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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범죄자들과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할 자들: 솜방망이 처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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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 조회 5,133회 2020-04-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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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의 역사: 성범죄에 관대한 국가기구들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 사건이 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악랄한 성착취 행위를,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 공유했다는 점이 특히 큰 분노를 자아냈다.

 

그런데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던 건, 이번에 터진 텔레그램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다양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 웹사이트가 있었고,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불처벌의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N번방 사건 또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퍼졌다.

 

그동안 디지털 성착취 영상을 올린 웹사이트의 운영자와 이용자가 실제로 어느 정도 처벌받았는지, 소라넷, AV스눕, 웰컴투비디오라는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소라넷

 

성착취 사이트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소라넷은 1999년부터 2016년까지 17년 동안 운영됐다. 특히 약을 이용해 여성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든 뒤 집단강간을 논의하는 범죄행위가 소라넷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진 사실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소라넷 운영진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소라넷 운영진 4명 중 단 1명만이 검거됐고, 징역 4년에 그쳤다. 나머지 3명은 해외도피 상태라 여전히 추적 중이다. 소라넷에서 벌어들인 수익 또한 환수되지 못했다. 1심에선 14억 원의 추징금 선고가 내려졌지만, 최종심에선 그것마저 기각됐다. 아직 잡히지 않은 3명은 여전히 소라넷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지고 해외 어딘가에서 버젓이 살고 있다.

 

운영진이 처벌되지 않은 것만 문제가 아니다. 소라넷을 이용해 강간을 모의하고 실행하고, 또 불법촬영물을 게시하고 소비하고 퍼 나르던 수많은 이용자에 대한 처벌도 당연히 진행됐어야 한다. 하지만 소라넷 관련 보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소라넷 이용자들이 처벌받았다는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AV스눕

 

AV스눕은 2016년 소라넷이 위기를 맞으면서 제2의 소라넷으로 급부상했다. 이 사이트에 게시된 음란물은 미성년자 촬영물을 포함해 46만 건에 달했다. N번방 범죄자 중 한 명인 와치맨도 이 AV스눕이란 이름을 본 딴 블로그를 통해 텔레그램을 홍보했다.

 

AV스눕 운영자도 2017년 경찰의 단속에 붙잡혔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운영자는 겨우 징역 16개월을 선고받았고, 2019년에 당당히 만기 출소해 현재는 사회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AV스눕의 이용자들은 처벌을 받았을까? 재판에 넘겨져 형사처벌을 받은 회원은 겨우 48명에 불과했다. 그 중 39명은 그저 선고유예, 집행유예, 벌금형으로 끝났다.

 

언론에 보도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불법촬영물을 여러 번 업로드한 회원은 범행을 자백했다는 이유로 선고유예를 받았다. 미성년자인 여고생의 신체사진을 여러 번 업로드한 회원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선고유예를 받았다. 몰래카메라 어플을 다운받아 여성 신체를 107차례나 불법 촬영했지만, 초범이고 나이가 어려서 벌금형에 그쳤다.

 

웰컴투비디오

 

웰컴투비디오는 손정우라는 한국인이 운영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일반적인 웹브라우저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인터넷의 지하세계’)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이다. 운영자 손정우는 수익이 많이 나온다며 아동 성착취 영상만을 취급했다. 그는 28개월 동안 사이트를 운영해 4억 원의 수익을 챙겼다. 운영자 손정우는 32개국의 국제공조수사로 검거됐다. 붙잡힌 337명의 회원 중 무려 223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아동 성착취 영상만을 취급해서 돈을 번 이 악랄한 운영자는 제대로 처벌이 됐을까? 그렇지 않다. 손정우는 재작년에 1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고, 이번 달에 출소할 예정이다. 범죄사실을 자백해서, 어려운 성장과정을 보내서, 혼인을 해서 등등이 유리한 정상참작 사유가 됐다.

 

현재 미국 법무부가 손정우를 미국 법으로 처벌하려고 송환을 요청한 상황이다. 미국에서 중형을 받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미국에 넘기는 상황이 달가울 수는 없다. 웰컴투비디오 이용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가족부의 답변을 보면, 이용자 대부분은 초범이라서 150만 원에서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만 받고 끝났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선

 

외국의 형량과 비교하면 성범죄에 대해 우리나라의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과 비슷한 범죄가 미국에서도 있었다. 텍사스에 사는 마크 반웰이란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가짜 아이디를 사용해 여러 명의 여성에게 모델 일을 제안하며 사진을 찍으면 돈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렇게 사진을 얻어내고 이를 이용해 총 43명의 여성을 협박했다. 그는 공공장소, 화장실 등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한 불법촬영물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은 20191월에 아동 성착취 등 혐의로 징역 35, 종신 보호관찰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언급한 웰컴투비디오 사례의 경우, 운영자인 손정우는 한국에서 16개월형을 받았지만, 미국의 이용자들은 이보다 훨씬 중한 형을 받았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의 관련 보도자료에서 아동 성착취물 소지혐의만으로 5년 이상의 징역을 받은 사례를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동 성착취 범죄에 관한 최근 한 달 사이의 사례만 살펴보아도,

 

2020313일 아동 성착취 영상 유포, 소지 혐의로 13년형

2020314일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자 12년형

2020316일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자 9년형

2020317일 아동 성착취 기업 참여혐의로 30년형 및 평생 보호관찰형

2020318일 아동 성착취 영상 제작자 27년형

등등 한국보다 훨씬 중한 형량이 선고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이, 성범죄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더 나은 국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여성의 성기를 만졌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 법무부 사이트에 매일 다섯 가지가 넘는 성범죄 소식이 올라온다는 것도 그만큼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해자를 보듬어온 사법부의 책임

 

하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이 너무 가볍고, 가해자에게 온정적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낸 성명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디지털 성범죄 판결이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는 이유로 양형기준의 부재를 꼽기도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형편과 변명에 귀 기울여온 사법부에 있다.”

 

불확실하고 미약한 처벌은 디지털 성범죄를 겪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용기를 내서 가해자를 고발해봤자,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의 보복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은 성범죄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가해자에겐 너무나 관대하고, 그만큼 피해자에겐 무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법이 없다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처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35일 법사위에서,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제1호 국민청원은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고 증발해버렸다. 그날 딥페이크에 관한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법을 만들지 않는다면, 또 성범죄 처벌을 제대로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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