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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주의 강령(上) 최소강령, 최대강령, 이행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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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362회 2020-06-1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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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개량은커녕 노동운동이 그동안 획득했던 기본적인 권리마저 강탈한다.(사진_노해투)

 


강령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회주의자들은 없을 것이다. 강령은 사회주의자들의 기본 견해를 정식화할 뿐만 아니라 당면의 정치적, 실천적 과제를 명확하게 해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선전 선동의 윤곽을 제시하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선동을 총체적인 사회주의적 선동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다스의 강령보다 현실 운동의 한 걸음이 보다 중요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 얘기를 제일 먼저 한 사회주의자는 다름 아닌 마르크스였다. 사회주의 강령의 정식화에 그토록 매달렸던 마르크스가 이 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강조한 것은 현실 운동과 분리된 사회주의 강령이란 강령의 참된 의미를 다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강령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 운동의 전진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당 건설 논의가 등장한 지금, 강령의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의 실천과 연동해 재차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강령 토론은 강령 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실천적 의미를 띤다. 1980년대 강령 논의는 주로 군사독재에 맞서는 민주주의 과제를 둘러싸고 진행됐다. 특히 주의할 점은, 당시에는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었을 뿐이므로 노동자투쟁과 연계한 강령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오늘날 강령 논의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개된다. 우선 과거에 사회주의자로 자칭했으나 사실상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에 불과했던 세력들은 이제 사회주의의 탈을 벗어던지고 민주당 같은 자본주의 정치세력의 일부로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역사적 검증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지향을 명확히 하는 세력들이 구별 정립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사회주의 강령이 밝혀주어야 할 실천 방향의 핵심인 노동운동 속에서의 사회주의자의 실천 윤곽을 중심으로 강령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주객관적 토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동안 노동운동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상당한 대중적 확대를 이룩했고, 노동운동이 전체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정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상승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운동의 대중적 투쟁요구와 사회주의 강령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고 있다. 주체적으로 볼 때도 오늘날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향해 이제 갓 발걸음을 뗀 지식인 초심자들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운동 속에서 상당한 실천경험을 축적하고 있고, 대중적 노동자투쟁에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축적하고 있다.

 

이상의 요인들은 책상 속의 한 다스의 강령이 아니라, 현실 운동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현실 운동의 전진을 목적의식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사회주의 강령 토론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강령 토론은 실천의 주요 영역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우선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속에서 강령 문제를 검토하는 데서 출발해보자.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공산당선언>)부터 제2인터내셔널의 강령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강령은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두 축으로 구성됐다. 최대강령은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표로서 공산주의와 그것에 이르는 역사적 징검다리로 사회주의(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다룬다. 모든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동소유로의 전환을 통한 착취체제 철폐에서 시작해 상품생산의 폐지, 능력에 따른 생산과 필요에 따른 분배를 통한 공산주의적 사회체제로의 도약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대전환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조건인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노동자권력 수립)을 다룬다.

 

최대강령은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본 골격에서 변화가 없는, 세계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규정한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역사적으로 축적됨으로써 그러한 일반적 강령이 구체화되는 일련의 발전 과정이 있었지만,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가령 마르크스가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이라고 추상적 개념으로 표현했던 강령은 이후 파리코뮌을 거치면서 코뮌 유형의 노동자국가로 구체화됐고, 이후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는 소비에트 유형의 노동자국가로 한 층 더 발전했다. 이처럼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최대강령의 본질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최대강령의 핵심을 수정하거나 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대강령만이 사회주의 당의 강령을 장식했던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반영했던 최대강령과 나란히, 최소강령이 존재했다. 최소강령은 노동운동이 투쟁해야 하는 주요한 당면 요구들을 담고 있었다. 최소강령은 최대강령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최대강령이 자본주의 체제와 정치적, 경제적으로 양립불가능한 혁명적 목표를 담았다면, 최소강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가능한 요구들까지 포함한다. 가령 8시간 노동제 쟁취, 산업재해에 대한 자본가의 책임 규정, 청소년의 과도한 노동 금지, 법정 최저임금 보장 같은 요구가 최소강령에 포함됐다.

 

최소강령의 문제의식은 이랬다. 당장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준비단계에서, 최소강령이 담고 있는 부분적 요구들을 내건 일상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부단히 단련함으로써 최대강령을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단계로까지 노동운동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생존조건을 개선함으로써 노동자의 정신적, 육체적 퇴화를 막고, 이렇게 축적된 에너지를 사회주의적 의식과 조직화의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노동자권력과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결정적 수단인 계급투쟁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최소강령의 구체적 측면은 결국 사회적 계급대립 및 노동운동의 역사적 발전 수준에 연동해 끊임없이 변화했다. 노동운동이 아직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조차 획득하지 못했던 봉건적 상황에서는 최소강령의 상당 부분은 자본가계급과의 일시적 동맹을 통해 급진적 민주주의 혁명을 추동하는 데 할애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래야 민주적 권리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을 대중화하고, 나아가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선명한 계급적 대립으로까지 뻗어가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런 시기에도 사회주의 당의 최소강령은 노동운동이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특별하게 강조했다.

 

노동자투쟁과 조직력이 강화됨에 따라 최소강령이 반영하는 당면의 부분적 투쟁의 요구도 끊임없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노동자투쟁의 압력에 떠밀려 자본가계급이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요구하고, 둘을 양보하면 넷을 요구하는 식으로 이 최소강령은 단호한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이 자신의 투쟁력과 조직력, 자신감을 발전시켜나가고, 자본가계급에 대항한 비타협적 투쟁정신을 고취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것이었다.

 

정리하면 자본주의 초기, 즉 세계 노동운동의 여명기에 사회주의 당의 강령은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의 구분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부단한 부분적 요구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권리를 획득하고, 투쟁력과 조직력, 자신감, 결속력을 발전시켜가면서 노동자계급을 단련하라!”가 최소강령의 문제의식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운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오직 사회주의 노동자혁명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됐다. 그 목적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최대강령이 담당했다.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의 구분은 아직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역사적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 즉 노동자 사회주의 혁명은 먼 미래의 과제로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 따라서 당장에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은 미래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주체적으로 단련되면서 준비하는 것이라는 점을 반영했다.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사이의 모순, 그리고 이행강령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은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와 당면 요구 사이의 간극을 반영한다. 이 모순은 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짐에 따라 오히려 더욱 격화하는데, 최소강령의 역사적 의의 자체가 이미 이 모순의 격화를 예고한다. 최소강령의 목적은 최대강령과 자신 사이의 간극을 부단히 좁혀감으로써 자신을 폐지하고 최대강령(사회주의 혁명)이 역사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 앞에서 점진적 개량주의자들은 최대강령을 단순히 먼 미래의 이상적 목표로 간주하면서 최소강령의 실현에만 노동운동을 묶어두려 했다. 끊임없는 점진적 진보 자체가 운동의 목표가 되고, 최대강령이 의미하는 혁명적, 질적 도약은 사실상 망각됐다. 베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점진주의적 개량주의가 바로 이 경향을 대표했다. 노동조합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굳건한 동맹을 형성했다.

 

반면 카우츠키를 비롯해 제2인터내셔널의 중심적 지도자들은 이런 점진주의에 반대하면서 언젠가 준비적 단계를 지나면 혁명적 단계가 찾아올 것이고 그 시기에는 최소강령이 아닌 최대강령이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최소강령이 제기된 원래의 정신을 옹호했는데, 그것은 두 축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항상 최대강령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상기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소강령을 사소한 개량 획득 수준을 넘어서서 대담하고도 단호한 계급투쟁 방식으로 쟁취하도록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사이의 역사적 간극을 극도로 좁히면서, 최대강령이 반영하고 있는 혁명적 과제를 역사의 전면에 밀어 올리는 분기점이 찾아왔다. 바로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닥친 세계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국면이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했다. 오직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는 것만이 인류와 노동자계급을 구원할 수 있었다. 노동운동은 이제 최소강령에 머물지 않고 과감히 최대강령의 실현을 향해 진격해야 했다. 준비기의 과제에서 혁명기의 과제로 도약해야 했다.

 

그것을 뒷받침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세계 노동자계급의 결단과 투쟁이었다. 이 혁명적 에너지는 최소강령의 준비적 요구에 결코 갇혀서는 안 되고, 최대강령의 혁명적 요구로 상승해 결실을 맺어야 했다. 이것은 이전 시기의 최소강령을 뛰어넘는 새로운 강령을 사회주의 당에 요구했다. 이행강령이 그것을 반영했다.

 

이행강령은 통상적인 최소강령과는 분명히 다른 급진적 강령이었다. 이행강령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실현가능성 따위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 최소강령이 담고 있던 투쟁의 수준도 전면적으로 뛰어넘어버렸다. 두 가지 요소가 그것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전투능력이 급격히 고양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할 만큼 충분한 자신감과 전투능력을 보여줬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위기와 제국주의 세계대전이라는 토대였다. 이것은 절실한 생존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도록 밀어붙였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 이행강령은 과거의 최소강령과 견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계급투쟁을 촉발하는 급진적, 반자본주의적 요구를 대폭 반영했다. 그 결과 이행강령은 순수한 최대강령과는 여전히 상당한 차이를 가졌지만, 최대강령이 반영하는 사회주의적 요구를 상당 부분 내포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행강령은 그런 요구를 내건 투쟁이 필연적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적 결론(최대강령)을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가리켰다. 그 점에서 이행강령은 기존 최소강령을 대신해, 최대강령과 당면의 노동자투쟁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준비기의 과제를 넘어서서, 노동운동을 사회주의 혁명투쟁의 단계(최대강령 실현 단계)로 이동(이행)시키는 역사적 의미를 띠었던 것이다.

 

모든 은행의 몰수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기간산업의 국유화, 모든 주요한 산업에서 노동자조직에 의한 산업통제, 경찰·군대·관료제 폐지,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모든 외교비밀 철폐, 회사 회계장부 공개, 모든 토지 국유화, 필수적인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야간노동 철폐, 즉각적인 전쟁 중단과 강화조약 체결 등 레닌이 ‘4월 테제에서 제기했던 주요한 요구들은 이행강령의 출발점이었다. 이 요구들은 통상적인 최소강령을 뛰어넘어, 오직 노동자혁명과 권력장악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향하는 이행의 요구를 집대성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행강령을 통해 사회주의 당은 최대강령을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당면의 노동자투쟁이 나아가야 할 실제 과제로 노동자계급 앞에 정면으로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점진주의, 최소강령주의에 반대하면서 언젠가 혁명적 시기가 다가오면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에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던 카우츠키 같은 제2인터내셔널의 다수 지도자들은 그런 역사적 시기가 실제로 열리자 약속을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그들은 그동안 반대했던 베른슈타인의 점진주의 논리를 채용하면서, 최소강령 수준에 사회주의 운동을 제한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최소강령은 설 자리가 없었다. 전면적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사회주의 아니면 야만적 제국주의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은 최소강령에서도 한참 후퇴해,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협조하는 데까지 타락해버렸다.

 

물론 이행강령의 의미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했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운동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끄는 투쟁강령으로 기능했던 이행강령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허약했던 나라들에서는 다른 역할까지 떠맡았다. 개량주의, 중도주의 세력이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나라들에서 혁명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계급의 최선진 부위가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으로 빠르게 조직돼야 했다. 그 결정적인 수단은 혁명적 계급투쟁이었다. 당면의 혁명적 계급투쟁과 맞물린 이행강령을 제시함으로써 트로츠키는 이들 나라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 층 속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당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

 

이 시기에 이행강령은 즉각적인 혁명투쟁의 요구이기 이전에,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선진부위를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을 향해 이끄는 징검다리로서의 요구였다. 이것을 통해 전투적 선진부위를 사회주의 최대강령의 문 앞까지 이끌게 된다면, 이행강령은 전체 노동자계급을 혁명을 향해 이동시키는 징검다리라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었다.

 

사회주의 강령과 계급투쟁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으로, 나아가서 이행강령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강령의 역사에서 기본 정신은 있는 것있어야 할 것이라는 두 끝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있어야 할 것’(최대강령, 사회주의)을 향해 있는 것’(현재의 노동운동)을 밀어 올리는 것이 연결의 핵심이다. 둘 중 어느 한 끝을 놓쳐버리는 것은 사회주의 강령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강령은 계급투쟁과 연결될 때만 비로소 참된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망각하면, 사회주의 강령은 사회주의를 향한 인간의 운동, 즉 실천을 이끄는 수단이 아니라 지식인집단의 추상적 교육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방대한 노동자계급을 향한 대중적 교육은 계급투쟁과 긴밀히 연결된 강령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 세계 사회주의 운동이 사회주의 목표를 집대성한 최대강령에 자신의 강령을 제한하지 않고 최소강령과 이행강령으로 뻗어나갔던 결정적 문제의식은 바로 그것이었다.

 

최소강령 및 이행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놓인 간극, 그리고 이 간극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해결하는 수단은 바로 운동 그 자체, 즉 계급투쟁이다. 최소강령과 이행강령에 접근하는 데서 핵심은 바로 이 계급투쟁을 촉발하고 전진시키는 유의미한 수단으로 강령이 작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최대강령주의로 전락하게 되며, 현실의 투쟁에서 등장하는 당면 투쟁강령을 순수한 최대강령과 단순 대비하면서 그 한계를 비판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 강령의 진정한 본질에 깊이 착목한다면, 최대강령만이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다리를 놓는 당면 투쟁강령을 계급투쟁의 전진과 연결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와 오늘날의 강령

 

이러한 사회주의 강령의 기본 정신으로 오늘날 한국에서의 강령 문제에 접근해보자.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여전히 준비기의 과제에 머물러 있다. 한국 노동자계급이 당장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최대강령을 실현할 준비가 돼 있다거나, 그것이 당면의 직접적인 투쟁요구로 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주의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얼핏 기계적으로 접근하면, 준비기의 과제 앞에 등장했던 최소강령의 문제의식이 오늘날 한국에 당분간 적용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일면적이다. 운동의 주체적 측면만 고려한다면 준비기의 과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소강령이 대두됐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자본주의와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결정적 차이는 계급투쟁에도 커다란 질적 차이를 각인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

 

최소강령의 문제의식이 등장했던 과거 자본주의의 상태는 성장하는 자본주의였다. 당시 자본주의는 청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이 체제는 잔인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진보를 견인하고 있었다. 노동운동은 착취에 맞선 투쟁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단련하고, 단결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미래의 결정적 전투를 준비해야만 했다. 최소강령은 그런 시대의 과제를 반영했다. 아직 자본주의와 정면대결은 아니었지만, 일련의 부분적 투쟁 속에서 미래의 결정적인 대결을 감행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는 데 필요한 투쟁 요구들이 최소강령에 반영됐다. 이처럼 준비기의 과제를 반영하는 최소강령의 정신은 당연히 오늘날 우리가 계승하고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자본주의는 성장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쇠퇴하는 자본주의다. 이 체제는 과거 청년기와 달리 개량을 선물할 수 없다. 개량은 고사하고 노동운동이 그동안 획득했던 기본적인 권리들을 파괴하고 강탈하며, 노동자계급의 삶을 더욱 위태로운 상태로 내몰아야만 버틸 수 있는 반동적인 체제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쇠퇴기의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절실한 당면 생존의 요구와 혁명적 투쟁 사이의 간극을 아주 좁혀버렸다. 노동자대중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당면 투쟁 요구조차, 만일 그것을 진실로 쟁취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으로 격돌하고 나아가서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진격하는 것을 결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이행강령이 등장했던 시대적 배경과 맞물린다. 당면의 절실한 노동운동의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결사적 투쟁이 최대강령(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수립)을 향한 혁명투쟁의 다리를 놓는 객관적 상황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최소강령과 이행강령을 구분해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하나로 종합하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강령 문제에 접근하도록 요청한다. 즉 오늘날 자본주의가 도달한 역사적 단계에서는 최소강령이 담고 있던 준비기의 과제와 이행강령이 담고 있는 이행의 과제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종합하는 방식으로 당면의 투쟁강령에 접근해야 한다. 절실한 생존의 요구를 내건 노동자투쟁이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단련과 함께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으로 뻗어나가는 다리가 되게 이끌 수 있는 투쟁강령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단련이 성장함에 따라, 고유한 의미의 이행강령의 면모가 더욱 지배적으로 부각되는 방향으로 당면 투쟁강령을 상승시켜 나가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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