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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약방문 그만 하고 의료현장 인력충원부터 제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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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자서울성모병원 노동자 조회 4,978회 2020-04-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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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충원 없이 쥐어짜기만 한다면 한국에서도 의료붕괴를 피하기 어렵다.

 

 

, 병원에서 일해요.” “어머, 나이팅게일이네!”

 

요즘은 나이팅게일 정도가 아니라 영웅이라 불리는 보건의료 노동자들. 그러나 이 그럴듯한 말은 순수한 찬사보단 희생, 헌신, 인내를 당연시하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길어지면서 이 영웅들의 고통은 갈수록 더해간다.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 의료진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위에 나섰다. 의료현장에서 감염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마스크 같은 보호장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처우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임금체불까지 일어난다. 항의행동에 나선 노동자들은 말한다. “배고픈 영웅은 일할 수 없다!”

 

배고픈 영웅은 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낫네,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눈에 띄는 시위가 없을 뿐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 병원에서도 3월 초순부터 마스크 배급제가 시작됐다. 근무일 당 한 장. 사실상 재활용하라는 얘기다.

 

보건용 마스크는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종사자 수×0.4’허가 병상수×0.3’을 더한 수량만 신청이 가능하다. “심평원 기준에는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이외 일부 행정직만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행정인력 이외에도 청소, 안내 등 용역직원이 제외돼 있다.”(<메디컬타임즈> 311일자)

 

2월 말, 포항의료원 간호사 16명이 집단사표를 냈다. 간호사가 98명인데 하루 만에 환자 74명이 들어왔다. 같은 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자 환자가 140명으로 늘었다. 넘쳐나는 코로나 확진자 또는 의심환자, 반면 부족한 인력, 부족한 병상, 부족한 지원. 어벤저스급 슈퍼 영웅이 아니고서는 견디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보건의료 노동자는 영웅도, 로봇도 아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인간이고 노동자일 뿐이다. “감염이 벌어지는 그 현장, 병원이 사실은 위험한 공간인데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보건, 노동자 보호의 관점은 아예 없다.”(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13)

 

가성비 갑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기관 비율은 5.8%, OECD 평균은 51.8%.

2017년 기준 국내인구 1천 명 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1.3(OECD 평균 3.0), 전체 병상 중 공공의료기관 보유 병상 비율은 10.2%(OECD 평균 70.8%),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신규 간호사 이직률 43.8%, 활동 간호사 비율 49.6%OECD 하위권.

의료법상 간호사 인력 채용기준인 입원환자 5명 당 간호사 2명을 만족시키고 있는 의료기관은 전체의 14%.

OECD 34개 국가 중 공적 상병수당제도가 없는 국가는 한국, 미국, 스위스뿐.

2030년까지 의사 7,6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

 

한국의 보건의료 관련 주요 통계다. 공공의료 비율, 공공병상 수, 간호인력 수 모두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극복의 모범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이 적은 인원으로 강도 높은 노동을 장시간 버티며 모범을, 기적을,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자본과 정부는 속으로 쌍엄지 척을 하며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야,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가성비 갑인데.’

 

공포스러운 자본주의의 합리성

 

우리나라는 평시기준 과잉공급을 우려할 정도로 병상 자원을 많이 가진 편이다. 2017년 기준 인구 1천 명 당 국내 병상 수 12.3개로, 일본(13.1) 이어 두 번째로 많고, OECD 평균(4.7%)2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 <연합뉴스> 322일자)

 

95%에 달하는 민간 의료기관을 포함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병상이 남아돈다는데, 자가격리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코로나19 환자가 생기는 이 아이러니.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것은 전혀 아이러니가 아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일일 뿐.

 

누구는 집을 몇 십 채 소유하고 주식배당금만으로 먹고 살고, 누구는 집도, 결혼도, 아이도, 연애마저 포기하고 사는 게 이미 당연시된 지 오래인 헬조선. 하루 입원비가 몇 십만 원에서 백만 원에 달하는 대학병원 초호화 VIP병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자본가, 정치인, 심지어 구속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공공의료원마저 폐쇄돼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가난한 노동자, 민중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이 모든 게 전혀 모순된 게 아니다. 한쪽에서의 풍요와 사치, 다른 한쪽에서의 가난과 결핍. 심지어 죽음까지도!

 

선거용 레퍼토리로 전락한 공공의료 확충

 

의료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가는 영리병원과 경제자유구역을 늘려주는 법안은 일사천리로 만들지만 공공의료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미 메르스 사태 때부터 공론화된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 문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고스란히 재현됐을 뿐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이다2012년 발의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진주의료원이 폐쇄되고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뒷전이다.


319, 경사노위 보건의료위원회는 코로나19 위기극복방안 합의를 했다. 그나마 노동계위원은 모두 한국노총 대표였고 합의문에 쓰인 대부분의 문장은 협력, 검토, 노력, 모색이란 애매모호하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말로 마무리된다. 물론 합리적인, 적절한, 적합한이란 듣기 좋은 말도 추임새로 사용됐다.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이 적절하게 배치되도록 협력”. 인력확충과 정부의 예산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채, 또한 민간의료자본에 대한 더 강한 정부통제나 공공의료기관 확충 없이 이것이 실현될 거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 민심을 잡으려 공공의료 확충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전문병원과 인력 확충에 대해 문재인 정부도 공약했지만 이행된 게 하나라도 있는가?

 

인력충원 없이 안전 없다

 

얼마 전 이탈리아는 2008년 민영화한 항공사를 다시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고, 스페인은 모든 병원을 일시 국유화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부도 위기의 대기업 국유화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민영화, 시장원리, 이윤원리에 따르는 것을 미덕이자 합리로 생각하던 자본가국가들이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국유화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코로나19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게 위기가 가시화되자마자 민영화, 시장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 따위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데 얼마나 쓸모없는지, 오히려 걸림돌에 불과한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자본가들이 숭배하는 그 따위 원칙들은 그저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이고 따라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취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정반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충분한 의료장비와 더불어 적절하게 노동하고 쉴 수 있는 인력확충이다.

 

게다가 의료현장의 인력충원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고 이번에 더욱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그 전에도 몸은 어차피 힘들었고 일은 많았어요. 그 전에도 밥 못 먹은 적, 화장실 못 간 적 많았어요. 그건 기본이었어요.”(‘대구 간호사들이 전하는 코로나19 현장 상황 심리적 압박감가장 힘들죠”’, <경향신문> 32일자)

 

정부의 책임

 

의료인력이 대거 필요한 이런 상황에서는, 군인 투입, 자원봉사자 모집 수준이 아니라, 50%에 달하는 미취업 유휴 간호인력을 정부가 직접 채용해서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스페인처럼 민간 대형병원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하거나, 초호화 VIP병실을 음압병상으로 바꾸는 공사를 시급히 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강제해야 한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의료인력 부족과 탈진 상황이 되고 나서야 겨우 민간 대형병원 음압병실에 확진자를 수용할 수 있게 협력하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정도로는 사후약방문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3월 중순에서야 4대 민간 대형병원에 드라이브 스루 같은 코로나 간편검사소를 설치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 곳도 나서지 않자 강제로 한 병원을 지정했다.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당장 할 수 없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이런 비상조치를 더 강력하게 취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책임은 코로나19에 있지 않다.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워 사회를 운영하고 법안을 만들고 체제를 관리하는 자본가들, 자본가정부에게 책임을 묻자. 인력이 곧 안전이다! 더 이상 부족한 의료지원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 없도록 정부가 나서서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도록 촉구하자. 코로나19의 피해당사자인 의료현장의 노동자, 가난한 노동자 민중이 나서야만 자본가정부는 비로소 움직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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