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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위기를 통해 또다시 확인한다: 지금이 바로 사회서비스공단으로 전 생애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사회적 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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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숙사회서비스 노동자 조회 5,079회 2020-04-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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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이 생기지 않는 안전한 돌봄체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코로나19라는 국제적 재난 속에서 보육현장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쉬라고 해도 쉴 수 없는 노동자, 멈추라고 해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은 공허한 캠페인을 뒤로 하고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가 일하고, 또 저녁이 되면 아이를 데리러 온다.

 

아무리 거리를 두라 해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보육 노동자의 밀접한 돌봄을 받으며 생활한다. 보육 노동자는 사회적 돌봄을 수행하는 노동자로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그 자리에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노동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로서 경험하는 일상을 통해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무엇을 남기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휴원령 이후의 어린이집

 

2020128일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 출석인정특례가 완화되고 자율보육체계가 시작됐다. 뒤이어 바로 어린이집 주요행사 중단권고가 내려왔다. 사실상 1월 말부터 어린이집은 불안정하게 운영됐다. 225일 처음으로 대대적인 어린이집 휴원령이 발표된 이후 3차에 걸쳐 휴원 연기와 무기한 휴원 연장이 발표됐다.

 

문을 닫고 있을 거라고 상상되는 휴원 기간이지만 어린이집은 긴급보육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이 기간 어린이집은 정상운영을 원칙으로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교사들은 출근해야 하고, 급식과 간식도 정상 지급된다. 방역지침 강화로 매일 같이 어린이집 주변 방역을 하고, 수시로 소독약을 뿌리고 손이 닿는 모든 곳을 제균제로 닦는다. 아이가 있건 없건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해오던 교육계획을 똑같이 세우고,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놀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구하기도 어려운 마스크를 쓴 보육교사들이 매일 두 번씩 발열체크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 때문에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거나 혹은 나쁜 일처럼 되어가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기 아이들이 모이는 어린이집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여건이 허락되는 양육자들은 힘들더라도 가족 내 돌봄을 선택하고 안전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일을 쉴 수 없는 양육자들은 긴급보육을 신청하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맡기고 일터로 향했다가 다시 저녁이면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장기화 우려 속에 번져나가는 해고위협

 

46일에는 어린이집 운영이 재개되기를 기대했지만, 331무기한 휴원 연장이 발표됐다. 어린이집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퇴소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반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무기한 휴원 연장이 발표되고 양육자로부터 어린이집을 그만두겠다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반이 없어지면 누가 먼저 나가야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반이 없어지면 누군가는 분명히 해고위협과 해고통보를 받게 될 것이다. 어린이집 상황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 사회서비스영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대거 늘어난 파트타임 단시간 근무 교사들보다는 반을 맡고 있는 풀타임 근무 교사들이 먼저 해고대상이 된다. 결국 저임금, 단시간,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3월 말 현재 긴급보육 이용 아동비율이 31.6%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휴원기간이 길어질수록 긴급보육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양육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긴급보육은 일상적인 반 중심 운영과는 다른 운영체계다. 그러다보니 긴급보육을 신청하고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 수가 증가한다고 해도 반이 사라질 수 있는 위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반의 운영이 코로나19로 인한 휴원명령 이전처럼 될 때에야 비로소 해고위협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체계는 쉽게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재난상황을 틈 타

 

보육현장의 일상은 이렇게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긴급보육체계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무급휴가, 무급휴직, 페이백, 교사식대 공제 등이 시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2주 동안 잠시 멈추자! 철저히 동참하자!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교사들은 가가호호 전화를 돌려 긴급보육 수요조사를 하며 은근히 어린이집에 등원하라는 이야기를 건네도록 원장에게 지시받기도 한다.

 

이런 일을 당하고 또 해야 하는 교사들은 이런 상황을 납득하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코로나19를 재난재해로 보고 아이들이 결석하더라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출석인정특례를 적용했다. 출석인정특례로 어린이집에 들어오는 보육료 수입이 줄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대한 정부지원을 이전과 같이 유지한다는 공문까지 시행됐다. 그런데도 3월 한 달 사이에 현장에서는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집은 사회복지시설이지만 민간,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장들의 움직임도 주시해야 한다. 한 어린이집 안에서는 교사들을 상대로 무급휴가, 무급휴직, 페이백, 해고위협을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긴급보육체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눈여겨 볼만한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원이 지금까지도 적지 않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올라온 몇 개의 청원은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복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후퇴시키려는 요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보육료 결제를 어린이집에서 직접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다.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보육료는 양육자의 손을 거쳐(보육료 카드결제)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바우처 방식이다. 국가는 보육료를 시설로 직접 지원하지 않고 양육자들의 손을 거치는 방식을 통해 자본가인 원장들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안전거리 안에서 원장들이 보육료를 유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난 상황을 틈타 복지예산인 어린이집 보육료에 대한 통제권을 전적으로 어린이집 원장에게 이전하고 어린이집 운영에 안정성과 효율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든 것이다.

 

악화되는 돌봄공백

 

그런가하면 양육수당 때문에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우니 양육수당 제도를 폐기하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매우 기초적인 복지제도인 양육수당조차도 경쟁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폐지하라는 주장이다. 또 긴급보육 이용에 자격조건을 높여 아무나(?)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라는 요구도 올라온다. 긴급보육은 돌봄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유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양육자는 누구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런 청원은 어린이집이 보편적인 돌봄이 아닌 선별적 돌봄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청원들의 내용을 정리하면 사회복지시설 예산 통제권을 국가도 수급권자도 아닌 민간자본에게 넘기고, 보편적 사회복지를 축소해 민간자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보호하라는 것이며,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편적 보육정책을 축소하고 보육서비스 사용에 제한을 두라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재난상황은 위기는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가장 약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똑바로 보여줬다. 그곳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멈출 수 없는 노동자, 이주 노동자,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들이 드러났다.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아동, 노인, 장애인, 질환이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드러났다. 너무도 끔찍하게 생명과 생존의 조건, 그리고 안전을 빼앗아가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 위기를 경험하면서 위기가 가리키는 바로 그곳을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 또한 극명해진다.

 

약한 고리들의 약한 고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권을 방어하는 일이다. 이미 실업에 대한 대대적인 위기감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노동유연화, 노조할 권리 축소 등을 핵심내용으로 담은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라는 40개 요구를 국회에 던졌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사회에 던져야 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만나는 노동자뿐 아니라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방어가 시급하다. 노동할 권리를 방어하는 일을 넘어서 제 때에 쉴 수 있고, 제 때에 멈출 수 있는 노동의 권리를 확보해 가야 한다.

 

보육 노동자는 약한 고리들의 약한 고리다. ‘멈출 수 없는노동자의 아이들은 거리를 둘 수 없는바로 그곳 어린이집에서 보육 노동자들과 생활한다. 아무리 거리를 두라고 해도 긴밀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매일 그들을 만난다. 아이, 장애인, 노인, 환자. 그들에게 돌봄은 곧 생존이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돌봄 공백을 최소화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생존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은 이 사회적 돌봄이 더 확장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만들어가는 일이다. 사회적 돌봄체계를 만드는 일은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가장 말단에 피가 제대로 돌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돌봄, 사회서비스, 사회복지의 책임주체를 명확하게 세우는 일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사회적 돌봄을 책임지지 않았다. 국가는 복지예산을 투여할 테니 운영은 민간자본이 알아서 하라는 방식을 일관되게 취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자본들은 이 위기를 틈타 옹그리고 있던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예산에 대한 직접 통제, 보편적 복지와 보편적 돌봄 축소를 통해 민간자본을 지키라는 요구다.

 

이 위기 속에서 사회서비스 노동자는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돌봄체계를 촘촘하게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장애가 있건 없건, 그가 누구이건 간에 생존 조건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해 사회적 돌봄의 전달체계를 국가가 책임 있게 운영하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꾸준히 내걸어온 요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을 만들어 가기 위해 사회서비스영역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더 큰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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