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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 코로나19에 맞서는 영웅적인 미담, 그 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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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35,256회 2020-02-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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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을 시발점으로 코로나19 감염증이 확산되며 중국 정부가 사태의 실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올 무렵, 조만간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도처에서 영웅적으로 분투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미담이 흘러나올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민플러스>에 번역 게재된 한 중국 작가의 글 신종 폐렴과 싸우는 중국 보통 사람들의 17가지 얘기가 그 사례다. 거기선 아무런 보상 없이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지진, 홍수, 태풍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생을 무릅쓰고 서로를 돕는 공동체적 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언론에선 그런 보통 사람들의 미담이 소개된다. 하지만 그런 영웅적인 미담 이면에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며 부당하게 피해를 떠넘기는 자본주의 지배체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놓쳐선 안 된다. 코로나19 감염증 사태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언론매체 <카이신 财新>은 새 병원을 짓는 데 투입된 노동자들의 활약상을 취재했다. 기존 병원들만으로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자 중국 정부가 긴급하게 건설 노동자들을 모집해 몇 개의 대규모 병원을 짓기로 했다. 불과 열흘 만에 새 병원이 세워졌다. 인터넷에서는 밤새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중장비와 바쁘게 작업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실시간 생중계됐다.

 

이 작업에 투입된 한 노동자가 <카이신>의 취재에 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한이 봉쇄돼서 집으로 돌아가 설을 쇠지도 못하고, 설 연휴에 일거리도 있고, 월급이 평소의 두 배니까 돈을 더 벌 수 있고, 우한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도 있다.” 나름 자부심도 느끼고 경제적으로도 만족감을 표현하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중국의 노동법 상 공휴일에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평상 시 임금의 세 배를 지급해야 한다. 건설회사와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에게 세 배의 임금을 지급하면서 공사를 진행했다고 거듭 발표했다. 그러니까 준 사람은 세 배의 임금을 줬는데, 받은 사람은 두 배의 임금만 받은 셈이다. 경우에 따라 임금체불도 있었다.

 

임금만 문제인가. 이미 코로나19 감염증이 맹렬하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사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얇은 마스크 몇 장이 전부였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때 소방관들이 아무런 방호장비도 없이 화재진압에 투입됐던 것과 꼭 닮은꼴이다. 또한 이 건설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선 채로 밥을 먹고, 공사장 흙구덩이에 그대로 쓰러져 쉬는 모습도 언론에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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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이런 대우를 받는 모습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사진_China Labour Bulletin / 원 출처는 长江日报)

 

 

중국 정부는 이런 모습까지도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재료로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건설회사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헌신했다는 식의 미담을 퍼뜨리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부터 보장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선 그런 영웅적 미담과 애국주의를 활용해 이번 위기가 정권의 위기로 확대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할 테다. 그렇게 노동자들을 인간재료로 삼아 이번 사태를 넘기고 나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을까?

 

전 지구적인 경쟁 속에서 중국 지배계급은 무한한 자본주의적 성장과 군사력 증강을 지상과제로 추구했다. 미국 뺨칠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차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고, 항공모함 전단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보통 사람들을 위한 의료시설에 대한 투자는 후순위로 밀렸다(201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8.95, 중국은 3.84).

 

중국에서도 병원 수 자체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공립병원은 오히려 줄고 더 비싼 민간병원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신종 바이러스 같은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은 더욱더 취약한 처지에 놓인다. 바로 이들이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정부가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최초로 신종 바이러스의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한 의사 리원량과 그 동료들은 중국 공안에 불려가 유언비어로 사회혼란을 조장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았다. 그 사이에 리원량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돼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 사태에 분노한 중국인들이 정부의 위선을 비판하며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검열과 통제는 계속됐다. 진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시민기자들이 실종됐고, “틀림없이 이건 내가 이번 생에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이라며 시진핑을 비판했던 칭화대 쉬장룬 교수도 실종됐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중국 지배계급이 느끼는 위기감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대중 속에서 생존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누적되고 임계점에 도달하면, 톈안먼항쟁 이래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또는 주로 경제적 요구에 머물러 있던 중국 노동자들이 재차 정치적 투쟁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모든 걸 단지 중국의 후진성이나 억압적 분위기탓으로만 이해한다면 한참 빗나간 것이다. 한국에서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병원에서 일하다 감염된 노동자가 40여 명이었다. 그들 중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사람은 7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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