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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 계속 방치되는 위험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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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6,232회 2020-06-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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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에 눈이 뒤집혔다는 게 뭔지 보여준 사례

 

 

어떤 허풍쟁이가 자랑했다. “내가 로도스 섬에 갔을 때 그곳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높이 뛰었다네. 만약 지금 여기가 로도스라면 나는 누구보다도 더 높이 뛸 수 있을 텐데.” 누가 듣다못해 이렇게 쏘아 붙였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이윤에 눈이 뒤집혔다

 

정부는 방역 능력을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해내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장은 방치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곳에 대한 방역 능력은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은 재난으로부터 사회를 구원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3,760명 중 정규직은 98명으로 전체 2.7%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97.3%(계약직 26.8%, 일용직 70.5%)에 이른다. 이번에 집단감염이 발생한 물류센터와 캠프(중간 배송집결지)는 아예 쿠팡의 자회사가 운영한다.

 

노동자들은 쏟아지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 시간 안에 물량을 처리하지 않으면 바로 관리자의 압박이 쏟아졌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수증기 때문에 마스크를 제대로 쓸 수도 없었다. 관리자들은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입고 일해야 했으며 안전화도 돌려가며 신었다.

 

물류센터 자체가 콩나물 시루였다. 노동자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접촉하며 일해야 했고 수많은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 식사해야 했다. 노동자들이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등 최소한의 방역지침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쿠팡은 524일 확진자가 나왔다는 통보를 받고도 하루가 더 지날 때까지 노동자들에게 별도의 공지도 없이 그냥 일을 시켰다. 24일 오전 10시쯤 통보를 받고 건물 소독도 하기 전인 오전 11시 반 노동자들에게 오후근무가 가능한지 묻는 문자를 보냈다. 오후조 수백 명은 확진자 발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출근해서 일했고, 쿠팡은 하루가 지난 25일 오후에야 센터를 폐쇄했다. ‘이윤에 눈이 뒤집혔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수천 명의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린, 아니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쿠팡 자본가는 어떤 처벌을 받는가?

 

아프면 3~4일 쉬어라?

 

정부는 아프면 3~4일 쉬라는 방역지침을 내렸다.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날로 늘어가는 실업자들은 쿠팡을 비롯한 물류, 택배회사로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그랬다. 모든 물류, 택배회사의 상하차, 포장 아르바이트는 극한노동의 상징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젊은이들과 실업자들은 여기로 몰렸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갈아 넣었다.

 

지난 3월엔 쿠팡 비정규직 배송기사가 새벽배송을 하던 중에 쓰러져 숨졌다. 쿠팡 배송기사의 1인당 처리 물량은 201557개에서 올해 296개로 늘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언택트(비대면, 비접촉)가 시대의 유행이 되면서 물류, 택배산업은 더욱더 성장했다.

 

자본가들은 언택트를 노동유연화 계기로 맘껏 활용한다. 쿠팡 노동자들은 휴게시간도 사용하지 못하고 일했다. 노동자들은 배송기사가 죽은 후 죽음의 배송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쿠팡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만들라는 요구를 제기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61일엔 천안 쿠팡 물류센터 직원식당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청소작업을 하던 중에 쓰러져 숨졌다. 그 역시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유가족은 평소에 고인이 청소약품이 너무 독하다면서 고통스러워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지만 노동자들이 밀집돼 있는 대규모 작업장의 집단감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조건에 놓여 있고, 여기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드러났다. 물류센터와 콜센터만 그런 게 전혀 아닐 것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번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수많은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규칙을 지키고 있으며 재난 확산을 막기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다. 이 놀라운 연대정신이 없다면 코로나19는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확산됐을 것이고, 사회는 마비됐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 개개인에게 맡겨진 책임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류·택배, 병원, 공공부문, 대규모 작업현장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는 방역규칙을 지키려야 지킬 수가 없고, 너무나 갈아넣어지고 있어 버틸 수가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맡기면 해결될 수 있을까? 모든 곳에서 자본가들은 셧다운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질병이나 부상 등 건강문제로 노동능력을 잃었을 경우 소득을 보장하고 치료 후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병수당도 마련하지 않은 채, 아프면 3~4일 쉬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미국과 한국만 상병수당이 없다. 지금 부천센터에서만 확진자 126명이 발생했고 3천여 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노동자운동이 여기서 뛰어야 한다. 안전대책 없이 위험한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가의 처벌을 위해 싸워야 하고, 안전문제에서 어떠한 차별도 금지시켜야 한다. 감염 위험 발견 시 작업중지권 보장 및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전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모든 해고 금지, 임금삭감 금지, 실업급여, 고용보장, 생존대책, 노조할 권리 등 재난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의 권리에 대해 특별히 강화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그 누구도 재난극복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역량과 권위를 쉽게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착취 아래 신음하다 무방비로 쓰러진다. 그래서 이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누가 이 위험을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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