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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칠레 :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최전선 - 혁명적노동자당의 다우노 토토로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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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전해성 조회 518회 20-01-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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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기사는 20191229일자로 <레프트 보이스>에 실린 칠레 혁명적노동자당(PTR) 다우노 토토로(Dauno Tótoro)와의 인터뷰다. 인터뷰 시점은 다소 지났지만, 지난해 말 폭발적으로 치솟았던 칠레 노동자와 청년들의 투쟁이 어떤 배경에서 전개됐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을 경과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글이라고 판단해 번역 소개한다.

 

 

다우노 토토로는 역사 교사이자, 2017년 산티아고 메트로폴리탄 10구역에 출마했던 혁명적노동자당의 리더이다. 그는 현재 피녜라 정부에 의해 공공질서의 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대중 집회에서 피녜라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 인권운동가, 정치인들이 이 정치 탄압을 규탄하며 토토로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이 항의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고 발전했는가?

 

10월 중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지하철 요금인상을 발표했다. 이것은 광범한 저항에 직면했다. 이에 가장 먼저 대응한 건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들은 대대적으로 요금을 안 내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이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고 부수는 장면이 수백만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정부는 무자비한 경찰 폭력으로 응답했다. 그래서 1018, 요금인상뿐만 아니라 탄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1019, 피녜라는 군부독재 시대로부터 유래한 국가보안법을 발동해 대응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계급, 중간계급, 산티아고 지역 빈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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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도화선이 된 고등학생들의 지하철 시위(사진_AP)

 

 

산티아고에서 시작한 시위는 점점 커져 전국 각지의 민중들이 대규모 행진, 피켓 시위, 바리케이드 및 카세롤라소(냄비 두드리는 시위)를 조직했다. 청년들의 반란으로 시작된 운동이 피녜라 정권, 피노체트 독재로부터 이어진 정치체제에 대한 전국적인 봉기로 바뀌었다. 정부는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면 봉기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피녜라는 교통요금인상을 철회했다. 대중의 요구에 무자비한 경찰 폭력으로 대응하는 건 칠레 정권들이 늘 보여준 모습이다. 피녜라 정부는 통행금지령을 선포했다. 이건 독재 시절 이후에는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통행금지령은 우리를 위협하기는커녕 더 많은 용기를 줬다. 우리는 전국에서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냄비 두드리기 시위를 벌이며 통행금지령에 저항했다. 분노가 커지자 버스가 불에 탔고, 대형 상점 수백 곳이 공격당했으며, 경찰서 등 공공기관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는 탄압에 굴하지 않고 거리를 점령하면서 우리가 가진 힘을 느꼈다. 언론에 나온 피녜라가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내뱉자 수십만 명이 다시 거리를 장악했다. 거기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탄광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들을 선두로 칠레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들이 포함된다. 부두 노동자들은 1020일 칠레 항구의 90%를 폐쇄했으며, 광부들은 세계 최대의 민영 구리광산인 라에스콘디다를 마비시켰다.

 

이 투쟁에서 노조 지도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거대한 대중적 압력과 그들 자신의 조합원들로부터의 압력에 밀려 노동총동맹의 노조관료들이 총파업을 외쳤지만, 가두시위를 배제한 총파업이었다. 그런데도 총파업 첫날 노동자, 청년, 빈민, 여성, 원주민 공동체를 포함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칠레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총파업 하루 전 피녜라가 이른바 사회적 의제에 대해 꽤 많은 양보를 발표했는데도 다음 날 열린 집회는 여전히 대규모였다. 신자유주의가 폭주한 지난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칠레인들이 겪어온 경제 상황의 맥락에서 피녜라의 양보는 그저 빵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1025일 금요일, 독재 종식 이래 칠레에서 가장 큰 시위가 벌어졌다. 산티아고에서는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에서 대규모 행진이 있었고 시위대는 피녜라는 물러나라를 외치며 탄압을 규탄했다. 13일간의 항쟁은 실로 혁명적인 나날이었다. 사람들은 1970년대 이후 칠레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정부와 억압세력에 도전했다.

 

1026, 피녜라는 시위대와 대화를 추진하려 했다. 평화시위를 칭송하면서, 더 많은 사회적 양보, 내각 교체, 통행금지령 중단 등 새로운 약속을 내놨다. 정부 담화의 목적은 평화로운시위대와 폭력적인시위대를 대치시켜 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그 뒤에서는 피녜라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는 계획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요금인상을 넘어, 이 혁명적인 분출의 진정한 배후는 무엇인가? 칠레 사람들은 왜 저항하는가?

 

국제적으로 봤을 때 칠레는 심지어 영국이나 미국보다 더 일찍 신자유주의가 처음으로 시행된 거대한 실험실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강제하려면 영구적으로 지속될 잔혹한 독재가 필요했다. 칠레에서는 모두 개인 부담이다. 의료, 교육, 연금제도, 모든 걸 말이다! 미국의 청년들은 이곳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가려면 수십 년 동안 빚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자녀들은 빚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대학에서 배제되고,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는 것은 불안정한 비정규 일자리뿐이다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수십만 젊은이들의 노동조건은 참혹하다. 군사독재는 노조를 싹쓸이해버렸고, ‘민주주의는 노조할 권리를 결코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했다. 노조 조직률은 매우 낮으며 단협은 아주 불안정하다. 칠레는 세계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비정규 노동이 만연해 있다. 마푸체 원주민들은 그들의 땅과 숲을 빼앗기고 군부세력에게 항상 시달려 왔다. 칠레 경제는 다른 어느 곳보다 사회적 불평등이 두드러진다. 빈곤층 가구의 50%가 칠레 총 순자산의 2.1%만을 갖고 있으며, 전체 부의 26.5%가 최상위 1% 부자들에게 집중돼 있다.

 

또한 1986년의 민주화는 군부와의 협상 결과로 이뤄졌다. 이것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량학살을 자행한 군부 쿠데타세력이 처벌받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쿠데타를 감행한 군부세력은 그대로 지위를 유지했고, 어떤 점에서는 바로 그들이 오늘날 우리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대량학살이 미국 정부 및 CIA의 협력으로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강요한 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칠레 정권은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이다. 최근 몇 주간 우리가 겪은 탄압을 보여주는 사진 몇 장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십자에 따르면, 시위 기간의 탄압에 직접 피해를 입은 희생자는 2,209명이었다. 미주인권위원회와 풀뿌리 인권단체들의 자료에 따르면, 경찰에 의한 수십 건의 살해와 군대에 의한 수백 건의 여성 성폭행이 있었다. 정부는 시위 중 25명만 사망했다고 인정했지만, 인권단체는 시위 중 적어도 42명이 경찰에게 살해됐다고 주장한다. 인권운동가들은 또한 적어도 15명의 여성이 경찰에 의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위대가 요금인상에 대해 말하듯이 이 투쟁은 ‘30페소가 아니라 30간 누적된 분노의 표현이다. 대중의 분노 뒤에는 부자들이 군주처럼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비참하게 살고, 우리가 시위할 때마다 군부가 잔인하게 탄압하는 모델에 대한 증오심이 깔려 있다.

 

피녜라를 구하기 위한 저들의 계획은 무엇이었나?

 

몇 주 동안 혁명적인 날들이 이어지면서 피녜라는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대통령은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한편으로는 시위를 지속하며 피녜라 퇴진을 계속 요구하는 부위는 탄압하고 범죄화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민중에게 빵 부스러기를 주는 것, 노동자계급에게 실효성 없는 몇 가지 작은 양보를 하는 식이었다.

 

피녜라는 1025일의 대규모 시위 이후 사회적인 폭발을 약화시키기 위해 내각교체를 발표했다. 그는 시위 진압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내무부장관 안드레스 차드윅을 경질했다. 하지만 마르셀라 쿠비요스 교육부장관처럼 많은 사람들이 증오하는 장관들을 그대로 두었다. 피녜라의 발표 이후, 소셜미디어는 똑같은 공룡들이 계속 이 나라를 지배할 거라며 내각교체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 찼다.

 

대중 반란의 첫 며칠 동안, 피녜라는 탄압을 바탕으로 자신의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내각교체 발표 이후, 정권을 구성하는 모든 정당들은 피녜라를 대통령직에 그대로 세워둔 채 이른바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칠레 정권을 구성하는 정당들은 기독민주당, 민주당, 사회민주급진당, 사회당이다. 이들은 콘세르타시온으로 알려진 이전 연립정부의 일부였으며, 지금은 공산당과 프렌테 암플리오(넓은 전선) 등이 포함된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라는 집단의 일원이다. 기독민주당, 사회민주급진당, 사회당은 피녜라를 대통령으로 유지하는 데 합의했고, 거리의 불만을 정부와의 협상으로 돌렸다.

 

사회적 대화의 위선적인 합창은 허쉬파피와 펀스포츠의 공동 소유주인 알폰소 스웨트, 울트라포트 그룹의 리차드 폰 아펜 회장 같은 거물 기업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사회적 대화의 함정에 빠진 건 이들뿐만이 아니다. 공산당과 프렌테 암플리오를 포함한 일부 좌파단체에서도 사회적 대화에 대한 반향이 일어났다.

 

칠레 좌파는 그 시점에 어떻게 대응했나?

 

칠레에서 가장 크고 비중 있는 좌파단체는 프렌테 암플리오와 공산당이다. 프렌테 암플리오는 좌파단체부터 피녜라의 초대 정부에서 공직을 맡았던 자유당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조직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정치연합이다. 그것은 2011년 학생운동의 주요 지도자인 조르지오 학손과 가브리엘 보리스에 의해 시작됐다. 그들은 오늘날 사회통합원탁회의의 일부로서, 공산당과 함께, 이 협상정책을 지지한다. 그들은 이미 정부가 회의를 소집하는 데 동의했다.

 

사회적 대화의 문제점 중 하나는 참여 조직들이 피녜라 퇴진 요구를 없애기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피녜라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계속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다.

 

비록 그들(사회적 대화에 동참한 자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지자들을 움직였지만, 그들은 어떤 종류의 기층 조직이나 조정위원회, 집회도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아래로부터 조직을 발전시켜내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다. 우리는 이곳 산티아고에서 여러 노동조합 및 활동가들과 함께 자기조직화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북부 도시 안토파가스타에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교사노조와 다른 여러 노조들이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설립을 도왔다. 그것은 학교와 직장에서 운동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층 조정 그룹의 본보기다. 위원회는 2백 명의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집회를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공간으로서 고등학교를 점거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호소를 발표했다.

 

해안도시 발파라이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십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지역 협력기구를 세워내기 위해 힘을 모았다. 이번 주 초에 그 협력기구는 첫 활동으로서 피녜라가 물러날 때까지 파업할 것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프렌테 암플리오와 공산당은 피녜라 정권과의 협상에 참여하기로 했으면서 동시에 좌파 행세를 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피녜라에 대한 헌법적 고발’(일종의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헌법적 해결책을 들이밀어 반란을 통제하려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국회 표결로 피녜라를 제거하는 게 가능한 것처럼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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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혁명적노동자당의 다우노 토토로

 

 

공산당과 프렌테 암플리오의 전략은, 제도권 전략과 사회 변화를 도입하는 정치권 메커니즘에 대한 확신에 바탕을 둔다. 두 조직 모두 운동의 혁명적 측면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개량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의회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시위는 그들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이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저항을 정치권, 국회의사당, 의원들 내에서 이용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피녜라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

 

카를라 루빌라르 국무장관이 폭력을 비난하자, 그들도 덩달아 폭력을 비난했다. 학손이나 보리스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베아트리스 산체스 등 프렌테 암플리오의 주요 리더들 그리고 공산당 리더인 카밀라 바예호와 다니엘 하두 등이 모두 그랬다.

 

이것은 학교와 직장에서 자기조직화 기구들을 세우기 위한 우리의 투쟁을 매우 중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다면, 우리 투쟁이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하도록 공산당과 프렌테 암플리오를 포함한 정당들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요구는 쓸모없는 것이다. 그들이 제기하는 어떤 것도 구속력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최근의 투쟁이 내세운 핵심 요구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몇몇 법안을 위해 2년 뒤에나 사용될 수 있는 몇 가지 문서를 작성할 뿐이다.

 

운동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대규모 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칠레에선 지속적으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다시 나와 정부의 탄압을 비난했다. 학교 측이 시위를 위해 학교를 떠나는 것을 금지한 것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투쟁에 나섰으며, 거리에서 경찰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다. 산티아고의 빈민지역, 그리고 안토파가스타와 발파라이소 같은 몇몇 다른 도시에서는 빈민들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피녜라는 새로운 탄압조치를 발표했다. 피녜라는 거리로 뛰쳐나온 수백만 명에게 보잘것없는 양보를 하면서 정상화라는 담화를 늘어놓는 한편, 시위대를 범죄자 취급하는 담화를 다시 내놨다. 116, 그는 대중의 불만을 겨냥한 더 많은 강한 탄압을 개시하기 위해 국가안보기구와 회의를 가졌다.

 

PTR(혁명적노동자당)은 운동의 전진을 위해 어떻게 제안하는가?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비상 대책으로서 제헌의회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정부와 현 정치체제의 폐허 위에 세워지는 제헌의회를 요구한다. 우리는 공산당과 프렌테 암플리오뿐만 아니라 대법원에 의해 제안된 것과 같은, 현 체제의 헌법적토대 위에 세워진, 짜고 치는 방식의 제헌의회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의 제안은 모든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혁명적 의미에서 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피녜라 정부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는 대중적 투쟁으로 유권자 2만 명당 한 명의 대의원을 가진 민주적인 제헌의회를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금 회복, 무상교육, 임금 및 부채문제 해결 등의 요구는 자본가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는 한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오늘날 루식스, 마타스, 앙헬리니스와 그 외의 소수의 가문이 엄청난 권력과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의 연립정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현 정권의 우익 정당들과 얽혀있다. 우리는 은행, 임업 및 광업 회사를 침범해야 하며, 실제 권력에 대항하는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제헌의회가 군부독재로부터 이어진 이 정치체제의 모든 측면에 대해 토론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우리는 갈등을 해소하지도 못할 몇 가지 제도적 해결책을 고안해내거나, 이 정권을 개선하려는 게 아니라, 이 정권을 박살낼 수 있도록 전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미국 사회주의자들에게 매우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몇 주 전 뉴욕에서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고 지하철 무료승차를 위한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동 받았다. 이 시위에서 청년들은 항의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개찰구를 뛰어넘었다. 제국주의 야수의 심장부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에 동조하고 우리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청년들의 반란이 전염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우리가 미국에 매우 중요한 동맹세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바꾸려 하며 착취와 굶주림이라는 이 체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청년들과 노동자계급이 바로 그들이다. 만약 미국에서 젊은이들과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궁극적으로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칠레 정부와 싸우는 데에서 우리는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원문

Chile: On the Front Lines against Neolibe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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