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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 그리고 이제 더 멀리 뻗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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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 울산노동자배움터 조회 5,134회 2018-04-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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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업장을 방문해 선전전을 벌이는 울산노동자공동행동


2018125일 울산노동자공동행동 해산총회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각자의 얘기를 했다. 2년 남짓 함께 했던 날들을 돌아보고 발전적 재결집을 다짐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무엇이었고 특히 회원 각자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잘 드러내준 뜻 깊은 자리였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 함께 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해산총회의 서기록을 읽기 쉽게 정돈해 여러 동지들과 공유하고 또한 역사의 기록물로 남겨두고자 한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노동자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서 많은 시사점과 가능성을 보여준 뜻 깊은 시도였기 때문이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무엇인지 접하거나 들어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먼저 간략한 소개부터 하겠다.


2015107일 울산지역 활동가 30여 명이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설립했다. 대기업 정규직부터 중소영세, 비정규직까지 여러 사업장의 선진 노동자들, 그리고 여러 경향의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했다. 현장에서부터 노동개악 분쇄 총파업의 동력을 건설하는 데 기여하고 또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영세, 비정규직의 분할을 뛰어넘어 노동자의 계급적 연대를 선도해 나가자는 게 핵심 취지였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그간의 연대체와 달리 (단체 간 협의체가 아니라) 개인자격 회원제로 운영했다. 소통, 책임성, 실천력을 최대한 높여보자는 취지였다. 매월 1회 토론회를 겸한 총회를 개최해서 회원 전체가 함께 능동적으로 활동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기로 했는데, 8개월 동안은 그대로 실행됐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특히 201510월부터 12월까지 세 달 동안 현장에서부터 노동개악 분쇄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집중적인 활동을 펼쳤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루 두세 차례 강도 높은 출퇴근 선전전을 진행했고, 소책자, 유인물, 스티커 등 다양한 매체를 총동원해 전면적으로 선전 선동을 펼쳤다.

 

현장 활동가들이 아래로부터 총파업 조직을 결의하는 현장활동가대회를 사업장 별로 개최하자고 제안해, 현대자동차에서 성사시켰다. 112450여 명의 정규직, 비정규직 현장 활동가와 해고자가 참여한 현대차 현장활동가대회 조직위원회20163노동개악 현장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 민주활동 복원! 현대차 공동행동으로 이어졌고, 1년간의 공동활동을 거쳐 20171공동으로 투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약칭 공동행동)라는 현장조직을 출범시켰다.


20166~9월 현대차, 현중, 철도 등 대규모 전략사업장들의 동시파업이 가시화돼 가는 상황에서,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노동자의 대반격을 위한 전면 총파업을 현장에서부터 건설하기 위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울산지역 현장활동가들을 규모 있게 조직해 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9월 하순으로 예고된 공공부문 총파업에 금속도 동참해 자본의 노동개악 구조조정 분쇄, 최저임금 1만 원 등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쟁취를 내건 무기한 총파업으로 발전시켜 가자는 취지였는데, 안타깝게도 이를 당당하게 자신 있게 추진해 갈 수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기반은 너무 취약했다.


이어진 촛불항쟁 국면에서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11월 말 민주노총 총파업을 실질적인 총파업으로 조직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앞선 시기에 자신의 힘을 완강하게 구축해 오지 못한 금속 중심의 울산지역 조직노동자들은 거대하게 펼쳐지는 촛불항쟁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기력한 방관자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이제 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핵심 이슈로 등장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의식과 조직을 마비시키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분쇄하려면, 단지 주장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천적 대안을 제기하고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분출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전국의 여러 동지들을 초청해 다양한 각도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례들을 검토했고, 울산에서는 어떻게 일을 추진해 나갈 것인지 의견을 모아갔다.

 

그런데 그 과제를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중심에 서서 밀고 나갈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 활동가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 구성의 한계, 지역운동 지형의 일정한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과감하게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정세와 조건에 걸맞은 새로운 연대주체가 건설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옳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 해산총회였다.


이제 해산총회 때 동지들이 말한 바들을 옮겨보겠다. 발언 취지를 옳게 전달하면서도 읽기 쉽게 정돈해 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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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지:


다들 결성 직후 서너 달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기억이 남아있을 것 같다. 오늘 총회를 앞두고 자료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그때그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보니, 뭘 하려고 했었고 어디서 막혔는지가 보였다.


지금 돌아서 정리를 해보자면, 2015~17년은 한국사회 대격변의 시기였다. 2015년은 격변의 초입부였고, 가장 격렬하게 터졌던 시점이 2016년 촛불항쟁이었다. 그 격변기에 우리는 울산노동자공동행동으로 결집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


격변기는 결국 조직 노동자운동 전반의 지독한 무기력을 드러내며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귀결됐는데, 어찌 보면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시작했다. 패배하는 상황에서도 뭔가를 해보려고 발악에 가까운 시도를 했다. 예상대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는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어디가 막혀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었다.


2015~17년 계급투쟁 격돌의 근본배경은 자본주의 위기다. 한국에서도 자본주의 위기가 지속돼 가난한 노동자와 청년의 고통이 가중되면서 폭발직전까지 간 상황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여기에 추가적인 쟁점이 있었다. 한국 대재벌의 경쟁력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자본이 대기업 정규직까지 공격(노동개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최순실 사태로 대표되는 국정농단과 무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준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는 것이다.


고통 받는 가난한 노동자 민중이 자기 불만을 표출하고 운동을 주도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누가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르고 정세를 틀어쥐는 주역으로 올라설 것이냐가 정세의 핵심 문제였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면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결과는 민주당의 완승이었다. 조직 노동자운동은 참패를 당했다.


그 참패를 당한 결정적 시점은, 201611월에 박근혜를 거꾸러뜨리려는 대중적 열망이 분출하며 총파업이냐 탄핵이냐가 쟁점이 됐을 때, 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전진하지 못한 반면 민주당은 탄핵에 올인해서 성공시켰던 바로 그 때였다. 그렇게 참패를 당하고 나니 노동자운동 안에서 적의 편으로 넘어가 대놓고 활약을 하는 세력이 똬리를 트는 결과마저 나타났다.


그 패배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한국GM과 금호타이어를 필두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청년과 비정규직에게는 뭔가 해줄 거 같아 보이지만, 그 측면에서도 근본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자본가계급의 전방위적인 포위가 당분간 노동자들을 옥죌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넋을 놓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격변의 정세가 이렇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전국의 어떠한 동지들 못지않게 그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운동의 저항이 그만큼이라도 조직되고 반격의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었던 데서 우리 또한 일정한 몫을 해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말 아쉬운 게 있다. 2016년 말에 총파업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도 아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6월에 현대차와 현중에서 각기 6~7천 명이 집회에 나오고, 7월에 울산 1만 명 총파업이 전개되고, 9월에 공공운수노조가 철도를 중심으로 사상 최장기 파업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이 형성됐던 가능성이 계급적 역량의 총결집으로, 나아가 촛불로 표현됐던 가난한 노동자들의 열망을 지피는 과정으로 가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그 때 우리는 현장을 움직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 현장에 있는 동지들도 토론을 하면 공감은 하면서도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상황이었다. 그 시기에 형성된 동력을 어떻게 이끌고 가느냐가 11월 총파업 동력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2015년에 했던 것 같은 대중적 캠페인을 20167~9월 기간에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쨌든 그 시기에는 이제 현장을 크게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현장을 움직이진 못했다. 11월은 준비된 것을 가지고 싸웠어야 했으나 준비되지 못했고, 탄핵 이후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로운 연대체는 현장 동지들이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1년 전에 전국적 공동행동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은 계승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 갔으면 한다.

 

B 동지:


운동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노동개악에 맞서 싸우자고 제안이 되면서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만들어졌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조직과 무관하게 운영하자고 했다. 능동적으로 직접 활동을 하겠다는 동지들로 구성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어떤 공동투쟁체를 구성하면서도 처음 경험했다. 예전에는 현장조직 전체, 정치조직 전체, 교육단위 전체 등 조직으로 구성했다고 하면 이번에는 예전과 완전 다른 형태로 구성됐다. 자기가 열심히 하겠다는 동지들로 구성됐다. 그래서 소수의 동지들이 움직였지만 조직의 긴밀도, 자기희생과 헌신 등이 어느 공투체보다 좋았다.


그런데 공투체가 실제 움직이려면 공투체 구성원의 공동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촛불항쟁이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공동의 목적을 빠르게 전환하지 못했다. 노동법개악 저지 전선에서 정부를 무너뜨리는 싸움을 하는 전선으로 바뀌었고, 그렇다면 정부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를 제기하고 싸움의 전술을 제안하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더 치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노동법개악 저지를 중심으로 한 공투체로서 가장 큰 한계였던 것 같다.


여러 차례 걸쳐서 미조직 조직화사업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회도 했다. 미조직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지만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누군가는 해야 할 사업이기에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해산돼도 새로운 공투체가 제기돼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는 전체 운동의 과제니만큼 울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제안될 수도 있겠다.

 

노사정위가 기정사실이고, 내용도 빠르게 진척될 수 있다. GM에서 자본이 단협의 모든 조항을 다 공격하듯이, 모든 사업장에서 공격이 더 커질 수 있다. 과거에 현중, 현자, 철도가 같이 싸울 수 있었던 조건은 지배계급의 양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중도 현자도 연내 타결을 못하면서 시기가 겹쳐진 것이다. 공동투쟁의 고리가 생겼다. 그런데 이제는 투쟁의 고리 없이, 노사정위로 몰리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내부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분명히 전국적인 공동투쟁체 제안이 있을 것 같으나, 지금 중앙 상황을 보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싸움을 하겠다는 동지들에게 전국적 전선을 치자고 제기하는 그런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C 동지:


처음 시작이 2015년이었다. 박근혜가 노동자 몰아붙이기를 하는데도 아무 곳도 나서서 하는 데가 없었는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서 그나마 나서기 어려운 시기에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이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지난 시기 나섰던 것처럼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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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동지:


우리가 시작할 때, 당면한 투쟁과제들을 실천하고 거기서 남은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계급적 운동에 복무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지금 해산총회를 하고 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에너지가 달랐다. 더 많이 최대치를 추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각자의 부분과 역할이 있지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통해서 발휘하고자 했던 에너지가 있었다. 오늘 총회 때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소통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주제어로 얘기를 하자면 그 당시는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이었다면, 지금은 노사협조주의, 노사정위가 주제인 듯하다. 지금도 바닥인데 더 바닥이 있고, 앞으로가 더 바닥일 거라 생각이 든다. 총파업에서 미조직 조직화의 계급적 요구로 확대돼야 한다. 한상균 위원장이 수배생활을 할 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만들고, 서울 거리에서도 함께 투쟁했는데, 지금은 정권의 인질로 잡혀 있다. 현대차로 보면 현장활동가대회 이후 현대차 공동행동으로 활동하고, 공동행동이라는 현장조직으로 출범하는 일도 있었다


각자 운동의 지향점이 있겠지만 어떤 규모든 실력이든 우리는 현실의 노동자운동에서 분투하려고 애쓰는 활동을 해왔고,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현실 운동에서 노동자투쟁에서 대안을 형성하면서 이후의 실천으로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현실투쟁에서 진도를 나가는 것으로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동지들의 소중한 얘기를 들으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고민하겠다. 해산총회가 남다른 감회가 있고 아쉽다.

 

E 동지:


아무도 노동개악 분쇄를 제기하지 않을 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했다. 이것으로 주도권이 바뀌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바뀌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하면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주도권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이 쭉 이어지면서 나간 것 같다. 권력이 바뀌고 권력을 바로 세우면 조금 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의 패착으로 간 것 같다. 이 운동에서 우리가 향하는 운동,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요즘은 준비되지 않은 권력에 기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은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통해 의미 있는 조직체를 건설해보자는 용기, 이번 경험이 다음번에도 또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됐다. 그래도 같이 하고 있고, 열망을 가진 동지들을 보면서 용기가 됐다. 이런 신뢰와 경험을 가지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릇이 다르면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새판을 고민하는 과제를 구체적으로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문재인 비판, 민주노총 비판을 넘어서 현장 정서를 바꾸는 새로운 것을 만들었으면 한다.

 

F 동지: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통해서 해당 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거스르기 위한 시도들을 했다. 2년 동안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열심히 실천했다고 생각한다. 함께한 동지들 존경스럽다. 앞으로도 새로운 정세 속에서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계급투쟁을 전진시키는 방식으로 공동실천을 경험했으면 한다.


2013년 철도, 2014년 공무원 때도 박근혜 정부가 정규직을 공격했지만, 2015년에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를 결집해 과감한 투쟁을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를 통해서 최대치를 발휘했다고 하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은 사실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그 때 대공장 노조가 포진한 울산에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지역 활동가들이 함께 투쟁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각 정세에서 어떻게 실천을 할 것인지, 이후에 어떻게 나갈 것인지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우리에게 남겨줬다. 이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과 같은 실천을 진행해 본 적이 없었다. 확장성이 부족했고, 한계도 있었지만, 내부의 능동성과 자발성, 개인의 의지를 전면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 참여했던 동지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정권과 자본의 전면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했던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의 탄생 배경과 토대가 이제 달라졌기 때문에 새로운 모색을 위한 총회는 당연하다고 본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의 실천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정세에 부응하기 위한 실천적 모색들을 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새롭게 만드는 공동실천 조직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자 투사들이 기반이 돼 대중 속에 깊숙이 파고드는 활동이 됐으면 하고, 여기에 정치조직들이 결합하는 방식이라면 좋겠다. 그런 노력을 여기 있는 동지들뿐만 아니라 동의하는 동지들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

 

G 동지:


2015년부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계급적 실천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실력이 없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울산노동자공동행동 유인물 배포를 하면서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 뿌듯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활동의 자양분이었고 많이 배우는 과정이었다. 문재인 정권 이후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배들이 많이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

 

H 동지:


여기 계신 분들이 저보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부족했다. 함께 한 동지들이 훌륭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결합하지 못해서 아쉽고, 죄송하다. 이후 공동모임 때도 불러주시면 열심히 하겠다.

 

I 동지: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통해 운동의 퇴보를 극복하고자 행동하면서 운동의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위기로부터 비롯된 세계정세와 전국정세가 현장까지 이어져 온 것을 봤던 것 같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했던 것은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기간에 봤던 변화들이 있었다. 출퇴근 선전전 때, 퇴근하는 조합원들 눈동자를 보면 눈이 달랐다. 공장 안과 밖을 좁은 의미로 얘기하지만, 한 달 동안 출퇴투 하면서 조합원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노동관료들과 자본이 공고하게 쌓았던 담벼락을 흔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10월 한 달 출퇴투를 하니, 노동조합 집행부와 회사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신경 안 썼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노동조합의 입장, 회사 쪽 입장이 민감해지기도 했고, 반응도 있었다. 조합원들의 반응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본과 관료들의 입장도 달라진 것이다.


중공업에 출투하러 가고, 촉탁직,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출투하고, 하청 동지들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제가 도중에 징역을 살고 오다 보니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 실제 참석하고 활동한 시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짧지만 좋았다.

이후에 이런 형태가 될지 다른 형태가 될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조직해내서 북구(현대차)와 동구(현중)를 넘어 그동안 아예 움직이지 않았던 곳들도 흔들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의 위기나 자본의 공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새로운 구성체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J 동지:


몸으로 때운 것밖에 없는데, 그만큼이라도 하니까 노동개악이 줄어들었다 생각한다. 뭘 하더라도 실천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할지 모르지만 무엇을 한다고 한다면 열심히 하려고 하겠다.

 

K 동지: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훌륭한 동지들을 만나고 뭔가를 도모했다는 점이다. 많지 않은 인원이었는데 큰 전선에 맨 앞에 서서 열심히 하면서 서로 용기도 얻고, 그림도 그려봤던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힘도 부족해서 고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소금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새로운 기획, 고민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에는 큰 전선에서 밀리고 힘들었지만, 지역에서 투쟁사업장 지원대책위 가교를 놓으면서 한 점 한 점 이어갔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의 현장조직도 만들어졌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여러 제안 앞에 섰을 때 언제든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걸고 하려는 동지들을 만났다는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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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동지:


평소에 전국정세에 대응하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정세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자족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통해서 실물적인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다면, 지나온 정세를 무심하게 보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출투를 하면 조합원들의 반응이 확인이 되기도 했다. 2년 전 열사회 총회 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게 상을 줬다. 열사회 내부에서도 상을 주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다. 회장님이 책자도 몇 백 권 파시고 그랬다. 이런 큰 격변기 정세 속에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자동차에서 계급적 현장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을 하면서 현대차 현장모임을 만드는 과정이 계급적 현장조직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20166월부터 전국총파업 전선을 조직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제기가 됐는데 현대자동차 역량이 현장 활동가 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하면서 이것이 지역모임으로 확대대고, 다시 지역의 모임이 현장으로 확산되면서 더 큰 모임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후퇴한다. 그것을 만들고 버티는 데 급급한 측면이 있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해소되지만 현장에서 공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힘도 필요하지만 지역차원과 결합될 수 있게 하는 과제도 필요하다.


노동개악 국면에서 캠페인이긴 해도 뭔가 치고 나간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권 이후 노사정위 등등이 제기될 때 실천은 못하더라도 입장들은 나갔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전국적 시야를 넓히고, 노동정세가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지역에 어디 있는 동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신뢰도 많이 생겼다. 이 정도의 사업이 굴러가는 모임에서는 대상화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은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로서 하는 느낌이었다. 인원이 적어서도 있지만 자발성을 가지고 참여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M 동지:


2015년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 상근할 때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는 현중 하청 조직화 캠페인을 울산노동자공동행동에 참여한 동지들이 주도해서 사업 담당자로서 큰 힘을 얻었다. 노동개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만들어졌다. 그전에 돌아가는 이야기나 내용도 공유하고 토론사업도 같이 했었다. 내용적으로 실천적으로 기댈 수 있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노동개악 국면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했던 공동행동을 기억하듯이, 발전적인 형태로 나가려면 정세적 실천에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 집중적인 실천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실천적인 승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미조직 사업과 관련한 것만큼은 조선소에서 됐으면 한다. 대중적으로 판이 열릴 때 할 수 있는 실천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이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직 형태에서는 고민이 잘 안 된다. 개인부터 내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결의를 가지고 했는데 사안별로 부분적으로 됐다 안 됐다 했다. 조직 형태가 바뀌면 집단적으로 결합 가능할까? 고민이 잘 안 된다.

 

N 동지:


사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진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많이 아쉬워서일 수도 있고, 뭔가 더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어서, 여기까지 연장돼 왔다.


우리 구성원 중에 여러 쟁점에서 중심에 서 계신 동지들이 있다. 그분들과 그 쟁점들을 토론하고, 평가하고 서로의 오류를 확인할 때 신뢰가 높아지고 또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OS 신차 투쟁, 민주노총 지역본부 선거, 12라인 OS 혼류 투쟁 등 현장과 지역의 사업 과정에서 다른 견해와 각각의 행동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연대체여야 하는데,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의 현재 수준은 그러한 평가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세 차례 미조직 토론회 이후 미조직 조직화 방향을 제출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발표하려고 하다가, 회원들끼리 마지막 감회를 얘기하는 시간을 갖자는 식으로 정리됐다. 좀 더 잘 정리했으면 했는데, 많이 아쉽다.


다음에 어떤 공동투쟁체가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동투쟁체에서는 서로 다른 판단을 하더라도 공장과 지역의 쟁점들이 공동으로 평가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O 동지:


재미있고, 신났다. 2015년 울산노동자공동행동 선전전에 가끔씩 나왔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노동개악 저지투쟁의 핵에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나올 때 울산에서 정책과 생각과 노선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서 쳐나가자,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켜 낸다면 박근혜 노동개악을 저지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있었다. 아쉬운 것은 여러 색깔의 동지들이 모여서 이름은 공동인데 공동되기가 힘들었다. 노동법의 악법은 저지시켰지만 재작년에 박근혜 탄핵사건 날 때 정치적인 것은 한 것이 없었다. 토론도 했고, 연대도 많이 했지만 어떤 전선도 못 만들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울산에 공동행동이 부활할 수 있지만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정치적인 것이 약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행동이라는 조직이 정치조직이랑 투쟁사업장연대 중간에 끼어있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이다.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울산에서 전선을 치고 또한 전국적 전선을 쳐 나갔으면 한다. 선거에 매몰되지 않는 정치조직들도 포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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