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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물결에 휩싸인 공항, 항공 노동자들: 노동자가 통제하는 국유화 없이 위기 대응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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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398회 2020-04-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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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소유권,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은 채 이 위기의 시대에 고용안정을 지켜내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킬 것이다!” 투쟁에 돌입하는 노동조합의 선언이 아니다. 429코로나19 극복 고용유지 현장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위기가 거세게 닥쳐오고 있지만 정부는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422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도 정리해고를 통한 기업 살리기가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는 방식이 강조됐다. 언론에 비치는 모습으로만 본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 단호한 일자리 지키기 투사다.

 

괴리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쏟아내는 단어들과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불일치 수준을 넘어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현장에선 이미 광범하게 실직, 해고가 일어나는 중이다. 공항, 항공 노동자의 처지가 대표적이다. 저비용 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으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전체 인원 1,600여 명의 22%345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원래 계획은 반 토막을 잘라내는 거였는데 22%로 해고 규모를 줄였으니 그 대신 30%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41일엔 계약직 수습 부기장 80여 명이 잘려나갔다.

 

이스타항공이 국내 여객조업 업무를 맡기기 위해 100% 출자해 만든 지상조업사 이스타포트는 계약이 해지돼 사실상 폐업 상태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한 제주항공이 고용승계를 하지 않으면 여기서 일하던 400여 명은 그대로 해고가 확정된다.

 

이스타항공처럼 경쟁력이 취약한 소규모 항공사만 이런 게 아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협력업체로 연결된 지상조업사에서 뭉텅이로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항공사들이 기내청소, 화물, 수하물 관리 등 지상조업 분야를 직접 책임지지 않으면서 하청, 재하청 구조가 지상조업사들을 뒤덮었는데, 다른 모든 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취약한 하청 사슬에 묶여 있던 노동자들이 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만다. 지상조업사들에서 이미 2,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현재의 추세라면 그 규모가 3,000명을 넘어설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런 위기는 국내 문제를 넘어섰다. 항공업계 전체가 타격을 받으면서, 보잉과 에어버스 같은 대형 회사들도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는 중이다. 보잉은 전체 인력의 10%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에어버스는 본사가 있는 프랑스에서만 3,000여 명이 해고됐다. 사측은 더 광범위한 조치를 예고했다.

 

국가의 책임

 

위기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여러 나라 정부가 일찌감치 팔을 걷어붙였다. 자동차산업처럼 공항, 항공산업도 수많은 연관 산업과 거미줄처럼 엮여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돈을 쏟아붓기로 했다. 대한항공에는 12,000억 원, 아시아나항공에는 17,00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항공사 지원에 580억 달러, 71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독일의 국적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100억 유로, 133,000억 원을 지원받게 됐고,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는 110억 유로, 146,400억 원을 지원받는다.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이런 것이다. 정부는 일거리가 없는 항공사들에 돈을 퍼준다. 반면 하청 사슬에 묶여 일하던 노동자 수천 명이 일거리가 없다는 똑같은 이유로 쫓겨난다. 그런데도 언론에 모습을 비친 문재인 정권은 하나의 일자리도 놓치지 않겠다며 일자리 지키기 투사 행세를 한다. 입으로는 정리해고를 통한 기업 살리기가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는 방식을 힘주어 강조하지만, 입을 제외한 몸뚱이 전체로는 기업 살리기에 매진한다.

 

그런 정부 아래에서 정리해고를 일삼는 기업들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일자리를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항공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으나, 하청 노동자 수천 명이 잘려나가는 지상조업은 애초 제외됐다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야 비로소 포함됐다. 지원 대상에 포함됐더라도 오직 고용주만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 같은 간편한 방법을 선호하는 자본가들 앞에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이런 장면에서 무엇이 확인되는가? 문재인 정권은 립서비스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물을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문재인 정권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정리해고 사태로 이어지는 지금 정부의 또 다른 약속을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보호할 수 없다. 오히려 연거푸 농락당하고 희생양이 될 뿐이다. 희생되지 않으려면 자본가와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책임질 수 없다면 국유화해버려!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으면서도 노동자를 가차 없이 잘라내는 항공사들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한 줌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다수 노동자의 삶을 허물어뜨리는 반사회적 집단임을, 경영을 책임질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아닌가? 경영을 책임질 능력이 없는 집단에게 계속 운전대를 맡겨놓는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지 않은가?

 

개별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헌납할 순 없다. 노동자가 생산한 사회적 재원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기업들은 국유화해야 마땅하다. 이탈리아 정부는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국유화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항공사 국유화 조치가 거론되고 있다. 스페인에선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들을 국유화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정부들이 도입하는 국유화는 우리의 요구를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국유화된 기업에서도 노동자가 제대로 단결해 투쟁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산업을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전망을 세우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제 개별 자본가를 대신해 자본의 논리를 구현하는 국가가 나서서 인원감축, 임금삭감, 현장통제 강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자신의 개입과 통제가 빠진 국유화는 아무런 진보성을 가질 수 없다.

 

반대로 항공산업 운영에 대한 노동자의 개입과 통제를 전제로 한 국유화는 현재의 위기에 대처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는 데에서 중요한 발판이 된다. 이윤 증식에 모든 걸 종속시키는 자본의 사슬을 끊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막대한 사회적 재원을 자본가 살리기에 퍼부으면서도 이런 조치가 결코 국유화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원칙이며 기업의 국유화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 바로 그것이 지금 쇠사슬처럼 노동자의 목을 조이고 있다. 노동자가 살기 위해선, 이제 저 자본가들의 자율성을 투쟁의 쇠사슬로 칭칭 동여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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