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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한국 모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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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306회 2020-04-0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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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갈아넣어 작동한 성공적인 한국 모델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이란 등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파국적인 수준으로 급증하면서, 강경한 봉쇄조치 없이 어느 정도 확산세를 저지하고 있는 한국 모델이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독일 언론 <슈투트가르트차이퉁>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모범적 모델이라고 했고, 메르켈 총리는 그간의 제한적인 검사 방침을 대신해 무증상자를 포함한 적극적인 검사로 방침을 바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공격적인 조기 대응 덕분에 한국이 강제적인 이동제한 없이 바이러스 확산을 둔화시켰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역시 한국은 대대적인 테스트를 하는 첫 번째 국가라는 제목으로 상세한 기사를 냈다.

 

신종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피해를 미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심 증상자와 밀접 접촉자까지 광범하고 신속하게 검사를 진행하는 적극적인 조치는 필수적이다. 그 점에서 한국 정부의 공격적인 검사 방침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성공적인 한국 모델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을 잊어선 안 된다.

 

노동자를 갈아넣는 모델

 

어떨 때는 입에서 쓴 내가 납니다. 음압실험실을 나오면 머리가 멍하고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2020315일자 <뉴스1>) 언론에 비친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 감염병 실험실의 모습이다. 빠른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24시간 비상근무 중인 연구원들은 자신들을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도 아닌 블랙칼라라고 부른다. 24시간 중노동을 한 뒤 잠깐 눈을 붙였다 다시 일하는 과정이 일상이 돼버렸다.

 

인원충원 없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철칙은 재난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다. 지난 2월과 3월엔 방역활동 등으로 휴일도 없이 야근을 이어가던 전주시청과 성주군청 공무원들이 쓰러져 사망했다.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 일이 되풀이된다.

 

그나마 한국에선 사재기 열풍이 불거나 마트에서 생필품을 둘러싸고 난투극을 벌이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일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사재기를 위해 마트로 달려가는 대신, 평소보다 택배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 업체별로 20%에서 40%까지 물량이 늘어났는데, 코로나19 이전에도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일상이었던 택배 노동자들의 체감 노동강도는 두 배 이상 강화됐을 것이다. 결국 312일 새벽, 쿠팡에서 일하던 한 택배 노동자가 배송구역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강경한 봉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짚어볼 대목이 있다. 분명히 한국에선 무장군인들이 경계를 서거나 통행증을 받아야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는 식의 봉쇄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227일 문재인 정부는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마사회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농성장을 폭력적으로 강제철거했다. 감염을 막는다는 빌미로 수백 명의 철거용역과 경찰을 투입했다. 서울 시내에서 집회도 금지됐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겨냥한 강경한 봉쇄조치가 선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성공한 한국 모델의 다음 장면

 

성공한 한국 모델의 진면목은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점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뒤 일반환자를 받지 못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5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 해고를 추진한 대구동산병원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직장갑질119’에서 조사한 바로는 지난 한 달간 해고나 권고사직이 세 배 넘게 급증했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경총이 국회에 제출한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요구는 해고는 더 쉽게, 노조 활동은 더 어렵게, 노동시간은 더 길게, 하지만 법인세와 상속세는 더 낮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재난마저 이윤 극대화 기회로 활용하려는 자본가들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전쟁 이후 빠른 산업화를 일궈낸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노동자의 초장시간 노동, 극악한 저임금, 군사적 억압으로 이뤄졌듯이,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두각을 보인 성공적인 한국 모델의 이면에는 또다시 장시간 노동과 실질임금 삭감과 노동자투쟁에 대한 억압이 놓여 있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을 극복하는 데에서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분투는 필수적이다. 병원, 버스, 지하철, 배송, 청소, 공장 등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해내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재난극복은커녕 하루아침에 마비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이런 헌신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윤 보따리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자본가들과 그들에게 봉사하는 정부에게는 더더욱 그럴 권리가 없다.

 

반대로 노동자들에게는 코로나19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권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투쟁에 나설 때에만 생명을 얻는다. ‘성공한 한국 모델은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이었다. 그다음 장면은,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자본주의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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