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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주의 강령(下) 퇴보하는 노동조합과 오늘날의 이행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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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4,313회 2020-06-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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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노해투

 

 

오늘날 노동조합의 운명

 

오늘날 이런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자본주의 상승기에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내걸고 노동조합은 번성했다. 어느 정도의 개량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상황, 즉 자본주의의 지불능력이 역설적으로 노동조합의 생존을 보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조합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노동조합이 내거는 최소한의 필수적 요구조차 쇠퇴하는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본주의 쇠퇴에 따라 지불능력이 줄어들고, 이윤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자본가계급은 노동조합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하면서 질식시키고 있다. 자본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는 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임금과 고용조차 제대로 보장하기 어려운 상태로 내몰린다.

 

그에 따라 노동자혁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노동조합관료층이 내거는 요구조차 그들의 개량주의적 면모와 무관하게 혁명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전체 노동자대중, 심지어는 조직된 조합원들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내거는 부분적 요구조차 자본주의가 결코 수용할 없는 전투적, 혁명적 요구로 (노조관료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둔갑해버린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노조관료들이 노동조합에서 내거는 요구는 분명히 개량주의적 한계 속에서 제기하는 요구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려 하는 순간, 그것은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급진적 요구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가령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오늘날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최소한의 기본 요구다. 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쇠퇴와 이것이 격화시키는 경쟁의 압력 때문에 더욱 악랄해지고 호전적으로 변해가는 착취자들과 정면으로 충돌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쇠퇴는 자유로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를 전면화하는 것이 불가피한 단계로 진입해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내거는 것만으로도 자본주의의 압력에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혁명적 투쟁으로 전진하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그들은 최대강령, 즉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을 부정하면서 오직 소심한 개량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물결은 개량적 노조관료들이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파괴해버린다. 자본의 지불능력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자본가계급은 타협보다는 결사적인 공세를 선택한다.

 

그 결과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의 이상향인 타협과 합의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진다. 대개의 경우, 합의로 포장된 공간은 사실상 노동자에 대한 학살에 협력한 대가로 한줌 노조관료들의 지위와 특권을 보장해주는 밀실협상의 공간일 뿐이다. 하인처럼 자본주의에 굴종할 것인지, 사자처럼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으로 전진할 것인지라는 양자택일의 비정한 선택지만 남는다.

 

결국 혁명적 투쟁, 반자본주의 투쟁을 겁내고 자본의 지불능력에 갇힌 노조관료들은 자기 회사 사장, 자기 나라 자본가국가의 번영과 경쟁력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갈수록 줄어드는 자본가의 지불능력을 보존하고자 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노동조합은 다수 노동자를 대변하는 계급적 기관으로 전진하기는커녕 자본가들의 좁아지는 지불능력에 비례해 아주 좁은 범위의 노동자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조합주의 기구로 찌그러든다.

 

이러한 노조관료층의 손에 장악된 노동조합은 전투적, 민주적, 계급적 노동자조직으로 발돋움해 노동자계급을 단련시키는 위대한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 노조관료층의 수중에서 노동조합은 타협적, 조합주의적 기구로 전락하며, 자본과 정부의 2중대처럼 비굴해진다. 이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대중과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의 신뢰와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노동조합은 고용과 임금이라는 기본 요구조차 과감히 투쟁으로 대변하지 못한 채 갈수록 수세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노동조합의 위신은 하락한다.

 

조합원들은 무력해지는 노동조합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투쟁없는 노동조합에 염증을 느낀다. 조합원대중의 불만이 커지고, 이것으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지켜온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관료주의 질서를 안착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성이 노조 상층부에서 확산된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관료적 지도자로 확실히 전락하고, 이렇게 노동자 민주주의가 말라가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대중의 참여와 통제력은 허물어진다.

 

다른 길

 

이처럼 오늘날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퇴보의 배경에는 트로츠키가 얘기한대로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도사리고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2중대인 관제 노동조합으로 전락하도록 노동조합에 압력을 미친다.

 

하지만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노동조합운동에 미치는 압력에는 그런 압력만 있는 게 아니다. 정반대의 압력도 미친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노동조합이 진정 자신의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이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하도록 강한 압력을 행사한다. 진정으로 모든 해고를 박살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려면, 또한 비정규직제도를 없애려면 자본의 지불능력 따위에 갇히지 말고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길밖에 없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의 지불능력과 자본주의 체제의 압력을 뚫고 노동조합의 절실한 투쟁강령을 실천으로 옮기는 운동을 통해서 노동조합을 회생시킬 수 있다. 노조관료들이 말로만 얘기하는 노동조합의 기본 요구들을 행동으로 구현하면서 끝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투쟁 속에서 노동조합의 앞길이 열릴 수 있다.

 

비정규직 철폐, 모든 해고 금지, 생활임금 쟁취, 중대재해처벌 특별법 제정 등 오늘날 한국의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진실로 그것을 실현하려는 투쟁과 연결된다면, 이행강령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맞장 뜨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이윤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고서는, 자본가국가의 억압에 맞서 노동자 총단결로 맞받아치지 않고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서 사회주의로 진격하지 않고서는 결코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서 다음의 질문이 나온다.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에 맞서고자 하는 혁명적 투사들, 나아가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혁명적 전망으로 무장한 투사들만이 그런 행위에 단호하게 나설 수 있다. 자본주의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노동자의 요구를 진실로 실현하려는 노동조합의 전투적 투사들과 평조합원들 또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어 세력화해야 한다. 그래야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얽혀 함께 쇠퇴하는 오늘날의 노동조합을 진실로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고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위대한 노동자조직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당연히 이 노동조합은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깃발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오늘날의 이행강령 노동조합을 되살리자!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을 확대하자!

 

혁명기가 아닌 준비기에 노동조합은 노동자대중의 고유한 투쟁기구로 전면에 부상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쇠퇴 시기에 노동조합의 사활적인 기본 투쟁강령은 이행강령의 요구와 중첩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 강령은 전투적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 안는 것과 뗄 수 없이 연결된다. 전투적 노동조합의 요구들과 분리된 채, 즉 당면 계급투쟁의 실제 요구들과 분리된 채 무언가 사회주의적인 것 같은 멋진 차별적 요구들을 고안하려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 강령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이다.

 

개량주의 관료들에 맞서 노동조합을 되살리자!’는 깃발은 사회주의 강령의 필수적 한 부분이다. 이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평조합원 투쟁전략이 절실하다. 반자본주의의 깃발 아래 노동조합의 전투성, 민주성, 계급성을 수호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전진시키려는 모든 진지한 투사들을 관료체계에 맞선 투쟁 속에서 결집하는 평조합원전략만이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렇게 성장하는 평조합원운동은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의 굳건한 기초가 되며, 나아가서 노동자평의회 같은 노동자권력의 토대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최대강령과 이행강령의 갭이 좁아지는 역사적 과정은 이렇게 평조합원운동 전략을 통해 조직적 형태로 구체화된다.

 

사회주의 강령은 이러한 평조합원 투쟁의 요구를 반영하는 실천강령과 하나로 결합해야 하며, 그것을 더욱 일반화하고 정치화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은 조합원들의 압력에 떠밀려 비정규직제도 철폐나 모든 해고 철폐 등의 요구를 노동조합 깃발에 새겨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기본 요구에 대해서도 개량주의 관료들은 마음 속으로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현불가능한 요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의 지불능력 저하와 경쟁격화의 부담을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에 짐 지우려 하거나 해고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대충 때우려 한다.

 

이에 맞서 사회주의 강령은 비정규직 철폐,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임금삭감이나 동결 반대, 노동강도 강화 반대 등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요구이지만 이제는 자본주의에 맞선 전투적 투쟁 속에서만 사수할 수 있는 이행적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대변한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조직이 내거는 이행강령의 핵심은 미조직 노동자를 포괄하는 계급투쟁 강령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야 가장 가난한 노동자층을 노동조합운동으로 대대적으로 인입할 수 있고, 전체 노동자계급이 단결하는 노동자평의회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이행강령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넘어서서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를 포괄하는 단결 요구를 노동조합운동 속으로 확장해야 한다.

 

사회주의 강령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공동요구 대신 단사 조합원의 이익만을 협소하게 대변하는 조합주의적 요구를 최소화할 것이다. 가령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교통비 등에 해당하는 임금을 단사 차원의 투쟁요구로 좁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를 하나로 연결하는 노동자계급 단결투쟁강령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사회적 무상교육, 사회적 무상의료, 사회적 무상주거를 내건 노동자 공동투쟁강령 및 이러한 재원을 개별 자본가를 넘어서서 전체 자본가계급이 책임지게 하는 강력한 누진세, 법인세 대폭 인상, 사내유보금 강력 과세를 요구하는 공동투쟁강령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은 조합주의적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개별 자본가의 지불능력에 끌려다니는 위험을 벗어나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촉진할 것이다.

 

오늘날의 이행강령 자본가정부와 자본가정당들로부터 노동조합의 독립성을 수호하자!


오늘날 사회주의 강령은 자본가국가와 자본가정당들로부터 노동조합의 정치적 독립성을 사수하자!’는 요구를 대변한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국가와 대자본의 결합은 더욱 강력해진다. 대자본의 영향력은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사이의 결합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모든 노동자투쟁을 정치투쟁으로, 그리고 독점 대자본에 맞선 단결투쟁으로 확대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는 개량주의 관료층은 그 두려움을 두 가지 대응방식으로 드러낸다. 하나는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을 회피한 대가로 정부, 대자본과의 결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수 노동자계급을 버리고 정부와 대자본가의 품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심지어 대자본가마저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경쟁의 압력과 지불능력의 저하 앞에서 자본가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대자본가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기구들에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이 집착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그들은 자본가정당의 왼쪽날개로 전락하고 있는 개량주의 정당들을 동원해 이러한 사회적 합의기구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거간꾼 역할을 맡기고자 한다. 그 결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위대한 깃발은 개량주의 정당들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로 더럽혀지고,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은 파괴된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투사들과 단결해 이걸 뚫어내야 한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뛰어넘어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에 기반한 정치투쟁으로 노동조합이 전진하게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정치적 전진의 기지가 되고, 나아가서 전투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노동자계급정당의 대중적 거점이자 토대로 작동하게 이끌어야 한다.

 

사회주의 강령은 이러한 노동자계급 단결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나아가는 가교를 제시해야 한다. 평조합원의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의 망을 조직하는 것, 개별 경제투쟁을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동요구를 대변하는 투쟁으로 확장하고 일반화하는 것, 정치투쟁 요구와 경제투쟁을 긴밀히 연결하는 것, 자본의 지불능력의 굴레를 뚫고 국유화 투쟁강령과 같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강령을 전진배치하는 것 등이 기본 요소다. 또한 사회주의 강령은 원청 사용자성 인정, 대기업 원하청 노동자 총고용보장 같은 노동조합 투쟁요구를 전진배치하고, 이것을 위한 진지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자본가와의 타협이 아니라, 대자본에 맞선 노동자 총단결투쟁의 확대를 꾀하고, 대자본가들을 비호하는 자본가정부와의 정치투쟁도 전면화할 것이다.

 

나아가서 사회주의 강령은 급진 민주주의 요구를 통해, 노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조직의 결성과 투쟁의 자유를 쟁취할 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과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조직적 거점이 되도록 노동자조직들에게 요청할 것이다.

 

모든 노동조합의 투쟁권, 교섭권을 보장하는 요구들, 가령 복수노조 교섭권, 쟁의권 보장 요구들이나 전교조, 공무원노조 완전 합법화 요구들은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구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요구도 노동조합 조직화 권리와 연결된 필수 요구다. 노동법 관련 사안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고 노동자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특별수사처 도입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연장선에서 보편화할 수 있는 급진 민주주의 요구가 될 수 있다.

 

계급투쟁 조직화, 거기에 사회주의 강령의 참된 의미가 있다

 

이런 사회주의의 당면 투쟁강령에 대해 그것은 노동조합의 식상한 투쟁요구의 재판이지 않느냐 하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다. 물론 위에 열거된 요구는 사회주의자들이 새롭게 고안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노동조합운동에서 이미 제기된 요구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당면 투쟁강령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노동조합을 비롯해 노동자 민중의 조직들이 제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이 기본 요구들이 단순히 준비기 요구로서만이 아니라 이행강령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강령을 중심으로 앞에서 다룬 사회주의자들의 당면의 핵심적 투쟁강령들은 준비기 과제만이 아니라 이행강령의 문제의식이 결합된 요구들이다. 이것은 당장의 실현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최대강령을 향하는 다리를 놓기 위해 배치된다. 즉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의 혁명투쟁 의식과 혁명적 결단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제기된다. 모든 당면 투쟁의 요구는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전투력을 발전시켜야만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나아가서 그런 요구의 완전하고도 영속적인 실현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항상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의자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당면의 계급투쟁과 근본적 혁명 요구 사이의 다리를 놓을 것이다. 반면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은 개량주의 당들과 협력하면서 최대강령과 노동자투쟁의 연결고리를 파괴하려 노력한다.

 

나아가서 노동조합관료층이 내거는 요구와 사회주의자의 요구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한 기본 요구들을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조직의 실제 투쟁요구로 밀고 나가느냐의 문제다. 관료층은 립서비스만 한 뒤, 그런 요구를 내건 단호한 노동자투쟁을 거부함으로써 그 사활적 요구들을 껍데기로 만들어버린다. 반면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요구들을 평조합원운동을 매개해 노동조합의 진정한 투쟁의 요구로 끌어올리고자 실천적으로 분투함으로써 그 요구들에 참된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단결투쟁 요구를 전진배치하면서, 노동자조직의 투쟁 요구를 일반화하고 확장하기 위해 분투한다. 반면 노동조합관료층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립서비스에만 머물면서, 실제로는 조합주의적이고 협조주의적인 배신행각에 몰두함으로써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조직이 자본가국가와 자본가정당들로부터 절대적 독립성을 지킬 수 있도록 분투한다. 반면 노동조합관료층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립서비스 뒤에 숨어서 자본가국가에 대한 협조주의와 타협행각에 몰두하면서 노동조합의 정치적 독립성을 송두리째 헌납한다.

 

이러한 실천에 의해, 즉 실제 계급투쟁을 조직하려 하느냐에 의해 노조관료층, 개량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당면 투쟁강령에서 가장 명확한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당면의 대중적 투쟁요구들을 실질적인 계급투쟁으로 전진시키고, 나아가서 이것을 사회주의 최대강령으로 향하는 다리로 작동시키려는 분투 대신에 그런 요구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요구를 고안하는 데 몰두하는 것은 사회주의 강령이 역사적으로 지켜왔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강령의 문제의식은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전술 및 계급투쟁과 긴밀히 연결된 투사들의 투쟁정당이라는 조직노선과 하나로 엮일 수밖에 없다. 강령, 전술, 조직의 세 박자가 맞물려야 사회주의 강령의 참된 의미가 살아난다.

 

이런 의미의 당면 사회주의 투쟁강령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해서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당장의 낮은 계급투쟁 단계에서는 부분적 요구투쟁과 최대강령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투쟁에서 이행강령의 정신에 기반한 선전 선동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선진부대를 사회주의 최대강령, 즉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향해 목적의식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대중적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밑바탕을 체계적으로 다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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