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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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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자서울성모병원 조회 362회 2020-02-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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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어지는 말들 속에 내재된 차별의 논리.

 

 

우리는 얼마 전 논평을 내면서 장애인 차별을 조장하는 제목을 달았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제목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관련 글)어떠한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논평 제목을 다는 과정에서 무심코 장애인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을 위해서도, 평등한 사회를 위해 차별에 반대하며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이 책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 <그린북>의 주인공은 무대에 설 땐 천재 피아니스트로 박수갈채를 받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흑인이라는 이유로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 대신 마당 구석의 허름한 화장실을 써야 하고, 양장점의 옷을 돈 내고 사 가는 건 되지만 매장에서 입어볼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차별이라고 하면 이렇게 대놓고 다른 이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 누가 봐도 비인간적인 행태를 떠올린다. 차별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 일부 몰지각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내가 차별받았다고 느낄 때는 분노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지는 않는지 성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일상에서 이런저런 차별을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는다. 누군가를 차별하겠다는 검은 의도를 가져서가 아니라 무지하거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회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무심코 내뱉고 행하는 차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까?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자는 장애인도 다수 참가한 혐오표현 관련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뒤늦게 이 또한 혐오표현임을 깨닫게 된 경험을 소개한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사회복지, 소수자 인권 등을 연구하는 저자조차도 무심결에 차별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럼 우리는, 일반 사람들은 어떨까?

 

저자는 이 책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엄연히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이 어떻게 없는 것처럼지워지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추적하고 논증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런 차별에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한다.

 

무엇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탄생하는 이유는, 사회구조 자체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더치페이 논쟁을 예로 들면, ‘애초에 남녀가 평등했다면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남성이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역지사지의 관점을 갖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것을, 내가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할 가능성이 큰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때론 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차별을 하는 당사자가 된다.

 

제주도민 다수가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한 이유는 이들이 난민을 바라볼 때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무슬림 남성이라는 이미지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 난민이 100% 남성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지만, 난민 또한 약자라는 점에서 약자와 약자의 연대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쟁점은 남성 대 여성이 아니었다. ‘국민이 먼저다라는 요구를 보자. 제주도민들은 여성 피해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난민 결정 권한이 있는 국민으로서 권력을 행사한 셈이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충격적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이 책의 2부엔 특히 인상적인 내용이 많다. 흑인 분장, 바보 분장을 한 코미디에 배꼽 잡던 기억,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이는 인종차별, 인지장애인 차별인데도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이런 코미디를 즐긴 듯하다. 농담 삼아 웃자고 가볍게 한 말이나 행동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집단적인 차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의 반대말은 평등 또는 공정이다. 저자는 묻는다.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한 규칙인가? 그것이 공정하려면 평가기준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편향이 없어야하고 그 평가기준은 피평가자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이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열반 제도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열등반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한다. 영어 듣기능력 평가 때문에 토익 고득점을 받지 못해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은 청각장애인이 인권위에 낸 진정의 예. 부끄럽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떠올려보지 못했다.

 

내국인 전용,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 등은 공정하지 않은 단체 체벌에 비유된다. 몇몇 외국인이나 아이, 청소년, 장애인이 문제가 있었다고 그 집단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왜 어떤 집단은 특별히 잘못이 없어도 거부되는데, 어떤 집단은 개별적으로만 문제 삼고 집단으로는 문제 삼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소수자를 배제한 공공공간, 공공질서

 

다문화 아동이라는 단어. 다문화주의는 서로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진짜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인다. 혈통이 섞이지 않은 순수 한국인을 꿈꾸면서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공공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구 최초의 공공공간인 그리스의 아고라에는 성인 남성만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불평등한 자의 존재를 조건으로 한 평등의 장소. 여성, 아동, 노예를 배제한 공공평등이라니! 그런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이 왜 굳이 광장에 나와서집회나 축제를 하느냐고 비판한다. 왜 이들은 광장에 나오면 안 되는가 되물어야 한다.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지하철역 장애인리프트 추락 사망사고에 항의해 장애인 단체에서 시위를 열었다.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역마다 내리고 타고를 반복해 다섯 개 역을 가는 데 한 시간 40분이 걸렸다. 시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한다. 이 장애인들이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다수가 동의하는 질서가 공공질서이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만능논리는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현실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데도, 그런 현실에 책임을 묻는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바로 그 믿음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공정하게 만들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렇게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을 비난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차별과 불공정이 만성화되어 공정세계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이 중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평등을 실질적이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쟁점을 보면 보수적인 차별주의자들은 그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대신 극히 일부의 차별만 금지하는 법을 만들려고 딴죽을 건다.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다 해도 그것의 실제 적용과 실질적 평등실현이 만만치 않음에도, 그 법조차 반쪽짜리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 제정은 법 전문가, 정치인, 관련 단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바란다면, 내가 무의식중에 차별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능력주의 등의 이름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소수자 권리 억압을 모른 척 하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동자운동은 단지 임금, 복지 같은 권리만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 내에도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차별이 엄연히 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이 모든 차별, 더 나아가 사회적인 모든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노동자운동의 자기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당사자이자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주체로서 말이다.

 

차별에 대한 우리 단체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읽게 된 책이지만 노동해방과 평등한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가자! 노동해방> 독자 모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콕 집어줌으로써 뼈 때리는 문장,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채찍질할 수 있는 문제제기가 무척 많은 책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직시할 용기가 있는가? 차별에 민감하거나 둔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너무나도 익숙한 어떤 발언, 행동, 제도가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한 차별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방어하고 부인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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