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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공포를 이겨낼 새로운 사회적 학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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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4,259회 20-03-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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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물류회사 TNT 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하고 있을까?(사진_Left Voice)

 

 

코로나19 주요 증상: 기침, 발열, 불안, 공포

 

코로나19는 기침, 발열, 인후통 같은 증상을 넘어 불안과 공포라는 심리 증상을 낳았다. 이 증상은 특정 감염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 심리 증상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 혐오하고 차별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으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이어진다.

 

신종 바이러스라는 표현 자체가 암시하듯이, 우리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에 직면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위협을 받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그래서 대책은? 한쪽에선 근거 없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조언한다. 이런 조언은 근거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이보다 좀 더 나은 조언은 코로나19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라는 것이다. 다양한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어놓으며 혼란과 잘못된 대응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신종 바이러스와 예방대책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보급하는 건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와 언론에서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그래서 코로나19가 불러온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진정됐을까? 이모저모 따져볼 것도 없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올바르고 과학적인 지식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약해진 사회적 면역력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들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 극우 언론이나 극우 정치세력이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혼란을 부추기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인간이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일들이 넘쳐나고, 특정 집단이 정권 재창출 같은 목적을 가지고 혼란을 부추기는 것도 언제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요인들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면역력을 갖고 있는가이다. 사회적 면역력이 취약해진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얄궂게도, 우리 모두가 경험한 사회적 학습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6년 전의 세월호 참사에 의한 학습효과가 그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권과 관계기관들이 보인 터무니없는 행동, 오만한 태도, 설득력 없는 해명은 대중 속에 국가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을 심어줬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사회를 뒤덮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는 결코 따라선 안 될 지시로 자리 잡았다.

 

이런 대중적 경험은 이중의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국가권력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와 복종의 습관을 흔들어놨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지배적인 정치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외치는 투쟁이 이어졌지만, 아직은 우리의 투쟁의 힘으로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도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기는커녕 흐지부지되는 실정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국가권력에 대한 부정이 새로운 대중적, 집단적 정치문화의 탄생으로 귀결되지 못한 채, 오히려 모든 걸 불신하며 각자도생을 삶의 원리로 삼는 흐름이 강화됐다.

 

생존지침이 된 각자도생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이런 부정적 흐름을 대중 속에서 강화시켰다는 점도 주목해봐야 한다. 정부는 사태 초기에 감염증 확산 추세가 곧 끝날 거라고 섣부른 낙관적 전망을 유포했다. 그러나 며칠 만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됐다. 이는 정부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예방대책도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감염 예방을 위해 KF94, 심지어 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며 절대 마스크를 재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그다음에는 1회용 마스크를 재사용하거나 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없다고 지침을 바꿨고, 그다음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또 지침을 바꿨다.

 

내일이면 마스크 부족 문제가 해소될 거라는 식의 약속도 거듭 물거품이 됐다. 사람들은 동사무소를 통한 배급 같은 방식을 써서라도 정부가 확실하게 책임을 져주기를 바랐지만, 정부는 한사코 시장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뭉기적거리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정확한 대응 방향을 제시해주지도 않고, 위기를 제대로 통제하거나 해결해간다는 느낌도 주지 못할 때, 사회 전반에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 아닌가.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처럼) 정부를 믿으며 잠자코 있느니, 차라리 내가 알아서 마스크라도 잘 쓰고 다니는 게 상책이라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린다. 물론 이런 각자도생은 해법이 아니다. 불안과 공포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더욱더 강력한 불안과 공포, 긴장과 피로감을 낳을 뿐이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 과거의 경험에서 물려받은 강력한 사회적 학습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길도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종류의 사회적 학습이 필요하다. 단순히 국가권력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도생도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는 집단적 경험 말이다.

 

다른 대응이 가능할까

 

현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이 공급돼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수많은 유통업자들이 이 위기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 하면서 마스크 가격 폭등이 일어났다는 사실이고, 어떤 마스크 제조업자가 자기 가족을 유통업자로 세우고 물량을 몰아주며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것이고, KF80 중심으로 생산하면 필터 부족 문제를 완화하면서 마스크 생산량을 최대 50%가량 늘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KF94 생산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다수가 밀집해 노동하는 밀폐된 공간으로, 또는 무작위 대중과 대면접촉을 해야 하는 노동으로 내몰린다. 한쪽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캠페인이 벌어지지만, 생계라는 괴물에 쫓기고 자본의 통제에 붙들려 있는 노동자들은 거리두기를 할 수도 없고, 잠시 멈춤도 불가능하다. OECD 산재사망률 1위이면서 노동자는 작업중지권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원리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누구보다도 노동자들 자신이 멈춤!’이라고 외쳐야 한다.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자본이 보장하지 않는다면, 마스크 한 장 가지고 장난치듯이 노동자를 차별한다면, 감염자가 발생했는데도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작업을 멈춰야 한다. 작업장 규모나 노동조합 유무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휴직을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물론 회사도, 정부도 그런 권리를 순순히 노동자에게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겐 중단 없이 자본주의를 가동하며 이윤을 뽑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면 집단적 투쟁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파업하는 노동자들

 

불가능한 일일까? 최근 감염자 및 사망자 폭증으로 혼돈에 휩싸인 이탈리아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학교와 공공시설을 폐쇄하고 지역 간 이동을 금지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 전국이 봉쇄됐다. 모든 국민에게 집에 있으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출근해야 했다. 1,100명이 일하는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몇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노동자들이 계속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정부 지침과 달리 서로 거리를 두면서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2등 시민취급을 받는 데 분노했다.

 

이 때문에 아마존 물류창고, 이케아, 핀칸티에리 조선소, 자동차 업체인 푸조시트로앵과 피아트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450여 명이 일하는 의류공장 코르넬리아니 노동자들은 공식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공인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마스크나 손 세정제 같은 기본적인 방역물품도 공급이 안 되는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없으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공장을 당분간 폐쇄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비슷한 파업들이 독일, 스페인, 영국에서도 벌어졌다. 이런 투쟁이 즉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더 확산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노동자들이 이런 사회적, 집단적 행동에 나설 수 있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분명히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부에 압력을 미친다. 스페인에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병원을 국유화해 국가적으로 통제하기로 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조합들이 자기 사업장만의 협소한 사안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전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전망이 없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압도적 분위기에 무기력하게 짓눌리거나, 행동에 나서지 않은 채 그저 정부에게 뭔가 바라기만 하거나, 심지어 또 다른 종류의 노사정 협조주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318일 오전 양대 노총 위원장이 자본가단체 대표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도달한 갈림길도 바로 그런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현 상황은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불행한 사회적 학습효과를 낳게 된다.

 

이제는 다른 사회적 학습을 해보자. 노동자들이 이 위기 앞에 집단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으며, 그 힘으로 노동자의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가들을 제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집단적으로 단결한 노동자에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학습경험을 해보자.

 

그렇게 새로운 사회적 학습의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대중적인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투쟁을 시작하는 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처음이 어렵다. 한 번 물꼬가 터진다면 한국 노동자들도 충분히 그런 투쟁을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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