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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빵과장미’는 여성이 혁명적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 –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에서 활동하는 셀레스테 무리쇼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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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조회 300회 2020-03-0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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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빵과 장미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를 상징하는 문구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오늘날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한 여성 노동자 운동단체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그간 아르헨티나 빵과장미’(Pan y Rosas)의 활동과 지향을 소개하는 번역기사를 몇 차례 게재했다. 3.8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해방의 전망을 노동자계급 운동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빵과장미의 실천을 다시 한 번 조망해보기 위해,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에서 활동하는 셀레스테 무리쇼(Celeste Murillo)와의 인터뷰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빵과장미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의 관련 단체로 출발했다. 하지만 PTS 당원이 아니더라도 빵과장미회원이 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요구가 대중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낙태권에 대한 요구가 컸다. PTS2003년 전국여성대회에 참여하면서 낙태권과 여성 노동자의 권리 요구를 결합하자고 주장했다. 낙태권을 위해 투쟁해야 하지만, 그 요구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와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여성대회를 마친 뒤 우리는 같은 입장을 취했던 무소속 활동가들과 함께 빵과장미를 결성했다. ‘빵과장미라는 이름은 20세기 초 미국의 로렌스 섬유 노동자 파업에서 따왔다. 경제적 권리()만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장미)를 위해서도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잘 표현해 준다. 이 두 가지가 페미니즘 운동에선 흔히 분리되는데, 둘은 하나로 굳게 결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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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대회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빵과장미회원들

 

 

 아르헨티나에서 빵과장미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빵과장미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권의 책자를 발간했는데, 특히 여성 억압이 자본주의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다뤘다. 우리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여성운동 안에서 좌파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미국 여성운동 내 이론적 조류인 사회주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대중적 개념이다.

 

빵과장미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여성 노동자들이다. 우리는 민주적 권리를 위해서도 투쟁하지만, 작업장에서 여성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도 열심히 투쟁한다. 마디그라프(노동자 자주관리로 운영되는 인쇄소)의 여성위원회가 그런 사례다. 우리는 전국여성대회에도 참여하지만, 여성과 노동자계급이 자기 조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여성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내부위원회 같은 노동자계급 조직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려 한다.

 

마디그라프 공장에서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활동했다고 들었다. 한창 마디그라프 점거투쟁이 진행될 때 공장 바깥에서 빵과장미는 어떻게 연대활동을 했나?

 

빵과장미는 공장폐쇄 전에 있었던 여성위원회의 모든 활동을 지원했다. 애초에 여성위원회의 설립을 빵과장미가 도왔다. 원래 마디그라프에는 남성 노동자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의 아내, , 친구들을 모아 여성위원회를 만들었다. 여성위원회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운동이 강한 장점을 활용했다. 여성위원회는 여러 여성조직들에게 연대를 제안하고, 작업장과 학교에서 집회를 열고, 모금을 했다.

 

우리는 이 생각을 1930년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조직에게서 가져왔다. 당시 작업장에 있는 건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조직했다. 오늘날엔 여성도 다 일을 하니까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그 경험에서 차용할 부분이 있다고 봤다. 이 시도는 아주 잘 먹혔다. 특히 작업장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만이 아니라 중남미 여러 나라와 유럽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빵과장미를 국제조직으로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이제 세계 곳곳에 빵과장미가 있다. ‘빵과장미는 중심 사상을 정리한 국제선언을 갖고 있다.(관련 글)

 

하지만 빵과장미는 각 나라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조직돼 있고, 국제적으로 느슨한 관계를 유지한다. 여성이 고통 받는 문제들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여성들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더 강조점을 둔다. 세계 곳곳에 건설돼 있는 각각의 빵과장미는 국제선언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정치를 결정하고 있다.

 

PTS는 혁명 활동에서 여성이 남성과 분리해서 조직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빵과장미는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이 활발한 나라에서 여성이 혁명적 정치로 다가올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수단이다. ‘빵과장미는 여성 문제를 토론하면서 혁명적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공간이지,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조직이 아니다.

 

PTS는 여성만의 분리주의 운동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빵과장미같은 별도의 단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혁명적 투사로서 우리는 성별로 분리된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이 억압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적 억압에 맞선 투쟁은 혁명적 사상에 다가가는 경로가 될 수 있다.

 

또한 빵과장미같은 여성단체를 건설하는 것은 특히 젊은 여성들을 만나는 유용한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입증됐다. 이것은 좌파정당이 (노동조합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만날 수 있는 경로이기도 하다.

 

우리는 빵과장미가 여성운동의 좌파로 활동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빵과장미는 정치단체다. 그래서 정치강령을 갖고 있고, 정치활동을 한다. 좌파정당은 운동에 참여하는 자신의 방법을 갖는 게 중요하다. ‘빵과장미는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우리의 정치적 전술이다.

 

젊은 여성 노동자, 청년 등과 용이하게 결합하기 위해서 빵과장미를 활용하는 건데, 그렇다면 당 안에 별도의 여성위원회는 없나?

 

그렇다. ‘빵과장미는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정치적 전술이며, 아르헨티나에 여성운동이 강력하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면, PTS를 만나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빵과장미를 통하는 것이다. 물론 빵과장미는 젊은 여성들이 PTS를 만나는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하나의 경로일 뿐이다.

 

그리고 빵과장미전술은 운동 안의 일부 편견, 특히 좌파정당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는 데도 유용하다. ‘빵과장미전술은 페미니스트들 속에서 우리의 강령과 사상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우리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또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조직으로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빵과장미는 학생이든 노동자든 젊은 여성들이 혁명적 사상을 알게 되는 더 쉬운 경로로 작동한다.

 

빵과장미가 활동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아르헨티나에서는 낙태권 문제가 중심이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여성폭력 반대가 주된 투쟁이며, 프랑스에서는 이주여성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물론 빵과장미는 어느 나라에서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조직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우리 관점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물론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긴 하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에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성우월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시에 (결합해) 작동한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그걸 상식으로 바꿔놓았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동지들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 했지만, 기사에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쓰기도 했다. 페미니즘이란 말 자체가 분리주의 경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가 있는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근원이 계급모순에 있다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계급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역시 여성 억압의 동등한 근원이라고 보는 이론적 경향이다. 이들은 가부장제는 계급과 무관하게 발생한 억압이라 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별도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 억압에 대한 이론적 경향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우리 관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그렇게 쓴다. 페미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이 점을 쉽게 표현해 준다.

 

용어 사용은 어디에서 활동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예컨대 아르헨티나에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생뚱맞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론적 경향으로 존재하는 미국에서 활동한다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린 나라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어떤 나라의 빵과장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만, 어떤 나라의 빵과장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많은 부분 그 나라의 정치적 전통에 달려 있다.

 

또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스탈린주의와 관련돼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실제로도 여성운동 내 계급환원주의와 관련돼 있어 문제가 많다. 그 점 때문에도 우리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한국에선 어떤 경향이 주류인가?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래디컬 페미니즘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만들어 나가려고 고민하고 있는 단계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운동 내에서 소수다.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은 훨씬 더 소수다.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의 주류는 키르치네르주의(페론주의)이다. 그들은 대선후보로 페르난데스를 지지했다.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에선 정치사상에 대한 토론이 별로 없다. 거리의 대중시위를 통해 낙태권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에 집중한다. 2015년에는 여성폭력 반대가 주된 요구였는데, 최근에는 이슈가 낙태권으로 바뀌었고 아주 대중적인 운동이 됐다.

 

아르헨티나 여성운동 내에서 소수지만 래디컬 페미니즘 같은 경향에 대해서 빵과장미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는 관계가 많지 않다. 합의지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토론을 하면 큰 견해 차이를 느낀다. 예컨대 아르헨티나에선 트랜스젠더 운동이 꽤 강하다. 그들은 여성운동에도 여러 해 동안 참여해왔다. 그런데 최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나 여성은 누구인가라며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주장을 했고, 우리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다. 그 경향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나는 왜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래디컬 페미니즘을 대안으로 보려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억압에 맞서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그 여성들을 설득하려 한다. 남성과 분리된 채로는 억압에 맞서는 힘을 약화시킬 뿐이니까.

 

동지들이 하고 있듯이 낙태권운동이나 여성살해 반대운동 등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 역시 공감한다. 그런데 현장의 노동자투쟁에서 출발하지 않은 여성운동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식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가?

 

이 얘기부터 하고 싶다. 우리는 노동자계급 의제와 여성 의제 사이에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억압과 관련된 문제로 고통 받는 여성의 대다수가 노동자계급 여성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여성운동 안에서 노동자계급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작업장과 노동자 조직들 안에서 그런 문제들이 단지 여성 의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의제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토론에 붙인다. 우리는 노동조합들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성운동 안에서는 시위 때 내걸 요구들을 토론하는 여러 회의가 열린다. 우리는 그런 회의에 가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들이 총파업에 나서도록 호소하자고 주장한다. 그런 회의에는 노동조합의 여성 조합원들도 오기 마련인데, 그들은 자기 노동조합이 여성의 요구를 채택하도록 투쟁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노동조합 안에서 우리는 노동자계급 조직들이 이 요구를 채택하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조직의 절반이 여성이고, 낙태로 사망하는 여성의 대다수가 노동자계급 여성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3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대중집회가 열리면, 우리는 거기에 가서 말한다. “나는 빵과장미에서 온 셀레스테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 여성의 날을 맞아 낙태권을 주장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여성의 문제다. 따라서 노조들이 총파업에 나서도록 요구하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실질적인 토론을 붙이는 것이다. 작업장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노동자계급 의제와 여성 의제 사이에 경계는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가장 큰 노총인 CGT 앞에 가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총파업에 나서라고 집회를 열어 왔다. 그들이 아직 총파업에 나서진 않았지만, 이것은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길을 보여주기 위한 실천이다.

 

또 우리가 작은 힘이라도 갖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모범 사례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국제 여성의 날에 여성의 권리를 내건 총파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힘을 가진 사업장에서는 단 몇 시간의 상징적인 파업이라도 조직한다. 이를테면 펩시코 공장의 여성위원회는 4시간의 상징적인 파업을 조직했다. 도심의 국내선 공항의 노조에서도 우리는 작은 파업을 조직했다. 병원과 교사노조에서도 파업을 조직했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우리의 사상을 보여주는 실천적인 방법이다. 여성의 날 파업은 그 이전에 있었던 많은 작은 행동, 이를테면 젠더폭력에 대한 수많은 토론이 만든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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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운동의 상징인 녹색 스카프를 들어 보이는 셀레스테 무리쇼

 

 

여성 억압이라는 사회적 의제에 대해,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방식으로 싸우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겠다. 여성 문제를 노동자와 분리된 게 아니라 노동자투쟁의 일부로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낙태권운동을 누가 주도하고 있나?

 

낙태권운동은 너무 광범위해서, 어떤 조직도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진 않다. 대신 전국낙태권캠페인이라 불리는 우산형 조직이 있다. 모든 종류의 정치조직이 여기에 참여했다. 이 캠페인 조직이 낙태 합법화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집회를 주최했을 때, 200명 정도의 참여를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10,000명이 모였다. 아주 자생적인 운동이었다. 낙태권운동은 굉장히 젊은 운동이다. 운동의 핵심층은 고등학생들이다. 13세부터 운동에 참여했다.

 

이 캠페인 조직에서 우리는 많은 요구안에 대해 토론했다. 낙태권은 큰 운동의 작은 일부였다. 정부에 대한 불만, 젠더폭력 문제, 경제적 문제, 이 모든 게 합쳐진 복잡다양한 운동이었다. 낙태권은 단지 더 큰 운동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운동은 참여자들이 의회를 믿었다는 점에서 개량주의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에서 가장 진보적인 점은 낙태권을 위해 많은 젊은 여성들이 싸웠다는 점이다. 그들은 노동자계급 여성, 가난한 여성이 낙태 문제에 가장 취약하다는 걸 안다. 아르헨티나에서 낙태가 불법이긴 하지만, 만약 당신이 수도에 사는 중산층 여성이라면 안전한 낙태를 하는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당신이 수도 바깥에 산다면, 원치 않는 임신은 악몽이며,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젊은 학생들, 여성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의식적이다.

 

또 이 운동은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그리고 남성에게도 매우 진보적인 영향을 줬다. 이 운동은 다수 대중에게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이 (이 운동의 상징인) 녹색 스카프를 둘렀다. 운동이 있기 전에는,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난 낙태권을 지지한다라고 말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제는 젠더폭력이나 성별격차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많은 문제처럼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은 여성 의제를 자신의 요구로 잘 내걸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분리돼 있고, 이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생각한다.

 

여성 의제와 노동 의제가 연결돼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좌파 전반은, 젊은 여성들이 낙태권을 위해 거리투쟁을 하는 것이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믿는다.

 

나는 페미니즘 논쟁에서 쓰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한 부여)’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하지만 이 경우엔 분명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는 젊은 여성들 덕분에 여성 노동자들이 임파워되는 것 같다. 내가 이 운동의 진보적 영향을 얘기하는 이유다. 비록 아직은 개량주의적 사고에 그칠지라도, 작업장에서 여성들이 (그럴 권한이 없다고 믿었던 과거와 달리) 자기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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