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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다 - 대기업 정규직 임금동결과 사회연대기금 제안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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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5,269회 2020-06-1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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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했다. 명분은 노사 고통분담을 통해 고용과 경제위기를 함께 극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협조주의 관점에 매몰될 게 아니라 계급 대 계급 관점으로 투쟁을 조직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협조주의 행보는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사업장 정규직 임금동결 주장은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주장은 협조주의적 실체를 감추는 알리바이로 밑바닥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논리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이남신, 한석호 등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취약 노동자 지원 강화주장이 그 단적인 사례다. 밑바닥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알리바이를 갑옷으로 착각한 그들은 돌팔매를 맞을 각오까지 운운하면서 직설적으로 협조주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다는 오랜 격언을 상기시켜준다. 그들이 기어이 지옥으로 기어들어가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당신들만 들어가라! 각성된 노동자들은 그런 지옥에 함께 들어갈 생각이 없다. 계급 대 계급으로 분열된 이 사회에서는 계급타협의 환상이 아니라, 단호한 계급투쟁만이 노동자의 생존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리바이

 

이남신, 한석호 등이 제기하는 논리는 이런 것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임금동결을 노동계가 먼저 제안하고 이를 지렛대로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얻어내자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선제적으로 임금을 동결한 뒤, 정부와 기업을 압박해 그만큼의 돈을 끌어내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한 뒤 이것으로 밑바닥 노동자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사회연대기금에 대해 이남신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칼럼 코로나19 위기극복, 담대한 임금동결을 제안한다에서 그는 노동자 연대정신을 바탕으로 정규직 조직 노동자가 향후 2년간 임금동결을 선언하면 49조 원 가량의 임금이 비축된다이에 상응해 정부와 자본이 동일한 비용부담을 할 경우 147조 원을 거둘 수 있어 위기극복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제안에 대해 그들은 공격적 방어’, ‘선제적 대안 제시’, ‘담대한 결단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면서, 사뭇 노동운동의 위기극복 전략으로 격상시킨다. 심지어는 전태일의 풀빵정신’, ‘코로나19로 절벽으로 내몰리는 밑바닥 노동자 보호’, ‘하후상박의 연대성까지 거론하며 노동자계급의 연대정책으로 찬미한다.

 

아주 거창한 알리바이다. 그러나 이런 알리바이로 그들에게 사면권을 부여할 수 있을까?

 

지옥으로 가는 길 1

 

그들의 의도대로 정부와 자본가들이 화답한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보자. 2년간 정규직 임금동결로 49조 원을 비축하고, 정부와 자본이 동일한 비용을 부담해 총 147조 원의 위기극복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한다고 치자.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재원이 누수되지 않고 100% 밑바닥 노동자에게 흘러간다 해도,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큰 이익일 것이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일용직 등 밑바닥 노동자에게 원래 지급해야 할 임금을 자본가들은 이 기금에서 조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 하나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원래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에서 대략 1/3 정도의 비용만 조달하면 되므로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거대한 이익을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자 자본가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된다. 왜 정규직 노동자들이 착취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스스로 짊어지고, 착취자들의 거대한 이익을 숭고한 사회적 결단으로 포장해줘야 한단 말인가?

 

자본가정부에게도 이건 군침 도는 유혹일 것이다. 이미 수백조 원의 재정을 자본가들의 회생을 위해 투입하고 있는 정부는 이 사회연대기금이란 이름으로 추가로 100조 원의 돈을 자본가들에게 지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50조 원은 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50조 원은 국고에서 지급한다.

 

그런데 국고에서 지급하는 50조 원도 사실은 노동자 민중의 혈세다. 노동자 민중에게는 쥐꼬리만큼 지원하면서도 자본가들에게는 수백조 원을 퍼주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판국에, 노동운동의 협력을 받아 추가로 자본가들을 지원하게 되면 자본가정부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 아니겠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 2

 

그들은 이렇게 반론할 것이다. 이런 사회연대기금을 통해 어쨌든 150조 원의 돈이 밑바닥 노동자의 구제를 위해 흘러가지 않겠는가? 노동운동이 감시하고 통제한다면, 이 돈은 자본가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지 않고 밑바닥 노동자들에게 흘러들어가지 않겠는가? 오히려 50조 원의 부담을 자본가들에게 강제하는 선제적 조치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은 치명적인 환상일 뿐이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코로나19와 이어지는 경제위기 속에 자본가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더욱 포악해지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인 고용유지지원금조차 자본가들은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10%의 임금부담조차 아까워 자본가들은 무급휴직을 때리면서 노동자들이 고용유지지원금을 수령할 권리까지 박탈한다.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수많은 자본가가 근로기준법마저 지키지 않으면서 밑바닥 노동자를 착취해왔다. 비정규직 제도와 외주화, 특수고용직을 도입한 작자들, 즉 밑바닥 노동자를 잔인하게 착취하며 이윤확대를 도모해온 자들이 바로 자본가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밑바닥 노동자가 매일 겪고 있는 고통을 낳은 주범이다. 그런데 이런 범인들과 협상장을 꾸리고 공동의 사회기금 조성을 제안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아무런 투쟁 없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의 선제적인 임금동결 선언에 대해 자본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간단하다. 그것을 환영하면서도, 자본가들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단 한 푼도 추가로 지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영악한 자본가계급이 50조 원 기금출연에 동의할 수도 있다. 계산법은 이렇다. “50조 원을 투자해 150조 원에 대한 사용권을 얻자!” 하지만 선량한 자선사업가가 아닌 자본가들은 이 150조 원에 대한 사용권을 결코 밑바닥 노동자를 위해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방식으로 자본가들은 그걸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그걸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바로 밑바닥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이고, 투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바로 그걸 전면적인 연대와 투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사회연대기금이 밑바닥 노동자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자본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한 사회연대기금 조성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을 통해서만 밑바닥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사회연대기금 제안에서 완전히 실종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 3


코로나19 재난 극복? 이것도 황당한 얘기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재난을 극복할 생각이 없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회사를 돌리면서 노동자를 위험 속으로 떠미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이 자본가들이고,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자본가정부 아닌가? 자본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윤이지, 밑바닥 노동자의 생존이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재난은 그들의 이윤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포악해지고, 더욱더 밑바닥 노동자를 향해 발톱을 들이댄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계급타협을 제안하면서 협상장을 꾸려 밑바닥 노동자를 대변할 궁리를 하는 자들의 정신은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쇠퇴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한석호와 이남신 같은 인물들이 제안하는 사회연대기금이라도 수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정도의 형편없는 타협조차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하고 위력적인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 위력적인 투쟁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투쟁을 부질없는 짓거리 취급하면서 사회적 협상장에 몰두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형편없는 몽상가다!”라고 말해주는 것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제안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바로 그 투쟁력을 노동운동에서 제거해버리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정규직 노조들이 투쟁 없이 임금을 양보함으로써 이 노조들의 투쟁력은 형편없이 약화된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중심 부대 중 하나인 대기업 노조들의 임금동결은 밑바닥 노동자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의 임금동결로 이어지는 결정적 통로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마저 스스로 임금동결을 수용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90%의 미조직 노동자, 즉 밑바닥 노동자 다수를 향해 자본가들은 민주노총 정규직 노조들을 본받아 임금동결을 받아들이라고, 코로나19 재난과 경제위기 앞에서 더 양보하라고 윽박지를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은 하향 평준화될 것이고,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평화인가, 전쟁인가?

 

사회연대기금을 제안하는 자들이 범하는 오류의 근원은 무엇인가? 바로 계급대립 없는 평화로운 자본주의, 착취적이지 않은 착취자, 착취자들을 비호하지 않는 자본가정부, 한마디로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세상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 즉 계급사회가 없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정규직, 외주화 등을 만들어낸 살인자들과 협상해서 살인을 중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치명적인 환상 때문에 그들은 그 살인자들과 투쟁하지 않는 한 가난한 노동자의 이익을 결코 보호할 수 없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에서 도망쳐버린다. 오직 단호한 계급전쟁을 통해서만 밑바닥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지켜낼 수 있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노동자는 단호한 계급전쟁에 떨쳐일어나야 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노동자들은 이 사회가 양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나눠먹는 초원이 아니라, 잠시만 한눈을 팔면 죽어나가는 치열한 전쟁터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계급투쟁이 중요하다. 이 투쟁 속의 노동자단결이 중요하다. 이남신이 강조하는 특수고용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청년 알바, 여성 노동자, 노인 노동자들이 당당한 사회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당사자 중심 운동도 정규직 노조들이 밑바닥 노동자의 조직화를 원조하고, 이들과 함께 단결해 투쟁하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이 당사자들의 자주적인 조직화와 스스로의 투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총고용보장이 도대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는가? 그건 완전히 허상이다. 스스로 조직하지 못하고 투쟁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일자리가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도대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자본가들은 그런 노동자들에게 간단한 해고 통보로 대응할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진실이다.

 

그러므로 밑바닥 노동자들을 자본가들과 맞설 수 있는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 그 속에서 이들과 대기업,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당히 단결해 투쟁하는 것이 관건이다. 임금동결을 통한 기금 조성이 아닌, 공동투쟁(가령 하후상박의 원칙을 내건 진실한 원하청 공동투쟁)과 밑바닥 노동자 조직화사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정규직 임금동결 대신 인상을 내걸고 투쟁하되, 비정규직과 하청사 노동자들의 경우 더욱 대폭 인상된 임금을 내걸고 진지한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산별요구안 같은 장식품이 아니라, 하후상박 공동요구안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총파업과 같은 진짜배기 공동투쟁 말이다. 이런 진짜배기 공동투쟁을 통해서만 밑바닥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화를 일깨우고, 노동운동의 바다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 기금을 만든다면, 투쟁기금을 조직해야 한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비롯해 밑바닥 노동자의 투쟁을 원조하고 지지하며 이들의 조직화를 지원하기 위해 정규직 노조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하는 연대투쟁기금 말이다. 이게 밑바닥 노동자들을 위한 진정한 사회적 기금이다. 이런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을 확대해 노동자의 진정한 요구를 갖고 당당히 사회적 교섭을 강제해야 한다.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하라!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 밑바닥 노동자에 대한 해고 중단하라! 비정규직 정규직화하라!”를 내건 총파업 속에서, 자본과 정부를 압박하는 당당한 사회적 교섭 말이다.

 

물론 밑바닥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분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정말이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한석호와 이남신의 임금동결 주장에 반대하지만,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의 숭고한 책임의식이 빠진 조합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조금도 존중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다!” 밑바닥 노동자를 위한다는 좋은 의도는 계급 대 계급의 단호한 전투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것을 회피한 채, 아니 이것을 거부한 채 협조주의적인 평화를 통해 그런 의도를 실현하려는 모든 이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추락할 것이다.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는 평화가 아니라 계급전쟁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투의 장갑을 노동운동이 집어들지 않는 한, 다른 누구보다도 밑바닥 노동자들이 먼저 학살당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그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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