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치

파산하는 자유주의, 그다음의 길은?②

페이지 정보

최영익 조회 4,889회 2020-04-28 16:31

첨부파일

본문

 

 af2b164600d5d22e42b59018542e2f9e_1588059033_0416.jpg

침몰하는 자본주의에 노동자, 민중이 함께 탑승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의 국가와 자유주의

 

오늘날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국가 개입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국가는 자본가를 위해서는 천문학적 재정투입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본가국가는 정부로 집중된 모든 사회적 재원을 파산 직전의 자본가를 구원하고, 붕괴 직전의 시장경제를 회복하는 데 쏟아붓는다. 반면 노동자 민중을 위해서는 쥐꼬리만한 자금 투입마저 망설인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가 구원을 위해서는 200조 원이 넘는 자금 투입을 개시했지만,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10분의 1도 투입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결국 이것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한계 속에서 확대되고 있는 국가의 역할은 어느 계급을 대변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그럭저럭 생명력을 유지하는 동안 국가 개입은 어느 수준에 제한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국가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서, 복지정책을 앞세워 계급대립을 완화화려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일정하게 대변하겠다고 하는 개량주의 세력이 자본가국가의 관리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거대한 위기에 휩싸이고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국가는 인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본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자본가국가는 정부 수중으로 집중된 모든 사회적 자원을 자본가 구하기 작전에 투입해야 했다. 정부재정의 더 많은 부분이 복지정책이 아니라 자본가 살리기 정책에 투입돼야 했다. 쓸 만한 국유재산이나 공기업들은 최대한 매각해 민영화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추락하는 이윤율을 회복하는 데 사용하고, 좁아드는 투자처를 벌충해야 했다. 법인세 인하 등의 조치를 통해 정부재정은 더욱 전적으로 노동자 민중을 수탈해서 꾸려가야 했다. 이러한 국가 개입정책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그 형편없고 잔인한 반사회적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자본가국가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재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수단을 스스로 제거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자본가국가가 마음대로 투입하고 있는 저 천문학적 사회적 재원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파산이 예고된 자본가들은 정부재정을 수혈받아 극적인 회생을 꾀할 수 있다. 위태로운 상태의 금융자본가들과 주식부자들도 정부재정 덕분에 손실을 메울 수 있다. 그렇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또다시 대공황의 저주를 비껴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회적 재원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노동자 민중이다. 고작 가구당 100만 원도 안 되는 푼돈을 재난지원금으로 받고서, 노동자 민중은 그 몇십 배, 몇백 배의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핑계거리로 기업들은 애초 추진하려 했던 구조조정, 즉 노동자 해고와 임금삭감을 마음대로 밀어붙일 자유를 얻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시아나항공에 17,000억 원, 두산중공업에 16,000억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것은 아시아나항공과 두산중공업에서 대량해고가 발생하는 것을 조금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정부재정 투입의 대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재난으로부터 사회를 구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공공부문 노동자를 향해서는 국가공무원의 연가보상비를 전액 삭감해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예정된 공무원 인력충원도 재난지원 재정 확보를 위해 취소하고 있다.

 

결국 마비상태에 빠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란, 몰수 국유화를 통한 사회적 통제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자본가국가의 개입이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수탈로 마련한 사회적 재원으로 파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원하는 것, 또한 죽어가는 자본가들을 사회적 재원으로 회생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국가가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본가계급을 대변하고 있을 뿐임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말이다.

 

진정한 사회화

 

자본가국가의 개입 확대는 자유주의 이념을 잉태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역사적 유효기간이 만료됐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자본가국가의 개입 확대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자유주의 체제를 회생시키려는 마지막 발악이다. 결국 이 자본가국가는 자유주의 이념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에 서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자본가국가는 파산하는 자유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보존하려는 자본가계급의 필사적인 마지막 발악을 대표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로나19 재난,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계속 증대하는 자본주의 경제위기 앞에서 국가가 사회를 대표해 추구해야 할 정책이 어찌 그 따위 것이겠는가? 파산하는 기업들을 국유화해 사회적 재산으로 환수해 공공적으로 운영하는 것,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병원, 마스크 등을 비롯한 의료산업 전반에서 공공적 통제와 국유화를 확대하는 것, 모든 은행과 보험사를 국유화해 생산의 계획화를 위한 관제고지로 탈바꿈시키는 것, 이런 정책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필요한 사회적 정책이지 않겠는가? 생산과 구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재난과 경제위기의 책임을 자본가들에게 묻기 위해 모든 정부 재원을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 투입하고,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라는 정의로운 사회적 구조조정을 집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필요한 사회적 정책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국가적 조치는 재난과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 조치이기도 하다. 자본가국가의 전적인 지원으로 당장의 대공황을 피한다고 해도, 역사적 수명이 다한 환자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길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무정부적인 과잉생산은 자본주의 체제의 숙명이고, 이것은 지속적으로 위기의 규모와 폭발력을 키울 것이다. 자유주의 체제를 구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한 자본가국가는 대공황 속으로 함께 침몰해갈 것이다.

 

이런 침몰선에 노동자 민중이 탑승할 이유는 없다. 사회가 이 따위 국가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길 이유도 없다.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노동자계급의 국가로 대체하는 것, 그럼으로써 노동자국가(권력) 수중에 집중된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전체 경제수단을 통제해 사회적으로 운영하는 것, 즉 진정한 사회화의 전망이 필요하다. 바로 사회주의다.

 

이 사회주의는 중국, 북한 등 국가자본주의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를 노동자 민중이 자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집단이 통제하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사회화는 요원하다. 이런 관료적 국유화 형태는 물론 자유주의와는 확연히 대립된다. 그러나 여기서 국가는 여전히 국가관료집단이 통제하는 국가이며, 이 국가는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이런 체제는 자유주의의 여러 폐해에서 일정하게 벗어날 수 있지만, 자유주의만큼이나 심지어는 자유주의 이상으로 갖가지 새로운 폐해를 양산한다. 노동자 민중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민주적 계획화와 대립되는 관료적 계획화는 갖가지 낭비와 비합리성을 낳아 경제 안정을 위협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여기서 국가는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국가이므로, 경제 발전의 모든 성과는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어질 뿐이다.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이런 한계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도 여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관료자본가계급은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전염병 발생을 숨기면서 재난 확산을 방조했다.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지금도 중국 관료자본가계급은 관료주의 생산체제를 재가동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 재난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통제력을 끌어내지 않고 관료적 강제조치에 의존한 결과, 여전히 통계조작이 횡행하고 전염병의 위험은 제대로 차단되지 않고 있다. 북한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아예 전염병의 확산 정도, 희생자 규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체제는 파산하는 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맞은편에 서 있는 쌍둥이에 불과하다. 서방의 자유주의 체제와 중국, 북한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서로가 서로의 존립근거로 작동하고 있을 뿐, 공히 노동자 민중의 이해 및 사회적 진보와는 대립점에 서 있다. 두 종류의 국가체제 모두 오늘날 세계가 직면해 있는 위기와 모순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파산하는 자유주의가 던지는 결정적 화두

 

자본가국가의 확대되는 개입은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침식이다. 국가라는 형태로 사회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와 모순을 조금이라도 유예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다. 자본주의 경제의 유효기간이 만료했음을 보여주는 데서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 국가는 여전히 자본가계급의 국가다. 그래서 이 국가의 개입은 유효수명이 다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줌으로써 한 줌 착취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장기적으로 볼 때 사회적 대폭발의 위험을 증대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격화되는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사회적 해법이 무엇인지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을 둘러싸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격돌하는 계급투쟁의 결정적 무대도 떠오르고 있다. 바로 국가. 계급투쟁의 타겟이 국가로 집중되는 것이다. ‘어느 계급이 운영하고 통제하는가’, ‘어느 계급을 위한 국가인가라는 결정적인 질문이 사회에 던져지고 있다. 국가권력의 문제, 즉 정치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이 나날이 증대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적 재난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속적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음이 분명한 오늘날 국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자본가계급은 이 국가를 더욱더 분명하게 자본가계급의 국가로 통제하고 활용하려 발악한다. 이것은 자본가국가와 자본가들 사이의 융합을 가속화하고, 자본가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반동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은 국가가 진정으로 다수 사회구성원을 대변하고자 한다면, 노동자계급의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가계급이 착취를 통해 쌓아올린 거대한 부의 성을 침범해 노동자계급의 일자리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정부재정을 한 줌 착취자에게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 투입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생산-유통을 대담하게 사회적으로 통제해 재난과 위기를 극복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자본가의 이윤논리에서 벗어나 거대한 사회적 생산수단들을 전면적으로 국유화해 사회의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노조할 권리를 비롯해 노동자 민중의 조직, 단결, 투쟁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면서, 착취자의 반항에 맞서 싸우는 국가를 갈구한다. 국가관료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조직이 직접 통제 운영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바로 노동자계급의 국가, 노동자권력을 갈구한다.

 

코로나19 재난과 이어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이처럼 국가를 둘러싼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이 본격 점화할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자본가국가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생존과 이익을 대변하도록 요구하는 노동자투쟁이 발전해갈 것이다. 가령 자본가국가는 천문학적 재정을 자본가에게 쏟아 부으면서 전면적인 구조조정, 즉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주문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모든 사업장에서 단 한 명의 해고도, 단 한 푼의 임금삭감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전제를 조금이라도 거부한다면, 그런 기업은 망해 마땅하며 국유화해 사회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재정 투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체적인 계급대립 속에서 자본가국가냐 노동자국가냐라는 사활적인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자본가국가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이 자본가국가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국가 바깥에서 계급투쟁의 진지를 구축할 것이다. 이 계급투쟁의 진지는 성장하고 발전해서 자본가국가를 대체하는 노동자국가로서 결국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노동자국가는 모든 결정적 생산수단과 금융기관을 국유화함으로써 자본주의적 국유화를 넘어 진정한 사회화에 도달할 것이다. 바로 사회주의다.

 

파산하는 자유주의 뒤편에서 사회주의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이 위기의 시대에 자본가국가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전면화는 노동자권력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결정적인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국가냐 자본가계급의 국가냐,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말고는, 다른 선택이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963건 7 페이지
현장
이재백 22/04/18 3,008
cc75088eb1c3ae626ce4f40615046b4a_1649807212_5533.jpg 정치
김요한 22/04/13 4,465
70777c0588efdfdd355fb4a377ebebbc_1649322465_3444.jpg 사회
인터뷰/정리 홍희자 22/04/07 5,189
770583ddbc8b339924375c3ae6e8e596_1649124450_5873.jpg 국제
옮긴이 양준석 22/04/05 11,348
5400c9e96fa02fb0c100ce13ced255c7_1648730389_2099.jpg 국제
옮긴이 양준석 22/03/31 14,825
78396264544cecc66544141d99f07d97_1648691319_4339.jpg 사회
인터뷰/정리 이영미 22/03/31 4,495
현장
오세일 22/03/29 3,350
351ecce455f4a0aadc9620db55377c54_1648107811_3714.jpg 국제
옮긴이 김요한 22/03/24 11,345
c8fcc3511dc2cfb6a370e870489fa55e_1648016841_1746.jpg 사회
인터뷰/정리 홍희자 22/03/23 4,494
7d33e7513e6a310f86704e2d9938f5eb_1647942433_9974.jpg 정치
홍희자 22/03/22 3,993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