을 받아라”, “K리거보다 연봉을 수십 배 받는 축구선수 메시는 불공정의 화신이라며 비아냥댄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명료하다. 누구나 자기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보상이 높은 직장이기에 그만큼 더 위험부담을 안고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닌가? 즉 노력의 정도에 따라 차별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정한경쟁이 이뤄져야 할 뿐이다. 그래서 나온 표어가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이다. 그러니 별다른 노력 없이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지고지순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사회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무임승차 웬 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

 

사실 인천국제공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의 이런 논리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데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교육공무직법 제정을 반대하는 데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된 것이다. (심지어는 청년 남성들의 페미니즘 혐오조차 공정성의 관점에서 제기된다.)

 

정말 그게 공정성일까?

 

우리는 청년층의 이런 주장이 오로지 자본주의 지배자들만을 이롭게 하는 허위의식, 한마디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왜 그런가?

 

첫째, ‘공정한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가 불균등하게 분배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동일한 출발선이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청년은 수년 동안 고시촌에서 공부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수년 동안 고시촌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2019<경향신문>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곧 스펙이냐는 질문에 82.5%가 부모의 스펙이 곧 자녀의 스펙이 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5년차 이상의 취업준비생들은 취업 시 집안 배경이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95.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를 붙잡으려는 이들은, 사실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허상을 붙잡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청년 구직자의 절대 다수에게 나쁜 일자리가 강요된다는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은 9% 선으로 OECD 평균(21.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민간 대기업 등을 합산하더라도, 압도 다수의 청년 구직자들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나쁜 일자리에서 경력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불만 자체가 그다지 현실 감각이 없다. 이는 마치 자신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압도적 다수였던 상민(常民)이 아니라 극소수에 불과한 양반의 일원으로 태어났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노동권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대신,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좋은 일자리로 진입하겠다는 각자도생의 신념이 공정한 경쟁논리의 민낯이다.

 

셋째, 비좁은 관문을 통과한 소수에게 차별적 보상이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뒤집으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다수는 무권리 상태로 방치돼도 괜찮다는 차별의 논리가 속살을 드러낸다. 바로 자본가들이 모든 노동자의 뇌리에 주입하기 위해 애쓰는 그 논리 말이다. 자본가의 이윤은 기업가 정신에 대한 보상이며,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그들의 시장 가치에 따른 것뿐이라는.

 

그러나 그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정불변의 현실인가? 노동조합이 없는 90%의 노동자는 변함없이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으며, 사용자의 일상적 인격모독을 언제나 감내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노동자투쟁의 역사는 자본가가 주입한 순응과 체념의 논리를 계급적 단결로 깨뜨리고 노동의 권리를 쟁취해 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의 특권을 옹호하는 공정한 경쟁의 논리는 그 자체로 이 사회의 불공정성을 정당화하려는 자본의 논리와 직결된다. 노동자 투쟁을 통한 현실 변화의 가능성에는 눈 감은 채 말이다.

 

진짜 불공정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한 해 4,748억 원을 배당받았다고 한다. 산송장 노릇을 하면서도 하루에 13억 원씩 입금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인 보안검색 노동자가 십수 년 동안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아오고, 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연봉이 3,600만 원 선에 그치는 것과 비교해보자.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이거야말로 현기증 나는 불공정성이 아닐 수 없다.

 

자본가들은 정년도 없다. 오직 생물학적 수명이 정년일 뿐인데, 그마저도 갖가지 편법을 통해 막대한 부를 대물림한다. 그런데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항 운영에서 꼭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1년짜리 근로계약서를 쓰고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공정한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1,000조 원에 육박한다. 재벌 곳간에 쌓아둔 사내유보금의 단 1%(10조 원)만 헐어내도 연봉 5천만 원짜리 청년 노동자 20만 명을 즉각 고용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재벌의 곳간이 차고 넘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생활고 때문에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멈추지 않는다. 왜 이러한 불공정성은 지적되지 않을까?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공정성과는 양립할 수 없는 체제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의 귀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고타 강령 비판>). 즉 자본주의에서 물적 생산조건은 자본 소유와 토지 소유의 형태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분되는 반면에, 대중은 인적 생산조건인 노동력의 소유자일 뿐이기 때문에 이 현기증 나는 불공정과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공정성은 자본과 노동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불공정성을 정당화하고, 노동자계급 속에서 분란과 분열을 도입하려고 자본가계급은 경쟁의 논리를 퍼뜨린다. 이런 경쟁 논리를 수용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지배자들을 이롭게 할 뿐이다.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김수영의 시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청년들에게 노동자 단결의 길을 보여주자

 

물론 노동자운동은 인국공 사태에서 드러난 청년층의 절박한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 단결의 원칙을 저버린 채 조합주의적 실천에 머무른다면, 청년세대는 결코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등장할 수 없을 것이다.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자운동은, 청년들에게는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훼손하는 무임승차 운동으로밖에는 안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분노를 달리 조직하자. 청년에게 각자도생의 길이 아니라 노동자 단결의 길이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예컨대 공공부문에서는 총액임금을 정해놓고 그 범위 내에서만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반목시키는 총액임금제를 폐기하는 투쟁이 필수적이다.

 

또 공공부문에 비해 열악한 민간부문 일자리의 노동권을 대폭 끌어올려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축소하고 계급 단결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의 특권을 해소하고 민간부문의 평균적 노동조건으로 복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자는 공리공담을 늘어놓는 대신에 말이다.

 

노동자운동이 단결 투쟁으로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경험적 확신을 청년들에게 심어준다면, 지금은 공정한 경쟁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청년층 역시 새로운 투쟁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 특히 공정한 경쟁을 큰 목소리로 부르짖는 청년들의 뒤쪽에는, 자신의 처지에 체념한 채 침묵하는 다수의 청년들도 있다. 80%가 넘는 그들, 이른바 경쟁에서의 패배자들이 자본주의가 심으려 하는 패배주의와 열등감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하자. 그깟 시험에 통과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자.

 

80%의 다수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고 그들과 함께 어깨 거는 것, 바로 그것이 노동자운동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들과 함께 실질적인 노동자 단결 투쟁을 조직해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불공정성에 정면으로 맞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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