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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합법화: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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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204회 2018-04-1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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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노동과 세계


마침내 공무원노조 합법화가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들의 관점에서 환영 입장을 냈다. 노조 집행부 역시 이를 ‘100만 공무원의 승리이고 촛불혁명의 승리라며 기뻐했다. 해고, 징계, 사무실 폐쇄 등 끊임없이 탄압 받고 법외노조로 내몰리면서도 조합원들은 자신의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끈기 있게 저항했다. 그런 현장 조합원들의 저력이 없었다면 정부는 결코 공무원노조 합법화라는 양보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엇갈리는 시각

 

그런데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하면서 문제 삼았던 게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이었다. 그들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도록 규약을 개정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민주노조의 자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의 요구에 완강하게 맞서왔다. 그런데 이번에 문재인 정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기 위해 노조 집행부는 규약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집행부가 노조 합법화를 위해 사실상 해고자를 내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물론 노조 집행부는 이번 규약 개정이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거듭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정부의 정치적 판단때문에 노조 설립신고가 반려됐던 거지, 규약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뉘앙스도 내비쳤다. 분명히 그간의 정부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독립적인 민주노조로 단결해서 투쟁하는 걸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규약이 아니라 다른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공무원노조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정부는 얼마나 다를까? 지난해 1019일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위한 실무교섭에서 고용노동부 차관은 설립신고가 되려면 법의 틀 내에서 규약과 해고자 임원의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번에 설립신고증을 내준 근거 역시 기존 위법사항이 모두 시정됐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노조 규약에서 해고자를 배제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기존 정부와 다를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박근혜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문재인 정부는 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일점돌파

 

제일 큰 문제는 전교조에 미칠 영향 아니겠어요?” “전교조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법외노조인 상태에서 정부의 규약 개정 압력을 거스르며 버티고 있었는데, 공무원노조가 먼저 안 좋은 사례를 만든 거지요.”

 

최근 대화를 나눈 공무원 동지들의 결론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증을 내주면서 전교조도 이제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며 빠르게 전선을 넓혔다. 이에 발맞춰 일부 언론에서도 전교조 역시 전공노의 사례를 본받아 합법노조가 되길바란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정부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불법세력으로 난도질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메시지는 지향점이 분명했다. 공무원노조 합법화는 노동존중사회 구현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한 공무원노조 내부 노력의 결과물이며, 앞으로 공무원노조가 상생의 노사관계를 정착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329일 더불어민주당 브리핑). 요컨대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규약을 바꾸고, 합법성이란 선물을 받은 뒤, 노사협조주의 분위기를 퍼뜨리는 데 협력하시오.”

 

이러한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지배전략이 각각의 사업장에서 어떻게 관철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나라를 뒤흔든 촛불항쟁의 에너지가 총파업이라는 불법적 경로로 발전하는 걸 차단하고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로 묶어두는 데 성공하면서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 사회적 합의로 포장된 합법주의의 굴레로 노동자운동의 손발을 묶은 뒤,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전하기 위한 공격 조치들을 순탄하게 실행하려는 것이다. 46일 한국GM을 방문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노동자들을 향해 쟁의를 하더라도 법 테두리 안에서하라고 요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갈림길

 

문재인 정부에게 공무원노조 합법화란, 노동자운동의 역동적 잠재력을 마비시키기 위해 퍼뜨리는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 협조주의의 한 사례일 뿐이다. 그렇게 이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당연히 공무원 노동자들은 이번 공무원노조 합법화가 그렇게 이용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 위해서, 정권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 민주노조를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창립대회장에 폭력경찰을 투입한 정부에 맞서면서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2004년엔 경찰의 압수수색, 원천봉쇄 위협을 뚫고 총파업을 감행했다. 법의 올가미를 끊고 단결투쟁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단결투쟁의 힘을 동원하는 것, 이것이 민주노조를 탄생시킨 공무원 노동자들의 정신이었고, 역사였다. 이제 와서 규약을 개정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따른 건 바로 이 정신과 역사를 지워버리는 행위다.

 

민주노조의 정신과 역사를 이어가고자 하는 동지라면, 공무원노조가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는 사실에 눈감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계획대로 사회적 합의라는 덫에 말려들어갈 건지, 단결된 투쟁의 힘으로 민주노조의 독립성을 쟁취해나갈 건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판단을 세워가야 한다. 이 갈림길에서 어느 편으로 나아가는가에 따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해고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규약 개정을 전제로 한 합법화를 바라보는 공무원노조 해고자들의 심경도 복잡하게 엇갈릴 듯하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공식적으로 규약에서 배제한다면 앞으로 누가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라며 우려하는 동지가 있는가 하면, “공무원 노동자들은 법외노조 상태에서도 싸워야 할 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어요라며 그다지 개의치 않는 동지도 있었다.

 

해고자들은 투쟁에 앞장섰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공무원노조 안에서는 해고자들을 노동조합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식에선 차이가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선 비록 이번 규약 개정에도 불구하고 해고자들을 함께 지켜내려는 기풍이 간단하게 허물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324일 대의원대회에서 77% 찬성으로 규약 개정이 통과됐다는 사실은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려준다. 민주노조의 원칙과 정신을 지키려는 동지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동료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랬는데도 다수는 규약 개정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오랜 기간 해고자 생활을 해온 몇몇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느 사이에 해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긴 해요. 130명 넘는 해고자들의 생계를 노동조합이 온전히 책임지고 있고 거기에 노동조합 재정의 상당 부분이 들어가는데, 그 세월이 10, 15년 넘게 흐르다 보니 과연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나 하는 부담감이 누적돼온 것 같습니다. 반대로 해고자들의 입장에선 다른 조합원들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지요. 오랜 해고자 생활이 고통스럽기도 하고요. 이 간극을 좁혀갈 수 있는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솔직히 말하면 해고자들이 스스로 조합원들 속에서 신뢰를 잃어간 측면도 있어요. 보통의 공무원들이 매일같이 출근하며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처럼, 해고자들도 매일 노동조합에 나와서 투쟁에 복무해야 하고 노동조합을 강화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집회에도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일부가 그런 거고,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조합원들이 보기에 해고자들이 공무원노조 안에서 선도적으로 투쟁을 이끌어나가는 책임 있는 집단으로 비치지 못했던 측면이 있는 거죠.”

 

노동조합에선 어떻게든 끝까지 해고자들의 생계와 원직 복직을 향한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태도와 실천을 강하게 보여주고, 해고자들은 다른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헌신적으로 그런 투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가장 좋았겠죠. 그게 잘 안 됐습니다.”

 

회복투(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에서도 매일 해고자들이 나와서 투쟁 일정을 준수하는 규율을 정확히 세워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걸 해내지 못했어요.”

 

원칙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동지들이 중요한 국면마다 충분히 제 구실을 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 유인물을 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좀 더 자신감 있게 자기 입장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밝히면서 주도적으로 치고 나가진 못했던 것 같아요.”

 

이런 증언들은 현재 공무원노조가 보이는 후퇴의 책임을 온전히 집행부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이 단지 집행부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조합원 전체가 민주노조의 주인이라면, 현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대안 지도력의 근원도 평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힘에서 찾아야 한다.

 

해고자들을 포함해 공무원노조 안에도 좀 더 원칙적이고 투쟁적으로 노동자의 대의에 복무하려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주의에 이끌리는 지도부와는 다른 면모의 지도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틔워내지 못했다면, 어떤 약점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된 문제인 만큼, 단숨에 명쾌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답이 없는 것도 아닐 테다. 위에 옮긴 몇 마디 이야기 속에 이미 그 실마리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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