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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세계 - 희정 지음, <여기, 우리, 함께>(갈마바람,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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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5,755회 2020-05-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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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왔으면 좋겠어?” 한혜경씨는 어머니 김시녀씨가 흔들릴 때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2005년 악성뇌종양 진단을 받은 한혜경씨는 2009년 산재신청을 한 후 어머니와 함께, 반올림과 함께 11년을 싸웠고, 2019년에야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김시녀씨는 삼성이 몇 억을 제시했을 때, 받으려고 했단다. 한혜경씨의 귓방망이를 때리면서까지. 만약에 그걸 받았다면 평생 죄인으로 살았을 텐데, 그걸 안 했기 때문에 떳떳하다고 했다.

 

11, 말로 못 할 시간이다. 그 긴 시간 이들의 곁을 지킨 활동가들이 있다. 당사자는 활동가를 찾고, 활동가는 연대자를 찾고, 다시 연대자는 활동가 때문에 온다고 하고, 활동가는 당사자에게 위로 받으며 승리를 만들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여기, 우리, 함께>(희정 지음, 갈마바람)는 오래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곁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도 정말 많은 사람이, 아니 그 투쟁과 연결돼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어머니, 활동가가 다 되셨네요라는 말에 당연히 내가 할 일 아닌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말하는 김시녀씨는 다른 피해자 가족에게 이렇게 자주 강조한단다. “피해자들이 백날 많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우리만 있어서 이길 것 같아? 연대의 힘이 있으니까 이기는 거지.”

 

글쓴이는 숱하게 싸우고 사람들과 만나며 변화한 모녀를 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절망이든 피해든, 세상에 변하지 않고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절망적 상황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절망만을 부각시키는 시선이 피해자를 고정시킨다. ‘아픈 사람’, ‘가련한 피해자’, ‘비통한 부모’, ‘눈물짓는 어머니의 모습으로만 묶어두는 말은 당사자를 세상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절망만을 부각시키는 시선이 없더라도 싸움은 무겁고 힘들다.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재벌인 삼성과의 싸움만 그런 게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파인텍, 택시, 세종호텔, 아사히글라스, 톨게이트, 시그네틱스, 풍산마이크로텍 모두 힘겨운 싸움이다. 회사가 폐업되거나 많은 노동자가 해고당해 끈질기게 싸워야 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싸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싸웠을까? 아니 지금도 싸우고 있을까? 반올림 이종란 활동가의 얘기는 다른 사업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연대하는 사람들의 얘기이기도 할 것 같다.

 

우리가 단지 엄숙한 무거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거움 때문에 더 잘 뭉치려 했고, 끈끈하려 했고, 밝으려 했고, 잘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마음으로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더 앞세우는 시간을 관통했었던 것 같고.”

 

오래 싸운 사람들

 

파인텍_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는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426일 동안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그 전에 차광호 지회장이 408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홍기탁은 75미터 굴뚝에서 싸움을 그만하고 돌아서는 일에 대해 거꾸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돌아서서 간 길에 다른 세상이 있나요?”

 

작가의 말대로 어차피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몸이란 얘기이기도 하겠지만, 진실로 다른 세상을 바랐기 때문에 한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고용을 보장하고 생활임금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것부터 시작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택시_ 택시 노동자 김재주는 2019226510일 만에 전주시로부터 사납금 위반 업체 단속 등을 확약받고 고공 농성장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김재주의 목숨 건 고공농성, 그리고 택시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 덕분에 일부 택시에서 사납금제가 폐지되고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를 실시하게 됐다.

 

그러나 택시 회사들은 기준 금액(택시 기사가 정해진 시간에 벌어야 하는 금액)을 높게 책정하고 그걸 맞추지 못하면 월급에서 삭감했다. 사납금제와 다를 바 없는 편법으로 택시 노동자들은 가짜 월급제, 가짜 전액관리제라 부른다. 이 때문에 전복철 조합원은 월급이 마이너스라 한다.

 

그런데 왜 사납금제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적은 월급을 지키냐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전액 관리제의 맥을 이어가야죠. 우리가 포기하면 그게 사라져버리잖아요.”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노동자인 거잖아요.”

 

세종호텔_ 세종호텔의 노조탄압은 악명 높다. 구조조정, 성과연봉제, 비정규직 확대, 강제 전환 배치, 어용노조 설립 등 그야말로 노조탄압 백화점이다. 조합원들이 겪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화교환팀에서 객실관리부로 강제 전환 배치 당한 허지희 조합원의 얘기다.

 

육체노동을 해본 적 없던 내게 하루 평균 만보기로 28,000~32,000보를 찍는 룸메이드의 업무는 두 달 만에 체중이 6kg 빠지고 생리가 끊길 정도의 엄청난 노동강도였다. 숙련된 룸메이드조차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과 갑상선, 터널증후군, 테니스엘보, 디스크 등 근골격계질환을 직업병으로 안고 사는 현실이다.”

 

201170명으로 줄어든 조합원은 8년 후엔 11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싸운다. 원직복직으로 들어와서 멋지게 하라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종호텔 전체를 바꾸고 싶은 마음, 그래서 호텔 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2012년 파업 때 세종호텔노조의 요구 중 하나는 계약직으로 1, 2년 근무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것이었다.

 

아사히_ 2015년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된 후 5년째 싸우고 있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2명의 얘기는 다른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다. 글쓴이는 사람들의 변화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제목이 고유의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아사히 노동자가 겪은 하청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나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를 자각하는 과정이었다. 글쓴이는 아사히 노동자를 취재하며 그들이 언제나 대체 가능한일회용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심하게 들었다. 그리고 민주노조를 선택하고 노동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하게 살폈다. 대표적으로 안진석 조합원의 얘기다.

 

노조 하기 전에 강한 믿음이 하나 있었어요.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만 생각하고 그중 소수가 가족을 챙긴다. 그런데 공장에서 쫓겨났잖아요. 투쟁을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계속 제 믿음이 깨지는 거예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일회용품에게 고유의 존재감은 사실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선택하고 연대투쟁을 실천하면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감을 찾았다. ‘나는 나라는 삶에 대한 당당한 애정, 소중한 자긍심이 있다면 어떤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숱한 투쟁과 연대 속에서 아사히글라스하고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투쟁이 아니고 자신의 싸움은 진짜 세상을 바꾸는 싸움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시그네틱스_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2001년부터 20년 가까이 싸웠다. 그동안 세 번 해고됐지만, 세 차례 모두 부당해고 판정을 이끌어냈다. 정규직도 노동조합도 싫어하는 재계 30위권의 영풍그룹은 강제휴직과 폐업으로 맞섰다. 정말 지난한 투쟁이었다.

 

노동자들이 두 번째로 복직한 2013, 시그네틱스 전체를 통틀어 생산직원은 30여 명밖에 없었다. 모두 노조 조합원이었다. 한때 500명 넘게 일하던 정규직은 다 사라졌다. 대신 영풍그룹은 파주에 1,000여 명 전체가 비정규직인 공장을 돌렸다.

 

이제는 9명이 남아 싸운다. 김양순 조합원은 내가 사표내고 싶을 때 낼 거야라며 노동자의 자존심을 얘기한다. 글쓴이는 윤민례 분회장을 통해 여성 노동자가 밖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면 집에서 그들의 몫으로 주어진 노동을 해내야 하는, 집에서도 투쟁해야 하는 이중의 굴레를 다룬다.

 

그래서 윤민례 분회장의 이 말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담겨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너희 엄마이기도 하고 너희 아빠 부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윤민례야. 하나의 인격체야.”

 

풍산마이크로텍_ 9년째 투쟁하고 있는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를 막고 공장 부지를 매각해 황금알을 낳으려 했던 자본의 음모도 막아서며 원래 국방부 땅이었던 풍산 땅의 부지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 기나긴 싸움이었다. 이미 정년이 지난 조합원도 있고, 대다수 조합원이 3년 이내에 정년을 맞는다.

 

공장이 매각되고 화성으로 이전한 후 조합원 가운데 반에게는 강제휴직 명령을 내렸고, 일하는 사람도 시간 외 근무를 주지 않았다. 모두 생활에 쪼들린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자기가 지킬 수 있는 의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무엇을 쟁취할까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남길까 고민하고 있다.

 

이런 얘기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책에는 오래 싸우는 사람들이, 흔히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노동자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자본과 정부에 얼마나 끈질기게 맞섰는지를 알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이 있다.

 

최근 가장 큰 노동사건이었던 톨게이트 투쟁도 담겨 있다. 글쓴이는 톨게이트 투쟁의 원인과 이 투쟁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 그리고 노동자의 변화과정을 자세히 다뤘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곁을 지키는 사람들

 

이 책의 또 한 축은 앞에서 얘기했듯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먼저 밥차라는 형태로 연대하는 밥통, 이점진, 봄꽃밥차 얘기가 담겨 있는데 글을 읽으며 나도 이 분들의 노동을 얼마나 존중하고 생각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밥통 매니저 손지후씨는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힘을 얘기했다. “밥은 힘이 있어요. 장기투쟁사업장은 해결이 안 돼서 싸움이 길어지는 곳이잖아요.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차려 먹을 힘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알고 같이 밥을 먹자 그래요. 그럼 알게 되는 거죠. ‘나를 잊지 않았구나.’”

 

그리고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떤 현장에서도 서로에게 반말하는 건 용인하지 않는다. 채식 메뉴도 따로 준비한다. 현장과 나를 맞추며, 당신도, 나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마음을 배려를 통해 표현한다.

 

글쓴이의 말대로 연대자를 밥 하는 여자로 취급하는 곳이 없을 수 없고, 밥 연대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나도 글을 읽기 전까지는 수십, 수백인 분의 밥을 준비하는 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래도 경험이 쌓이면 평등한 마음은 늘어난다. 손지후 매니저는 중년 남성만 모인 투쟁사업장에서 고맙다며 그릇을 굳이 챙겨가 씻어다 놓는 일을 얘기하며 서로 배려라는 연대방식을 익히고 있다고 했다.

 

1980년대 말 유성CC에서 캐디로 일했고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이점진은 크고 작은 투쟁에 밥으로 연대하고 있다. 여름에는 눈이 짓무르도록 장아찌를 만든 그는 요리하는 사람은 건강해야 한다며 밥 연대가 시작되면 술부터 끊는다고 했다. 그런 그의 노력은 또 다른 연대로 이어진다.

 

갑을오토텍에 있을 때 한 조합원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고마우세요?’ 하니까 너무 고맙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그러면 투쟁 끝나고 다른 사업장에 고마움을 돌려주시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쉼터 꿀잠이야기도 인상 깊다. ‘꿀잠은 사람이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인데, 투쟁하는 노동자,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 투쟁하는 노동자에게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노동자의 쉼터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는 기륭 노동자들의 투쟁경험에서 나왔다. 1,000명의 일꾼이 참여해 100일 동안 쉬지 않고 공사를 해 이 소중한 집을 만들었다.

 

기륭과 콜텍 조합원들이 함께 살림을 맡고 있다. 꿀잠 일은 너무나 많다.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의 잠자리를 봐주고 식사를 챙긴다. 농성장에 먹거리를 보내고 농성 물품을 보낸다.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기도 한다. 더 나은 투쟁을 기획하고 사람을 모은다. 모두 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종일 서서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든 박행란 조합원이 8시가 다 돼도 퇴근하지 않아 글쓴이가 안 가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문중원 열사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고 했다. “왔는데 여기 불이 꺼져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그렇겠어요.”

 

2007년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시작으로 12년을 싸운 콜트 노동자들 곁에 예술가들이 있었다. 미술인들은 콜트 공장에 작업실을 열었다. 폐업 후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이 못마땅했던 공장 건물주와 대리인들에게 어디서 굴러들어온 예술 나부랭이가 진상을 떠냐는 취급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수집을 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면서 오래도록 노동자의 곁을 지켰다.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내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좋은 기분이 되는 것. 이것이다. 내가 생각해왔던 연대는. 현장미술이라 함은.”

 

음악이 무기라는 생각으로 오래 싸움을 하는 사람 곁을 지켜주는 음악가들도 있다. 서촌에 있는 <궁중족발> 건물주는 서촌 거리가 뜨자 월 300만 원이던 월세를 1,500백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나가라는 얘기였다. 궁중족발 사장 부부는 나가길 거부했다.

 

황경하는 궁중족발 앞에서 수요일마다 문화제를 열며 가게를 지킨 연대자다. 6개월 동안 철거용역이 열네 번이나 쳐들어왔다. 황경하는 자신이 함께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궁중족발 부부가 하루 치 족발을 팔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아요. 한시도 허투루 살지 않아요. 담배를 평생 피웠다는데 족발집을 운영하느라 시간이 모자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끊어요. 하루에 13시간을 일하고 쪽잠을 자고 너무 힘드니까 일 끝나고 소주로 버티다가 사람 얼굴이 퉁퉁 붓고, 지금도 여기 아침에 문을 여는 가게를 보면, 사람들이 하루 장사를 준비하려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눈에 보여요. 하루 13, 14시간 일하는 사람들. 빚과 월세의 무게에도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는지. 그런 앎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거죠.”

 

수많은 곳에 연대를 다니면서 메시지가 있는 예술은 질이 낮아진다고 믿었던 아티스트가 이제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음악을 한다.

 

“(아현포차) 할머니들 옆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강제집행도 같이 겪으면서, 그동안 내가 허약했고 대충 살아왔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을 등한시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무슨 예술을 한다고. 나는 편협한 세계에 살았구나, 실제 삶의 치열함을 알지 못했구나. 그러면서 예술관이 굉장히 변화했어요.”

 

뜻이 같은 음악인들이 하나둘 모여 힘들게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곁을 지켰다. 지금도 지키고 있다. “투쟁하는 당사자 한 명한테라도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음악을 한다면이라는 마음으로.

 

책에는 오래 싸우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나와 있다. “뭐 하나라도 보탤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반올림 곁을 지킨 김유경 노무사를 비롯해 노동자와 함께 걷는 길을 꾸역꾸역 간 법률가들도 소개한다.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세계

 

글쓴이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서 기록했다고 했다. 그렇다. 이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이 사회에 과연 어떤 희망이 남을 수 있을까? 더불어 더 힘껏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세계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진정 다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운동은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 몸속에 심어놓은 낡은 오물을 토해내는 운동이다. 노동자들이 이기주의를 넘어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운동이다. 한마디로 자본가들, 가진 자들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정신을 갖출 수 있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노동자의 투쟁은 단지 맹아적으로만 자본주의를 넘어설 뿐 자본주의가 퍼붓는 이기주의가 처지의 차이를 통해 다르게 표출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철학자 강신주는 지배를 이기는 싸움은 우리 내면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노예로 길러지면 혁명을 일으켜도 새로운 주인을 세운다고 했다.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노동자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인간형을 뛰어넘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이 성숙할 때까지 노동자운동은 거듭 패배하는데, 이 패배 속에서 교훈을 배워 더 강력해진 노동자운동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한다.

 

책에 나오는 오래 싸우는 사람들,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싸우며 더 열악한 노동자들, 더 가난한 민중과 진심으로 협동하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희생과 헌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주체’,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끝없는 고통을 이겨내고, 연대를 형성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밀어간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니 진실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싸움은 이겨야 마땅하지만 대부분 패배한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소유권, 경영권을 무기로 공장 문을 닫고, 수십 명 수백 명을 가차 없이 자른다.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이용해 노동자를 압박한다. 투쟁은 길어지고 버티기도 한계에 이른다. 패배 속에서, 자본주의의 압력 속에서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세계를 보여줬던 사람도 이미 지난 세계로 후퇴할 수도 있다. 승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이다.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계속되는 노동자의 단결 확대에 있다.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사람들에게 있다.

 

끝으로 글쓴이는 책 곳곳에서 몇몇 사람의 헌신에 의존해 연대가 지탱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갈아 넣는일이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립되기 쉽고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나는 마르크스가 얘기한 <노동조합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미래가 꼭 필요한 대안이라 생각한다.

 

미래: 원래의 조직 취지와는 별개로 이제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광범위한 이익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조직 중심이 돼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노동조합은 완전한 해방을 향해 움직이는 모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전체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대표로서 자각하고 행동하면서 노동조합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해 이들을 노동조합 대오에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예외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의해 무력화된 농업 노동자와 같이 가장 임금수준이 열악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이익을 노동조합은 면밀히 돌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협소하고 이기적인 이익은커녕 억압받는 수백만 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노동조합은 인민 모두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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