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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하는 자유주의, 그다음의 길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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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299회 2020-04-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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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가격폭등, 사재기, 줄서기위대한 자유주의의 종착역. 



코로나19 사태는 결정적인 사회적 진실을 숨길 수 없게 분명히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자본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자유주의 이념의 파산이 자리잡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사회적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관리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핵심논리는 이런 것이다. 어떤 산업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증대하면 가격이 낮아지고, 이것은 자본가의 투자욕을 감퇴시켜 사회적 자원이 이 산업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인상되고, 이에 고무된 자본가의 투자는 사회적 자원을 이 산업에 자동으로 추가 투입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수요에 비해 생산이 과잉인 부분에서는 사회적 자원이 빠져나가고, 사회적 수요에 비해 생산이 부족한 부분에서는 사회적 자원이 투입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조정장치인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 구조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적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간섭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뒤따랐다. 국가는 이 자율적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단지 밤에 도둑이나 잡는 역할에만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야경국가론이 바로 자유주의다.

 

여기서 하나의 논리가 추가로 파생됐다. 이런 가장 효율적인 자율적 조정장치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금기시되는 반면, 자본가의 개입은 필수적이었다. 자본가들의 이윤욕이 개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회적 자원은 과잉된 부분(가격이 하락해 이윤율이 낮아지는 부분)에서 결핍된 부분(가격이 올라가 이윤율이 높아지는 부분)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자본가의 이윤욕,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를 관통하는 이윤 논리는 잔인하고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이 효율적 경제체제를 떠받치는 유일하게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사회적인 요소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자신이 신처럼 모셔왔던 자유주의 이념을 스스로 배신하고 있다. 국가는 야경국가가 아니라, ‘전면적인 개입에 나서고 있다. 수많은 자유주의 신봉자들이 그것을 보고 경악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마저도 국가가 행하는 그런 배신에 정면으로 항의하는 대신, 오히려 더 대담한 배신을 국가에게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주의 이념, 그리고 이 이념이 대변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히 낡아 파산해버렸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파산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사회주의의 유령이 이 사회 전면에 더욱 강력한 힘으로 배회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배신당하고 있는 자유주의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하자. ‘마스크 사회주의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마스크를 비롯해 핵심 의료장비의 생산과 유통에서 국가통제가 본격화됐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이 재난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신을 덮치는 위험을 스스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 이념에 따르면, 마스크 수요가 폭증해 가격이 폭등하면, 높아지는 이윤율에 신바람이 난 자본가들에 의해서 사회적 자원이 마스크 생산에 투입됨으로써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돼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마스크 수요에 비해 생산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생산 확대는 재난의 확대 속도를 결코 따라가지 못했다. 이것은 산소호흡기를 비롯해 문제해결에 필수적인 모든 의료장비에 공히 적용되는 바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민영의료체계는 이런 비상 상황 앞에서 아무런 효율적인 대처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직접 마스크 생산, 유통, 분배에 개입했다. 마스크 생산가격도 직접 통제했다. 마스크 산업 자본가들에게 마음대로 맡겨둔다면 치솟는 마스크 가격과 사재기 등으로 재난 확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분명했고, 대중의 저항과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와 관련해 한국에서 나타났던 상황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찬가지 모습으로 재현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오래된 전시법까지 동원해 지엠에게 산소호흡기 생산을 명령했다. 영국 정부도 다이슨에게 인공호흡기 1만 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생산에 직접 개입했다.

 

보이지 않는 손보이는 손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자유주의 이념의 신봉자들은 이 상황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그들이 찬미하는 자본주의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맡겨둔다면, 그것이 초래할 재앙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배신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신은 거대한 배신의 일각에 불과하다. 자유주의 이념은 경쟁에서 도태된 비효율적인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효율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항상 강조해왔다. 시장의 가격경쟁에서 도태된 비효율적인 기업이 제거됨으로써 사회는 선진적이고 효율적인 체제로 끊임없이 물갈이되면서 진보해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경국가는 파산하는 기업과 자본가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보내서는 안 되며, 이 뒤처진 비효율적인 부분의 파산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효율적인 부분이 오랜 기간 비대하게 커져왔다. 파산 직전의 위태로운 기업의 비율이 수십 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확대돼왔다. OECD는 주요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한계기업의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음을 몇 년 전부터 계속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 한계기업을 파산으로 내몰고 있고, 나아가서 이른바 흑자기업까지 적자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하면서,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 순환의 키를 쥐고 있는 자본가들이 자기 역할을 방기해왔고,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을 앗아갔다. 여기서는 자유주의 이념이 절대적으로 옳았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듯 자본가들은 오직 이윤욕에 의해서만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데, 이윤율의 저하는 그들의 식욕을 앗아갔다. 투자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은 깊은 불황과 저성장의 늪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을 극적인 수준으로까지 빠른 속도로 밀어 올렸다. 다수 기업이 한계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생산가동률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기대와는 달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내맡겨둔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다. 여기서는 그냥 방치하면 제거되고 퇴출될 비효율적 자본은 전체 자본의 작은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다. 그냥 방치하면 이 자율적 조정장치는 완전히 망가져버려, 대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비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작심하고 자유주의를 완전히 배신하기로 마음 먹어버렸다. 미국 정부는 부실기업이 발행한 악성채권까지 모조리 사들이는 무제한적 재정 투입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도 항공사,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파산 직전의 기업에게 천문학적 국가재정을 쏟아 붓고 있다. 자본가국가의 전면적인 개입 덕분에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기업이 근근이 버티고 있고, 금융권은 파산을 모면하는 등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파국이 유예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개입이 미래에 야기할 거대한 위험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자율적 조정능력, 효율성 증대, 자본가 이윤욕의 생산적 역할 등 자유주의가 내세워왔던 매력들, 그리고 이 매력들에 기반했던 국가 개입 반대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자리를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개입이 대체하고 있다. 어제까지 강경 자유주의자였던 작자들이 오늘은 국가의 무제한적 개입을 부르짖고 있다. 어제까지 자유주의의 배신자로 취급받았던 국가 개입론자들이 이제 자유주의의 구원투수로 칭송받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주의의 파산선고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이상 이 사회의 진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반동적 체제로 전락했음을 자본가계급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자본주의의 역사와 자유주의 이념의 부식

 

자본주의는 항상 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작동했지만, 사실 이 자유주의가 온전하게 작동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체제가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가국가는 자본가계급의 공동집행위원회로 작동해왔다. 자본가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잔인한 착취를 정치적으로 정당화했고,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기구로 작동했으며, 자신이 보유한 모든 경제적 힘을 전적으로 자본가를 위해 동원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 즉 자본가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이의 분리는 애당초 존재한 바가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초기만 해도 자본가국가가 경제에 전면개입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됐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초,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급격히 변화됐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 주요 자본주의 나라에서 전시 국가자본주의가 도입됐다. 전쟁 수행의 필요성에 의해 자본가국가는 주요 기업의 생산과 유통을 직접 통제했고, 전시법을 동원해 노동자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에 나섰다.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는 하나의 몸뚱이로 융합했다.

 

세계대전 와중에 세계 대공황이 덮치자, 자유주의 노선은 더욱 위기에 봉착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취했던 미국 정부마저도 대공황 속에서 미국 경제가 급속히 나빠지자 자유주의 노선을 수정해야 했다. 루스벨트는 뉴딜(New Deal)’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제에 직접 개입해 생산을 통제하고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였다.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노인연금과 실업자수당 등으로 소비를 진작하려 했다. 산업부흥법도 도입해서 생산을 조절하고 기업 간 과열 경쟁을 억제하려 했다. 긴급은행법을 마련해 은행의 구제와 금융제도 정비에 착수했고, 통화에 대한 정부의 규제력도 강화했다. 또한 농업 붕괴를 피하기 위해 농업조정법을 마련해, 과잉생산된 농산물을 정부가 매입하고 농업생산량을 조절하려 했다.

 

이런 국가의 전면개입은 결국 수정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잉태했다. 자본주의는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나,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 메커니즘이 고장 나거나 위태로운 상태가 오면, 자유주의를 수정해서 국가의 개입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자유주의의 신성불가침이 훼손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특히 독점자본이 발전하고 영향력이 커지자, 자본주의 국가와 대자본 사이의 융합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몇 개의 대자본이 사회의 생산능력 대부분을 독점하면서, 이렇게 확보된 경제적 힘이 정치적 힘으로까지 확장됐다. 뇌물, 인맥 관리, 정치자금 지원, 퇴직 후 보장, 결혼 등 수백 가지 방식으로 대자본가들과 정부 핵심 관리들은 융합해갔다. 대자본가들은 신문, 방송사 등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대자본가들은 정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힘도 쥐었다.

 

나아가서 대자본가들은 대학이나 연구소 등을 통해 자본가의 이익과 논리를 대변하는 지식인을 대규모로 육성하고, 이렇게 키워진 자들이 검찰, 사법부, 한국은행, 산업은행, 기재부, 국토부 등 국가권력 핵심부와 함께 주요 자본가정당들에 포진한다. 이런 여러 고리를 통해 대자본가들은 국가의 수중에 있는 경제적 힘, 가령 산업은행 같은 국영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화폐, 정부재정, 국영기업, 공기업의 힘을 대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왔다.

 

또한 독점 대자본가들은 투자를 결정하는 권한을 바탕으로 가장 민주적이라고 자처하는 정부들까지도 압박할 수 있다. 경제 안정 없이는 국가 지배권을 유지할 수 없기에 정부를 관할하는 핵심 정치인들은 대자본가의 영향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투자해야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지지율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 현대 같은 하나의 대기업이 파산해버리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수십만 명의 삶이 급격히 파괴된다. 자본가정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대자본이 무너지지 않게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인 정부재정은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이란 형태로 대자본의 회생을 위해 투입되곤 했다.

 

이렇게 자본가국가의 도움으로 대자본은 회생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가정부와 대자본의 융합은 더욱 전면화한다. 이제 대기업의 번영과 생존은 자본가정부의 번영, 생존과 뗄 수 없이 연결된다. 대기업의 이사진과 경영진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한 자본가국가의 핵심 관리들, 특히 산업은행의 관리들이 포진하게 되고, 이들의 입김이 높아진다. 이들은 정부재정을 회수한다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향한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기업합병 같은 자본의 집중 경향을 부추긴다. 이런 식으로 국가와 자본 사이의 융합 경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순수한 자유주의 이념은 오직 부르주아 지식인의 관념에서만 존재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자본가국가와 자본 사이의 긴밀한 융합의 확대였다.

 

자유주의를 젖히고 더욱 전면에 부상하는 국가 개입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국가와 자본의 융합 경향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 이념이 그토록 강조했던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 그리고 자본의 탐욕이 낳는 효율성과 생산성 증대가 결정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과잉생산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다.

 

만성화된 과잉생산, 즉 생산과 구매의 부조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강타했다. 시장은 자율적 조정기능을 발휘해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기는커녕 만성 불황의 늪에 빨려들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유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생산의 추동력, 즉 자본가들의 이윤욕에 근거한 맹렬한 투자를 근본적으로 제약했다. 이윤율이 낮아지자 자본가들은 투자를 줄여버렸고,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률을 극히 낮은 수준에 묶어버렸다. 이윤에 눈이 먼 자본가들의 투자 덕분에 이뤄지는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옛 추억이 됐다.

 

돈은 생산 부문에서 빠져나와 금융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분야인 생산이 답보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돈의 흐름은 거품과 위험을 증대시켰다. 실물자본과 괴리된 금융자본 부문에서 거품이 터짐으로써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덮쳤다. 여기서도 자본가국가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천문학적 국가재정이 금융 전반의 파산 도미노를 저지했다. 그 가운데 자본가국가와 금융자본의 융합이 확대됐다.

 

그로부터 대략 12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사태와 경제위기 앞에서 이런 융합은 더욱 전면화되고 있다. 대공황의 위협 앞에 모든 자본가들이 자본가국가의 행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스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파산을, 그리고 코로나19 재난을 도저히 차단할 수 없기에, 자본가국가의 전면개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주의가 점차 몰락하고 있음을 자유주의의 파산과 국가 개입 확대를 통해 증명해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명이 다하면서 수시로 고장나고 더욱 결정적인 위험과 마주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웅변한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 개입이나 통제가 확대되더라도,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뒤바꾸지는 못한다.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국가 개입의 모습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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